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이번 레터는 아들 셋 아빠 정우 님이 보냅니다. 첫째 아이가 방학을 맞이하자 정우님네 집에는 큰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체 어떤 일일까요?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두 번째 방학을 맞았다.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다섯 해 다니다가 이제 교육기관인 학교의 첫해를 무사히 마쳤다. 방학은 설레는 단어다. 첫 글자부터 내려놓는다는 뜻의 방(放) 자가 쓰였으니 벌써 마음이 가뿐해지는데 내려놓는 게 배움이라니. 나의 마지막 방학이 언제였는지 손가락으로 세려면 두 손이 모자라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방학이 주는 해방감은 점점 옅어져 갔지만 그럼에도 방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기억하고 있다. 

아이는 내가 그러했듯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며 방학을 기다렸다. 방학이 다가올수록 아이는 정말 모든 배움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보였다. 온종일 아이와 있을 아내가 걱정되어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내는 아이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차분하게 첫 주가 흘러갔다. 

아이들의 하루는 집 안과 집 밖이라는 공간으로 나뉜다. 양육자의 하루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혼자 있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나뉜다. 세 아이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나의 출근길이 곧 아이들의 등원 길이었다. 오후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일은 아내 몫이었다.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면 그제야 아내와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혼자 보낼 수 없는 시간을 버텨낼 육체적인 정신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반드시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시간. 사무실이든 집이든 공간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서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에 따라 시간의 값이 변하는 종속변수가 되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부터 지구 주위를 공전하던 달의 궤도에 약간의 균열이 발생했다. 나의 출근길은 큰 아이의 등굣길을 거쳐 동생들의 등원 길로 한 정거장 더 추가되는 정도였지만 아이들을 집 밖에서 집 안으로 데려오는 아내의 일은 더 복잡해졌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요일별로 들쑥날쑥 인지라 어떨 때는 큰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한두 시간 있다가 동생들을 데리러 가야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 썰물과 집 안으로 돌아오는 밀물이 대여섯 시간을 주기로 겹치기 시작하면서 사이사이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아이가 방학하면서 궤도는 의미를 잃었다. 아이가 종일 집에 있다는 것은 양육자가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둘째 주가 되자 아내는 눈에 띄게 지쳐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차례로 독감에 걸려 열흘 정도 집에만 있던 터였다. 그 얼마 전에는 온 가족이 코로나에 두 번째로 확진되어 보름 정도를 모두 집에만 있었다. 켜켜이 쌓여있던 공간적, 시간적 데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내와 마주 앉았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조 양육자를 부분적으로 고용하느냐, 지방에 살고 계신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느냐, 아이를 학원에 보낼 것이냐, 육아휴직을 다시 할 것이냐. 여러 선택지를 늘어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록하기로 했다. 그때가 좋을 때였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우리동네키움포털이라는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지난 여름 방학에 몇 번 그리고 급할 때 토요일에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었다. 서비스 목적이 ‘만 6~12세의 돌봄이 필요한 모든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쉼, 여가, 놀이 공간을 마련/제공함으로써 방과 후 초등학생 아이들의 돌봄 공백을 해소’하는 것이라 하니 우리에겐 구원이나 다름없다. 우리동네키움센터는 규모나 접근성에 따라 거점형과 일반/융합형으로 나뉘고 돌봄 기간에 따라 정기돌봄과 일시 돌봄으로 나뉜다. 거점형은 일시 돌봄만 이용할 수 있고 일반/융합형은 일시 돌봄뿐만 아니라 정기돌봄(‘일정한 기간이 정해진 정기적 돌봄’)도 제공하지만 웬만하면 이미 예약이 꽉 차있다.

다행히 회사 사무실과 멀지 않은 키움센터에 며칠은 예약할 수 있어서 띄엄띄엄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처음 보낼 때처럼 안쓰럽고 미안했다. 아이는 처음 갔을 때 그리고 새로 온 친구가 있을 때마다 자기소개해야 하는 것 말고는 괜찮다고 했다. 계속 다니라면 못할 것 같지만, 며칠이라면 할 만하다고 했다. 나와 아내에게는 그 며칠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에게 고마웠다.

막막하지만 찾아보면 이렇게 야금야금 이용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들이 있긴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잘 살게까지 해줄 수는 없지만 ‘살려는 드릴게’ 정도의 느낌. 마치 식기세척기 같다고나 할까? 식기세척기가 있어도 설거지는 여전히 성가시다. 고무장갑을 끼고 초벌 설거지를 한 다음 그릇을 옮겨야 하는 것 역시 성가시다. 하지만 식기세척기가 생기고 나서는 싱크대까지 가는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 싱크대까지 가는 동안 내쉬는 한숨의 횟수가 줄어든 것도 물론이고.

겨울 방학은 생각보다 느리지 않게 지나갔다. 아이는 방학숙제였던 한 달 치 그림일기를 개학 며칠 전에 몰아서 하고 다시 학교에 갔다. 아이가 집 밖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달은 다시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다다음주부터 봄방학이다.

살려주세요.

Fathers’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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