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이 사라지면 해결될까? : 진상시스템

‘진상’이 사라지면 해결될까? : 진상시스템

It's the system!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92), 2023.8.2,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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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진상, 교육, 감정노동, 에밀, 소비자

1.머리말
2.‘감정노동’이 진짜 문제가 되는 순간
3.“소비자는 왕”의 시대 : 진상 시스템
4.교육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근래 수주 간 ‘진상’이란 단어가 뉴스창을 뒤덮고 있습니다. 서이초 사안과 관련하여 다른 수많은 학교 ‘진상’ 사례들이 등장하면서, 어떻게 세상에 저런 나쁜 사람이 있지!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사연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된 여론은 대체 누가 또 얼마나 말도 안되는 ‘진상짓’을 했는지를 낱낱이 밝혀내고, 표적에 돌을 던지는 것으로 집중되는 모양새입니다.

<fig.1> 서이초교 앞 한 추모객이 교문에 붙어있는 메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하지만 현재 어떤 특정 ‘진상’을 적발해 화를 쏟아내고 나면 선생님의 노동 조건과 교육은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교실은 무엇때문에 붕괴되기 시작했을까요? 이곳에서 과연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 장 자크 루소의 <에밀> 등을 지팡이 삼아 ‘효율성’과 ‘교육’에 대해 둘러 궁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감정노동’이 진짜 문제가 되는 순간】

우선,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커다란 비행기’를 떠올려봅니다.

옛날엔 이 비행기에 100명이 탔는데요. 만약 오늘날엔 200명이 탑승하고, 승객에게 제공해야 하는 밥과 서비스의 종류가 아주 많이 늘어난다면 어떨까요? 승무원 숫자는 그대로고요.1)

과연 이 비행기에서 승무원들은 고객의 안전 등 중요한 업무에 신경쓸 수 있을까요? 승무원은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손님들은 행복할까요? 이 비행기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단지 극악무도한 진상의 탓일까요?

위의 예시는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감정노동>(1983)에서 주장한 핵심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얼핏 <감정노동>은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를 처음 탄생시킨 책인만큼, 감정노동의 정의나 감정노동의 나쁜 점이 적혀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감정노동emotion work = 타인의 감정을 다루며 자신의 감정을 업무에 적극 활용해야 하는 직무.

혹실드는 <감정노동>에서, 의외로 ‘감정노동 그 자체가 억압적이고 나쁘니 싹 없애야 한다!’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저 노동이되 감정을 상품화한다는, 중립적인 개념이죠. 대신 그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바로 아래와 같습니다.

“감정노동을 한다는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노동 조건이다!”

즉, 가장 큰 문제는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fig.2>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 (왼쪽) 1983년에 최초 발간된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의 초판본 책 표지. 이 책의 메시지는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2003년, 2012년에 재출간(영문판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유효하다는 의미겠죠. wikipedia

‘감정노동과 아닌 노동’ 사이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한데요.

감정노동이라고 하면 특수한 직종만 일컫는 것 같지만, 혹실드는 미국 전체 인구의 1/3 정도는 감정노동을 포함하는 직종이라고 말합니다. 감정노동이 주가 되진 않아도, 업무를 하면서 타인과 접촉하고 그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업무들이죠. 예를 들면 의사, 교사, 검침원, 마트 계산원, 택시기사 등도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의 사례는 ‘항공승무원’입니다.

그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승무원의 ‘감정노동’이 급격하게 노동자들의 ‘소외’를 불러왔다고 짚습니다.

이유는, 1960~70년대에 미국 불경기 및 항공사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항공사들은 노선, 좌석은 늘리면서도 직원들은 더 뽑기는 커녕 줄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승무원 한 명 당 책임져야 할 승객이 늘어났고요. 다른 항공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친절점수 제도 등을 시행했습니다. 결국 승무원들의 업무 강도가 아주 심해졌습니다.

1960년대 이전부터 일해온 고참 승무원은 “추억에 잠겨”, 좋았던 과거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이전(1960년대)’ 시기에는 요청받은 일, 그러다보면 자신들(항공승무원)이 원하게 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승객 75명에 직원은 셋이었죠. 사교성 좋은 사람이 하나 있어서 승무원을 각자 소개하고 승객들에게도 서로 소개하라고 시키고 그랬어요[…]비행기에 통로도 하나밖에 없었고 승객이 잘 수 있는 침대도 있었어요” “요즘은 끝없이 갈 수 있는 커다란 비행기들이 있죠[…]우리는 객실로 내려가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통로와 접시에만 시선을 둡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 <감정노동>(이하 동일)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조금 놀랐는데요.

비행기 안에서 승객과 승무원이 도란도란 ‘자기소개 타임’을 갖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조금 침착한 패키지 여행 관광버스(?) 같은 느낌일까요?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냥 캔통조림 속 꽁치처럼 잔뜩 웅크린 채 잠자코 있을 뿐인데요.

승무원의 설명에 따르면 항공사 간 경쟁이 심화되기 이전인 1960년대엔 항공기 당 승객의 숫자도 적었고, 비행 전후에 제공되는 준비 시간(포트타임)도 넉넉했다고 합니다. 승무원의 업무 자율성도 더 컸고요. 승객과 승무원은 서로 얼굴을 익힐 수 있었고, 승무원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고 거기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죠.2)

<fig.3> 1970년부터 본격적인 대량 수송 시대의 시작을 알린 보잉747기(링크)의 내부. 300~500명의 승객이 탑승가능해 수익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직원은 그만큼 늘리지 않아 노동 조건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합니다.(왼쪽) 2018년 발표된 Aviointeriors의 ‘Skyrider 2.0’ 좌석. 승객 20%를 더 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등만 기대고 가는 느낌이네요(영상) 다행히 아직 실제 적용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Britannica, Aviointeriors

실제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을 읽다보면, 승무원들은 자신의 일 자체를 싫어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업무에서 명예와 자부심을 얻고자 했으며, 훌륭하게 자신의 본업을 수행해내고 나면 보람을 느꼈죠. 하지만 점차 업무 환경이 나빠지면서 이들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었고 점점 더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소외시킬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경기 침체 탓에 유나이티드 항공은 다른 항공사와 마찬가지로 수하물 담당자, 게이트 직원, 발권 직원과 매니저들을 임시 해고했다. 줄이 길어졌다. 불상사가 늘었다. 흥분을 가라앉힐 일도 많아졌고 해야 할 감정노동도 많아졌지만 일할 사람은 줄었다.”

“능률을 향상하라는 요구가 있기 전, 대다수 승무원들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활기 어린 선의를 유지했다. 자신이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자랑스러워했다[…]개인을 상대로 하는 인간적인 접촉을 비인간적인 속도로 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면서 승무원들은 감정 노동을 줄이고 점차 감정노동에서 분리되었다.”

이처럼 항공업계의 전반적인 ‘비용절감’ ‘효율화’ 프로젝트로 인해, 손님들은 점차 전반적으로 나쁜 서비스를 받게 되었고 이런 ‘불만’은 모조리 대민업무를 하는 승무원에게로 쏠렸습니다.

승무원들은 점차 자신의 중요한 ‘업무’보다는(손님 안내, 위험 관리 등) 이런 불만을 무마하고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되었죠.

1)이 부분을 교육 현장에 대한 비유로 읽어본다면, ‘학생들의 숫자는 줄었고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기타 행정업무, (유초등) 돌봄업무 등으로 인해 교사들은 오히려 업무부담이 크게 늘어나 정작 교육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말해왔습니다. 교사의 행정 업무는 (2022년 기준) 2013년 대비 28% 증가했다고 합니다 (링크1 링크2) 학폭과 관련해서는 강득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결과에 불복해 벌인 행정심판·행정소송만 1405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교사를 상대로 한 민·형사 소송은 현황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습니다.(링크) 또한 가장 첨예한 학교폭력 등의 관련 업무는 80% 이상이 저연차, 기간제 교사가 홀로 떠맡게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수교육 현장의 자원 및 인력 부족 또한 오랜 문제입니다.

2)저는 이 대목에서 일전에 썼던 노동과 관련된 레터(✉️‘단순반복작업’은 사라져야할까?)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실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에서 보람을 얻고 싶어해왔습니다. 보람을 얻기 위한 '노동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에 몰입한 작업자는 일의 내용과 목적이 혼연일체를 이룬다...작업자는 일할 때 자기 행동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일 자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라이트 밀스, <화이트칼라>(1951)

【3.“소비자는 왕”의 시대 : 진상 시스템】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낸 것 역시 ‘기업 효율화’의 일환이었습니다.

직원을 더 뽑으려면 돈이 들지만 직원의 ‘미소는 공짜’니까요.

혹실드에 따르면 1960~70년대 항공사들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경영자들은 한층 “승무원들은 항공사의 얼굴”이라든지 “고객이 뭐라 하든 무조건 친절하라!”는 방침을 강조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누가 잘못했는지, 노동자들의 감정은 어떻든지 상관 없이요.

<fig.4> 1968년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광고.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과 함께 '그녀를 당신의 엄마처럼 생각하세요'라는 홍보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그녀에겐 담요부터 엄격한 훈련의 결과인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원할 수 있습니다.(왼쪽)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스마일 운동' 붐이 일었습니다. American Airlines, 매일경제 1972년 3월 28일자

이처럼 효율성을 위한 일방적인 ‘친절’ 강조는,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노동자에게 폭력적인 말을 하고, 일방적으로 분노를 쏟아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직원에게 ‘친절 점수’를 매기거나, 불만 창구를 열어두고 ‘민원’이 들어온 노동자에게 패널티를 주는 방식을 통해 기업은 소비자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낸 것이죠.

“노동자들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렸다. 마음껏 이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우리는 무조건 소비자의 편을 들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권리다”

‘진상 시스템’, 시스템이 보장하는 진상의 탄생입니다.

일이 어려워 질때[…]승객들은 짜증을 억누르지 않을 특권을 행사한다. 승객은 ‘분노의 화신’이 된다[…]”기본적으로 승객은 아이같습니다. 관심을 필요로 하죠.”[…]언어학적으로 말하자면, 승객은 잘못된 일을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거나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여기서 핵심은 통상 ‘상호적인’ 것으로 여겨져왔던 감정(노동)이 오로지 노동자만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진상’을 양산해낸 시스템의 핵심을 짚고 있는, 아래와 같은 대목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이는 비단 특정 업계,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시대정신’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고객이 왕인 곳에서 불평등한 교환은 정상적인 일이며, 고객은 처음부터 감정과 표현에 관한 다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부의 원장은 아마도 임금으로 맞추면 될 일이다[...]승객은 승무원에게서 받은 공감이나 친절을 되돌려줄 의무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진상 시스템’엔 크게 두 갈래 작동 과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손님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 자체를 낮춰 불만이 늘어난다

2.‘손님은 왕이다’라는 말로 직원에게 모든 심정적인 부담을 떠맡긴다

우선 기업 입장에서 효율을 위해 직원을 줄이는 등 비용을 절감할 경우 ‘실제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 기간 전화 안내 수요는 폭증했지만, 오히려 상담원 수를 줄여 남은 상담원들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느라 불만에 가득찬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스트레스가 늘어난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1의 연장선상에서) 저급한 서비스에 대한 불만 사항을 시스템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직원의 ‘감정노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과거 홈쇼핑에서 의도적으로 낮은 품질의 제품을 팔고서 CS(Customer Service, 고객응대)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방어’시킨다는 내용의 기사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책임을 지지 않고 미봉책만 이어지는 것입니다.

<fig.5> 영화 <다음 소희>에서 소희가 맡았던 업무는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고객들을 응대해야 하는 '해지 방어' 업무였습니다. 서비스 전반에 대한 불만을 개인 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왼쪽) 진상을 적극적으로 방치하는 시스템은 결국 시스템 책임자, 경영자가 아닌 현장 노동자들에게로 모든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되어왔습니다. <다음 소희> 예고편 캡처, SBS스페셜

이에 일부 승무원들은 결국 ‘생존’을 위해 ‘자신’과 업무를 분리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인상적인 것은 노동자들이 ‘분리’를 택한 경우에도, 결국은 제대로 일을 하고 싶어하고 자아와 노동의 분리에 대해 괴로워했다는 점입니다.

나는 만약 노동자들이 노동 생활의 조건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좀더 크게 느낄 수 있다면 악영향은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자아를 배역에 맞추는 문제는 노동자가 노동조건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악화된 것이다[…]“직원들이 원한 건 단순히 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노동 생활에 발언권을 행사하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이 ‘진상 시스템’에서 이득을 본 것은 누구일까요?

얼핏 소비자가 이득을 본 것 같지만, 실은 일부 진상을 제외하곤 오히려 나머지 소비자들은 훨씬 더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적은 자원이 상당수 ‘진상 담당’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폐해는 교실 환경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라면, 진상보다도 노동력을 늘리거나 책임을 지지 않고서도 감정 노동자를 방패삼아 문제를 봉합해온 책임자 측이겠죠.

✏️

“감정이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누구의 도구란 말인가?”-앨리 러셀 혹실드, <감정노동>

【4.교육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상 ‘감정노동’을 연료 삼는 시스템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핵심은, 결국 ‘노동 조건’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제대로 일에 헌신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이 보장돼야 결과적으론 소비자 또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육의 교사-학생(학부모) 관계를 ‘소비자’로 두긴 어렵겠지만, 이처럼 무엇보다도 ‘노동권, 자율권 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은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아니, 교육이기 때문에 한층 더 중요해집니다.

이어서 간단히 펼쳐보려고 하는 책은 장 자크 루소의 <에밀>(1762)입니다.

<에밀>은 워낙 유명한 고전인데요. 실은 간단히 펼쳐볼만한 내용과 두께가 전혀 아니지만(...), 최근 이 책을 직접 꼼꼼히 읽고서 이런저런 해찰을 할 수 있었기에 오늘 레터에 저의 해찰을 간단히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에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뉘앙스를 요약하자면 - 아마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을 물로 보지 마! 교육이란 아주 만만치 않은 겁니다.”

<fig.6> 에밀의 초판 표지. <에밀>은 출간 이후 금서로 지정되고, 추방을 당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왼쪽) <에밀>에 수록된 판화 wikipedia

거의 천 쪽에 달하는 이 벽돌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에밀’이라는 귀족 후계자 소년을 유아기부터 아동기, 소년, 청년을 거쳐 결혼을 시키는 것까지 - ‘가정교사’ 장 자크 루소가 유아기를 제외한 약 20년 간 풀타임 1:1 교육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1인용 학급일지같은 느낌일까요.

<에밀>을 읽으면서, 루소 교육론의 핵심 자세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 몇몇 대목을 아래와 같이 꼽아보았습니다.

* “여기서 감히 나는 가장 중대하고 유익한 교육 전체의 규칙을 말하겠다. 그것은 시간을 아끼라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낭비하라는 것이다[…]초기의 교육은 철저하게 소극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미덕이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고, 악덕으로부터 마음으로, 오류로부터 정신을 보호해주는 일이다.” (p.132)

* “덕의 씨는 여간해서 싹트지 않는다. 거기에 뿌리가 나도록 하려면,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설교가 더없이 무익한 것이 되어버리는 한 가지 이유는, 구별하거나 선택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설교하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두 사람도 없을 것이다…” (p.565)

* “에밀이 직업을 배울 때에는 나도 함께 배울 것이다. 우리가 함께 배우지 않으면 그는 철저히 배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p.335)

-장 자크 루소, <에밀>(이하 동일)

즉, 교사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어울리며 교육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에밀>은 위에서도 말했듯, 오직 에밀이라는 소년 한 명을 20여년 동안 루소가 붙잡고 1:1로 ‘전인교육’을 하는 것이 이 책의 전체 내용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굉장한 거냐면, 학생 20명이 있다면 선생님 20명이 필요한 거죠. 그것도 20여 년 동안이나 학생 한 명만 365일, 24시간 담당하는 선생님이요. 깜짝 놀랄만한 일입니다.

물론 여기서 루소가 말하고 있는 건 ‘이상적인 교육관’이기 때문에, 이걸 곧이 곧대로 현실에 적용하긴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만. 바꾸어 말해보자면, 그만큼의 헌신, 각오가 없다면 제대로 된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위의 인용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에밀>에서 루소가 (특히 아동기, 소년기)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교사가 주입식으로 ‘지식’을 가르칠 게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호기심과 삶의 기술을 익혀야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심지어 일정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도 안 읽히는 편이 좋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딱 적합한 만큼의 현장 경험, 갈등을 겪어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생 실전의 기술들과 덕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죠.

루소에 따르면 선생님은 ‘완벽하고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동료처럼 함께 겪고 길을 간접적으로 제시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에밀> 속 루소는 꼬마 에밀이 밭에 누에콩을 심고 싶어하자 누에콩을 함께 심(었다가 멜론을 파헤치는 바람에 농부에게 혼나)기도 하고, 시장통 ‘요술사’의 트릭을 간파하기도 합니다.

루소는 어느날 꼬마 에밀에게 천문학의 쓸모를 알려 주기 위해 에밀과 직접 하루종일 ‘일부러’ 숲을 헤매기도 하는데요. 정말 피차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한다. “에밀 이곳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에밀 (땀에 흠뻑 젖고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치고 배가 고파요. 목도 마르고, 이제 조금도 참을 수가 없어요.
장 자크 나는 아직 괜찮은 줄 아니?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울면 아침밥이 어디서 나오기라도 하니? 그렇다면 나도 울겠다. 울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해[…]
장 자크 참 어제 바로 이 시각에 우리는 몽모랑시에서 숲의 위치를 관측했었지? 만약 어제처럼 숲에서 몽모랑시의 위치를 관측할 수 있다면…여기서 마을이 보이지 않아도, 마을의 위치를 알 수만 있다면 좋은데…

이렇게 즐겁게 산책에 따라 나섰다가 ‘자연스럽게’ 루소의 함정(?)에 빠진 에밀은 결국 해와 그림자 위치를 활용해 스스로의 힘으로 결국 마을의 위치를 알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자연스럽게’ 천문학의 쓸모를 스스로 발명해내게 되죠.

에밀 (손뼉을 탁 치면서 기쁜듯이) 앗, 몽모랑시가 보인다! 저기 보셔요. 바로 저 앞에 보여요. 자아, 아침밥, 점심밥을 먹으러 빨리 가요. 천문학도 무엇엔가 쓸모가 있군요.

이처럼 루소는 학생이 스스로 어떤 학문, 기술의 쓸모를 몸소 깨닫게 하지 않고서 “중요하니까 그냥 외워!”라고 하는 주입식 교육을 가장 경계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내가 만약 에밀이었다면 배우는 것이 참 즐겁고 재밌었겠다는 생각이요. 이 책 속 루소는 엄하기만한 교사는 아닙니다. 직접 필요한 부분에 있어선 관대하고, 섬세하게 호기심을 이끌어주고 삶에 필요한 즐거운 지식들을 안내해주는 길잡이이자 친구죠.
제가 학교에 다닐 때 이런 즐거운 경험을 얼마나 해보았는지 떠올려보면, 실은 교과서 사이에 만화책을 끼워 두고 졸거나 매점에서 빵을 노렸던 시간이 훨씬 더 긴 것 같아 우울해집니다.

둘째, 이처럼 한 사람의 교사가 한 명의 학생에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롯이 쏟아도 될까 말까한 ‘교육’을 오늘날 공교육이 떠맡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탄과 숙연함이 떠올랐습니다.

원래 교육은 한명이 한 아이를 맡아도 이처럼 힘든 것입니다. 이때 ‘에밀’을 잘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부모와 선생님(루소)은 서로 적대관계라든지 부모가 루소를 다그치는 형태가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서로 협력관계인 것입니다.3)

그리고 결국 학생의 목표는 ‘사회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인간을 전연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다른 인간과 교류하려는 따위의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덧없는 행복은 우리의 약함 그 자체에서 생겨난다[...]에밀은 언제까지나 혼자 있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태어난 그는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장 자크 루소, <에밀>”

3)실제 <에밀>에선 귀중한 귀족 후계자인 에밀을 무조건 소중히 감싸고 돌려는 에밀의 어머니 대신("굉장한 비난 끝에 그녀는 나에게 아이는 몸이 약하다는 것, 이 집안의 단 하나의 후계자라는 것, 어떤 희생을 치루어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리고 아이에게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말아달라는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다…”-p.188), 루소가 에밀의 아버지와 기타 하인들을 섭외해 ‘버릇 고쳐주기 연극’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자꾸 제멋대로 산책을 나가자는 아이의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 혼자 거리를 떠돌게 하며 '귀족 꼬마'인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죠.(물론 무작정 내쫓은 건 아니고 거리에도 아이들을 매수(?)해서 안전을 철저히 지켜가며 연극을 진행하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에밀은 그날 얻은 교훈을 몸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만약 부모가 루소를 믿지 않았다면, 협력하지 않았다면 에밀은 이런 교훈을 익힐 수 있었을까요?

【5.맺음말】

저 역시,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터져나오는 수많은 진상 사례들을 보며 참담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과연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나쁜 일들입니다.

다만 저는 그 진상들을 묵인해온 시스템에 눈길이 가 닿았습니다. 진상이 얼마나 진상이냐보다도, 이런 의문들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왜 이런 진상은 ‘있는’ 걸까? 그래도 되니까 그래왔던 것 아닐까? 이런 진상들이 양산될 동안, 그리고 일선에서 노동자 개인이 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동안 책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지난달 21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성명을 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세상 어느 곳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빨리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관계에서 한쪽의 과도한 희생으로 간신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결국 상처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결국 우리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원래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래에 자라날 아이들이, 행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미 선생님들은 거리에 나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이젠 ‘시스템’이 답할 때가 아닐까요.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 이가람 옮김, 『감정노동』, 이매진, 2009.

-이 책의 원서는 1983년에 최초로 발간되었고, 이 책은 20주년 판본(2003)의 번역입니다. 나온지 어언 40년이 된 책이지만 여전히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감정노동’을 이야기하면서 가정 내에서의 감정노동 및 여성노동의 감정노동화, 감정노동의 여성화 또한 짚고 있습니다.

한편, 조금 사족같은 해찰을 더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어떤 노동이 “감정노동이 돼선 안된다/원래 감정노동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어떤 노동의 “중요성, 전문성”을 주장하려는 태도에는 약간 갸웃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오늘 레터에서 살펴본대로 시스템적으로 노동자의 소외를 일으키고 소진시키는 노동 조건은 결코 용납돼선 안되겠지만, 최근 이 책을 다시 정독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낌표가 떠올랐던 부분은 누군가들의 감정노동 덕분에 우리가 대도시에 불특정다수가 모여있으면서도 최소한의 따뜻함-신뢰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서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얼핏 들으면 조금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요.(아마도 '감정노동'이라는 단어 자체에 최악인 노동 조건이 단짝(?)처럼 따라붙곤 해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하 ‘이상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런 감정 노동자 덕분에 공적 생활 속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날마다 완전히 모르거나 또는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믿고 즐겁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선의가 우리가 사적 생활에서 아는 사람에게만 한정됐다면, 예의와 공감을 제공하는 것이 이렇게 널리 퍼지지 않고 감정이 직업적인 성질을 갖지 않았더라면, 공적 생활은 틀림없이 저 깊은 곳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앨리 러셀 혹실드, <감정노동> 中

장 자크 루소, 민희식 옮김, 『에밀』, 육문사, 2017.

-본문에서도 설명했듯이 꽤 두꺼운 책이고, 워낙 유명한 고전이다보니 처음엔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많은 예시와 친근한 글투로 인해 충분히 무난하고 재밌게 읽어갈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오늘날 실정에 다소 맞지 않는 대목들도 있긴 하지만(5장의 여성 교육 등)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모로 궁리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생동감 넘치는 책입니다.

레터에서도 썼듯, 읽는 내내 이건 '1:1 교육이니까 가능한거야...'라는 생각을 시종일관 떨칠 수가 없었는데요. 최근 SNS에서 '강형욱과 오은영식 티칭은 만약 금쪽이 10명, 문제견 10마리만 데려다놔도 불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과 겹쳐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답은 홈스쿨링 or 1:1 교육이다! 라고 말할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지난한 가르침을 보며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교육은 원래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만만치 않은 것을 해내기 위해선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요. 이는 분명 교사 1인에게 아이 수십명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철인이 되길 바라는 일방적인 '소비자 마인드'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병곤,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 서해문집, 2022.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이 그간 대안교육과 관련하여 쓴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참고로 <에밀>을 직접 읽게 된 것은 이 책을 먼저 읽다가 이 책에 인용된 <에밀>의 한 대목에 눈길이 꽂혀서였습니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고통이 우리의 마음에 인간애를 갖게 한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에 대한 의무를 갖지 않을 것이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교사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사회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800자

🖍글 속 한 문장

“‘제로섬 게임’으로는 이번 사태를 냉철하게 바라보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성적과 학력 높이기에 목숨을 건 듯한 공교육 체제에 도사리고 있다. 학교폭력 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고 결정한 순간부터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 기록은 ‘성적 산출’과 다름없어진다. ‘학폭’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는 자녀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자원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의 저자 이병곤 제천간디학교 교장이 최근 서이초 사건과 관련해 쓴 칼럼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새삼 서이초 사건 이전에 한창 교육계의 이슈는 다름아닌 ‘의대 쏠림 현상’ 및 ‘킬러문항’이었다는 점이 떠올랐습니다. 애초에 너무 오랫동안 왜곡되어온 공교육의 시스템 자체를 재상상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상, 감정노동 담론만으론 해결안된다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4800자

🖍글 속 한 문장

“영국이나 인도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콜센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 콜센터를 둘러싼 주된 이슈는 고객의 갑질이나 폭언 등 높은 감정노동에 맞춰져 있어요. 감정노동 문제 해결이 모든 문제의 종결점으로 오인돼선 안 됩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사람입니다, 고객님>을 쓴 김관욱 교수 인터뷰입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 처우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요.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의 콜센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관련 언론 보도 등이 유독 진상이라든지 감정노동의 차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하는 부분에서 느낌표가 떠올랐습니다.

결국 노동 조건에 대한 전체적인 성찰이 없다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의 상관관계?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400자

🖍글 속 한 문장

8년차 초등교사 신모씨는 “교사도 학생이었고, 학부모일 수도 있다”며 “학생 인권의 반대급부에 교권이 있는 게 아니다. 학생과 교사가 교실에서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정부와 여당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시동을 걸고 나서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안전한 일터’를 마련해주지 못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는 대신 학생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는 태도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400자

🖍글 속 한 문장

인권은 서로 경합하지 않는다. 인권의 역사는 특정 신분·성별·인종 등에게만 보장되던 권리가 다른 이들에게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쓰였다[...]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교권 침해’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것은 현실에 작용하는 복잡한 위계를 가린다. 젊은 여성 교사가 남학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면 그것은 젠더권력이 작동한 결과이며, 저연차 교사가 기피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연령차별이 교차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인권 확대의 역사를 톺아보면, 누군가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인권의 보장된 탓”이 아니라 다른 복잡한 이유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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