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KT 서대문 지사의 화재사고로 연희동을 비롯한 일대 지역의 통신이 마비된 적이 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집전화까지 먹통이 된, 그 몇 시간 동안의 ‘블랙 아웃’으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포심마저 경험했습니다. TV를 틀어봤지만 인터넷 기반의 IPTV였기에 무용지물이었고, 1970년대에 생산된 아날로그 라디오가 ‘일방향’이나마 내게 세상 소식을 들려주는 유일한 도구였죠. 치밀하게 연결된 사회가 얼마나 취약하고 얼마나 위험한지, 저는 그때 절실하게 경험했습니다.
고도의 네트워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운전을 하다가도 체감할 수 있어요. 얼마전에 차를 몰고 가다가 횡단보도 앞에 정차했습니다. 초록 신호등이 켜지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순간, 오른쪽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횡단보도에 들어서는 게 아닙니까? 저는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한 청년이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떼지 않은 채 저 멀리에서 ‘주변시’로 언뜻 보았을 초록 신호등만 믿고(그리고 본인 발걸음이 그렇게 느릴지 인식하지 못하고) 길을 건너려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 청년은 내 쪽을 슬쩍 보더니 다시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돌린 채 아무렇지 않은 듯 길을 건넜습니다. 이미 보행 신호등이 빨갛게 변한지 오래였는데 말이죠. 다행히 반대 차선의 자동차가 청년을 인지해서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역시 대표적 무선 기기잖습니까! 활동 반경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무선의 강점. 그 강점을 누리는 데 따른 ‘비용’은 막대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무선에 둘러싸인 지금이 무척 공포스러워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