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대한 아버지와 두 딸의 글입니다.
2025.3.12.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
땡비에서 나눠볼 오늘의 이야기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어떤 순간인가요? 후회되는 날일까요 아니면 다시 한 번 만끽해보고 싶은 시간일까요? 오늘 땡비의 글로 여러분에게도 돌아가고 싶은 한 순간이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
미지(2016)  

겨울의 끝이자 봄의 시작인 순간을 맞이하며(by. 흔희)

 

추위에 유난히 취약한지라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들어가듯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랫감을 보니 외출복이 별로 없다. 2월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추위는 누그러졌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날 때쯤 다시 보자며 헤어졌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본다. 부산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언양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자기 동네로 오라고 한다. 내가 사는 곳과 언양의 중간쯤에 사는 친구를 차에 태우고 그곳으로 향한다. 풋내나던 17살에 처음 만난 우리는 6년 전쯤부터 마흔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스페인에 가자고 곗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025년 2월. 오늘, 마흔이 되어 우리는 처음 만났다.

 스페인으로 향했던 우리의 계획에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발리로 1차 변경 사항이 있었다. 8월에 발리를 가기 위해서는 지금쯤 비행기 표를 예약해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 이야기를 꺼내니 한 친구가 미안하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던 업을 접고 작년부터 다시 대학생이 되어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였다. 그동안 일을 하며 돈을 모아두었지만, 아르바이트와 근로 장학생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해외를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셋 중의 하나는 허덕거렸다. 두 명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하나는 여전히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고 하나가 대학생이 되자 곧 둘은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두 명이 직장인이 되었을 땐, 하나가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하며 호주로 훌쩍 떠나버렸고 직업을 가진 세 명이 비로소 한국에 다 같이 모였을 땐, 하나는 육아에 허덕거리며 30대를 보냈다. 아이는 자랐고 육아가 비로소 좀 우아해진다고 느낄 무렵, 비교적 셋은 안정적인 상태로 마흔을 맞이하는 듯 보였지만 39살이 되던 해, 하나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배움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다리던 스페인 여행이 무산되던 말이 나오자, 우스갯소리로 누군가가 말을 뱉었다.
“야, 우리는 세 명이 다 좋을 수는 없는 거가!”

 20대에는 시간이 있었지만 돈이 없었고, 30대에는 돈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40대가 되면 시간도 돈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의 삶인가 보다. 아니다. 돌이켜 보면 다 변명이다. 20년의 세월 속에 세 명의 타이밍이 다 들어맞는 순간이 한시도 없었을까. 문제는 시간도 돈도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묶어두었다. 무언가를 돌파하고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기에 우리의 세상은 좁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해외여행 하나 무산되었다고 무슨 이런 비관론에 허덕이나 싶겠지만. 해외여행은 상징적인 것일 뿐이다.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으로 방향을 돌려 보는 것. 전혀 가보지 않은 문을 통과해 보려는 시도.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용기였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했고 스스로 삶에 한계를 긋고 있었다.

그래서 돌아간다면 셋이 함께 떠나볼 수 있었던 어떤 순간으로 가보고 싶다. 아르바이트하며 벌었던 돈을 술이나 커피에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모아서 바다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도 있었을 20대의 어느 순간. 호주로 떠난다는 너를 붙잡고 가지마라고 말릴 것이 아니라 남아 있던 우리가 바다를 건너 너를 보고 돌아올 수 있었던 그 순간. 그런 순간들로 돌아가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려던 관성을 보란 듯이 끊어내고 싶다. 우리에게 사실 타이밍은 몇 번이나 있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우리는 시간이나 돈이 아까웠을 뿐이다.

 선형적으로 시간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원형적으로 시간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을 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과거-현재-미래의 틀에 삶을 가두어 버린다.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 되고 돌이킬 수 없으며 삶은 특정한 시간대에 갇힌다. 반면에 원형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시간은 절기마다 순환한다. 계절은 돌고 돈다.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이다. 한 시점이 끝이 될 수도 있고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삶은 흘러가면 끝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흐르는 삶 속에서도 일정하게 반복되는 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그리워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화되는 나의 행동 양태에 집중하고자 한다. 굳이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타성에 젖어 익숙하게 돌아가는 내 관점에 조금의 변화를 준다면 삶은 변주되고 더 다채로울 것이다. 대충, 마흔을 맞이하여 좀 색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꿈결(2014)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by. 못골)


며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찾아본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언제일까? 돌아가서 다시 삶을 진행하여 현재의 반복이 되어도 돌아가고 싶을까?
내 의지대로 잘못된 인생을 고쳐서 다시 살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려 할까? 돌아가서 다시 경험하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언제일까? 입학하는 날, 아이가 태어나는 날, 취업, 결혼, 사랑이 시작되던 날, 헤어지던 날. 떠오르는 그 순간은 있지만 그냥 단편적인 사건이다.
그런 특별한 순간이 우리들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일까? 인생은 고쳐서 다시 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결혼식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친한 친구와 어머니 이렇게 세 사람이 술을 한잔할 때 어머니가 “오늘 같은 날 아들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 속에는 어머니의 많은 한과 소망이 섞여 있는 깊은 내면의 말씀이었다.

메리놀 병원 앞에서 장모와 걸어갈 때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낯익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헤어진 그녀였다. 인사를 하며 어떻게 지냈느냐는 반가움의 인사 정도는 하고 의례적인 말이라도 안부를 전하며 헤어질 수 있었을 텐데! 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히 스쳐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후회하는 행동이었다.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이 돌아가고 싶은 날일까?

방학 때 친구가 공사하는 건설 현장에서 며칠 막노동을 하고 왔다. 그리고 만난 그녀에게서 “왜 연락이 없었느냐? 혹시 날 속이고 있었냐?”는 말에 화가 치밀어 손이 올라갔다. 스치듯 그녀의 뺨을 빗맞고 입술이 터져 손수건으로 닦아주니 싫다고 그냥 가버린다.

사과해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동, 아마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내 마음속에는 이미 헤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어 그런 결심이 행동으로 나왔을 것이다. 잘못된 판단이다. 왜 애틋하게 늘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남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어느 날 헤어지자고 먼저 제의하고 가버렸을 때 나는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 아픈 지난날에 대한 앙갚음이었을까?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억하심정이었을까? 내가 아팠던 경우와는 다르게 그녀는 쉽게 잊을 것이다. 그녀가 배우자로 날 선택하기에는 얼마나 감수해야 할 많은 장애가 있었나? 특히 가난은 그녀도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며칠을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돌아오면서 스스로 마음을 정리해 버렸다. 다시는 찾지 말자고. 그런 나를 보고 함께 자취하는 친구가 “너 참 무서운 놈이구나!” 하며 웃었다. 그 친구는 싫다고 하는 여성에게 매달려 계속 만나기를 간청하는 중이었다.
그때 그녀는 왜 늘 나를 의심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였는지 심중이 이해되지 않았다.

2015년에 퇴직을 했다. 35년 전 그녀가 근무하는 치과에서 덧씌운 이를 다시 치료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치과를 찾아가는 길에 얼핏 생각이 났다. 나도, 그녀도 서로를 버려 버린 것이라고…. 늘 짐처럼 마음에 걸리던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비로소 이해되었다. 서로 가난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수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길로 감히 걸어 들어가기에는 각각 처한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무서워 서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미련 없이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정리하였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으로 그때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만나서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해주고 싶은 말 때문이다. 갑자기 왜 맞았는지도 모르는 채, 왜 헤어졌는지 간청도 애원도 해명도 없이 실없이 만났던 사람처럼 우리는 스쳐 가버렸다. 그녀는 없었던 일로 잊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현실로 와서 뒤돌아본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많은 과정속에서 갖추어진 자신만의 색깔이다. 수채화 색이 층층이 쌓이면서 미묘하고 독특한 색을 나타내듯, 켜켜이 새겨진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젊을 때는 그 색깔에 맞는 상대를 찾는다. 스스로는 왜 저 사람이 좋은지 모르면서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의 유형이 그런 기준으로 선택한 사람이다.

그래서 다시 다른 사람을 사귀어도 지금의 아내일 것이다. 많은 분석과 탐색 뒤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절로 갖추어진 내 이성과 감성의 작용 결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이혼은 나의 지난 잘못을 고쳐 다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반성의 과정이 아니라, 나의 잘못을 받아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골라 그 행동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성격 때문에 큰 아픔을 겪어도 그 성격을 스스로 고쳐 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지금의 아내와 처음 만난 그때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일까? 아내는 동생이 여럿 있어 결혼이 급했고 나는 느긋했다. “맏이니 결혼 준비는 되어있겠네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라고 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배우자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하면서 그 배우자가 나일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취업도, 재산도, 기술도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나는 누구를 대상으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떻게 결혼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따름이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 또래 사람들에게 '언제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 시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힘겹게 살아온 시절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산다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진을 함께하는 선배가 술을 한 잔하며 어머니 돌아가신 날, 침례병원 장례식장에 문상을 와서  “와!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고 웃으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어디 가난뿐이겠는가?

그도 나도 우리 모두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드러내지 않은 일들이….
당신에게도 가슴 아픈 많은 이야기가 층층이 재어져 있다.
그냥 마음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바라보며 노력해 왔다면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나은 시기는 지금이 아닐까? 노력했기에 그래도 암담했던 과거보다는 요만큼 조금 더 나은 지금의 상태로 되어 있다.

칠십을 넘겼는데도 아직 알 수가 없다. 남아있는 길지 않은 내 인생조차도 앞으로 삶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변화가 다시 와 닥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은 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루어진 살아온 결과이다.

시장 다녀오는 아내를 우연히 장산 전철 역 입구에서 만난다. 당신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이 인다. 나도 그런 표정일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찰나처럼 흘러간다.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이런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우리에게 없다. 이제 그 순간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 가며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2024)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by. 아난)


“그날 이후의 기억은 어떤 것은 상세하고 어떤 것은 듬성듬성 잘려있다. 심리상담사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진 건 아니라서 말로 꺼내 질서화하지 않는 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리라고, 슬픔을 어떻게 질서화할까.”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소설 속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미완성된 관계로 내 무의식 어딘가에 박혀 늘 찜찜하게 남아있던 기억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올랐다. 책장을 덮고서 나는 그때로 돌아갔다. 무엇이 마음속에 남아버린 것인지 질서화 해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 수업을 듣고 있으면 1분단 끝에 앉은 친구H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곤 했다. 그러면 모두 별일 아닌 듯 수업을 잠시 멈췄다. 반장과 남자 부반장을 비롯한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쓰러진 친구의 고개를 돌려 기도를 확보하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발 빠른 친구는 뛰어가 담임 선생님을 모셔 오고, 단발의 여자아이는 쓰러진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쓰러지던 그 친구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아픈 친구H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기만 해도 거친 욕을 쏟아내고 책상을 치며 위협했다. 친구H의 곁에 다가가기 힘든 이유에서일까? 우리 반 반장 무리는 지난해에 이어 H와 같은 반으로 그대로 올라와 능숙하게 구조대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처음 본 나는 H가 넘어가는 순간이 늘 무서웠다. H가 쓰러질 때마다 그의 비명이 신호탄처럼 터졌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귀에 꽂히듯 날카로운 굉음이 내 몸을 에워쌌다. 그 비명은 H가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넘어간 책상이 ‘탕‘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로 이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이 항상 길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친구가 무안하지 않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해야 한다며 친구들은 모두 놀라움을 숨겼다. 정신을 잃고 몸을 흔들며 입에서 거품을 쏟아내고 있는 친구를 쳐다봐선 안 되었다. 그렇게 1분단 뒤쪽은 언제나 바라봐서는 안 되는 곳이 되었다. 2학기가 지나갈 때쯤에는 정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점점 무뎌져 갔다. 우리 반은 ‘있었던 사건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학습해 나갔다. 친구가 쓰러져도 이 상황에서 멀어질 수 있게 다른 친구와 농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동시에, 이 시절 나는 ’누가 약자인지‘ 매일 뒤바뀌는 혼란스러운 곳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교실 뒤편에는 싸움 붙이기가 놀이처럼 자주 열리곤 했다. 반 남자아이 중 가장 약한 아이를 골라 H가 팰 수 있게 했다. 그 싸움판의 주도자는 반장 무리였다. 어느 날 남자 부반장은 별명이 ’프랑켄슈타인’이었던 친구를 교실 뒤에 세웠다. 그러면 싸움판이 열려 H는 주먹으로 그를 한껏 쳤다. ‘프랑켄슈타인‘은 도망 다니거나 주먹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H에게 저항하거나 때릴 수가 없었다. H는 피를 흘리면 지혈이 되지 않아 작은 상처도 큰 위험이 되는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차라리 뛰어나갔으면 했지만, 둘을 둥글게 에워싼 남자아이들의 원이 더 강력했다. 흥분한 남자아이들이 도망쳐 나가려는 프랑켄슈타인을 원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반장은 그 광경을 큰 소리로 중계하며 박수치고 웃기 바빴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반 아이들은 그 모습에 늘 그렇듯 능숙하게 대처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

사람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간다. 여느 때와 비슷한 그저 평범한 어느 날의 기억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아무리 해도 잊히지 않을 때 그제야 깨닫는다. '그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었구나. 무언가 내 마음속에 큰 진폭의 감정이 오갔었구나.'하며 내 감정을 뒤늦게 알게 된다. 아니 이런 기억은 대체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진다. 

 나는 그때 혼란스러웠다. 누가 약자일까? 희귀병을 앓고 있는 H가 약자일까? 아니면 H에게 맞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 더 약자일까? 반에서 손꼽히게 큰 덩치인 프랑켄슈타인이 그래도 더 강하지 않을까? 무엇이 약자를 결정짓는 걸까? 내가 만약 둘 중에 도와야 한다면 누구를 도와야 할까? 맞을 때는 프랑켄슈타인이 더 약자이지만, 그러다 H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었다. 정작 판을 벌인 사람들은 '누가 쓰러지든 상관없어'하며 한 발 빠져서 유유히 웃고만 있었다. 돌이켜 볼수록 약자끼리 할퀴는 그 싸움판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20년도 더 된 까마득한 일인데, 이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내가 후회된다. '때려봐' 하며 자극하는 아이들의 소리는 여전히 날 고통스럽게 한다. 흘기듯 잠시 보았던 순간, 내 눈에 담겼던 공포에 질린 프랑켄슈타인의 표정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때는 프랑켄슈타인도, H도, 반장무리도 큰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 정의했다. 교실 뒤와 나를 명확하게 선을 긋고 돌아보지 않았던 내가 부끄럽다. 

반장 무리의 이중적인 면을 선생님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반장은 외고 진학을 위해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갔다. 잘 보여야 하는 사람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의 기준이 명확했던 아이들이었다. 피곤하게도 그들에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반장이 좋아하는 남자의 여자 친구가 나의 친한 친구라는 이유에서였다. 내 친구A가 교실 앞 복도를 지나갈 때면 반장 무리는 무슨 작전을 수행하듯 움직였다. 친구를 자극하기 위해 창문에 붙어 준비된 대사를 뱉으며 시비를 걸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A와 신나게 웃다 교실에 들어오면 싸늘함이 느껴졌다. 반장 무리의 그 일사불란함은 내게도 이어지곤 했다. 어떤 회의에서나 내가 의견을 낼 때면 반장의 주도 하에 비웃음과 기분 나쁜 수군거림이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하게 학교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아무렇지 않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이 듬성듬성 남아있다. 남자 부반장이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크게 내거나, 한 남자아이가 나의 어깨를 확 치며 제압하려 하던 것이 어떤 흉터처럼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사과를 요구하거나 중재자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택한 방식은 무시였다. 그냥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어이가 없어 별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곁에 있던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무안함이나 당혹감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들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왜 나는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걸까? 왜 뭘 해보지도 않고 무력감이 들었던 걸까?

반장은 계획대로 외고 진학에 성공하였고 그 이후에 반장 무리는 내 인생에서 사라진 듯했다. 그러다 대학교 방학 때 오랜만에 내려온 부산에서 세상 초췌한 모습으로 건물에서 나오는 어느 여자를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라 시선을 거두었다가 눈이 머무르는 느낌이라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중학교 때 반장이었다. 온 몸에 물기가 다 사라진 듯 초라한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늘 기세등등하던 그녀와는 정반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 놀란 그녀를 보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묘하게 통쾌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30대가 막 되었을 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통해 반장 무리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천년의 우정을 이어갈 것 같던 그들은 모두 와해되었다. 남자 부반장은 전업 투자자라는 이름으로 방 밖을 나서지 못하였고, 다른 아이들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듯하였다.

그들이 망해버린 세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좁디좁은 교실은 손바닥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릴 수 있었겠지만,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결말이 되어 기뻤다. 그러나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마음이 안 좋다.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후회가 남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로 돌아가서 다들 그만하라고 외치면 속이 후련할까? 이건 잘못된 행동이고 무례함을 멈추라고? 그렇게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은 불가능한 문장이라는 걸 배웠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의 파편이든, 감정으로든 남는다.
💌 지난 호 구독자 후기 (#26. 내가 꼽는 한국사의 한 장면)
도라방스님 : 글을 읽으며 저와 비슷한 면을 발견하여 재밌기도하고 공감되었습니다. 제가 몰랐던 한국사의 면면들도 알 수 있어 신기하고 생생했던 글이었습니다. 
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읽으면서 머리를 스친 어떤 의견이든, 궁금한 것이든 편하게 남겨주세요!
* 좋은 의견을 남겨주신 분에게는 📔땡비 책필름 책갈피 굿즈를 보내드립니다. 땡비는 칭찬을 먹고 자란답니다🐝
땡비 이거 뭐야? 하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 아래 구독 링크를 함께 나눠요!  
🍯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순이. 
땡비
@ddbeeletter
수신거부 Unsubscribe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