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의 독서 취향이 궁금해졌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정성스레 답을 해주었다.
2024년 4월 둘째 주: 14호
안녕하세요. 이예은입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복상 마감 기간에 이 글을 씁니다. 일러스트뿐 아니라 글에도 욕심이 있어서, 바쁜 정민호 기자님을 졸라 한자리 꿰찼어요.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독자님들께 인사드리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벌써 4월이네요.

4월은 유난히 달력에 적힌 날이 많습니다. 4·3 희생자 추모일, 식목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4·19 혁명 기념일, 장애인의 날, 지구의 날 등. 그리고 올해는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있습니다. 저는 10년째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마음이 저릿해지는 걸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던 스무 살 때부터였는데, 올해도 그런 걸 보니 앞으로도 계속 이런 느낌이 저에게 습관처럼 남을 것 같아요.

단원고등학교 4·16 기억교실에는 여전히 2014년도 4월을 가리키는 달력이 걸려있습니다. 살아있는 우리에겐 2024년의 4월이,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이 주어졌습니다. 이 날들에 소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계속 읽고 나누고 공부하며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용기와 위로가 4월을 아파하는 마음을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책을 읽고 나누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내드립니다. 지인들과 자신만의 책 고르는 법을 나눠준 이하나 선생님의 글과 책 선물하는 마음에 관한 이승은 님의 글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복음과상황〉 377호(2022년 4월)에 실렸던 김주련 작가님의 글 한 조각도 함께 보냅니다. 계속해서 따뜻한 마음과 글을 나누는 〈서사의 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까스로 아픔의 목록들을 짚어가며 열람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만 같아 민망한 계절입니다. 그럼에도 매해 자신에게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해서, 나만 아는 몸의 어느 구석에 타투를 하듯 괴로운 글을 새기고, 아픈 그림을 헤집으며 한 계절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내곤 합니다.”

― ‘무수한 감점으로 다시 피는 봄’, 김주련


책이 우리를 부를 때
이하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망울이 맺힌 나무들을 바라보며 봄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설레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완전 다른 세상이 되었다. 봄 내음이 짙어지는 나른한 오후, 하던 일을 내려놓고 책을 챙겨 공원으로 나갔다.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 하지만, 나는 꽃바람이 부는 봄날에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바람에 잎이 흩날리는 소리,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이따금씩 들려오는 새 우는 소리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독서 플레이리스트’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왜 그 책을 집어 들었을까? 가을이 오면 꼭 다시보는 미드, 〈길모어 걸스〉(Gilmore Girls)에서 주인공 로리는 에피소드마다 책을 꼭 언급하는데, 언급된 책들로 북 리스트를 만들어 독서 챌린지를 하는 사람도 많다.
문득 지인들의 독서 취향이 궁금해졌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지, 읽을 책에 대한 정보는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물어봤더니 모두 정성스레 답을 해주었다.

첫째로, 구매 또는 대출해서 독서까지 연결되는 결정적 계기는 대부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추천이었다. 최근 연애를 시작한 친구는 주로 여자친구에게 추천을 받아 함께 책을 읽는데, 《구원 그 이후》(박영선 지음, 무근검)을 읽다 보니 저자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고 했다. 남편 책장에 있던 《하나님의 열심》(박영선 지음, 무근검)을 주일에 가져가기 위해 챙겼다. 잠잠하게 있던 책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어떤 친구는 추천받아 읽은 책이 취향에 맞지 않아 좀처럼 몰입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을 떠올리며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 책이 흥미로워진다고.
둘째로, 서점의 북 큐레이션이나 SNS에서 접하는 출판사 홍보를 통해 새로운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저 책이 좋아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매일 신간을 접한다. 선택의 폭이 크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그녀가 주로 끌리는 책은 새로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한다. 최근 읽어보고 싶었던 책은 《대장간 이야기》(정진오 지음, 고유서가)인데, 대장장이와 대장간에 관한 책으로 평소에 잘 접할 수 없을뿐더러 점점 사라져가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관심 있는 책에서 구매로 이어지기까지는 확실히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의 영향력이 큰 것 같다(애면글면 띠지의 노력, 〈서사의 서사〉 10호 참고). 그러다 보니 책을 너무 많이 구입하는 것 같아서 요새는 어떤 신중한 사람의 방법을 따라 처음 한 챕터는 어느 정도 읽어보고 사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셋째로, 독서모임을 하는 친구들은 모임에서 선정된 도서를 읽는다. 나도 작년에 독서모임을 동시에 4개 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반강제로 정말 다양한 책을 읽게 되었고 독서 편식이 사라지게 되었다.

넷째로, 대부분 내 또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관심 분야 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직업상 읽어야 하는 책을 많이 읽는다. 출판, 편집 분야에서 일하다 최근에 퇴사한 후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한 친구는 《Lead Like a Shepherd》(래리 오스본 지음)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다고 한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제자도에 관한 내용이 일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와닿지 않았는데, 1년을 묵혀두었다가 지금 다시 꺼내 읽어보니 한 줄 한 줄이 마음 깊숙이 새겨지고 곱씹을 내용이 많아 책이 꿀처럼 달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을 다시 즐기는 이들이 꽤 있었다. 내가 어떤 일상을 살고 그동안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떤 지식을 쌓았는지에 따라 같은 책이 너무 다르게 읽힌다고 했다. 선물로 책을 받고 재미없어서 덮었다가 5년 후에 다시 읽었는데, 너무 몰입해서 내려놓기 힘든 책들도 있었다고.

나 같은 경우에는 주로 현재 읽는 책에서 다음 책으로 연결되는 편이다.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 레비 지음, 돌베개)를 읽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연이어 읽었던 두 권의 책에서 인용하고 있어서 장바구니에 넣어놨었는데, 다음 날 책방에 출근해 책장 먼지를 닦다가 누군가 가져다놓은 빛바랜 《이것이 인간인가》를 운명처럼 조우했다.

나의 게으름 때문에 책의 부름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가, 끝내 만나야 할 책을 만나기도 한다. 한 번은 동네에 새로 생긴 ‘카잔차키스’라는 흥미로운 책방을 방문했다. 책을 담아주는 종이봉투에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새겨놓을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책방 사장님과 이야기하고 돌아오며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을 꼭 읽어보고 싶어서 리스트에 올려놨었는데, 다른 책들에 밀려 잊혀지고 말았다. 몇 주가 지나고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사상사)를 읽다가 반가운 책 제목을 발견하고 당장 책을 구매했지만, 여전히 책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서사의 서사〉 9호에서 문준호 필자님 글을 읽다가 다시 발견, 이번 달에는 무조건 읽어야겠다 싶어 마침내 꺼내 들었다. 책이 나를 간절히 부르고 있었다.
책 읽기 딱 좋은 계절, 봄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보자. 책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이하나
멋진 남편과 세 딸아이 루아, 로이, 라엘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커피, 책과 여행,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나를 발견하는 것을 사랑한다.


책 선물을 좋아하시나요…?
이승은

  
〈서사의 서사〉를 구독해 읽으며 책, 글, 읽는 행위에 진심인 사람들을 감각할 수 있어 좋았다. 다채로움보단 편안함을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이 감각은 서울국제도서전에 가서 느꼈던 기분과도 유사했다. ‘그래, 아직도 이렇게 책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니까’ 하며 위안을 삼기 좋았달까. 글이 가진 힘을 믿으며 살아가던 여느 날, 습관처럼 쓰는 메모장에 “감정이 글이 되면 서사가 된다”라는 말을 써두었다. 나는 감정에서 파생된 글의 힘을 믿고 있다. 오늘은 책에 대한 나의 서사를 써보려고 한다.

내게 ‘책’이란 많은 게 함축된 단어다. 취미이기도, 삶을 살아내는 방식과 지침이기도, 감정을 다루는 도구이기도, 글쓰기 멘토이자 경쟁자이기도 하다. 너무 좋은 책을 만나면 흠뻑 취해 읽다가, 왜 나는 이런 글을 써낼 수 없을까 슬퍼하며 남모를 시샘도 종종 한다. 가끔 한 번에 읽기 아까워 아껴 읽는 글도 있고, 완독의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 도장 깨듯 단숨에 끝내버리는 책도 있다. 일상에 깃든 책은 이미 충만한 서사로 내 삶에 자리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서점 반디앤루니스에서 진행한 북 큐레이션 펜벗 활동 사진

한때 출판사 마케터를 꿈꿨던 사람으로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추천하는 일은 즐겁다. 좋은 책을 읽고 SNS에 추천하는 글을 올려두면, 왕왕 ‘네가 올렸던 그 책 나도 읽고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 경험은 ‘글이 또 다른 이야기를 낳을 수 있다’라는 것을 감각하게 한다. 책을 좋아하는 일은 어쩌면 말의 힘, 서사의 힘을 믿는 일이기도 해서 나는 읽고, 쓰고, 말하고, 들어주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의 집약체인 이야기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서사를 쓰고 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애정한다.

그래서였을까? 성급한 일반화는 모순을 낳는다지만, 나는 책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편애해왔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들어주는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을 때 오는 안도감과 기쁨, 설렘이 내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과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서사를 존중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내 마음속에 새겨져 그들을 편애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애정을 키우면서도 한편으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경계했던 점은 지적 허영심 채우기와 보여주기식 독서였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 모두 주체성을 갖지만, 실제 삶으로 녹여 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는 것만큼 삶이 따라가기 위해선 유달리 부지런해야 하는데, 소화되기도 전에 다른 책으로 넘어가다 보면 크게 놓치는 것들이 생기곤 했다. 경계와 고민 사이를 오갔던 당시 ‘책의 표지로 날 증명해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걱정과 바람의 글을 쓰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그런 것까지 경계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책이 함축하고 있는 읽기와 쓰기, 듣기, 삶으로 살아내기는 내게 일상을 살아내는 일과 유사하다. 결국 책을 잘 읽어내는 것,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일상 속 관계 맺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과 밀접하게 닿아있고, 써내는 일은 남이 잘 모르는 나를 돌보고 알아차려 주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삶으로 가꾸어내는 과정은 신앙처럼 나를 견고하면서도 포용적으로 넓혀주는 과정이었다. 글을 되씹고 말을 경청하고 나를 잘 돌볼수록, 마주한 이야기들은 내 삶을 더욱 유연하고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나와 나, 나와 이웃, 그리고 세상의 관계들이 선명하게 이야기되면서부터 책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해졌다.

지금까지 책을 통해 마주한 서사들은, 텍스트에 갇히지 않고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서사를 낳으며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 책을 선물로 받길 좋아하는 마음은 내게 여전히 ‘생각과 관계를 닫지 않고 열어두겠다’는 다짐이 되었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편식하기 마련인데, 타인에게 받은 책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고 독서의 폭을 넓히는 일은 향유할 수 있는 일상과 관계가 넓어지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덕분에 나 또한 여전히 고집스럽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그냥 읽어보라’ 건네기보단 그 사람의 서사를 듣고 내가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다정히 덧대어, 그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건넨다. 그들의 독서가 내가 해주고픈 마음을 대신 전해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덕분에 책 선물은 내 애정의 척도이자 말하는 방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거 같다. 나와 우리를 이룬 관계의 풍성함을 누린 방법 중 하나인 책 선물하기를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도 감히 추천드려본다. 책 선물에 관한 또 다른 서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 선물 집착녀는 이만 인사드리려 한다. 책을 향유하실 여러분의 일상을 응원하며, 편애도 좋으니 서로의 마음도, 글도 꾸준히 읽어내시기를.
이승은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워서 관찰하기를 습관처럼 하는 교육 콘텐츠 개발자 3년 차다. 평소 읽고 쓰는 것을 즐기고 기록 남기기를 취미로 삼는 편이다. 읽기와 쓰기가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추신. 〈서사의 서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서사의 서사〉가 세상에 나온 지 약 4개월 만에 모였습니다. 모니터 속 글과 일러스트로만 서로를 보다가, 실제로 만나 대화를 하니 재밌었어요. 일상과 지금까지의 이야기, 앞으로의 방향을 나누었습니다. 아직 들려드리고 싶은 서사가 많습니다. 함께해주세요. 독자님들께도 그날을 채웠던 다정과 평안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호 의견💌

🗣️ 책의 쓸모를 논하는 것의 불가능성 혹은 그 쓸모에 대한 불가해성을 다뤄주어 고맙습니다. 책 읽기가 단지 성공을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여겨지는 시대인 것 같아 안타까웠던 참입니다.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르는 것처럼, 글이 거기에 있기에 읽을 뿐 아닐까요?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이 계심에 힘이 납니다. 모든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말입니다.

🗣️ 제목의 ‘쓸모’에 끌려 딴님의 글을 신나게 읽다보니 글 속에는 ‘효용’이라는 단어만 있었네요. 글과 제목이 서로 다르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책 읽기의 쓸모없음에 깊이 공감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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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강동석 | 일러스트 이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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