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고 전세계에 많습니다.”
플랫은 최근 <이성애의 비극>(라우더북스) 저자 제인 워드 UC샌타바버라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성애의 비극> 한국어판이 이달 초 나왔거든요. 제인 워드 교수는 한국 독자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 중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이성애 교정 프로그램’을 보면, 이성애는 오늘도 ‘1패’를 적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인 워드 교수는 이성애가 비극으로 귀결되기 쉬운 사회·문화적 구조를 <이성애의 비극>에서 설명했어요.
이 책은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워드 교수는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솔직히 나는 이성애자들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문장으로 논의를 시작해요.
그는 ‘비극’이란 표현을 붙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젠더 불평등, 여성혐오, 폭력, 감정노동과 성적 요구 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성애자 여성들이 이성애 관계를 선택하는 현실을 보다 강조한 것입니다.
워드 교수는 “이성애가 약속해주는 이상적인 삶은 그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 실패라고도 볼 수 있지만, 훤히 보이는 비극적인 엔딩을 향해 알면서도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비극이라고 했다”고 설명했어요.
그렇다면 이성애는 왜 번번이 환상을 배반하는가, 그 근간으로 워드 교수는 ‘여성혐오의 역설’을 꼽았습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는 남성이 여성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이성애적 관계에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사랑해야 하지만 여성혐오적 문화 탓에 그 사랑이 이뤄지기 어렵고 관계가 건강하기 힘들다는 모순이 있다. 이성애는 ‘사랑을 기반으로 관계를 쌓을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선 어렵다.”
또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기반한 이성애 관계는 돌봄과 정서 노동, 성적인 충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벤트 관리 등을 위한 노력이 여성에게 쏠리기 쉬운 구조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해 워드 교수와 한국의 4B 운동(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 및 1970년대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 최근 미국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모든 개별 사례에 적용할 답이란 건 존재하지 않지요.
다만 워드 교수는 이 책이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정해진 젠더 각본에서 벗어나면 굉장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성애를 낯설게 봄으로써 “꼭 이성애가 아니어도 되고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상상력도 키울 수 있다”고 했어요.
이성애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시도하는 이들이 점점 눈에 보이는 느낌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성애도 더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