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편집자 B입니다.

 

하루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 눈물이 흘렀던 적이 있습니다. 꿈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얼마나 생생하던지,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제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 죽음 이후에 맞이할 부활을 떠올리곤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그날에는 사자와 어린양이 뛰어놀고, 더 이상 죽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기독교의 큰 가치 중 하나를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희망을 이 땅에 이루어지는 사회 정의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날들이 지난 뒤에 그는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는 희망에 관해 비교적 많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존 스토트는 우리의 삶을 나그네, 유배자,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로 비유합니다. 그러고는 우리의 시선을 찬란한 햇빛, 밝은 별빛, 친구들의 웃는 얼굴, 봄철의 꽃들로 향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을 정도로 이 땅의 일들에 나를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104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입니다

존 스토트를 수식하는 말은 아주 많다.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20세기 영어권 최고의 설교자’로 자주 꼽힌다. 빌리 그레이엄과 함께 ‘20세기 세계 복음주의의 세계화와 확산을 이끈 지도자’라는 평가도 유명하다. 제임스 패커와 더불어(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이) ‘20세기에 가장 많이 판매된 기독교 베스트셀러들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칼 헨리와 함께 ‘20세기 복음주의를 고립된 게토에서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어 자신감을 갖게 만든 인도자’라는 수식어도 가능하다. 이외에도 세계 성공회 복음주의의 대변자, 전 세계 기독 청년 학생의 대부, 전 세계 개신교 목회자 및 사역자들의 멘토,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성공회 교회의 주임사제, 세계선교운동의 방향을 조정한 항해사, 여왕의 사제 등으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2005년에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하나로 선정했으며, BBC는 그의 사망 부고 기사에서, 만약 개신교에도 가톨릭처럼 교황이 있다면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존 스토트라고 했다. 물론 격의 없는 편안함을 사랑한 스토트는 그 자리를 거절했을 것이다. 교황 같은 추앙을 받았지만, 교황 같지 않은 소박한 삶으로 후대의 가슴에 남은 존 스토트의 유산을 살펴보자.

존 스토트는 세계 무대를 누볐지만 그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은 그가 한 지역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목회한 진실한 목회자였다는 사실이다. 존 스토트가 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목회자가 된 데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과 요인이 있었다. 먼저, 그의 가정환경이었다. 1921년에 존 스토트를 낳은 부모는 아들의 안정감과 따뜻한 성품의 요체였던 것 같다. 아버지 아놀드 스토트는 1차대전 당시 영국군 의무부대 소령으로 복무했고, 런던 웨스트민스터병원에 심전도검사 학부를 개설한 저명한 의사이자 학자였다. 할리스트리트 58번지에 진료실 겸 집을 가진 그는 노년에는 왕실 의사가 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아버지보다 다섯 살 연상인 어머니 릴리 스토트는 독일인 모친에게서 태어났기에,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 자랐다. 어머니는 존보다 각각 아홉 살, 두 살 많은 두 딸 조애나와 조이, 그리고 막내인 존을 신앙으로 길렀다. 가족이 다니기로 한 교회는 랭엄플레이스에 위치한 성공회 올소울즈교회였다. 아버지는 별로 신앙이 없어서 거의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가족은 열심히 다녔다. 이 교회가 바로 스토트 가족의 모교회로, 나중에 이 교회 목회자가 되는 스토트는 일평생 한 교회에만 정식 등록한 ‘한 교회의 사람’이 되었다.

신앙의 유산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지만,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물려준 이는 아버지였다. 그는 과학이 세상을 더 낫게 해준다고 확고히 믿은 인본주의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열정적인 자연주의자이기도 해서 음악, 우표 수집, 제물낚시, 와인 수집, 곤충 채집, 식물 관찰을 즐기면서, 아들을 이 취미에 끌어들였다. 존은 우표와 와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음악과 곤충에 대한 애정은 나중에 새에 대한 더 큰 애정으로 발전했다.

스토트에게 신앙적 영향을 끼친, '배시'라는 애칭으로 불린 에릭 내시

8살에 존은 글로스터셔 소재 오클리홀기숙학교에서 학생회장을 역임하고 졸업한 후, 1935년에 명문 사립 기숙학교 럭비스쿨Rugby School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아버지의 모교이기도 했던 이 학교에서 존은 오케스트라 첼로 주자로 활약했고, 채플 성가대 솔로 주자로도 봉사했다. 여름방학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언어를 배웠는데,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외교관으로 키우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15살인 1936년 성공회에서 견진을 받고 입교 신자가 되기는 했지만, 이 시기까지도 그에게 종교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신앙에 별로 관심이 없던 존은 에릭 내시Eric John Hewitson Nash와의 만남을 통해 변했다. 럭비스쿨에 다니던 1938년 2월,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뚜렷하고 의식적인 회심을 경험했다. 배시Bash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내시는 성공회 복음주의 사제이자 성서유니온 소속 사역자로, 영국 내 상위 30개 명문 사립 기숙학교(영국에서 public school은 공립이 아니라 기숙형 사립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한 인물이었다. 내시의 사역을 통해 영국 개신교, 특히 성공회를 이끄는 복음주의 지도자 다수가 배출되는데, 존 스토트도 그 열매 중 하나였다. 스토트는 학교에서 공부 외에도 연극, 연설 등 과외 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학생 대표에까지 선출되었지만, 자신이 성공회 목회자 소명을 받았다고 확신했다. 신앙이 별로 없었던 데다 아들이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와는 극심한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럭비스쿨 졸업 후 스토트는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중심으로 언어를 전공한 후, 이어서 신학을 공부했다. 두 전공 모두에서 최우등 성적을 받고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에는 케임브리지기독학생연합Cambridge Inter-Collegiate Christian Union, CICCU에서 활동했다. 세계 대학생 선교 단체의 시조로서 1877년 설립된 CICCU는 1928년에 옥스퍼드의 OICCU 및 다른 대학 조직들과의 연합을 통해, 기독학생회Inter-Varsity Fellowship, IVF로 재탄생했다. CICCU 활동과 에릭 내시를 도와 배시캠프Bash Camp 운영에 참여한 일은 그가 목회 후보자로 준비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케임브리지 소재 성공회 신학교 리들리홀에 입학해 목회자 교육을 받았다. 1881년에 설립된 리들리홀은 헌장에 복음주의 신학교라는 명시가 있었음에도, 스토트가 다니던 당시에는 신학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성향의 교수가 적지 않았다. 성경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팽배한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스토트를 더 자극했다. 그는 이 상황이 자신이 더 철저한 성경 연구를 통해, 오히려 성경에 내재된 일관되고 신뢰할 만한 논리를 찾아낼 수 있게 만든 ‘영적 광야’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신학 공부를 끝낸 후 1945년 12월에 스토트는 성공회 부제로 안수를 받았다. 그의 첫 사역지는 모교회 랭엄플레이스 올소울즈교회였다. 당시 이 교회의 교구사제는 해럴드 언쇼 스미스였다. 스미스도 복음주의 성공회 사제였다. 영국의 대표적인 연례 사경회인 케직사경회 강사로도 활약한 그는 1936년부터 올소울즈에서 사역하면서, 전시 공습 기간에도 지하 방공호에서 겁에 질린 시민을 위로하는 사역을 한 성실한 사역자였다. 스토트는 “나는 그분의 구두라도 기꺼이 닦았을 것”이라 말할 만큼 언쇼 스미스를 존경했기에, 그를 통해 복음주의 설교와 목회를 잘 배웠다. 또한 올소울즈교회는 복음 전파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교회이기도 했다. BBC 방송국이 바로 옆에 있었고, 병원과 상점, 기업체가 즐비한 곳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언쇼 스미스는 5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수면 중에 갑작스러운 심장성 천식으로 급사했다. 1950년 3월이었다.

올소울즈는 총리의 조언을 받아 왕실이 교구사제vicar를 임명하는 전통대로 왕실은 29세의 스토트를 교구사제로 임명했다. 후임자가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일부 교인의 우려에도, 그는 훌륭한 설교자, 능력 있는 행정가, 가난한 이들과 청년 및 어린이를 위한 사역자로 인정받았다. 교구사제가 된 후 스토트는 기도, 강해 설교, 정기 전도, 새 신자 제자 훈련, 평신도 지도자 훈련을 교회의 우선순위로 삼고 전략적으로 목회했다. 특히 교구사제 시기에 그는 건실한 목회와 탁월한 강해설교를 하는 젊은 복음주의 성공회 목회자로 명성을 얻었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국내·북미·오세아니아·남아프리카 등지에서 열린 IVF를 비롯한 청년·학생집회, 케직사경회, 복음주의연맹, 성서유니온, 티어펀드, 어바나 대회 등에서 강사로 초빙되거나 임원으로 봉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결과, 그는 교구사제가 된 지 20년째 되는 1970년에 교구사제직을 마이클 본에게 위임했다. 스토트는 일상 목회의 의무를 경감받은 교구담임사제rector가 되어 외부 사역에 한층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1975년에는 은퇴사제로서 명예직만 유지할 수 있게 되자, 이후 30년간 전 세계를 교구로 삼는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다.

스토트는 현대 기독교에 크게 기여했다. 의문을 품은 자들과 구도자들의 필요에 특별히 맞춘 “방문자 예배”라는 예배 형태를 개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기독교 학생 사역에 깊이 관여했으며 작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다. 또한 그는 만민 교회에서 꾸준히 설교 사역을 했는데, 그 때문에 그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효과적 커뮤니케이션과 설교에 관해 스토트에게 지도와 영감을 구하는 전세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집결지가 됐다.

우리는 신앙여정의 길동무로서 스토트에게 배울 것이 많다. 스토트는 여러 모양으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과 격려를 주었다. 믿음이 인생관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도전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영광의 미래가 우리의 현 실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스토트는 미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이 어떻게 현재를 비춰 주는지 강조했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려는 것이 바로 그 문제다.

1976년 일리노이 주 어바나에서 열린 IVF 선교대회에서 전한 설교 시리즈를 통해 스토트는 영광의 미래가 신학과 영성과 특히 전도에 미치는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의 설교는 기독교 신앙의 주요 주제인 영광을 회복하고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 현생활의 모든 측면에 적용해야 한다는 명쾌한 외침이었다.

눈을 드십시오! 여러분은 분명 시간의 피조물이지만 동시에 영원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천국 시민이요 이 땅의 나그네와 유배자요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입니다. 몇 년 전 읽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길에서 5달러짜리 돈을 줍고는 그 뒤로 걸을 때마다 절대 땅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에게 남은 것은 29,516개의 단추, 54,172개의 핀, 12센트, 그리고 굽은 등과 인색한 성질뿐이었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찬란한 햇빛과 밝은 별빛과 친구들의 웃는 얼굴과 봄철의 꽃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시궁창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 중요하게 할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을 정도로 그 일들에 나를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스토트는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에 대한 지식을 일신하고 그 경이를 앞당겨 누릴 것을 권고한다. 우리는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에 둘러싸여 있다(히 12:1-2). 그들은 이미 새 예루살렘 문에 들어가 우리를 오라 부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당신이 존경하는 남녀들을 생각해 보라. 어느 날 당신은 새예루살렘 연회실에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흠모하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이미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간 그들을 생각해 보라. 당신의 인생길에 도움을 주고 삶이 힘들 때 그 어깨에 기대게 해준 당신의 친한 친구, 가족, 목사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요단을 건넜다. 이미 영광에 들어갔다. 우리도 장차 그들 곁에 갈 것이다! 그들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틈에 끼어, 앞에 당한 경주를 마치려 최선을 다하는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히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