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003
지난 주말엔 김소영 치즈 아티장이 진행하는 캘리포니아산 와인 모임에 다녀왔다. 지금은 김소영 치즈의 브랜드 명성이 높아 상상이 안 되지만, 2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레스토랑에 치즈를 납품했을 시절에는 이름 없는 동양인이 만든 로컬 치즈라는 이유로 먹기를 거부했던 손님이 태반이었다고 한다. 셰프는 서버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고, 서버는 먹지 않겠다는 손님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 레스토랑에서 서버를 담당했던 분이 얼마 전 은퇴식을 했는데, 본인이 대머리가 된 이유가 소영의 치즈를 서빙하느라 이렇게 됐다는 농담을 했다고. 고충이 느껴지는 웃픈 이야기인데, 프랑스산 치즈를 최고로 치는 문화는 개인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라 과연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지금까지 왔는지 궁금했다. 
“00년대는 실리콘밸리로 자본이 모이기 시작할 때이고, 나파밸리의 와인메이커도 급격히 늘어났어요. 막 프랑스에서 와인과 미식을 공부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본토로 넘어오는 타이밍이었고요. 와인 유통업자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와인을 소개하려고 25명이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요리와 와인을 마시면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현재 뉴욕의 일레븐 메디슨 파크의 다니엘 흄부터 샌프란시스코의 프렌치 런드리의 토마스 켈러 등 이때부터 쭉 함께 성장한 거예요.”

더 나은 미식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셰프와 와인 메이커, 치즈 장인이 모여 서로에게 기댈 구석이 되어주고, 20여 년 동안 함께 성장했다. 내가 매료된 부분은 개인이 집단으로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씬을 개척한 부분이다. 어느 시대나 도시에서 꽃피웠던 문화는 파고 들어가면, 이를 주관하고 영향을 미쳤던 집단이 반드시 있다. 
더치 디자인 위크도 그랬다. 더치 디자인이라는 키워드와 명성을 계속 전파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프로그램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말이 더치 디자인 위크이지, 사실상 유럽 전역에 있는 학교가 이곳에서 졸업전을 하고 있었다. 유럽 디자인 위크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다양하게 참여했다. 그 중심에는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가 있다. 아카데미 때문에 수도 암스테르담이 아닌 아인트호벤에서 디자인 행사가 열린다고 생각하면 영향력이 참 대단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더치 디자인 위크에서 받은 인상은 만들어진 ‘미(美)’가 없었다. 코펜하겐의 3daysofdesign의 모든 순간이 인스타그래머블했다면, 더치는 '형태는 해볼 수 있는 최대한 이상한 거 해볼게. 소재는 내가 섞을 수 있는 것들 다 넣어볼게'의 뉘앙스랄까. 이곳은 도전적이었고, 기능과 실용에서 재미를 찾는 분위기가 있었다. 코펜하겐이 100년이 넘은 브랜드와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압도한다면, 더치는 더치 디자인이 추구하던 '뭐든 좀 더해지면 어때? 이것도 디자인이야' 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무엇이든 작업이 될 수 있고, 중요한 것은 만든 이의 뾰족한 생각이다. 뾰족한 생각이 없다면 결과물은 나올 수 없다. 이런 자세는 지금의 콩크에게 무척 필요했다. 만들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우리의 일을 다시 정의할 타이밍이란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 
요즘 서울은 다른 어떤 때보다 객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뽀빠이 매거진은 지난 7월, 76년도 창간 이래 처음으로 서울을 주제로 씨티 가이드를 만들었다. 루이비통,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는 서울을 런웨이로 쓰고 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디자인의 퀄리티와 다양성도 이전과 다르다. 콩크에서 19년부터 소재를 소개하고 있는데 최근 1~2년 새에 관심을 갖고 문의하는 소재의 범위도 확실히 넓어졌다. 
더치디자인위크 중 짬을 내 방문한 Studio GdB는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주문이 압도적이라고 얘기했다. GdB의 초기 포트폴리오 중 하나가 원투차차차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Yeseyesee의 파사드였다. 국내 디자이너는 막 생겨난 소재 브랜드를 직구로 발주해 현장에 쓸 수 있는 도전정신이 있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소재를 섞거나 실험을 통해 본인만의 소재로 개조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상에 치이고, 각개전투를 하고 있어 인식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전에 없던 대단한 시절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경험했던 디자인 위크의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빌려, 지금의 시절을 함께 지나고 있는 우리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하고 싶다.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지지하는 세력이 필요한 법이다. 메이커가 있으면 이를 소비하는 집단이 필요하고, 국내외로 잘 알릴 수 있는 스피커 역할도 있어야 한다. 현재의 우리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조명하고 싶다. 모두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 

12월 9일~10일, 콩크 디자인 위크 개최, 참여 신청 마감은 11월 26일 밤 12시!
첫 번째 'Conc Design Week'를 개최합니다. 작가와 소재회사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참여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재를 직접 제작하거나 소재로 작업하고 표현하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여한 팀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 24년 2월 중 출판할 계획입니다. 콩크의 첫 정식출판물이 될 예정이에요! 마감일이 이번 주 일요일 밤 12시이니, 서둘러주세요.😉
쿠키!🍪 더치 디자인 위크 방문 계획자 혹은 미래의 우리에게 보내는 팁
  1. 아인트호벤의 대략 5~6구역에 전시가 흩어져 있다. 구역별 메인 정류장에 가면 더치 디자인 위크에서 운영하는 차를 탈 수 있다. 차체 위에는 의자나 케이크 등 다양한 오브제가 올라가 있어 멀리서도 눈에 띄고 보는 재미가 있다.
  2. 11~6시까지 전시라 시간이 짧은 편이다. 아침 든든하게 먹고 이동하면서 간식을 먹고, 일정이 다 끝난 후 저녁을 먹는 일정이 효율적이다. 
  3. 하루 종일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대단히 춥다. 가을옷은 무슨 겨울옷을 가져가는 편이 좋다. 
  4.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의 졸업전이 더치 디자인 위크의 꽃이다. 이곳을 출발점으로 삼아라. Microlab, Klokgebouw 스팟은 대형 건물에서 하는 큰 규모의 전시이다.
  5. 아인트호벤에서 만난 이들에게 재밌는 곳 추천해달라 하면, 모두 Sectie-C를 언급했다. 한국으로 치면, 문래예술창작촌 같은 느낌으로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하는 곳이다. 부지가 무척 컸는데,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6.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법 멀리 있는 Bioart lab과 UFO 건물이라 불리는 Evoluon의 전시가 재미있었다. 바이오 건물은 시골 농장 바이브가 있어서 독특하다.
  7. Koelhuis Eindhoven도 추천. Koelhuis는 과거 아이스크림 공장을 전시공간으로 쓰는데 이번에는 지하에 물을 가득 채워두고 긴 장화를 신고 내부를 둘러보는 체험형 전시를 했다. 
  8. Van Abbemuseum은 아인트호벤에서 방문할 만한 스팟이다.
  9. 가구디자인을 한다면 Piet Hein Eek는 꼭 방문해야 한다. 실제로 보면 대단한 디테일에 흥분하게 된다. 옆 건물 감자튀김도 추천.
  10. 출입할 수 있는 팔찌는 최대한 느슨하게 묶어라. 가위나 칼로 끊어내기 전에는 절대 풀리지 않고 방수도 아니라 팔찌를 빼고 끼는 것이 편하면 좋다. 우리는 참지 못하고 가위로 끊는 바람에 이어지지 않는 짧은 끈을 손목에 걸치고 다녔다. 
  11. 음식은 전반적으로 기대하면 안 된다. 저녁 시간에 줄을 서는 누들집이 있어서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한중일 어느 나라 맛도 아니었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니 그나마 좀 나았다. 

쿠키 텍스트! 더치 디자인 위크의 자세한 내용은 내년 2월 중 출판할 책에 포함될 예정이에요.😉
콩크
conc@concseoul.com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50, 3층
수신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