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회 (2023.07.05)

안녕하세요. 황인찬입니다. 여름이 한창인데 지치지 않고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편지의 형식으로 이렇게 여러분께 인사를 전하고 있지만, 사실 저는 편지를 어색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편지라는 형식이 가진 고유의 내밀함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여겨질 때도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바로 그 내밀함이 여러분과 나누는 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리라는 기대를 품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편지란 항상 조금씩 잘못 전달되는 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그에 덧붙여 우리의 삶이란 이렇게 잘못 전달된 편지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꼭 편지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들은 조금씩은 왜곡되어서, 어딘가는 오해된 채로 전달되게 마련이니까요. 편지란 결국 오배송의 운명을 짊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새벽에 ㅁㅇ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그런 것보다는

자음(子音)만을 떠나보냈을 모음(母音)의 안부가

어쩐지 궁금했다

 

그게 마음이었다면

ㅁㅇ이 떠나가며 버린 자리엔 ㅏㅡ만 남아서

아으: [감탄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하게 아플 때 나오는 소리.

명치끝에 얹힌 녹을 닦으며 쭈그려

앉아 있지는 않을까

 

마음의 미안으로

미안의 마음으로

 

한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랑일까 사랑이 일까

ㅁㅇ은 네모지고 둥그런 얼굴의 윤곽 같기도 하고

안경이거나 눈동자 같기도 해서

문영 미애 미옥 미연 민우……

누군가 내 명치에 집을 짓고 살았었던 것만 같은데

 

ㅁ과 ㅇ의 뚫린 입을 텅 빈 중심을 허방을 실족을 부재를

낯설어하는 내가 낯설기만 한 나는 누구일까

ㅁ과 ㅇ의 사방 벽을 울타리를 우물을 가시면류관을

어떻게 왜 무엇을 어디서 언제 누가

거꾸로 돌려봐도 무엇 하나 설명 못하는 막연은

 

그런 것보다는

살기 위해 한 숟갈 미음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한 마음을 입가로 흘리며 떠먹은 적 있었던가

 

새벽에 ㅁㅇ이라는 말을 보냈는데

ㅇㅇ이라는 답장이 돌아온다

아으, 라는 말을 발음하려거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응응, 나도 잘 지내

_이현호, 「ㅁㅇ」(『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현호 시인의 「ㅁㅇ」 또한 그러한 오배송에 대한 시입니다. 시인은 한밤중 갑자기 ‘ㅁㅇ’이라는 두 글자가 적힌 문자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합니다. ㅁㅇ이라는 말로부터 ‘마음’을 떠올린 시인은 그렇다면 마음에서 빠져나간 ㅏ와 ㅡ가 어디로 갔는지 생각하고, 이어 그것이 일종의 신음 같은 것임을 떠올립니다. 잘못 전달된 편지는 그렇게 우리 마음의 어떤 앓는 소리와도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마음은 ‘미안’이 되고, 미안한 마음은 ‘미연’과 ‘민우’ 등 여러 얼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게 떠올린 다른 사람들의 얼굴들이 다시 막막한 나의 얼굴로 돌아와 막연한 마음만이 남게 되지요. ㅁ과 ㅇ에서 출발한 이 엉뚱한 말의 모험은 돌고 돌아 나의 헛헛한 자리를 비추며, “응응, 나도 잘 지내”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잘못 보낸 문자 메시지가 반갑고 살가운 안부의 말로 되돌아오는 흥미로운 오배송의 시입니다.

어쩌면 시 또한 이처럼 배송 사고를 기대하며 전하는 편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늘이 푸르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되고, 컵에 물이 맺혔다는 말은 고독하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 시라는 양식이니까요. 기다리던 택배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다면야 우리의 마음이 참 막연하고 막막해지겠지만, 시 정도는 조금 잘못 배달되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과 나누는 이 편지도 약간의 오해와 오배송 속에서 더욱 살가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시를 사랑해> 레터는 제때 도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여두겠습니다.

함께 전해드리는 음악은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입니다. 오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마음을 전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지요. 이 편지가 제대로 도착할 수는 없다는 것을요.  
황인찬 드림
📮 문학동네시인선 197 문보영 시집 출간
평행 우주를 노니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상상력! 문보영 시인 신간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이 출간되었습니다.
"제 밖으로 나갈까? 셋 중 하나가 말한다 이제 모래비는 그만 맞고 싶다 그들 중 누군가 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너무 쉬워서 그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과 다른 논리를 가진, 놀랍고 귀여운 전환이 가득한 문보영의 시 세계로 놀러오세요💛 귀엽고 정다운 존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문보영 시인 미니인터뷰
Q1. 시인님의 세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시집을 펴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했던 고민들을 살펴보며 포스트잇을 떼어냈어요. 절반 이상을 뗄 수 있었어요. 벽에 포스트잇을 붙인다고 해서 공간이 좁아지는 것은 아닌데, 포스트잇을 떼고 나니 작업실이 넓어 보이는 거예요. 벽도 다르게 보이고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종이 같달까요. 벽이 허물을 벗었다…!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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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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