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사도 바울, 열정의 사람
#106 성경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줄기
#107 열심은 금방 사그라져 버렸다
#108 절망하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109 사람들은 꾸짖는 설교를 듣지 않았다

독자님, 안녕하세요.

편집자 B입니다.

 

20대 때 처음 교회에 ‘전도사’로 출근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허리를 굽히며 제게 “전도사님”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웃어른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제게는 생소하고 어색했습니다. 평소 어른들이 제게 대하는 태도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호칭에 ‘님’이라는 단어가 붙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학교 밑에 새로 생긴 카페에 놀러 갔습니다. 카페 사장님은 제게 친근하게 “학생”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어 왔습니다. ‘학생’이라는 말을 들은 저는, ‘나 보고 학생이라고?’ 하는 건방진 생각을 가졌습니다. 어른들이 조금 대우를 해주었다고,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30대 중반에 '사도'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로완 윌리엄스는 바울은 도덕군자가 아니며, 오히려 그는 엄격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상당히 복잡한 일로 여긴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윌리엄스가 보기에 바울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30대 중반의 청년이 사도로서 삶을 살아갈 때, 아마도 그는 여러 어려움들을 겪었을 듯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공식적인 글이 아니라, 만일 청년 바울의 일기장을 볼 수 있다면 그 글은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청년의 나이에 사도로서 권위 있는 말을 해야 했던 어려움이 적혀 있지 않을까요.

#105 사도 바울, 열정의 사람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를 “사울이라 하는”이라고 부릅니다. 스데반이 예루살렘에서 살해당한 시기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주후 34년경이라고 추측했을 때 당시 바울은 ‘청년’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나이 40세가 되어야 ‘젊은’ 상태를 확실히 벗어난 것으로 여겼으니 주후 34년에 다소 사람 사울은 많아야 30대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울이 예수와 거의 같은 또래였거나 그보다 조금 어렸으리라는 것은 합리적인 추측입니다. 주전 76년에 태어났을 예수는 십자가 처형 당시 33세에서 40세 사이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그보다 조금 전인 주전 6년 이후에 태어났다면 그가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서 그는 아마 30대 중반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그에게 아내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함께 다닐 아내를 두지 않기로 한 자신의 처지를 베드로나 다른 이들의 상황과 대조시킵니다. 바울이 랍비 교육을 받은 것을 고려할 때 그가 홀아비였다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한 가설입니다. 이 가설은 고린도전서의 어떤 내용과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독신자들을 수신자로 상정하고 글을 쓸 때 결혼하지 않은 이들과 배우자와 사별한 이들을 모두 분명하게 거론합니다. 저는 그것이 바울 자신의 상황이었다는 것에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는 그런 상태로 갈라디아에 도착했기에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듣는 이들에게 시험 거리가 될 만한 병을 앓고 있다고 밝힙니다. 어떤 병이었을까요? 어떤 이들이 제안한 것처럼 간질이었을 수도 있고 모종의 눈병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였을 수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주목하여 본다”거나 “응시한다”거나 “눈을 찌푸린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두어 군데 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눈이라도 뽑아서 그에게 내어 줄 자세가 되어 있었다는 바울의 묘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요. 중동에 흔한 기생충들이 옮기는 수많은 형태의 눈병 중 하나를 앓는 바람에 그의 눈이 퉁퉁 붓고 눈꺼풀에 고름이 끼었다면 그의 외모가 매력이 없었던 것에 대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가 “육체의 가시”를 받았다고 쓴 고린도후서 12:7 이하의 대목은 유명한데 그것은 그에게 굴욕과 제약을 안겨 준 고질병이었습니다. 그것이 간질이었는지 눈병이었는지 다리를 절거나 그 외 다른 종류의 장애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근심거리였고 그의 사역을 정기적으로 방해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2세기 초 소아시아에서 나온 흥미로운 문서에는 어느 성으로 다가가는 바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 이후의 이 전승에 따르면 그 성에서 바울을 만나 초기에 회심한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불굴의 테클라입니다. 문서에는 바울이 키가 작고 안짱다리에 야윈 얼굴과 매부리코를 가졌으며 대머리에 짙은 눈썹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 비잔틴 예술 전통에서도 그렇고 현재까지 그려진 바울의 성화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이런 모습입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의 모습은 대대로 그럴 듯하다고 받아들여졌습니다.

바울의 성격은 어땠을까요?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약하다는 점을 본인이 시인하긴 했지만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강하고 상대를 압도하는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남긴 서신들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가끔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소유하려 들기도 했습니다. 분노로 자제력을 잃을 때는 적들에게 심한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12은 보다 극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자제력을 잃을 정도가 아닐 때도 상당히 거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의 한 장을 “어리석은 사람들이여”라는 문구로 시작하는데 이것을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거친 모습과 열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조종당하거나 학대당할 때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바울을 못 봐주겠다 싶어지면 그가 경쟁자들의 몹쓸 행동들을 나열하고 대단히 비꼬는 투로 이렇게 말하는 대목들을 보십시오. 고린도후서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그렇게 대하면 좋겠습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그만큼 모질지가 못합니다.”

이 구절 바로 앞에서 바울은 자신의 양 떼를 위해 감수했던 수고와 희생을 말하고 이렇게 끝맺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이런 따뜻함, 다른 이들을 위한 아낌없는 의분은 바울의 성격이 갖는 가장 강력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다시 고린도후서 11:29에서 그는 이렇게 적습니다.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심오하고 본능적인 너그러움이 바울의 열정과 분노와 이따금 남을 조종하거나 사나워지는 순간들 아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바울 자신이 성경을 쓰고 있는 줄 몰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늘 유익합니다. 감정적인 사람이었던 바울의 편지의 경우, 쓰거나 구술할 때 주장을 펼쳐 나가다 가끔 표현이 엉클어지면서 문장이 중간에 끊겨 독자가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의 문법은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으며 그의 글에는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 대목들이 더러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에 대한 주장을 펼 때처럼 어떤 대목에서는 제대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문제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듯 바울은 하던 말을 멈추고 이렇게 적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풍습을 행하는 사람을 아는 바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넘어갑니다.

바울 자신이 성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그의 서신들이 영감된 성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바울이 자기가 쓰는 글의 세부 사항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의 글에는 대단히 우아하고 유창한 대목들이 있습니다. 신약성서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한 위대한 찬가가 그렇고 그가 자신의 말에 공을 들이고 그것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는 여러 대목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성과 목적과 임재를 가지고 씨름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문법과 논리적 치밀함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대목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가진 인간성의 일부입니다. 편지에서 드러난 그는 아주 입체적인 존재이고 고대 세계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 중 하나이며 여러 황제와 위인을 제외하면 이만큼 생생하게 파악될 수 있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바울은 도덕군자가 아닙니다. 그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이러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그렇듯 그는 엄격하고 제약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상당히 복잡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괴로운 모순 속에서 산다는 인식과 대단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생각과 글을 통해 하나의 세상을 탄생시킬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그의 대적들이 항의하는 것처럼 그로 인해 세상은 정말 뒤집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