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네 살 아기를 양육하며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는 박은희라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로 선생님께 직접 인사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얼마 전 저희 아기가 태어나 처음 아이디 라는 것을 만들었는데요. 동네 도서관 대출증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네.. 게으른 어머니 덕분에 북스타트 신청이 매우 늦었죠..). 벽에 붙은 알파벳 포스터에서 (아직 전혀 읽을 줄은 모른답니다.) 아기에게 직접 마음에 드는 글자를 몇 개 고르라고 한 뒤 이 세상에 없는 단어로 생애 첫 아이디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기 이름이 들어간 도서관 대출증을 받은 아기의 눈이 ‘반짝’하던 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가 가장 처음 만드는 아이디는 도서관 아이디가 아닐까 생각하다 보니 괜스레 홀로 흐뭇해지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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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첫아기를 막 낳고 육아휴직 중일 때 가장 많이 간 곳은 도서관이었어요. 도서관의 유아실에는 폭신한 소파와 쿠션, 기저귀 교환대와 수유실이 있는데 거기다 제가 좋아하는 책까지 있으니 우울증이 절로 사라지더라고요. 도서관에서는 육아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책 냄새를 맡으며 쉴 수 있었습니다(물론 아기가 갑자기 응가를 하면 들쳐업고 집까지 뛰어가야 했지만요). 얼마나 자주 다녔는지 동네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은 저희 아기가 기고 서고 걷고 말하는 모습을 모두 곁에서 지켜보셨답니다. 아기는 키가 작은 책장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떼며 책장 사이에 꽂힌 책들을 구경하며 자랐습니다. 말이 트고부터는 스스로 골라 먼저 읽어달라고 가져오기도 했지요. 아기와 단둘이 집에만 있는 게 너무 갑갑해서 도망치듯 간 도서관이었는데, 아기에게는 좋아하는 선생님들과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과 책이 있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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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선생님들께 꼭 소개하고픈 책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올해 편집에 참여한 그림책인 《딱 너를 위한 책이야》인데요. 《도시에 물이 차올라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마리아호 일러스트라호 작가의 신작으로, 전 세계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었답니다. 저도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다 보니,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또 책을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많은 육아서에서는 양육자가 주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가정에서 적절한 환경을 만들기도 어렵고요. 《딱 너를 위한 책이야》는 그 질문에 아주 좋은 해답이 되는 그림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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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그림책 《딱 너를 위한 책이야》를 편집하며 ‘그래, 이거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장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작가님이 책 속에 숨겨 놓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비법’이었는데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는 데는 모두 어떤 ‘계기’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자주 갔던 이모 집에는 늘 책이 있었습니다. 일에 바쁜 어른들은 아이들이 칭얼대지 않도록 항상 텔레비전을 켜 놓으셨는데, 어느 날 텔레비전 옆에 있는 책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우연히 빼 본 책 한 권이 의외로 굉장히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 책 너 꽤 재밌는 거였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또 다른 재미를 찾기 위해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지요.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엔 <입학 전 꼭 읽어야 하는 도서 목록>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입학 통지서와 함께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꽤 두께가 두툼한 책들로 이루어진 목록이었는데요. 왠지 읽기 싫었지만 그래도 숙제라서 도서관에 달려가 목록에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았습니다. 덕분에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처음 알게 되었고, 소설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되었지요. 돌이켜보면 제가 지금처럼 책을 좋아하게 된 건 모두 어른들이 주셨던 어떤 ‘계기’가 물꼬가 되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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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너를 위한 책이야》에는 음악 듣기를 즐기고 게임이나 영상을 좋아하는, 책 읽기는 딱 싫어했던 아이가 나옵니다. 방학이 되어서 이제 더는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한 책 읽기’ 숙제를(첫 번째 계기) 내주자 괴로워하지요. 방학 때는 자고로 실컷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책 읽기라니요. 억울해서 엄마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자, 엄마는 일단 책을 고르러 도서관에 한번 가보자고 합니다(두 번째 계기). 어린이부라는 게 있다면 항의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이니, 이 친구가 얼마나 책이 싫어하는지 알 수 있겠지요? 엄마를 따라간 도서관에서도 아이는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책끼리 모여 있으니까 무얼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소리도 안 나고 움직이지도 않는 책은 지루해 보이기만 했지요. 바로 그때 엄마가 어릴 때 읽었던 책 한 권을 건네줍니다(세 번째 계기).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별생각 없이 첫 장을 펼쳤다가, 생각보다 재미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드디어 책의 마법 속으로 뾰로롱!). 곧 이야기 속 모험에 흠뻑 빠져들게 되고요.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짜릿한 몰입의 세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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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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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이야기 속에 떨어진 주인공 아이에게 두건을 쓴 여우가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환상적인 이야기 모험 속으로 데려가 주지요. 이야기 속 여우는 늘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주는 책의 역할을 합니다. 둘은 어둠의 산에 사는 기묘한 생명체의 털을 뽑고, 거대한 피라냐가 사는 숲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갑니다. 박쥐로 가득한 무시무시한 동굴을 지나 못된 해적도 물리치고, 마법의 걸린 개구리랑 춤도 추지요. 아이는 여우가 마법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사이 심술궂은 마녀들도 상대합니다. 여우가 마법의 주문을 딱 외우려던 바로 그때, 저녁 먹자는 부름에 퍼뜩 현실로 돌아오지요. 책의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던 아이는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잠자리에서도 몰래 손전등을 켜고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듭니다. 과연 여우는 소녀에게 어떤 마법을 걸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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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너를 위한 책이야》는 이처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구성으로 책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또 책을 펼치는 순간 오직 책과 나만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인다는 것을 알려 주지요. 책에 빠져드는 경험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마법 같은 일인지 아이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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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리 포터>를 이렇게 잠도 안 자고 밤새 읽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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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또 가도 돼? 다음 탐험을 나설 준비가 끝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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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아이는 아직 읽지 못한 책에는 또 어떤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설렙니다. 따분하기만 했던 도서관의 모습도 전과는 달라졌지요. 역시 좋은 책은 읽기 전과 후의 내가 달라지게 하는 것 같아요. 마리아호 일러스트라호 작가는 부드러운 선과 영리한 채색 연출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각기 다른 세계의 특징을 살렸습니다. 모험을 시작하기 전 일상은 흐린 색감으로, 모험 속 세계는 밝고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 이야기 속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합니다. 영화 속 영웅처럼 멋지게 변신 복장을 갖춰 입은 아이는 이야기 곳곳을 마음껏 누비며 적극적으로 모험을 즐깁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소녀를 모험 속으로 이끌었던 여우가 누구였는지 깨닫게 되어 책을 다시 처음부터 펼치게 만들지요. 장면 곳곳에서 자꾸만 독자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책들의 유혹을 보고 있노라면 어서 다음 책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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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도서관은 언제나 책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줍니다. 《딱 너를 위한 책이야》를 통해 우리 어린이들도 가까운 도서관에서 ‘딱 나를 위한 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들도 아시다시피 일단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우니까요. 그렇게 만난 책이 평생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멀리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경칩이 가까워져 오는 봄, 이 글을 읽는 선생님께서도 책 곁에서 늘 건강하고 재미난 날들 보내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박은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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