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은밀한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굳이 '은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사실 어디 가서 말하기 민망 ✧ YOUR-BIT LETTER ✧ 유월빛레터 #5 편집자 S의 사소하고 은밀한 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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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여름 싫어 인간인 편집자 S는 웃음이 많아졌다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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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집자 S의 사소하고 은밀한 취미
¸.•* 2. 이번 주 한 줄 - 죽음이 나를 잊을까 두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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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S의 사소하고 은밀한 취미 *•.¸
편집자 S
저에겐 은밀한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굳이 '은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사실 어디 가서 말하기 민망하기 때문입니다. 좀 크리피한 사람……이라거나 퍽 지루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서요. 어쩌면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실무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취미이긴 하지만, 동료들조차 가끔은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서 괜한 기대를 드린 건 아닌가 싶네요. 제 취미는 바로바로…… [알라딘에서 '새로 나온 책' 구경하기]입니다.
에이…… 싶으시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30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해서 막 업데이트된 신간을 하나하나 스크리닝(?) 했답니다. 포인트는 '주목할 만한 새 책'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새 책 모두 보기' 탭을 보는 겁니다. '주목할 만한 새 책'은 아마도 MD님들이 좀 더 대중적으로 어필될 만한 신간을 추려서 만드는 탭 같고, '새 책 모두 보기'는 말 그대로 지금 알라딘 온라인 서점에 데이터가 등록된 모든 신간을 보여주는데요. 강박증이 다소 있는 저로서는 우선 '주목할 만한 새 책'에서 주요 신간을 일별한 후 '새 책 모두 보기'로 넘어가 '어디어디 보자~🎶 무슨 책이 올라왔나~🎵' 하며 스크롤을 스윽스윽 내려봅니다. 그래서 어떤 출판사에서 신간을 냈다 하면 가장 먼저 아는 기쁨(?)을 누릴 수 있지요. (가끔 어떤 분들은 국립중앙도서관의 ISBN 시스템에 들어가 조회하시던데…… 전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하하!)
오늘은 제가 최근에 '새로 나온 책'을 구경하면서 눈 여겨본 신간 몇 권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유튜브로 치자면, 제 장바구니에 담긴 아이템을 하나씩 소개하는 콘텐츠라고나 할까요?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를 알 수 있는 법!
물론 저도 신간 소개글만 슥 훑어보고 담아둔 거라 어디까지나 '첫인상 선택'이라는 점.😉 따라서 '아무 말 대잔치'에 가깝다는 점을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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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작품으로 알고 있던 작가, 하인리히 뵐. 그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라니, 저의 허영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책이군요(물론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이 아니라 작가 전체의 문학 활동과 업적을 평가하여 주어진답니다).
제가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편집자 공부를 하던 시절, 같은 반 언니가 학교 졸업 선물(?)로 반 친구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해 주었는데요. 그때 제가 받은 책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였어요. 얇은 책인데 안에 담긴 내용은 정말 압도적이어서 두고두고 여운을 남기는 책이에요.
697쪽이라 원전 완역본, 게다가 번역가님이 '독일 정부 산하 하인리히 뵐 장학 재단의 장학생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하인리히 뵐 연구로 문학박사'라고 하시니 더욱 구미가 당깁니다. 장바구니에 살포시 담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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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시집 제목이라서 그럴까요,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워 보였어요. 목차 또한 어마무시합니다. 「개안수술집도록 — 집도 제23」, 「개안수술집도록 — 집도 제24」, 「개안수술집도록 — 집도 제25」…….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글을 보니, "함기석은 수학적 개념, 추상적 기표, 기하학적 이미지를 비롯해 탈언어적 언어와 전위적 형식으로 초현실적 시 세계를 만들고 갱신해 온 독보적인 시인이다"라고 하네요. 사실 저는 함기석 시인의 시집을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영영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영토가 기묘하게도 같은 경도와 위도에 포개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큰 매력을 느끼곤 하는데요. 이 시집이 그런 황홀경을 선사해 줄 것 같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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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포자입니다. 철수와 영희는 왜 같은 목적지를 두고 다른 길로 가니……? 싸웠니……? 달력은 왜 맨날 찢고 난리니……? 소금물 농도가 그리 중요하니? 모두 짠맛이잖니……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수학이 참 흥미로운 학문이더군요. 물론 제가 수학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건 아니고요, EBS <취미는 과학> 클립을 종종 보는데 수학부 김상현 교수님이 나오는 편들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또 가끔 수학 문제 잘 푸는 사람들이 칠판 앞에 서서 일필휘지로 답을 구해내는 과정을 보다 보면(어려운 수학 문제에는 숫자보다 기호가 더 많더군요) 너무 멋있어 보여요. 나도 어렸을 적 수학에 흥미를 좀 붙였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마음이 끌렸나 봅니다. "수학의 즐거움은 수학자 같은 소수의 천재들만 누리는 걸까? (...) 이 책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며 수학이 어렵다는 편견, 수학적 천재성에 대한 신화를 단번에 깨뜨린다." 수학이라면 치를 떨었던 저도 이 책을 읽으면 수학과 조금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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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쓸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저는 어느덧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ChatGPT부터 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잘 구체화가 되지 않을때 같이 기획안을 짜기도 하고요, 새로운 마케팅 활동으로 뭘 시도해 보면 좋을지도 물어봅니다. 러시아어 문학을 편집할 때는 제가 해석하고 싶은 원문을 주고 번역을 시키기도 해요. 심지어 한두 달 전부터는 직접 전자책도 만들어보고 있는데요. 만들다가 막히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령어도 척척 알려준답니다.
이 책에서는 자료 조사와 정리부터 문장 교정 챗봇(!) 만들기, 카드뉴스 제작 자동화, 판매 데이터 분석 등 출판 실무의 거의 모든 부분을 AI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AI를 똑똑히 활용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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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반야심경이라……. 대체 무슨 책일까 싶어 책 소개글을 읽어 보니 "불교의 대표 경전 『반야심경』의 핵심인 ‘공(空)’ 사상을 현대 물리학의 언어로 다시 읽는" 책이래요. 불광출판사는 불교 관련 서적을 참신하게 재해석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탁월한 출판사인데요. 역시나 이 책도 무척 흥미로워 보이는군요.
저자의 이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론물리학 박사, 음악대학 객원 교수, 천문대장……. 한 이백 살쯤 되는 걸까요? 여하간 박학다식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사람이 『반야심경』, 그중에서도 '나와 세상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기대어 생겨난 인연의 산물이다'라고 말하는 공 사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니. 240쪽이라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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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에게 '수박 겉 핥기'를 형상화한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요. 저를 개로 생각한 걸까요?
오늘은 이렇게 다섯 권의 최신간을 수박 겉 핥듯 핥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한 권이라도 구미가 당긴 책이 있었나요? 저는 이제 '새로 나온 책' 새로고침하러 다시 가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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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하는 지금, 죽음은 나를 원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죽음이 나를 잊을까 두렵다.
― 『방앗간 공격』,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2025, 빛소굴
― 이미지: <The Monk by the Sea>(1808-1810), Caspar David Friedr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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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표기는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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