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에게는 부캐(부캐릭터)가 있으신가요?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부캐’라는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은 이젠 익숙한 개념이 된 것 같아요. 가수 매드크라운과 마미손, TV 예능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분하는 수많은 캐릭터들, 수많은 N잡 유튜버들까지 내 안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서 만들어가는 재미, 그 과정에서 얻는 신선함이 ‘부캐’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부캐를 만드는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콘셉트’와 ‘몰입감’이라고 생각해요. 본캐와 다른 특징적인 콘셉트가 있는가, 거기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에 따라 괜찮은 캐릭터가 될 수도, 본진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지요. 오늘 가져온 이야기는 ‘실패한 부캐 사례’의 원조인 세계문학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입니다. 함께 살펴볼까요?

영국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어터슨. 그는 사촌인 엔필드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느 날 엔필드는 어떤 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는 우연히 한 남자와 소녀가 거리에서 부딪히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난 남자가 아무 죄의식 없이 소녀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경악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붙잡고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죠.

‘문’은 그 남자 에드워드 하이드가 소녀에게 합의금을 주겠노라며 돈을 찾으러 들어간 문이었습니다. 어터슨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의아함을 느낍니다. 하이드가 들어간 집은 명망 있는 의사 헨리 지킬의 집이었거든요. 더불어 지킬이 얼마 전에 자신에게 전달했던 유언장에도 하이드의 이름이 적혀 있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터슨은 하이드의 뒤를 밟습니다. 그가 누구길래 지킬과 연관이 되어 있는지 호기심은 더해갑니다. 그러던 중 어터슨과 지킬의 친구인 래니언 박사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가 어터슨에게 생전에 남긴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래니언은 어터슨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난 인생을 사랑했다네. 그런데 모든 걸 알게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될 때가 있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마주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또 헨리 지킬은 이 죽음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한 사람이 가진 여러 모습을 발견할 때 쓰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본캐에 지루함을 느껴 시작한 지킬의 부캐 활동은 처음엔 활력을 주었지만 과몰입의 결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말았죠. 선과 악,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 숨기고 싶은 욕망까지도 나의 한 면이에요. 건강한 부캐 활동은 내 안의 다양함을 포용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책에서 마음이 하는 일에 따라 나는 오늘 구름이 되기도, 토마토가 되기도, 나무가 되기도 해요. 유리처럼 깨지는 날도 있죠. 그때 내 마음의 물성을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게, 그래서 스스로 마뜩하게 만드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