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송 7월 소식지
  1. 광주유학대학과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주최 학술세미나

 

광주유학대학과 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은 ‘논어의 재구성과 맹자의 성선설’을 주제로 7월 7일(금) 2시~5시, 광주향교 유림회관 2층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유학대학 재학생들과 동고송 회원 등 각계의 인사들 70여 명이 참석한 학술세미나에서 동고송의 황광우 고전철학자는 오랫동안 연구해온 ‘논어의 재구성과 공자의 재해석’을 발표하며 『논어』 의 구성에 대해 참신하고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논어』 발표부문 토론자로 나선 동고송의 노자연구자 김용표 이사는 “논어를 재구성한다면 어떤 기준과 틀에서 재구성할 것인가?” 등등의 토론을 벌였으며, 동고송 수석연구원 유미정 박사는 ‘맹자 성선설의 형성기원에 대한 고찰’ 발표부문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1. 7월 광산아카데미강연 개최

 

7.20(목)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광산아카데미 6강이 개최되었다. 이번 강연은 《윤진철의 판소리 여행》이라는 주제로 국가무형문화재 5호인 윤진철 판소리 명창이 진행하였다. 윤 명창은 강연 중간 중간에 민요, 판소리 다섯 마당을 넘나들며 판소리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맛깔나게 설명하였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보다 더 완벽하게 판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고 입을 모아 찬탄하였다. 판소리는 음악장르로 볼 때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서사음악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번 강연에서 판소리의 최고 전문가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현장에서 소리를 경험하면서 우리의 전통음악인 판소리가 이처럼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8월의 광산아카데미는 8.17(목)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세계 최초 8000미터 16좌를 완등한 세계적 알피니스트 엄홍길 대장을 모시고 《나는 왜 네팔 어린이를 돕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1. 문화연대 – 《2023 7월 sedie 20》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모여 공연과 담화를 나누는 시창다화(詩唱茶畵) 행사가 《2023 7월 SEDIE 20》이라는 이름으로 금남로 1가 CM커피숍 6층 루프탑에서 개최되었다. 무더운 한여름 밤 도심의 옥상에서 은은한 색스폰과 플롯이 연주되고, 서정적인 가곡, 현대무용가의 춤사위 등 다채로운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동고송 회원인 박방원 선생의 주관 하에 열려진 이번 문화행사에는 음악과 와인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이 모여 비와 음악 속에서 무더위를 식혔다. (사)인문연구원 동고송은 문화연대의 정신으로 회원들의 개별적인 문화행사에도 참여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1. 동고송 박주정 이사의 토크힐링 공연

 

교단에서 30여 년 동안 불우한 처지의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해온 박주정(전 광주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이사의 교육 여정이 7월 22일(토) 광주예술의 전당 대강당에서 2시간 동안 토크공연 형식으로 펼쳐졌다. 공연의 제목은 《박주정과 이해인 수녀의 하모니》였다.

이날 공연에서 박주정 이사는 학교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방황하는 학생들과 함께 어떻게 꿈을 찾아가는지를 감동적으로 전해주었다. 평소에도 박주정 이사는 ‘학교부적응 학생’을 이해하려면 마치 콩나물에 물 주듯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교육, 내 자식처럼 아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었다.

  1. 『노회찬평전』 출간례

 

생전에 자유인•문화인•평화인으로 불린 고 노회찬 의원의 못 다한 인생행로를 담은 한 권의 책이 『노회찬평전』으로 출간되었다. 7월 25일(월)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센터 2층 공연장에서 평전을 집필한 이광호 작가를 초대한 북콘서트가 열렸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이날 출간례에 동고송 회원들이 다수 참석해서 살아생전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불평등에 맞서 싸워왔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삶과 꿈을 되새기며 『노회찬평전』 책 출간을 축하하였다.

동고송은 행사를 빛내준 식전공연팀 ‘시창다화(詩唱茶畵)’를 후원하고 행사 일부분을 기획하였다. 특히 생전의 노의원이 즐겨 부른 노래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등 노의원을 기리는 음악이 선보여 감동을 더하였다.

《 7월 황광우의 산책》 1975년 광주일고 학생들이

 

48년 만에 만났다. 1975년 5월 교문돌파 시위를 모의하였던 우리는 만나 그날의 일을 회고하였다. D-day는 5월 2일이었다. 주범 최수일은 하루 전날, 후문의 돌쩌귀를 망치와 끌로 부수고 있었다. 5월 1일 깜깜한 밤중이었다. 어디에선가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 연행해갔다. 돌고개에 있던 서광주경찰서로 끌려가 뒤지게 얻어맞았다. 화정동에 있던 중앙정보부 광주 분실로 끌려가 통닭구이에 물고문을 당했다. 도청 앞에 있던 전남 도경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손톱 사이를 찔렀고, 담뱃불로 입술을 지졌으며, 생식기에 종이를 꽂았다.

3인의 학생(최수일, 오순기, 황광우)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진 날은 5월 8일이었다. 생활기록부를 떼어 보았다. 16인의 학생에게 퇴학 조치를 결정한 날은 5월 7일이었다. 5월 7일 16인의 학생을 퇴학시켰고, 5월 8일 3인의 고교생을 구속시켰으며, 이어 5월 13일,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 전두환이 전남대생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80년 5월 18일 신우식의 7공수를 광주에 투입하듯, 박정희는 당시의 긴박한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였다. 5월 8일과 5월 13일 사이에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찾는 일은 역사가들에게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