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저희가 돌아왔습니다 N E W S L E T T E R
2022.12.15. 무임승차 |
|
|
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도서, 영화, 전시, 음반, 공연, 방송, 맛집, 신제품 등 분야의 경계 없이 각자의 콘텐츠 경험, 배경 지식, 취향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문화 자산에 무임승차합니다.
월 2회, 마트 쉬는 다음날 발송하고자 노력중입니다. 마트 가는 즐거움 이상을 함께 나눠요!
감사합니다.
|
|
|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후기입니다.
[본 영화 : 킹덤 엑소더스]
라스 폰 트리에라는 이름에 홀려 시네필인척하고 예매했는데, 그것은 정말 무지의 산물이자 소치였다. 90년대 중후반 TV시리즈로 만들어졌던 '킹덤'의 연장선상에 놓인 이 작품은, 사실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작품이 소개되는 섹션 또한 '온 스크린'이라고 해서, [영화의 확장된 흐름과 가치를 포괄하는, 그 해 최신의 드라마 시리즈 화제작을 상영하는 부문]이다. 즉, 영화제에서는 기존 시즌 1,2의 리부트에 가까운 시즌 3의 5편 중 첫 1~2편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뒤로도 맥락은 다소 단절되어 보인다. 그마저도 예술성이라고 한다면 그거대로 고개가 끄덕여지긴 하지만.
이 극은 병원을 배경으로 해서, 카렌이라는 몽유병자에서 비롯된 오컬트적인 축과 스웨덴에서 온 의사 헬메르를 중심으로 오피스 내의 블랙 코미디라는 축 두 가지가 평행하여 달리다가 불쑥 교차한다. 예매할 때의 섬네일도 그렇고 감독의 이름값도 그렇고 대체로 공포나 고어에 가까운 오컬트를 기대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내가 본 부분은 대체로 불쾌하고 불편한 농담이 흐르는 쪽이어서 안심하면서 동시에 후회했다.
새로 부임한 헬메르가 성 중립성을 내세우며 환자의 차트의 표기를 바꾸자 수술 환자가 뒤바뀌는 사고가 발생한다든가, 적응을 돕는 동료 직원에게 불쑥 성희롱을 하고 신고 당하자 그에 대해 상담하는 장면이라든가, 뇌 자극 실험 중에 참여자의 자발성에 대해 논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일종의 사르카즘인 것 같기는 한데 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 지 몰라 어정쩡한 표정을 짓게 한다. 다만, 이전 시리즈를 통해 일종의 '제4의벽'을 오가는 부분은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카렌이 라스 폰 트리에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병원 사람들이 그 드라마 때문에 병원이 망할 거라고 한탄할 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본 영화 : 오픈 더 도어]
감독의 이름은 영화의 만족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 역시 장항준의 이름으로 예매했는데 굉장히 불편한 경험이었다. 무려 제작이 송은이인데도 '아 언니...' 싶을 정도였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의 챕터 4개로 구성되어 있다. 처남 치훈이 매형 문석의 집을 찾아오는 것에서 시작해, 어떻게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 사건을 발발한 사건부터 감추고 싶었던 과거의 뒷 이야기와 그 원류와도 같던 평화로운 최초의 일상까지 더듬어간다. 사운드나 장면의 전환, 배우들의 표정을 잡아내는 비율과 각도같은 것들은 보는 사람마저 예민하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사실 관객은 이미 현재 시점에 놓여있기에 '그 다음'을 궁금해하며 따라오게 만드는 미스터리의 일반적 문법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에서 반전 아닌 반전으로 한 발짝 더 깊이 이야기를 파고들어 끝까지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은 연출은 탁월하다 할 만 하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인물에게 설명을 쥐어주려 할 때, 악행의 파트너에게는 설명의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도 모자라 배제와 타자화의 한 겹이 더 씌워질 때, 심지어 그 파트너 인물이 여성일 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뾰족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 현 좌표가 미국임을 나타내는 자막이 흐를 때 괜히 웃음이 나왔던 것은, 단순히 강변북로 어드메의 풍경과 닮아서만이 아니라, 아마도 이야기의 배경과 설정이 미국 이민자인 이유를 명확하게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본 영화 : 괴인]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것은 일생의 과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고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기회만 된다면 또 가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내가 본 영화들이 모두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인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고 '뉴 커런츠 수상작'으로 예매했던 것인데, 그래서 더욱 2시간 넘는 상영시간 내내 '이건 대체 뭐지'라는 기분으로 괴롭게 앉아있어야 했다. 딱히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이 병렬하는 장면들 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화면과 사운드를 무기력하게 세다보면,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불쾌감이 치민다. 그런데 사실 '알못'인 나나 별로라고 하지, 사실 이 영화는 뉴 커런츠를 포함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하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돋보기를 대고 좀 더 세밀히 살펴보자면, 결국 이 영화의 매력이 또렷한 '영화적' 장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두고 '<괴인>의 절대적인 매혹은 유력한 주제나 독특한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주장이나 논변도 없이, 그저 비켜나 흐르고 있는 저 상태와 리듬의 강인함에 있다'고 코멘트했다. 씨네21의 감독 인터뷰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난다. '특별할 것 없이 보편적이고 평범한 상태의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뭘지 생각해보고 그걸 영화에 담아보고자 했다'든가 '촬영을 단순화하고 싶었다' 혹은 '콘티 없이 찍었다' 같은 답변이 그렇다. 영어 제목인 'a Wild Roomer'를 떠올리면 일종의 엇박같은 영화 속 리듬감에서 나 혼자만의 스릴이 자연발생하다가도, 무언가 촉발되기 직전에서도 허무하게 스러지는 인물간의 불꽃들을 보면 그냥 2022년의 대한민국이구나 싶다. 그것이 보편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나, 책갈피로 꼽힐 만한 특별한 페이지는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볼 뻔 한 영화 : 레이먼드&레이, 유니버스]
이 두 영화는 예매까지 모두 완료해놓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직전에 취소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레이먼드&레이는 이완 맥그리거와 에단 호크의 코미디를 보고 싶어서였는데, 부산의 랜드마크 및 관광명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마련한 동네방네 비프를 구경하느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유니버스는 천호동의 유니버스 백화점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가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이전에 '집의 시간들'이라는 다큐를 보고 좋았던 기억이 남아 예매했었다. '집의 시간들'은 둔촌 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을 앞두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다큐인데,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의 역사를 실시간으로 목도한다는 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킹덤 엑소더스를 보고 나니 잔뜩 기가 빨려 과거를 지켜볼 수가 없었다. 당장 무엇이든 입에 넣기 위해 서둘러 영화관을 떠나야 했다.
|
|
|
<살롱 드 홈즈>, 뽀 글 머 리 아 줌 마 탐 정 단 이 마 냥 반 갑 지 않 았 던 뒷 맛 |
|
|
특별히 어떤 책을 빌릴지 결정하지 않고 그냥 기존에 대여했던 책들을 반납하러 동네 구립 도서관에 갔던 어느 날, 도서관을 쭉 훑다가 <살롱 드 홈즈>라는 제목이 눈에 띄는 한국소설이 있어 집어왔다. 마침 작가도 <밤의 이야기꾼들> 등의 작품을 통해 몇 번 접한 바 있는 나름 유명한 호러 작가 전건우인데다가, 무엇보다도 표지의 삽화도 그렇고 책 뒤편의 홍보 문구도 그렇고 평소에는 아줌마라고 무시당하고 가족에만 매여 있는 주부들의 탐정 도전기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기 때문에 여성 중심의 스릴러, 추리를 선호하는 나로써는 횡재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살롱 드 홈즈>는 아쉬웠다.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든, (남성 작가가) 여성들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든 뭐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도 중년의 한국 남성인 작가가 주부들의 서러움을 이해하고 한국 남편들을 무능하게 묘사하고 성범죄 피해자 여성들이 쉽사리 범죄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등의 고충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 아니냐고. 실제로 남자 연예인, 유튜버 등이 여성들의 입장을 대신해서 한두마디라도 해 주거나 같은 남자를 욕해주는 컨텐츠는 각종 여초 커뮤니티에서 질리고 질리도록 ‘끌올’되는 게시물 중 하나이다. 일부 여성들보다도 젠더의식이 낫다, 한국 남자들의 평균을 생각했을 때 저 정도라도 말해주는 게 어디냐는 논리로. 그런 댓글들에는 일종의 경외감, 한국 남자들 중에도 저런 남자가 계시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바짝 엎드려 고마워하는 감탄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진짜로 일부 여성들보다 나은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남성들이 해주는 고마운 말들은 결국 그들의 이름을 가리고 본다면 온/오프라인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수없이 반복해온 말들보다 특별히 새롭거나 낫지도 않은데 결국 발화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고평가 받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전건우 작가의 <살롱 드 홈즈>를 읽고 뒷맛이 왠지 모르게 찝찝했던 이유도 그와 같다. 나는 여자들의 고충을 알아주는 남자들에게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단계는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보통의 남성주의적이 시각으로 쓰는 작품보다야 낫겠지만, 이런 식으로 최악보다는 낫지, 그래도 이 정도라도 해 주는게 어디냐는 식으로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게 남성 창작자의 여성 서사 작품을 올려쳐주기에는, 그동안 여성 서사 작품들이 받은 홀대와 ‘재미가 없는데 왜 여성 서사라는 이유로 좋은 반응을 강요하냐’는 볼멘소리를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은가.
작품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일단 추리, 스릴러 소설로써 너무 재미가 없다. 여성에 대한 묘사고 뭐고를 떠나서 가장 점수를 깎는 요인이다. 누구나 초반부를 조금만 읽어도 진범이 누군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애초에 작가가 범인을 숨길 의도 자체가 없어 보이며, 트릭이나 알리바이 증명도 없고 반전도 없어서 추리소설로 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이렇게 허접하고 엉성한 줄거리를 보완하는 장치가 바로 흔치 않은 탐정 역 캐릭터들인데, 동네의 흔해빠진 아줌마들이 각자 가정에서, 사회에서 무시당하다가 주부탐정단을 결성하여 연쇄살인범을 쫓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자아를 찾고 꿈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간신히 창작물로써의 나름의 차별성과 셀링포인트를 챙기는 셈이다. 범죄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는 정말 민망한 수준이고 차라리 일반소설로 분류하되 소재가 범죄, 여성인 것으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애당초 작가가 추리가 아니라 호러 쪽이 전문이니만큼 추리 쪽의 퀄리티는 양보하고, 그렇다면 캐리터들의 서사를 살펴보자. 평범한 동네 아줌마들이 주부탐정단을 결성하여 동네에 나타난 성범죄자, 나아가서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는 줄거리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는 어쨌건 알겠다. ‘아줌마’라는 호칭 안에 담긴 조롱과 멸시의 뉘앙스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촌스러운 옷차림, 늘어진 살과 우악스럽고 수치심 모르는 행동 등 ‘동네 아줌마들’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러나 <살롱 드 홈즈>는 그런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들을 그리되, 대신 그들도 누군가의 부인과 어머니가 되기 전까지 잊고 살던 꿈과 열정이 있으며, 무언가를 성취하고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여자들끼리만 통하는 의리와 공감 또한 따스하게 조명한다. 그러나 훈훈하게 감상을 쓰기에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겠다. <살롱 드 홈즈>의 주인공 여성들은 모두 누군가의 부인, 어머니 역할로 희생만 하고 자신은 사치하거나 누리지 못하는 그런 전형적인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이다. 즉 가부장제 하에서 명확하게 피해자성을 증명하고 동정받을 수 있는 이들이며 이는 곧 일부(안 붙이면 큰일남) 2030 남성들의 ‘우리 엄마는 다 했는데 니년들은 여성상위시대에서 대우받으며 살면서 왜 이리 징징거리냐, 여자가 무슨 손해를 보냐’는 조롱에 깔린 심리와 맞닿아 있다. 작품에는 술만 마시면 부인을 때리고 살림을 부순다거나, 대놓고 폭력은 없을지언정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밥상이 차려지는 것을 당연하게 알며 부인과 자녀에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거나, 살이 쪘다고 구박하며 ‘니가 하마들 속에서는 예쁜 편일 테니 하마들은 너랑 한 번 하려고 난리겠네’라는 둥 입으로 부인의 인격을 죽이는 남편 등 절대적인 나쁜 남편들만이 나온다. 이런 부정적인 묘사들은 사실 남성혐오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과장되고 극적이어서 문제다. 저 정도로 못된 최악의 남편이어야만 여성들이 울분과 고충을 호소해도 남자들 역시 불편함 없이 공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절대적인 최악의 기준에서만 벗어나면 내 남자는, 혹은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문장이 끝난다. 평범한 대다수의 남자들 역시 남자들도 쉴드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못되고 이상한 남자들의 존재를 설정하는 편이 편하다. 멀쩡하고 정상적인 자신들과는 거리를 두며 ‘남자를 일반화해서 욕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폭력 등을 저지르는 남자는 당연히 전체 남자 집단에서 소수에 불과할 것이므로 자연히 여자들은 (남자들이 마음껏 된장녀, 김치녀, 취집, 꽃뱀 등으로 여자들을 욕하는 사이에)추상적인 소수 나쁜 남자들 외에는, 극단적으로 최악만 아니면 멀쩡하고 정상적인 남자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여성에게 교육과 사회 진출의 기회 자체가 거의 차단되어 있던 중년, 노년 세대를 피해자라 여기는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앞서 말했듯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은 주부탐정단 중 가장 어린 ‘소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소희는 좋은 대학교를 다니다가 실수로 임신을 한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버려두고 도망치듯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바람에 낙태를 결심하나, 막상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자 차마 지울 수 없어 대학교를 중퇴하고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꿋꿋하게 아기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즉 여자들은 결국 자기도 몰랐던 모성을 지니고 있으며 냉정하게 자신을 위해 낙태를 결심했어도 손가락보다 작은 태아를 보면 마음이 달라지고, 아기 때문에 더 나은 창창한 삶을 포기해도 여자는 결국 아이 때문에 행복하다는 묘사에 촌스럽고 뒤떨어지다 못해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여기에서는 한국 남성들 특유의 ‘요즘 저런 여자 드문데’라는 환상을 덧씌운 느낌마저 든다.
<살롱 드 홈즈>에서 나는 가정과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아줌마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시도는 높이 평가하되 아이와 가족을 위해 나의 삶을 희생하는 여성성에 대한 신화와 그렇게 가족을 돌보느라 고생한 여자들에게만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사회의 피해자성을 부여하는 맥락을 읽었으며, 그렇기에 다소 냉정하고 박한 평가를 내렸다. 누군가는 아줌마들을 조명하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남성 창작자들이 성적인 매력과 모성이라는 키워드 없이 여자들을 그릴 수는 없는 걸까. 어떤 여자든 여자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니까. |
|
|
침착맨 유튜브 - 곽민수 소장과 함께하는 고대 이집트 특강 - 유튜브 순기능 체험하기 |
|
|
하루 휴대폰 사용량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꼽으라면 유튜브 시청일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 다른 사람들의 일상브이로그, 텔레비젼 예능 편집본 등 진부한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소위 없는 게 없는 세계. 그 중 최근 보게된 채널이 바로 침착맨의 침투부 채널이다. 만화가 이말년이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면서 침착맨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 박지성 해설위원, 김이나 작사가 등 평소 내가 관심있던 인물을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를 하나 둘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전문적이면서도 동시에 웃음포인트가 적절하게 생성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침착맨이 진행자로서 시청자들의 순수하거나 혹은 짓궂을 수 있는 질문을 대변하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있는 설명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는 모습들을 보며 어느새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고 1시간 안팎되는 영상도 뚝딱 시청하게 된다.
최근 올라온 영상 중 <고대 이집트에는 헬리콥터가 있었다?> 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친근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집트 고고학을 전공한 전문가의 강연 영상이었다. 영상 시작부터 몰아치는 침소리(침착맨의 말도 안되는 개그나 뻘소리) 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곽민수 소장은 이집트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대이집트를 전공한 고고학자이다. 일단 강연의 톤이나 목소리가 너무 내취향 이었는데 이런 강연형 방송일 수록 강연자의 속성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강연의 내용도 너무 재미있었다. '이집트는 과연 호객행위의 천국일까?' 로 시작된 강의는 이집트의 상업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연결되었고 고대 이집트의 수많은 음모론에 대한 의견과 증명도 들을 수 있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영상이었지만 한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보게되는 재미가 있었다. 지난 4월에도 침투부에 출연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총 6시간의 영상을 3일에 걸쳐 모두 볼 수 있었다. 이런 양질의 강연을 주말 오후 집에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보고나니 새삼스럽게 유튜브의 순기능을 체험하게 된 것 같았다.
강연 중간중간 침착맨의 질문도 꽤나 인상깊었는데, 일반 사람들이 가질 만한 순수한 궁금증을 그대로 표현하고 강연자는 그것에 대해 질책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것이 침착맨 강연방송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주 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곽민수 소장이 자문한 <이집트 미라전-부활을 위한 여정> 전시회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 전시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
|
|
오늘의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피드백, 건의, 시비, 비난, 플러팅 등등 의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