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타실에서 : 2호 출항에 나서며
3월 6일, 드디어 <책과 참치>가 출발했습니다. 항해를 나설 때는 아무리 준비해도 놓치는 게 생깁니다. 디자인이 왜 이 모양이냐고, 발송이 왜 안 되냐고, 이러다 우리 다 바다에 빠진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출발은 역시 좋았습니다. 많은 분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뒤늦게야 1호 레터를 못 받아보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뉴스레터가 발송된 후에 구독 신청을 하신 분들은 아마 못 받으셨겠지요. ‘지난 호’ 읽기 안내 메일을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2호 서평에서 다룬 책은 『큐레이션 : 정보 과잉 시대의 돌파구』와 『유튜브, 제국의 탄생』입니다. 필자는 ‘뉴스레터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김스피 님입니다. 두 책에서 필자가 읽어낸 건 무엇일까요? 그의 서평 「큐레이션은 망했다」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참, ‘망했다’를 외칠 땐, 진짜 망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실 겁니다.
자, 닻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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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큐레이션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었다
몇 년 전 회사에서 뉴스레터 론칭을 준비하던 즈음, 나는 ‘큐레이션’*이라는 단어에 온통 꽂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단어를 싫어하는 방향으로 꽂혀 있었다. 얼마나 싫어했냐면, 뉴스레터의 중요한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를 ‘안티-큐레이션’으로 정하고 ‘안티-큐레이션’을 주제로 저술지원사업을 신청할 정도였다(떨어졌다).
*curation (콘텐츠 업계에서) 콘텐츠를 선정, 모아서 소개하는 일. 『큐레이션』의 저자 스티븐 로젠바움의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가치 있게 구성하여 배포하는 일’.
누군가 그 안티큐레이션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당시의 나는 정보 생산자의 노고를 존중하기보다도 중간자(큐레이션)를 찬양하는 인터넷 생태계에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이는 대체로 2010년대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각광받던 시절, 그리고 2017년경 뉴스레터의 유행으로 라이터writer/reporter 대신 에디터editor만 둔 큐레이션 뉴스레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절부터 꾸준히 기자들이 가져온 촌스럽고 적대적인 태도다.
정보 생산자의 노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입장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적대감을 조금은 더 섬세하게 다듬을 수는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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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콘텐츠 큐레이터가 등장한 것
자체는 시대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큐레이션 시대를 선포한 대표적인 저서 『큐레이션』의 부제는 ‘정보 과잉 시대의 돌파구’다. 사람들은 좋은 콘텐츠를 읽고 싶어했고, 연결자가 필요했다. 온라인 콘텐츠 생태계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방대함과 낮은 발견성이다.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쉬이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온라인의 경우 한층 정도가 더 심하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여도 만약 누군가에 의해 발굴되어 드러나지 않으면 조회수는 한 자릿수에 머무를 뿐이다. 독자들은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찾고 읽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에 독자와 좋은 콘텐츠 사이를 매개할 중간자가 절실해지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콘텐츠 큐레이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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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거 큐레이션에 분노했던 이유는, 두 가지 차원(쓰는 자, 읽는 자)에서였는데, 우선 쓰는 자의 차원에선 대부분의 콘텐츠 큐레이터가 마치 좋은 콘텐츠가 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라도 되는 것처럼 콘텐츠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생각에서였고(2010년대의 큐레이션 관련 경영서들에서 콘텐츠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일을 ‘쓰레기장에서 보석을 찾는 일’에 비유하며 스스로의 안목과 노고를 칭찬한다.) 후자의 차원에선, 대체로 이런 큐레이션은 원작에 대한 존중 없이 제멋대로 줄여 ‘엑기스’만 요약한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문제로 성을 내는 것과는 별개로, 독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찾고 있지 못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독자에게 가닿는 방도를 잘 찾지 못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창작자들은 스스로 독자에게 다가갈 다리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글을 더 잘 쓴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장사 안 되는 식당에서 냅킨만 접고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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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중재자도 중재자 나름이다
어떤 부류의 중재자들은 나의 편견처럼 자신들이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창작자의 그림자를 실제로 애써 지웠다. 이들은 쓰기와 읽기의 생태계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아무런 기여, 노력도 하지 않고, 오직 타인의 창작물을 더 나쁜 방식으로 착취하기만 했다.
반면 어떤 부류의 아마추어적 중재자는 실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콘텐츠 가운데 좋은 것을 정성껏 고르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독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들은 독자로서의 진심을 담아 단지 콘텐츠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덧붙여 원작을 더 풍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히 진정성을 품은 원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흥분해서 이를 모두에게 소개하고, 창작자가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빛을 보게 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아마추어 애호가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를 자주 넘나들었으며, 그들이 콘텐츠를 고르는 기준은 실용성이나 상업성만은 아니었다.
서설이 길었지만, 나는 실은 이 아마추어적 중재자에 대해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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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제국의 탄생』을 쓴 마크 버겐은 블룸버그 출신의 실리콘밸리 저널리스트로, 이 500쪽 넘는 책에서 유튜브의 시작(2007년)부터 오늘날까지의 방대한 변천과정을 저널리스트다운 건조함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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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보면, 유명세도 없고 유튜브의 수익화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지도 않았으며 존재감마저 희미한 한 명의 ‘일반 회사원’이 저자의 암묵적인 애정하에 꾸준히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글에서 유튜브 큐레이션 업무를 하며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했던, 그리고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업무에의 헌신과 성취보다 2019년 그가 추진한 구글 임원의 성희롱 및 구글의 부정행위 규탄 파업 관련 기사가 더 많이 뜨는 클레어 스테이플턴Claire Stapleton이라는 전 구글 사원이다.
그는 대학 시절 『문예 비창작Uncreative Writing』 등으로 유명한 전위적 시인, 뉴미디어 예술가 케네스 골드스미스 아래 수학하고 구글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가 최초로 배정받은 업무는 임원을 대신해 사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이메일에서 기지 넘치고 우아한 표현을 사용해 ‘구글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 그는 직무를 옮겨 유튜브의 수많은 영상 가운데 ‘추천 영상’을 직접 큐레이션하는 부서(‘큐레이션 전략 매니저’)에 배속된다. 이는 얼핏 ‘굉장히 흥미진진한 일’같아 보이지만 ‘불쉿 잡bullshit job’이었다.
왜냐면 이미 한참 전부터 유튜브는 인간이 직접 하는 큐레이션을 버리고 그 자리를 자동기계(알고리즘)로 대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가 해당 부서로 옮겼을 때, 이미 유튜브의 전통적인 ‘쿨헌터’ 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쿨 헌터’ 팀은 유튜브 초기,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사람을 써서 직접 괜찮은 영상을 큐레이션할 만한 여력과 의사가 있었던 시절 유튜브가 직접 운영했던 ‘큐레이션 부서’였다.
잠깐 쿨헌터에 대해 말하자면, 이 쿨헌터들의 ‘큐레이션’은 단순한 직무가 아니었다. 쿨헌터 중 하나였던 플래너리는 음악을 담당했는데, 그는 과거 지역방송국에서 디렉터로 일했던 감각을 살려 유튜브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독특한 아티스트들을 찾아냈다. 저스틴 비버도 그렇게 ‘발굴된’ 스타 중 하나다.
하지만 이후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의 목표하에 쿨헌터 팀은 해체되었고, 그 자리를 단지 시청 시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계 알고리즘이 대체하게 되었다. 이 알고리즘은 때로 시청 시간을 가장 중시하느라 저질의 영상들을 잔뜩 추천 목록에 올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인간 큐레이터’에 비해 훨씬 더 오랫동안 시청자들을 잡아둘 수는 있었다.
스테이플턴은 기계를 대신하는 손과 발이 될 것을 명령받았다. 상사는 그에게 “개성을 지우고 컴퓨터가 쓴 글처럼 보이도록 써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람 빠진 튜브Down the Tube’라는 제목의 뉴스레터를 만들어 과거, 유튜브가 조금 엉뚱하고 매력적인 날것들, 장난, 선물, 사회 실험, 얼간이들의 천국이었던 시절 눈길을 끌었을 만한 기이하고도 즐거운 영상들(하지만 기계라면 결코 추천하지 않을 영상들)을 손수 모아 소개했다. “귀여운 새끼 치타들, 차이코프스키 곡을 입힌 캥거루 복싱, 소 경매인이 쏟아내는 말에 맞춰 연주한 기발한 드럼 연주” 같은 것 말이다. 많은 임원이 알게 모르게 그의 뉴스레터를 구독했다. 그리고 그는 연말의 뉴스레터에서 자신의 일(회사)이 불러온 사회적 현상을 고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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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진지한 얘기 좀 할게요. (…) 올해 유튜브 시청 시간이 720억 시간 이상을 기록한 것을 보면(생기 없는 대중문화의 파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볼 것이 많을수록 볼 것을 찾기가 어렵고, 더욱 깊이 들여다볼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분이 이런 비슷한 말을 했죠.
무언가를 본다는 얄팍한 습관에 약간의 깊이가 남아 있길 바라며 2014년에 이별을 고합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광경과 금이 간 영화 스틸 컷이 가득한 이 무감각한 시대에 그럼에도 희미한 의미의 빛이 깜빡이기를 바랍니다. 뭐 그런 건 없을 수도 있고요(살금살금 컴퓨터에서 물러나며).
__마크 버겐, 『유튜브, 제국의 탄생』, 신솔잎 옮김, 현대지성, 2024, 28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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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레터는 흥미로운데, “무언가를 본다는 얄팍한 습관”은 상업성 차원에서 바로 유튜브가 십수 년간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강제하고자 했던 습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뉴스레터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오늘날 단지 한 플랫폼 회사 내부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실은 유튜브뿐 아니라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은 초기에 자체적으로 쿨헌터와 같은 전문성과 덕후 기질이 있는 큐레이션 팀을 두어왔다.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에 인수되기 이전인 초기엔 반려동물 담당 큐레이터가 직접 귀여운 사진을 골라 ‘주간 털뭉치’ 등 테마별 큐레이션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고, 야후 재팬의 초기 뉴스 서비스(풀커버리지)도 요미우리신문 기자 출신으로 시사 감각이 있는 오쿠무라의 ‘서퍼’로서의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속해 수익성을 창출해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덕후 기질과 헌신성을 지닌 큐레이터가 직접 ‘아마추어적’인 태도로 독자의 입장에서 콘텐츠를 직접 모으고 추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장난 같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수익성을 위해 버려지고, 회사는 콘텐츠 경험보다는 최적화된 알고리즘에 의해 광고 수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초기의 유튜브를 유튜브답게, 그 플랫폼을 플랫폼답게 했던 인간적인 허술함과 개성, 즐거움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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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마크 버겐이 한창 알고리즘의 ‘이득’을 얻어 날아오른 ―오늘날의 극우, 탈진실 유튜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큐레이션'의 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오래전 구글을 떠나 현재는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창업 멤버인 그로브는 말한다. “[이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큐레이션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이어 버겐은 스테이플턴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그리고 나는 아래의 대목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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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은 수학적 공식이나 확장의 여지가 없는 해결책이다. 그리 구글리하지 않은 방식이다. (…) 그녀(스테이플턴)가 이점으로 꼽는 것들, 즉 사이트에서 형성된 귀중한 커뮤니티들과 감탄할 정도의 탁월한 재치들은 회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유튜브가 창의력을 조성하는 게 아니에요” 그녀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사람들이 하는 거죠!”
__마크 버겐, 같은 책, 5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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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콘텐츠의 큐레이션뿐 아니라 창작마저도 인공지능으로 대체 생산하는 시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니, 이미 이는 현실로 다가와 있다.
그리고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내가 과거 큐레이션을 미워했던 것은, 사실 큐레이션‘에 대한’ 감정이 아니었고 그보다는 모든 종류의 장난과 사랑과 굳이 하는 노력이 착취당하는 데 대한 미움이었다는 것을.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놓는 생태계가 지속되는 한, 모습을 바꾼 착취는 계속되리라는 것을.
마지막으로는 무엇보다도 단순한 미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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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스피
한 언론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인스피아>라는 인문교양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간 '레터에 쓰기엔 아무도 관심 없는(혹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하며 묵혀두었던 뾰족하고 수상한 이야기들을, 책을 경유하여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내보고 싶어서 책과 참치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도서관 산책과 맥주. 아무래도 미디어, 텍스트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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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유튜브 #구글 #아마추어중재자 #콘텐츠큐레이터 #뉴스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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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예고
다음 호의 서평 주제는 ‘맛과 숨’입니다. ‘맛’의 서평은 ‘민윤슬’ 님이 씁니다. 일상과 노동, 여행, 심지어 항쟁의 순간에도 늘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윤슬 님의 서평은 노동 현장에서 또 광장에서 튼 입술을 적시고 허기진 위를 따뜻하게 채우는 맛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숨’의 서평에는 ‘메르치’ 님이 나섭니다. 숨막히는 세계에서 숨쉴 구멍을 찾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한숨이나 된숨으로 가득한 사회적 ‘공기’에 새 숨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호흡법이 무엇인지 살펴본다고 합니다.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는
풍성한 맛과 깊은 숨으로
2주 후 4월 3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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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본다는 어르신들, 서점 좀 간다는 열독자들, 독서모임이 기다려진다는 직장인들, 밑줄 그으면서 책 읽고 메모 남기고 필사하는 데 여념이 없는 독서 덕후들, 책 쌓아두기를 좋아하는 ‘적서가’들은 기대하시라! 출판서점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필참치(?)인 학술대회!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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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향유의 책문화와 독서공간 쟁탈전
문화의 '고도성장기'였던 1970~80년, '더 많이, 더 재밌게' 읽기를 위한 출판인과 독자들의 분투가 있었습니다. 서점과 독서공간을 둘러싼 '검열과 저항'의 쟁투도 심각했습니다. '민주화'의 역사를 '책'의 이야기로 다시 씁니다.
현장 참여도 가능하고 줌 생중계도 이루어지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학술대회는 <콘텐츠랩 책과참치>가 후원하는 학술행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입질과 손맛>코너에서는 학계와 업계 현장의 재밌고 의미 있는 정보와 행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일시 2025년 3월 28일(금) 10:30~17:30
🙋♂️장소
오프라인 성균관대학교 국제관 9B217호
온라인 줌(ZOOM) 접속 링크(클릭)✅
[회의 ID: 875 0382 5799 / 비밀번호: 2025]
*참가비 무료
💁♀️주최 성균관대학교 BK21 혁신·공유·정의 지향의 한국어문학 교육연구단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연구원
💁♂️후원 콘텐츠랩 책과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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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정보와 자료집 링크(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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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항해'는 어떠셨는지요?
피드백을 보내고 싶으시면 아래 이메일과 SNS로 의견을 남겨주세요.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는 2주 후 목요일 아침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편집
김만석, 김지원, 박영신, 서민우,
이용희, 이우창, 천정환
디자인 김다혜
발행 콘텐츠랩 책과참치
콘텐츠랩 책과참치
booksnchamc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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