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쉐프 #아메리칸셰프 #세프의테이블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마스크 사이로 빠져나온 입김에 눈썹에 얼음이 송송 맺히는 걸 보고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야흐로, 겨울입니다. 따뜻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덥혀야 할 때가 왔습니다. 

화면 가득 음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기를 보고 있노라면 고프지 않던 배도 고파지기 마련이죠. 당장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냉장고 문을 열게 만드는 영화들을 모아 왔습니다.
남극의 쉐프 (2009)
요리사인 니시무라 (사카이 마사토)는 동료의 교통 사고로 예상에도 없던 남극 기지에 요리 담당으로 가게 됩니다. 가족들의 쿨한 배웅 속에 급작스럽게 떠나게 된 남극행. 니시무라는 얼음과 눈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8명의 남극관측 대원들을 만나죠. 외부와 고립된 채 1년 반을 보내야 합니다. 그들에게 삼시 세 끼를 해먹이면서 말이지요.

남극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요리에도 이런저런 제약이 따릅니다. 재료가 부족하거나 화력이 모자라기도 하죠. 그 와중에 대원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식사를 매번 준비하는 건 까다로운 일일 겁니다. 영화에는 이런 니시무라의 고충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데요, 닭새우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 장면은 영화에 나오는 여러 요리 중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대원들이 막무가내로 "에비! 후라이!"를 외치며 눈을 치우는 장면과 함께 말이지요.

잔잔하고 담담하지만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전개가 어쩐지 익숙한데요, 『모리의 정원』과 같은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리의 정원』에도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네요. 

감독 : 오키타 슈이치
러닝타임 : 2시간 5분
Stream on Watch, Netflix, Tiving & Wavve
아메리칸 셰프 (2014)
이번에는 정 반대의 계절로 가볼까요? 라틴재즈로 온몸이 들썩이고, 쿠바 샌드위치가 구워지는 냄새에 발걸음이 빨라지는 푸드트럭이 있는 LA로 말이죠.

이 푸드트럭의 주인 칼 캐스퍼(존 파브로)는 원래 유명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였습니다. 하지만 레스토랑 메뉴 선정을 계기로 오너와 크게 싸우게 되고 이 모든 과정이 본인의 실수로 트위터에 생중계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레스토랑을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푸드트럭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진이 화려합니다. 더스틴 호프만과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까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우정 출연인 것 같은데 아마도 영화 『아이언 맨』에서 인연을 덕분이겠지요.

여담입니다만 같은 셰프(Chef)인데 한국어 표기가 달라졌습니다. 『남극의 쉐프』가 조금 더 이전의 영화여서 일까요? 정확한 한국어 표기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셰프"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감독 : 존 파브로 
러닝타임: 1시간 54분
Stream on Watch, Netflix, Tiving & Wavve
셰프의 테이블 (2015) 
이제는 정말로 음식을 요리하는 셰프를 만나볼 시간입니다. 『셰프의 테이블』은 다큐멘터리 『스시장인 지로의 꿈』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던 감독 데이비드 겔브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제작한 음식 다큐멘터리 시리즈입니다. 2015년에 시작해 2019년까지 총 여섯 시즌을 방영했고 그 외에 프랑스, 바비큐, 피자를 주제로 하는 특별 시즌도 있어요.

전문 셰프들이 마법처럼 빚어내는 음식을 화면으로 즐긴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보아도 좋고, 음식에 담긴 셰프 각자의 철학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태도로 보아도 좋습니다. 요리는 그저 주방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식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나아가 농사를 짓는 일부터 요리를 시작하는 셰프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경이를 표하게 됩니다. 눈앞의 접시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되면서 말이지요. 세 번째 시전에는 우리나라의 정관 스님이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 내내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해요. 긴 겨울밤, 한번에 몰아보거나 생각날 때 하나씩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단, 급격히 허기가 몰려올 수 있으니 단단히 준비할 것!

감독 : 데이비드 겔브
구성 : 시즌 1 - 3은 각 6개, 시즌 4 - 6은 각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 정규 시즌 외에 프랑스, 바비큐, 피자가 주제인 특별편 있음. 편당 50분 내외.
Stream on Netflix
덧붙이는 이야기
조리 도구의 세계 - 이용재 글 / 정이용 그림
처음 독립해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용재 작가는 주방에 꼭 두어야 할 조리 도구를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 도구가 "손"입니다.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가 어떻냐면, 처음으로 자취를 하게 되어 무척 들뜬 사회 초년생 조카와 함께 마트에 간 삼촌이 카트에 이런저런 물건을 신나게 담는 조카를 보고는 "야, 이런 거 사는 거 아니야. 도로 갖다 놔. 이건 진짜 사야해. 예쁘기 보다는 기능이 충실한 걸 사야 한단다."하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읽으면서 얼마나 킬킬거렸는지요! 저의 어머니께서도 30년 넘는 주방생활자로 매우매우 공감 가는 글이 많다고 하셨어요. 단목적 도구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무주걱은 인테리어 소품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며 신신당부하는데 어찌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주리 도구를 선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정이용 작가의 일러스트도 마음을 쏙 사로잡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손을 움직여서 맛있는 걸 만들고 스스로를 대접해 볼까요?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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