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돌멩이레터입니다. 레터가 올 시간이 아닌데 메일이 와서 놀라셨죠. 돌멩이팀은 지난
돌멩이레터 4호  |  추사
맛있고 '맛'도 있는

안녕하세요, 물결님 🪨

물결님은 언제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나요? 저는 입맛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게 느껴요. 그동안 잘 삼키지 못했던 음식이 편하게 넘어갈 때, '아, 내가 드디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물결님은 '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저는 원래 술병이 떠올랐는데요, 지금은 ‘흙’이 떠올라요.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힌 부드러운 흙이요. 그리고 그 위로 누군가가 정성스레 쌓아 올린 무언가들이 연상돼요. 오늘 소개해 드릴 브랜드가 그러합니다. 좋은 품질뿐 아니라, 단단한 뿌리와 진정성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 올린 오늘의 브랜드. 충남 예산에서 직접 기른 사과로 와인과 브랜디, 소주를 만드는 '추사(秋史)'를 소개해 드릴게요. 돌멩이팀이 직접 다녀왔어요!


- 초이 드림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  Sweet - Cigarettes after sex

Chusa
추사
문화로부터의 술
제품이 아닌 경험으로서의 추사
돌멩이팀을 처음 맞아준 추사는 광활한 밭이었어요. 그리고 주변에는 진흙을 쌓아 만든 둥그런 지붕과 나무에 긴 밧줄을 이어만든 그네, 한 켠에 세워진 사과 모양 기차가 있었어요. 순간 잘못 찾아온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어진 추사의 정제민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이곳이 와이너리임을 깨달았어요.

추사는 캐나다 이민을 마치고 돌아온 정제민 대표가 그의 장인(서정학 대표)40년 간 운영하던 은성사과농장의 한 켠에 자리 잡으면서 시작되었어요. 독특한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브랜드를 내고 술을 팔지 않았다는 거예요. 대신 축제를 먼저 만들었죠. 사람들이 농장에 방문하여 사과를 따고, 와인을 만들고 숙박을 하면서 술과 사과를 듬뿍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술을 제품이 아닌 문화로 먼저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이러한 행보의 바탕에는 정제민 대표의 이민 경험이 있어요. 

외국에서는 보니까 '와인'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상품 인거예요.

사람들이 술의 원료가 있는 와이너리에 놀러 와서 시음도 하고, 포도를 따기도 하고, 놀고 먹으면서 숙박도 하는 일종의 농업과 관광이 결합된 '문화상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문화를 전하는 역할까지 하고요.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추사는 여전히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요. 양조장 뿐 아니라 사과 농장, 게스트하우스, 베이커리, 와인 축제를 함께 운영하면서 술뿐만 아니라 충남 예산의 사과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돕죠.

와인과 브랜디 불모지에서 낸 용기
축제를 운영하면서 와인 만들기에 열을 더해가던 2010년, 정제민 대표는 자신의 술을 만들기로 결심해요. 추사가 시작된 거죠. 그러나 2010년은 지금과 같은 크래프트 문화는커녕 국산 술 시장조차 부재한 때였어요. 추사 역시 초반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추사를 운영해온 동력이 무엇인지 여쭈었어요. 놀랍게도 애초부터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원래부터 술 만드는 것은 공장에서 순식간에 찍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증류주나 발효주는 시간이 더 필요한 술이라고 할 수 있죠. 장기전을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입니다.

장벽은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포도나 사과는 술을 제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고온다습한 환경을 지녀 과일의 당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사는 다양한 종의 사과를 테스트해야만 했어요. 예산의 토양에도 맞고 술 제조로도 적합한 원료를 찾기 위해서요. 농작 방식도 수없이 연구했죠. 그 결과 현재 추사의 모든 제품은 예산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들고 있어요. 직접 생산하기도 하고, 부족한 수량이나 특정 품종은 예산의 다른 농장에서 구매하기도 해요. 이를 통해 지역 내 상생을 돕기도 하죠. 

브랜디를 숙성하는 오크통은 어떻고요. 브랜디의 향과 색을 결정짓는 중요한 오크통은 참나무를 불에 그을려 만드는데요. 국내 참나무로도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적합한 제품을 찾을 수 없자 직접 포르투갈에 찾아가 거래처를 발굴하기도 했어요. 유달리 투명도가 높은 병도 이러한 노력으로 찾을 수 있었죠. 정제민 대표의 이런 집념 끝에 추사애플와인(와인)과 추사40(브랜디)는 국내⋅외 대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어요.


흙으로부터 온 술

지역이 아이덴티티가 될 때
추사를 구매한다는 건 추사가 만들어진 예산의 기후와 생산방식, 식문화에 값을 지불하는 것을 뜻해요. 물결님 우리 한 번 생각해 봐요. 우리가 마시는 모든 술은 흙에서 온다고 볼 수 있어요. 모든 술은 곡식이나 과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쌀로 만드는 막걸리가 그렇고요, 아가베(선인장)으로 만드는 데킬라가 그렇죠. 필연적으로 원료는 재배 지역의 공기와 바람, 햇빛에 영향을 받아요. 식문화에 따라 술을 제조하는 방법이 다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차이가 차별점을 만들죠. 원료에, 술에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것이에요. 마치 전라도의 김치와 강원도의 김치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요.

결국 가장 지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 정제민 대표 (이코노미 조선 인터뷰, 2021)

추사는 그러한 점에서 선명해요. 이름에서, 원료에서, 제품의 맛에서, 패키지에서, 스토리에서 '충남 예산'이 확연히 드러나죠. 같이 한 번 볼까요? 먼저 '추사'의 이름은 김정희 선생의 호 '추사'에서 따왔어요. 김정희 선생의 깊이를 닮은 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이는 패키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추사40은 획이 선명한 추사 선생의 작품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어요. 전체적인 톤을 낮추고, 지함에 아무런 무늬도 더하지 않아 강인함을 강조했죠. 또 '추사'는 술의 원료가 되는 가을의 사과이자 사과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추사 전반에서 충남 예산과 사과를 느낄 수 있죠.
인터뷰 말미에 '추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술이 되었으면 좋겠는지를 여쭈었어요. 너무도 추사 다운 답변이 돌아왔어요.
©cocktailhigh

예산에 오면 추사를 먹고 가는 거죠. 세계적인 상품도 지역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상 하는 얘기는 지역 사람들도 안 먹고 안 마시는 술이 어떻게 통하겠어요. 요즘의 관광은 지역의 볼거리와 음식문화가 늘 함께 있잖아요. 강원도에 가서 바다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닭강정을 먹는 것처럼요, 사람들이 예산을 찾았을 때 출렁다리나 케이블카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추사도 함께해 주길 바랍니다.

맛있는 술에서 맛이 있는 술로

이 술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정제민 대표가 캐나다 생활에서 놀란 것 중 하나는 '하루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무언가를 담그고 있어서 우리처럼 김치 같은 것을 담그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와인이었다' 는 것이에요. 와인이 집에서 담가먹는 식품이었던 것이죠. 사실 우리나라에도 집집마다 술을 짓는 가양주 문화가 있었어요. 제사라는 문화적 풍습과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용도였죠. 포도 농장에 따라 와인 값이 매겨지듯, 우리나라에서도 술맛이 좋은 집은 지체 높은 가문으로 여겨지기도 했어요. 그러니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양조장과 레시피가 있었던 것이죠. 


물결님도 주변에서 많이 보았을까요? 요즘 보면 지역술과 크래프트 비어, 에스프레소 바(bar)들이 가양주 문화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각 고유의 '맛'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맛있다가 아니라 '맛'이 있어요. 구별하고 설명할 맛이 있는 거죠. 함께하는 음식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풀어낼 수 있는 맛과 이야기가 존재하는 게 우리가 그들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를 먹고 마실 때 한 번쯤은 '이건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것이요. 작년에 출시한 소주 '추사백'도 그러한 이유에서 만들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출산지가 뚜렷한 소주를 접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추사는 곧 예산의 사과를 느낄 수 있는 다른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아들이 양조 공부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죠.


"지난 12년간 스토리를 쌓아온 추사는 앞으로 어떠한 히스토리를 만들어낼까요?"

3월 3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5호가 발행됩니다.

Editor's comment ✏️

이번 레터를 쓰면서 생각난 일화가 있어요. 오랜,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에요. 저희를 위해 친구 어머니께서 밥과 김치찌개, 몇 반찬을 해두셨었죠. 열심히 놀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식사를 했는데요. 저는 그때의 맛을 잊지 못해요. 분명 똑같은 모양의 쌀과 김치찌개인데 저희 집 맛과 너무 다른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세상에는 김치찌개를 만드는 사람 수만큼의 김치찌개 레시피가 있겠다고요. 저는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 맛이 떠오르곤 합니다. 물결님은 어떤가요. 지금, 입안에 떠오르는 맛이 있나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오늘, 그들에게 같이 빠져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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