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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36. CIC(Company in Company)의 장단점과 HR의 역할
by jason KIM

CIC(Company in Company)는 “사내 독립 기업”으로 번역됩니다. 크고 복잡해진 조직에서 더 이상 혁신이 없을 때, 조직을 작게 쪼개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구성원에게 창업자 정신(entrepreneurship)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SK 등에서 2015년경부터 운영했고, 네이버웹툰, 네이버페이(現 네이버파이낸셜) 등의 성공으로 그 효과도 증명됐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도 이를 많이 벤치마킹하는 것 같습니다.

CIC와 사내벤처의 닮은 점과 다른 점

10여 년 전에도 사내벤처가 유행했습니다. 운영 목적 및 기대 효과는 CIC와 사내벤처가 거의 비슷합니다. 조직을 가볍고 빠르게 만들겠다는 것이죠. 즉, 애자일한 조직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다만, CIC와 사내벤처의 차이가 있다면, 운영 원리와 규모인 것 같습니다.

사내벤처가 어쨌든 대기업 내 하나의 팀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면, CIC는 모(母)회사의 우산 아래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율권을 보장받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사내벤처의 리더는 대체로 ‘팀장’ 또는 ‘실장’ 정도의 권한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 소속 구성원의 연봉을 자유롭게 정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예산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CIC는 모기업의 브랜드는 그대로 쓰지만, 사실상 하나의 독립된 사업체처럼 운영됩니다. 조직 규모가 작더라도 CIC 대표는 엄연히 대표이사의 지위를 갖습니다. 인사권, 예산권 등 독립 기업이 가져야 하는 모든 권한을 갖습니다. ‘공룡’이 되어버린 대기업 특유의 관리·통제에서 벗어나,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조직 규모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사내벤처가 보통 5명에서 50명 정도의 규모였다면, CIC는 100명 이상으로 조직 규모가 크고 분사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CIC의 장점

CIC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 중에는 책이나 기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있고, CIC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들을 제가 곁에서 보면서 관찰·체험한 것도 있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의사결정 속도와 핵심 사업에 대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CIC는 모(母)기업보다 수평적 조직이 될 가능성이 높고, CIC 대표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니 신속하고 일관된 의사결정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모기업에서 쓸데없는 참견이나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러다 보니, CIC 대표가 구상하는 사업 방향성이나 경영 철학이 순수한 형태로 잘 구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모기업이 가진 자본력, 네트워크, 브랜드 이미지 등을 이용할 수 있으니 사업 발전의 속도도 빠릅니다. 단적인 예로, 독립한 자회사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회사명으로 채용 공고를 냈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그 회사가 바라는 인재가 지원할까요? 우수 인재는 고사하고, 이력서조차 몇 장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모기업의 이름을 활용해서 그 기업의 사업부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보내면 수백 장의 이력서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창업가 유형의 인재를 내부에서 발굴하여 육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CIC는 누가 시켜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누군가를 찍어서 CIC 대표를 임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네이버의 경우 CIC가 되기 전 소규모 조직일 때를 Cell이라고 하는데, 특정 사업/서비스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Cell을 만들고(사실상 사내 창업), 이 Cell이 성장하여 CIC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Cell과 CIC 모두 창업가 정신이 출발점이 됩니다. 이들이 Cell장(長)에서 CIC 대표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 독립 법인의 대표로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창업가 정신이 강한 기업가의 육성입니다. CIC 대표가 이렇게 강한 창업가 정신을 가진 인물이라면, CIC 제도가 없는 회사였다면 퇴사 후 별도의 투자를 받아 회사 밖에서 창업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CIC 제도가 이런 훌륭한 인재가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세 번째 장점은, 부수적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어떤 대기업이 여러 독립 자회사를 두면 따라오는 이슈가 있습니다. 경영관리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여론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문어발식 경영', '무리한 사업 확장' 같은 사회적 비난도 있죠. 그러나 CIC는 이런 이미지보다 훨씬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창업가 정신을 가진 어떤 사람이 대기업의 관리체계를 뚫고 나와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새로운 사업/서비스를 만들어 냈다는 모습 자체가 낭만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되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CIC에 속한 구성원과 HR 부서 입장에서의 장점도 있습니다. 이는 소소하지만 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보통 대기업에서 독립해서 떨어져 나간 자회사의 경우 자본금이나 매출이 모기업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융 대출이나 복지에서 모기업과 엄청난 차이가 생겨 버립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회사로 발령이 나도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CIC는 운영 원리는 독립 법인처럼 하더라도 법률적·행정적 실체는 모기업의 사업부 정도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복지 혜택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HR 부서도 계열사 간 전보 발령처럼 복잡한 행정 처리 없이 편하게 구성원을 이동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CIC라 하더라도 결국 같은 회사 우산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CIC의 단점
분명 CIC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조직 운영원리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다는 제 평소 신조에 맞춰, 단점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아래 단점은 주로 HRer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아마 비즈니스의 성공이 지상과제인 Top Management는 아래와 같은 단점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첫째, CIC가 많아지고 각각이 독립적인 인사제도를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시죠. HR 부서 입장에서는 어떨 것 같으세요? 이러면 한 회사에 여러 개의 인사제도가 작동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복잡성이 높아집니다. 어떤 분은 “CIC에 독립채산제처럼 거의 완전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기 때문에, 복잡성이 높아져도 문제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CIC가 결국 법률적·행정적으로는 모기업의 사업부라는 것입니다. 한 회사에 여러 인사제도가 존재하면, '현장 밀착 지원'이나 '커스터마이즈'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운영 효율성', '일관성' 측면에서는 큰 폭의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CIC 대표의 철학/성향에 따라 HR이 잘 돌아가거나 아무런 인사관리 없이 방치되는 경우로 나뉩니다. (이상하게 이 양극단 사이에 중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CIC가 사내 독립 법인의 지위가 있다 보니, 총인건비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의 통제를 받고 그 외 HR과 관련한 모든 것에 자율권이 있습니다. 따라서, CIC 대표가 HR에 관심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HR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창업가의 특징상 ‘관리’보다는 ‘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당 기간 HR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이렇게 방치돼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황무지가 되어버린 HR을 다시 정상화하려면 흙부터 갈아엎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정상화 과정에서 HR이 많은 욕을 먹는 경우도 봤습니다. 인사’관리’가 없던 CIC에 뭔가 ‘관리’가 생기는 기분이 드니, 구성원들이 “역시 HR은 사업에 방해만 될 뿐,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같은 인식을 갖더라고요.

셋째, CIC마다 발전 단계에 따라 구성원 보상 수준이 달라지므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창업해서 이미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A’라는 CIC가 있고, 반대로 최근에 생겨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B’라는 CIC가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A’ CIC에 속한 구성원은 연말에 두둑한 인센티브도 있고, 개인 성장의 기회도 많을 것입니다. 반대로 ‘B’ CIC에 속한 구성원은 그런 ‘A’ 구성원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질투심이 생길 겁니다. 물론, ‘B’ 구성원도 해당 사업/서비스의 장래성을 보고 온 것이기에 장기적으로는 잘될 것이라 믿겠지만, 그 순간순간의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이 회사 내부에서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또한, 잘못하면 CIC 간에 인재 유치 경쟁을 해야 해서, '군비경쟁'에 비유할 만한 인건비 상승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외부의 경쟁사와 인건비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 내부에서 경쟁하는 것이니, 이를 전사 관점에서 보면 어이없는 일일 겁니다.

넷째, 이론적으로는 CIC마다 기획, 회계, 자금, 구매, 인사, 총무 등 독립 회사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므로 경영기획/지원/관리 기능을 하는 부서와 인력이 증가합니다. 즉, 기존에는 모기업의 한 부서에서 일관되게 서비스함으로써 효율성 높게 운영하던 구조는 유지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CIC의 발전 단계에 따라 어떤 CIC는 HR의 모든 세부 기능을 잘 갖춰 운영까지 잘 되는데, 반대로 어떤 CIC는 채용 기능은 잘 갖췄는데 평가와 육성 기능은 갖추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위 ‘이가 군데군데 빠진’ 형태로 HR을 운영 중인 CIC가 더 문제입니다. 모기업의 관련 부서에 이 기능을 챙겨주거나, 최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CIC는 간단한 모니터링만 해도 되는데, 어떤 CIC는 A부터 Z까지 다 챙겨줘야 하는 식으로 복잡성이 생깁니다.

다섯째, CIC 단위가 아닌 전사 단위의 핵심 HR Practice의 운영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당 부분 이는 각 CIC에서 관리하는 HR 데이터의 기준, 수준,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HR Intelligence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전사 단위의 C-Level을 선발해야 하는데, 그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가 CIC마다 다르게 저장되어 있어 일관성이 없다면, 누구를 뽑아야 할지 혼란이 생깁니다. 전사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상 의사결정을 최상위 리더의 직관이나 알음알음의 비공식적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셈이죠.
CIC가 있는 회사에서 HR을 잘하려면…

CIC 제도를 운영하는 순간 HRer는 피곤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운영 효율성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예전처럼 하나의 인사제도로 모든 조직과 구성원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은 버리고 효과성을 추구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CIC가 있는 회사에서 HR을 잘하려면 아래의 몇 가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첫째, HR Governance를 잘 설계하십시오. 쉽게 말해, 모기업의 HR 부서와 각 CIC의 HR 부서 또는 HR 담당자 간 권한과 책임을 잘 정리하십시오. 일반적으로, 모기업의 HR 부서가 COE(Center of Excellence)의 역할을, CIC의 HR은 HRBP(Human Resources as Business Partner)의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또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CIC마다 발전 단계, 속도, 규모 등에 따라 형태가 다 다르므로 유연한 설계와 운영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큰 원칙을 수립해 두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둘째, 이 역시 위의 HR Governance와 관련 있는 문제인데, 인사제도상 어디까지 모든 CIC가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고, 어떤 것부터 각 CIC가 자율성을 발휘해도 되는지를 잘 정의하십시오. CIC에 모든 자율권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한 회사의 우산 속에 있는 한 최소한의 일관성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CIC는 1년에 최소 1회 인사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일관된 원칙을 세우되, “각 CIC는 언제 인사평가를 할지, 그때 평가 등급을 몇 단계로 할지, 평가자마다의 의견이 반영되는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자율적으로 정해라”라고 하십시오. 일관성의 영역과 자율성의 영역이 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CIC가 성공했을 때, 그 성공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 성공을 위해 달려온 소속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한 CIC를 보면, ‘저 사업 아이템을 갖고 나가서 혼자서 창업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물론, 모기업의 브랜드와 자본력이 그 성공의 속도를 높인 것도 있지만… 아무튼 CIC 대표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성공을 거뒀다면 그 성공의 열매를 모기업이 독식해서는 안 됩니다. CIC의 구성원들이 회사 밖에서 창업하여 성공했을 때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인센티브 체계, 특히 장기 성과급(예: 스톡옵션, 스톡그랜트)에 신경 써야 합니다. 창업가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CIC 제도를 운영하면서, 정작 창업 후 성공에 따른 과실은 기존 주주들이 독식해 버리고, 정작 열심히 일한 구성원들은 찬밥인 회사를 가끔 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넷째, 의미 있는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내벤처, Spin-off, Cell, CIC 같은 시도들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대기업 특유의 딱딱한 문화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업/서비스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이템으로 하여 창업을 하는 것은 항상 리스크가 있는 행위입니다. ‘Entrepreneur’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가 ‘모험과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사업이라는 것이 원래 변수가 많은 것입니다. 사업모델이나 서비스는 너무 좋은데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사라지는 것도 있고, 반대로 아이디어 자체는 별로인데 시대와 인연을 잘 만나 대성공을 이루기도 합니다. 따라서, CIC 대표 또는 그 구성원이 그 사업/서비스에서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을 품어주고 그 실패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면 누가 사내에서 창업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겠습니까?

글을 맺으며...

위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CIC 같은 제도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도 구성원에게도… 그러나 HRer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고 머리가 복잡한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HR은 결국 스탭(staff)이고, 회사와 구성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미션이라고 생각하면 이러한 수고로움은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HR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도 어쩌면 HRer에게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고요. 사내에서 CIC로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CIC를 넘어 독립 법인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늘어날수록 HRer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납니다. HRer가 갈 수 있는 좋은 자리(position)가 늘어나고, 거기서 또 다른 경력개발을 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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