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업에 관해 쓰는 게 매우 버겁다. 7년간 잡지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에 내 업에 대한 확신이 아직도 안 선다. 내향적이고 남에게 관심이 없으며 진짜 좋은 건 아무하고나 공유하고 싶지 않은 못된 심보도 있다. 다른 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건 스스로 깨우치기 전까지는 타인에게 영향받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SNS를 즐기지 않고, 바로 옆에서 누군가 대화해도 잘 안 들린다. 그런데도 나는 에디터라는 직함을 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다. 도무지 내 성향에 맞지 않는데, 왜 이 일에 흥미를 느꼈을까? 잡지계 입문 당시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패션지, 연예지 등 주로 엔터테인먼트와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잡지에서 일했다. 그땐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요즘 핫하다는 숍을 방문하고, 다양한 브랜드의 온갖 신상품을 제일 먼저 협찬받곤 했다. 화려함을 엿보는 기록자답게 이미 잘 다듬어진 것들에(사람이든 물건이든) 더 예쁜 포장지를 덧대고, 매력적으로 배치하는 데에 고심했다. 나름대로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왠지 모를 헛헛함이 자꾸만 나를 짓눌렀다.

그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최근에야 깨달았다. 2년 전, 삶의 전환점이 필요하던 시기에 평소 눈여겨본 제주 잡지사로 이직했다. 서울에서 일할 땐 비주얼에만 신경 썼다. 지면에 좋은 이미지를 담고 싶어 며칠에 걸쳐 시안을 찾았다. 인터뷰 준비나 글감을 모으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서울에서 만나는 인터뷰이가 예상 가능한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제주에서 만나는 인터뷰이는 꽤 다양한 직업군에 나이대가 폭넓다.

장인이나 깐깐한 어르신, 노포를 섭외할 때엔 직접 찾아가 얼굴을 내밀고, 살갑게 협조를 구해 취재 승낙을 얻는다. 생업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에 취재팀을 성가셔할 때가 더러 있다. 물질하고 나온 해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면 추운데 그런 걸 시키냐며 버럭 화를 내고, 오늘은 영업 안 한다며 다음날에 찾아오라고 하거나, 손님이 오면 주위가 산만해져 취재팀을 거슬려 한다. 푸대접 속에서 그들의 작업 흐름을 관찰한 후 이것저것 질문하는데, 세밀한 손놀림과 짜임새 있는 구사력에 흠칫 놀란다.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사고력이 저하돼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알맞은 표현을 못 할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나의 얄팍한 편견을 산산이 깨부순다.

그럼 젊은이를 만날 때는 또 어떨까, 서울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 5분 남짓한 전화 한 통에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섭외, 촬영 일정 픽스까지 끝낸다. 사전 질문지에 의지하지 않고, 현장에서 내가 보고 느낀 인물의 한 토막을 따라가며 종국엔 여러 질문을 추가로 덧붙인다. 그 흐름을 따라 원고를 쓴다. 이것이 나의 오랜 취재 방식이다. 헌데 이곳에선 내가 해온 방식을 들이미니 영 밋밋하다. 인물의 단면이 아닌, 면면을 도려내 얼개를 갖춰야 인물의 매력은 물론 그 인물이 지닌 정보도 풍성해진다는 걸 이제서야 인지했다.

그래, 결국엔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라던데, 나는 늘 내 안에 갇혀 타인을 가늠하고 내 눈에만 보이는 벽을 세웠다. 누군가를 만나는 건 너무 쉽지만 끈끈한 관계로 발전 시켜 나가는 건 내겐 너무 힘든 일이다. 일이든 우정이든 연애든 모든 게 그렇다. 이실직고하자면 며칠에 걸쳐 이 글을 썼다. 쓸수록 자기혐오와 비하에 빠져 덮고 꺼내길 반복했다. 출처를 알 수 없던 불순물이 마음을 헤집었는데 차츰 걷어지는 느낌이다. 누군가 나처럼 마음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갖고 산다면 괴롭고 지루하더라도 나의 바닥을 마주해보는 게 어떨까?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미지 출처: 이슬아 인스타그램(@sull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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