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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조제>와 스카치위스키

여행이든 술자리든 동행하는 사람에 따라 경험과 재미의 폭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행에서의 술자리라면 더욱 그럴 테고. 앞선 에피소드에서 밝힌 것처럼 여행 잡지사의 출장은 대개 사진가와 동행할 확률이 높고, 사적인 여행이라면 아무래도 아내와 함께 떠날 때가 많았다. 간혹 출장에 따라 별도의 인물을 섭외하기도 한다. 기사에 어울리는 전문가와 동행하는 형식의 기획을 할 때면 말이다. 


김종관 영화감독과는 2018년 부산 동행 취재 이후 느슨하게 인연을 이어갔다. 같은 해 겨울, 홋카이도로 영상을 촬영하는 출장이 급하게 잡혔는데, 혹시나 싶은 기대감으로 그에게 촬영 의뢰 연락을 해봤다. 홋카이도에 애정을 갖고 있던 김종관 감독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고, 나를 포함한 최소한의 스태프를 꾸려 영상에 나레이션을 입힌 서정적인 단편영화 <하코다테에서 안녕>을 완성시켰다. 일본정부관광국과 함께 홋카이도의 겨울을 주제로 여행 영상을 만드는 단출한 프로젝트가 별안간 영화의 영역으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김종관 감독과의 인연은 사석에서의 술자리로도 이어졌다. 한 번은 그의 작업실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커피를 내려 마신 뒤 그가 찬장 속 위스키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첫 잔은 칸 모어의 스페이사이드 리미티드 16년, 그다음엔 아일라 섬의 라가불린 디스틸러리 에디션, 세 번째는 일본의 니카 12년이었다. 내어준 위스키 자체도 모두 생소했지만,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서 이렇게 다른 위스키를 차례대로 비교해가며 음미해본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대개는 1병을 가운데에 두고 첫 잔을 마실 때 “흠, 이 위스키 맛 괜찮네” 정도의 품평을 남긴 뒤 병이 비워질 때까지 홀짝홀짝 마시는 게 다반사였으니.


무엇보다 위스키의 종류에 따라 마시는 순서를 달리하면 한층 그윽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가령 화사한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첫 잔으로 좋다. 묵직한 피트향이 나는 아일라 위스키는 후순위로 미뤄야 다른 위스키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 강렬한 풍미와 높은 도수로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는 마지막 잔으로 어울린다. 위스키에 관한 남다른 취향을 가진 김종관 감독과 만날 때면 이처럼 새로운 위스키를 알아가고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언제 스코틀랜드로 위스키 취재하러 같이 가시죠.” 술자리에서 그에게 실없이 그런 농담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영화처럼(?)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19년 김종관 감독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리메이크작을 연출하게 됐고, 스코틀랜드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게 될 거라고 귀띔해줬다. 본 촬영에 앞서 일주일 먼저 김종관 감독을 포함한 소수의 스태프가 스코틀랜드로 현장 답사를 떠난다는 소식 또한 접했다. 나는 기민하게 기획을 짜냈고, 마침내 촬영팀과 동행하는 스코틀랜드 취재를 성사시켰다.


스페이사이드. 그러니까 스카치위스키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 촬영의 주 무대였다. 김종관 감독을 포함한 촬영팀은 스페이사이드에서 비교적 가까운 애버딘을 베이스캠프 삼아 일대의 중세 마을과 버려진 고성을 돌며 영화에 어울리는 장소를 하나씩 체크했다. 그들은 이미 한 차례 사전 답사를 진행한 터라 스페이사이드 곳곳을 내밀하게 알고 있었다. 문제는 보통의 여행 잡지 에디터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쓸쓸하고 인적 드문 무명의 들판과 외딴 골목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소라는 점. 이를 기사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동행하는 내내 근심에 잠겼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촬영 리스트에는 위스키 증류소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스카치위스키 중 스페이사이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곳이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절반 이상인 60여 증류소가 일대에 산재해 있다. 맥캘란, 발베니, 글렌피딕 등 위키를 잘 모르는 이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인기 증류소를 포함해 국내 바에서 찾기 힘든 희귀 증류소가 마을 건너 하나씩 자리한다. 굽이굽이 지류를 형성한 160킬로미터 길이의 스페이강은 위스키의 핵심 원료. 유독 강물의 빛깔이 짙어 보였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함량의 미네랄 때문이라고. 여기에 스페이스드산 맥아와 효모를 첨가하고 셰리주를 담근 오크통에 다년간 숙성시켜 균형 잡힌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어 낸다.


당시 나는 촬영팀과 함께 2곳의 증류소를 방문했다. 1824년 스코틀랜드 최초로 위스키 증류 면허를 취득한 글렌리벳은 영국 왕실에서 인정할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같은 이름을 내건 가짜 위스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관사 ‘The’가 이름 앞에 붙은 위스키만이 글렌리벳으로 불리게 된 사정이다. 김종관 감독은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영화에 쓰일 빈티지 위스키를 하나 골랐고, 촬영팀은 주변 마을과 풍경을 꼼꼼하게 스케치했다.


그다음에 찾은 곳은 글렌파클라스. 스코틀랜드에서도 몇 남지 않은 가족 경영 방식의 소규모 증류소다. 현지인 사이에서 ‘위스키 산’이라 불리는 벤 리네스 봉우리 아래에 자리한 증류소는 검게 그을린 외벽과 빨간 나무 문이 묘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친근한 증류소 직원이 내부를 세심하게 안내해 줬다. 테이스팅 룸에서는 김종관 감독과 함께 글렌파클라스 15년을 한잔씩 시음했다. 대단히 놀라운 맛은 아니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스카치위스키 특유의 화사한 맛과 향을 적당하게 머금고 있었다. 증류소를 떠나기 전 글렌파클라스의 미니어처 세트를 하나 구입했고, 지금도 나의 작업실 선반 한쪽에 진열해 두었다. 이를 물끄러미 응시할 때면 그날의 위스키와 스페이사이드의 정경이 하나씩 떠오르곤 한다.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조제>는 이듬해 개봉했다. 영화관에서 당시 내가 촬영팀과 누비던 스페이사이드의 외딴 들판과 마을 그리고 2곳의 증류소를 마주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장면은 기대보다 짧았지만, 주인공 조제가 그곳에 이르는 과정은 원작과 다른 감동을 주었다. 무엇보다 조제가 스코틀랜드로 향하기 전에 남긴 말이 내내 맴돌았다. 그리고 그 대사는 내가 위스키 중 유독 스카치위스키에 빠지게 된 이유를 대변하기도 한다.


“술은 그곳의 공기를 먹고 그곳의 물로 지어지는 거야. 숲과 땅과 바람의 냄새를 알고 술을 마시면 더 맛있는 법이지.”✉️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 1일 3매 |  최갑수

힘들 때는 말이죠

1. 살면서 가장 신중해야 할 때는 힘들 때죠. 뭔가 더 이상 엉망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상태가 엉망일 때,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낄 때, 이때 다가오는 다정함을 경계할 것. 악은 내가 가장 지쳐있을 때 따뜻한 손을 내밀고 웃으며 다가오거든요. 특히 사람,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만납시다.


2. 사소하게 좋지 않은 일이 이어지면서 끝없는 절망감의 나락으로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뭔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나가고, 직장에서 오해가 생기고, 하던 작업이 엎어지고……, 여기에다 지금 다이어트까지 하고 있라면? 일단 연어나 소고기, 샐러드, 미소된장국을 배부르게 먹고 디저트 접시도 깨끗하게 비운 다음 한숨 푹 자도록 합시다. 우리를 절망의 동굴에서 구해주는 밧줄은 염분, 철분, 당분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절망의 쓰나미를 막아주는 방파제는 피지컬입니다. 일어날 비극은 어차피 일어나니까 내버려 두고요. 몸이 힘들면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아납니다. 잘 챙겨 먹고 운동해 체력을 길러 달아난 생각을 잡아옵시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은 더더욱.


3.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어려움, 슬픔, 고통 앞에서 무표정의 얼굴로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슬플 때는 울고, 기쁠 때는 맘껏 웃는 사람. 그리고 제시간에 일상으로 돌아와 제 할 일을 하는 사람.


4. 힘들 때는 달아납시다.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도망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닏다. 달아나서 삶을 추스를 수 있다면, 지금의 힘든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재정비할 수 있다면, 달아납시다. 단, 오래는 말고요. 


5. 주위의 누군가가 힘든 상황이라면, 충고하고 조언하기보다는 지켜보고 기다려 줍시다. 계좌번호를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최갑수는 작가다. 스트레스 방지 차원으로 아침마다 초콜릿을 먹는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Clip | 팀워크


좋을 때 즐거운 것이 팀워크가 아니다. 힘들 때 흔들리지 않는 것이 팀워크다.
- 박신후,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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