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이 필요할 때
  
[글 순서] 
1. 죽은 자로서의 자유 - by 마드쏭  
2. 고민고민하지 ma boy - by 에디터P
3. 인간관계에도 공식이 있을까? - by 로이린

죽은 자로서의 자유
by 마드쏭

철썩철썩 파도가 밀려온다. 탁 트여 시원하게 느껴지던 바다도 잠시, 내 발이 젖을까 염려하며 밀려오는 파도를 피한다. ‘수건이라도 챙길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수건이 있었더라도 아직 추운 겨울에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닷가를 걷기는 어려워 보인다. 추위를 많이 타서 차가운 바다에 발 담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파도를 피하는 내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다.


그때! 맞은 편에서 웬 사람이 씩씩하게 파도를 맞아가며 바닷가를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저 사람은 뭐지?’

아직 바닷바람이 추운 2월 6일, 아침 7시가 좀 넘었다.

‘춥지 않나? 신발은 어디에 두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걷고 있는 걸까? 수건은 가지고 온 걸까?’

신발도, 수건도 없이 빈손으로 당당하게 바닷가를 걷고 있는 그녀 모습에 나는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신발을 벗을지, 그냥 그대로 걸을지 망설였다.

‘나도 바다를 피하지 않고 저 사람처럼 거침없이 걷고 싶지만··· 추운 건 싫은데··· 수건도 없이 어떻게 하지?’

‘그래. 저 사람이 멋있어 보여도 저 사람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나에게 편한 방법대로 이 바다를 즐기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합리화시키며 해운대 백사장 끝을 향해 걸었다.

 

그날 점심 무렵, 다시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다. 아침과 다르게 햇볕이 따뜻했고 어린아이들도 신발을 벗은 채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아침엔 꺼려졌던 맨발 걷기가 이제는 하고 싶어졌다. 더구나 그 시간 나는, ‘죽은 자’의 시선으로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죽은 자’가 추운 겨울 바닷가를 맨발로 걷는다고 이상하게 쳐다볼 사람은 없다. 젖은 발을 닦지 못해도 신경 쓸 필요 없다. 죽었으니 ‘차갑다’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테지. 여전히 발 닦을 수건 한 장 없었지만 무작정 신발과 양말을 벗어 손에 들고, 바지를 걷어 맨발로 바닷가를 걷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신발과 옷이 젖을까 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발가락 사이로 밀려오는 파도를 발로 차며 신나게 걸었다. 겨우 신발과 양말을 벗었을 뿐인데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기분이다. 추위에 대한 걱정과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니 자유로웠다.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30여 분을 걸으니 발가락이 조금 빨개지긴 했지만, 동상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껏 들떠 바닷물을 발로 차고, 밟히는 모래를 느끼며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저처럼 이렇게 바다를 느끼고 즐겨보세요!’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죽은 자’였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바닷물의 시원함과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수도 없고,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지금의 감정을 사람들과 나눌 수도 없다. 그 순간, 내가 진짜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실제는 살아있는 사람이니 오감을 느끼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죽은 자’로서 ‘나를 느끼는 시간’이 끝났다. 이전의 나는 신체적 제약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많은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했다. ‘죽은 자’가 되어서야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현실.

나는 살아있다!

외부 상황이 변한 건 없지만 한 시간 전, 산 사람으로서만 존재하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여자라서,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못 할 일은 없다. 똑같은 방식대로 산다면 죽을 때가 되어서 또는 죽어서 후회할 것 같다.

 

작년부터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와 멘탈코치를 배웠다. NLP는 쉽고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들을 배우는 것이라면, 멘탈코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기술적인 방법들은 아무리 배우고 습관을 만들려고 해도 현실과 타협하기 쉽고 기존의 생각이나 행동 방식으로 돌아가기 쉽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를 머리뿐만 아니라, 온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면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누구인가’를 자각하게 된다.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모르는 채로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죽을 때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그래서인 것 같다. 해운대에서 멘탈코치 & NLP 트레이너 마지막 트립(Trip) 과제는 ‘죽은 자로서 바닷가를 걸으며 자신을 느껴 봐라!’였다.

 

많은 사람이 바라는 자유. 3년 전의 나는 경제적 자유만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 자유는 더 큰 의미의 자유에서 눈곱만한 자유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 부를 이루어도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많은 신념과 규칙들로 구속당하니까 말이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훨씬 자유롭다. 나를 억압했지만,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여러 신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꺼풀씩 계속 벗겨내면 얼마나 더 자유로워질지 기대가 된다. 디딤돌인 줄 알았던 하나의 신념을 처음 벗어낼 때보다 지금은 하나씩 떨쳐내는 것이 더 쉬워졌다. ‘생각도 감정도 모두 내가 만든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서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라는 전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고민고민하지 ma boy
by 에디터P
“에디터P 님은 돈을 벌고 싶은 건지, 열심히 살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2년 전에 받았던 컨설팅 내용 중 일부다.
나는 돈이 뭔지 대답하지 못했고, 상담사님은 내가 ‘돈 벌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고 했다.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때론 온라인 줌으로 만났다. 그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돈을 벌고 있었다. 무대 위의 가수가 잠시 물을 마실 때도 그 모습을 본 팬들은 환호 하듯,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수강생들은 열광하며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I love you and take my money.”

그들처럼 돈을 많이 벌고 사랑도 받고 싶었다. 그들의 강의를 듣기도 하고, 같이 공부하는 분들과 대박을 터뜨린 대표들의 강점을 분석하기도 했다. 우선 그들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했다. 나는 ‘꾸준함’이란 글자에 콤플렉스가 있는 편이다. 

왜 이렇게도 꾸준함이 약할까? 분명 열심히 살려고는 하는데, 늘 며칠 하다가 흐지부지였다. 호기롭게 2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했던 모임도 3개월 정도는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 이후로는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서, 지금까지 추가로 낸 벌금만 20만원이 넘는다. 

그러다 챌린저스라는 앱을 알게 되었다. 보증금을 걸고, 매일 습관 만들기 인증샷을 올리는 곳이다. 나는 이 앱을 카톡 다음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감정 일기 쓰기, 하루 한 번 웃기 정도로 쉬운 것으로 시작했는데, 1만원이란 작은 보증금이지만, 매일 알람이 울리기 때문에 2주 동안 꾸준히 한 나 자신이 너무도 대견했다. 인증샷을 올리면 방금 올린 사진으로 1,000원의 보증금을 획득했다고 나오니, 마치 돈을 번 것 같았다. 게다가 총 10일 중 9일만 인증샷을 올려도 보증금을 100% 환급받으니, 마치 공짜로 수십 가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챌린지는 점점 늘어났고, 챌린지가 너무 많아지니, 즐겁지도 않았다.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지 않았다. 우선 자정까지 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12시를 넘겨 자고, 다음날 리듬이 깨지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몸살을 동반한 번아웃이 와버려서, 퇴근을 한 9시부터 밤 11시 30분경까지 아무런 힘을 못 내고, 좀비 같이 산다. 그리고 하루를 20~30분 남기고, 보여주기식으로 인증샷 10여개를 후다닥 해버렸다. 턱걸이해도 1분 동안 치열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하고, 피곤하면 철봉에서 내려왔다. 

이렇게 되면 줄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챌린지 기간이 끝나면 알람이 없으니 안 하게 되고, 며칠 지나서야 내가 그걸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해서, 또 챌린지 신청을 한다. 해외의 만보기 앱에 중독된 사람들 이야기를 읽을 때는 웃었는데, 지금 내 꼴이 딱 그랬다. 게다가 점점 인증샷을 못 올리고 보증금을 잃어버리는 날도 늘어간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번에 해봤던 40여가지의 챌린지 중 가장 도움이 되고 필요한 습관, 하나를 소개해 드린다.
 
고민거리를 쓰고 그것에 대한 해결 방법을 써보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 나온 내용이라, 이미 이 방법을 들어본 사람은 많을 테지만, 내 주변에 그 책을 읽어 본 많은 사람 들 중에서 실제로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우선 나부터도 안 해봤으니 말이다.

매일 고민거리와 해결 방법을 3개씩 써보았다. 건강 문제, 자녀 문제, 회사 문제, 죽음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적었다. 자주 반복되는 문제들이 보였다. 내 경우는 회사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특히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많이 담았다. 나는 왜 원하지도 않는 것에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겨 버릴까?

며칠에 거쳐서 새로운 해결방법도 쓰다 보니, 점점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거절하기, 전화는 무조건 수신하지 말고, 내가 되는 시간에 다시 회신하기. 회사에서는 내가 쓴 거의 모든 시간을 스프레드 시트에 쓰는 것으로 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것을 관리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한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은 '고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까지 든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로 희망찬 생각은 하지 않고, 현실의 암울한 부분을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결과 미래도 나쁘게 생각해서 결국 자기실현적 예언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가족 관계 문제에 대한 답은 내가 구입한 책 중에 어려워서 진도를 못 나가고 있던 것에서 얻기도 했다. 소설책도 아닌데, 내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고민과 해결법을 주로 밤에 쓰다 보니, 감정적으로 쓰기도 했지만, 자는 동안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다. 요 며칠은 꿈에서 하나씩 내 문제를 해결할 키워드를 얻기도 했다. 이틀 전엔 '세일즈' 였고, 어제는 '연결'이었다. 

휴대폰 앱으로 많은 습관 만들기를 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내 상황에 딱 맞는 해결방법을 찾아서 무척 기쁘다. 독자분들도 꼭 해보시길 추천해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인간관계에도 공식이 있을까?

by 로이린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일명 '아재'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대의 타 부서 팀장님과 언쟁이 펼쳐졌다.

 

“계속 같은 말만 하는 것 같아요. 도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어요.”

“나도 그래!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못 알아듣겠어!”

 

나는 분명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불통일 수가 있나 싶었다. 사회 경험을 할수록 다양한 대화를 해보면서 관계의 스킬이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부딪히는 상황이 오면 여전히 인간관계에 미숙하고 부족하기만 한 기분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각 부서의 목표가 다르다 보니 대화의 관점이 달라지고 서로의 입장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마찰로 인한 피로감으로 지칠 때가 있다.

 

직장 생활에 한창 자신감이 붙었던 대리직급 시절이었다.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게 무조건 정답이라고만 생각했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내 자존심을 위해서 부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일을 잘하는 거로 생각했던 때였다. 심지어 속으로 ‘역시 그 사람이 이상한 거였어. 내가 잘했지.’라고 생각도 했다.

 

내가 부딪힌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니 내가 느낀 기분이 당연한 거였고, 언쟁에서 지지 않은 나 자신에 자부심을 부여했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일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이번에도 부딪힌 사람은 역시나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타 부서의 팀장님이셨다. 예전의 나라면 ‘아 역시 이분은 대화가 잘 안 통해... 어떻게든 설득하고 말겠어.’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분명 나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분들과의 대화가 어렵다. 영어 대화에는 스몰톡, 오프닝 챗이 있듯이, 편지에는 서두에 날씨 등 가벼운 인사말이 있듯이 마음을 여는 작은 대화법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1분 1초가 아깝기에, 할 말만 하고 효율적으로 회의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워라밸 중시와 '시간도 돈'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요즘 젊은 세대의 업무법이었다. 여전히 마음을 열어주는 한마디가 일을 쉽게 맺기도 한다는 걸 잊었나 보다. 

 

아저씨들과 대화할 때면 도돌이표 되는 농담 따먹기가 그렇게 싫고 어색하다. 일 하면서 농담을 섞어한다는 게 영 싫었다. 저녁 식사 자리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 자리에 있기가 영 불편했다. 하지만 일이란 게 하기 싫더라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야 할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러다 생각했다. ‘아, 그분들만의 일의 방식이 있는 건데 너무 내 방식대로만 한 건 아닐까?’ 드라마에서도 보면 아저씨들과 무언가 협상할 때, 막걸리부터 사 들고 가지 않는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드리고 마음이 유연해질 때 이야기를 꺼내야, 생각했던 것보다도 일이 더 술술 풀리는걸. 대화에도 빌드업이 있다. 너스레도 떨고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도 필요하겠다 싶었다.

 

집 앞 투다리에 갔다. 아재들만 가는 곳이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손사래를 쳤을 거다.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온 아저씨들의 2차 장소. 평소라면 아재들이 많아 시끄럽고 눈길조차 주기 싫었던 그 장소가 인류애적인 마음인지, 아재들이 귀여워 보였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일상 같기도 하고, 남자들의 애환을 달래는 곳 같기도 한 그곳이 영 밉지 않았다. 투타리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아재들에게 최적화된 너스레와 인심 좋고 한껏 정겨운 아주머니들이셨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이제 뭔지 알겠다는 듯 술 한잔 걸치고 기분 좋게 문밖을 나섰다. 꼬치안주 몇 개에 소주잔 기울이는 그 나이의 운치를 비슷하게나마 배웠다. 아재들도 사람이다. 사랑받고 관심받고, 가치 있는 사람이길 원하는 존재이다. 그들의 인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인생사가 있을 터인데, 요즘 사람들과는 다르다며 너무 딴 세계사람 대하듯 했던 나를 반성했다.

 

인간관계의 공식 1.

상대방에 대한 주관적인 잣대는 잠시 접어두라.

인간관계의 공식 2.

대화에도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연애 초창기의 대화법을 생각해보라.

인간관계의 공식 3.

상대방도 가치 있는 존재임을 생각하고 대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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