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5년 후에 뭐하고 있을 것 같으세요? [풀칠 103호]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금주의 에세이 당번 아매오입니다.

여러분은 계획을 좀 세우시나요? 그 계획의 단위는 얼마나 촘촘한가요? 사거리는 어디까지 뻗어나가 있나요? 얼마나 구체적인가요?

N년 후에 뭐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면접 스터디가 아닌 곳에서 진지하게 대화 주제로 삼을 수 있을지 몰랐어요. 여러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그래서 한번 묻고 싶네요. 님은 5년 후에 뭐하고 있을 것 같으세요?

난생 처음 적금을 넣기 시작했다. 밥벌이 4년 차를 맞아 체계적으로 저축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카카오뱅크 26주 적금 같은 것들을 애용했다. 물론 여기도 ‘적금'이라는 이름이 붙긴 하지만 대부분 일 년에 못미치는 단기 상품이라 그런지 어딘가 어른스럽지 않다고 느꼈다. 학창시절 용돈 모으는 것보다 액수가 조금 늘었을 뿐 ‘당장 쓸 돈'을 모은다는 점에서 같았으니까. 내다보는 타임라인이 끽해야 올해 또는 내년 정도로 멀지 않았다. 그 용처가 여행이나 물건이 아닌, 다음으로 이사 갈 집의 보증금을 올리는 것이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가입한 상품은 세 개. 만기 타이밍은 2년, 5년, 10년으로 제각각이다. 아참. 이제 6개월이 좀 넘었으니 1년 6개월, 4년 6개월, 9년 6개월이다. 납입기간이 짧은 상품일수록 월 납입액을 높였다. 당연히 뭘 알고 그런 건 아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거다. 다행히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듯하다. 이제 통장에서 적금으로 일정액이 빠져나가는 감각에도 꽤 익숙해졌다. 하루에 1만 원씩 200일간 빠져나가는 챌린지도 다시 시작해볼까 고민할 여유가 생긴 게 증거다. 조금씩 해지해온 여러 유료 멤버십을 다시 신청해도 괜찮을 것 같고.

물론 이걸 다 모은다고 부자가 되진 않겠지. 부자가 되려면 적금을 넣는 게 아니라 복권을 사야 한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아쉽게도 지난 주엔 기회를 놓쳤다. 그럼 적금을 넣으면 뭐가 좋을까. 당연히 목돈이 생기는 게 제일 좋겠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건 지금 시점에는 모르는 일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좋은 점은 앞으로 다가올 아득한 시간과 그 안에서 꾸리는 삶을 단순히 ‘미래'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6개월, 3년, 5년, 10년으로 쪼갠 시간은 더 이상 ‘닥치지 않은 미래'가 아니다. 현재의 소유가 된다.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신규 입사자 환영회라는 명분이 있어 점심시간을 한 시간 더 쓸 수 있었다. 적당한 오디오 공백을 건너가며 서로의 신상 정보를 하나씩 뽀개던 중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개발자 L님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다양한 회사에서 여러 가지 코드를 짜는 경험을 통해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싶다고 했다. 우선 거기까지 도달하는 게 목표이며 그 다음 단계는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았다고. 디자이너 H님은 “인간의 수명은 사실 38세”라며 이후에는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직업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했다. 인간관계 리셋까지 각오하고 있는데 그건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다들 10년 쯤 뒤의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레 나도 10년 쯤 뒤를 상상하게 됐다.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고 놀고 사는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지. 나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서울 중심적이기 때문에 ‘서울이 아닌 곳'은 ‘서울이 아닌 곳'이라는 사실만으로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되는데, 나는 그 정체성을 오래도록 탐냈던 것이다. 시골쥐의 자격지심을 발판 삼아 서울에 왔지만 다시 ‘서울 아닌 곳'을 찾고 있는 아이러니. 그나마 리틀포레스트적 환상에 빠질 일은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쨌든 도시에, 그것도 꽤 큰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니까. 어쩌면 내 바람은 서울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삶의 터전에 대한 고민은 각기 다른 때에 만기되는 저축 상품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그것의 전문성 혹은 직무 확장에 대한 가능성, 연봉, 다양하게 쌓아갈 인간관계 등으로 이어졌다. 5년 뒤에 이런 곳에서 저런 일을 하려면 앞으로 3년간 여기에서 이러한 일을 하고 2년 정도는 저기에서 저러한 일을 한 다음 어쩌고 저쩌고… 막연한 상상에서 시작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따라다보니 현재 시점에서 해야 할 꽤나 현실적인 고민을 구체적으로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래는 결국 현재가 반복적으로 이어진 끝에 다다르는 곳이었다. 현재를 살아낸 자만이 미래에 당도할 자격을 얻는다. 미래는 상상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입사 면접에서 N년 후 본인의 모습이 어떨 것 같은지 묻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취직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그 질문을 받고 당장 내년에 어느 회사를 다닐지, 아니 회사를 다니고 있긴 할지도 모르겠는데 몇 년 뒤를 어떻게 아냐고 답답해 했다. 그렇다고 면접장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나중에는 ‘잘 짜여진 답'을 내놓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답에서 진정성을 느낀 면접관은 단 한 명도 없었을 듯하다. 실제로 그때의 내겐 ‘몇 년 뒤의 나'를 내다볼 의지나 필요나 능력 중 그 어느 것도 없었으니까. 백날천날 OKR 해봐야 뭐하나. 그걸 갖다 쓰기만 한다고 전부 다 구글이 되는 게 아니다. 진정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얘기할 테다.

문득 5년 전의 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때 그리던 미래의 내 모습에 현재의 내가 얼마나 다가섰을까? 혹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당시 썼던 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과론'이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성공 요소이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실패 요소라는 이야기. 그런데 그렇게 내린 결론을 통해 ‘언제나 과정 속에 사는 삶'을 다짐한 게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어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여전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지나갈지는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언제나 과정 속에 사는 삶이란 그런 거니까. 뜨거워졌다가 식었다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움이 화상으로 남고 그 상처 위에 다시 불을 피워올리는 것이니까.”

그러려고 했던 건지 그럴 수밖에 없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의 나는 현재를 잘 붙들고 있었던 듯하다. 기특하게도.

최근에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스스로가 불안하다고 토로한 적 있다.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것 아닐까. 장밋빛 미래에 눈 멀어 가시밭길을 못 보고 달려나가는 것 아닐까.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행위에 중독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가리 꽃밭, 그거 사실 내 얘기 아닐까. 그때 내 말을 들어주던 선배가 위로했다.

“스무 살의 너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모습을 아직 잃지 않은 듯해서 좋다. 현실적이지 못한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라는 말 들으니 더 그렇네. 나는 그 현실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게 너무 걱정인데. 낭만적인 게 뭐 어때. 모든 시작은 낭만에 기대는 법 아닐까. 응원해.”

현실과 낭만은 각각이 양면적이고 서로가 대비되는 듯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한쪽이 더 낫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당연히 선후관계도 없다. 그러한 비단정적인(non-assertive) 면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특징인 바, 우리는 결국 유한한 생을 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헛소리가 괜히 수백 년을 이어져 오는 게 아니다. 그러니 2년 후, 3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마음껏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계획하되 최선을 다해 누립시다. 실현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마감도비 : 미래를 조금씩 그려나가는 아매오님의 단단한 호기심이 보기 좋습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구요. 5년은커녕 1년 뒤를 고민하는 저에게 현재를 살아낸 자만이 미래에 당도할 자격을 얻는다는 말이 조금은 아프게 다가오네요. 분명 부지런히 살고 있고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직이 어그러지거나 주거 문제로 불안에 시달리게 될 때면 아직은 내가 굳세게 살아내지 못해서 그런 건가, 이런 걸 다 견뎌야 어른인 건가 싶더라구요. 그래도 아매오님의 글을 읽으니 위안이 좀 됐습니다. 30살에 시작할 수 없는 건 키즈모델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낭만, 저도 배워갑니다.

야망백수 : 저는 미래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답답합니다. 미래의 저는 신체 능력은 떨어져 있을 것이고, 돈도 못 모았을 것 같아서요. 세상도 여러모로 위태로워 보입니다. 언제까지 버텨줄지 잘 모르겠어요. 오늘이 가난하다거나 불행한 건 아니지만, 아주 얇은 얼음장 위를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저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면접 볼 때 3년 뒤엔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아매오님처럼 적당히 둘러댄 것 같지만 솔직한 심정은 ‘이런 세상에서 3년 뒤 모습을 어느 누가 알겠냐’였습니다.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부모님과 전화를 했습니다. 두 분 다 저랑 비슷한 시기에 다시 취업을 하셨어요. (두분 다 평생을 일해오셨지만, 결국엔 취업이란 걸 다시 하게 되시더라고요.) 일이 해도 해도 마음 같지도 않고 익숙해지지도 않는다고 투덜대는 제게 엄마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계획이니 루틴이니 하는 말들의 값어치가 올라간 건, 그걸 제대로 누리는 삶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파주 : “용매(회사에서 불리는 제 별명입니다)는 5년 후에 뭐하고 있을 거 같아요?” 팀회의 시간에 던져진 화두였습니다. 팀에서 얼떨결에 고유명수 같은 역할인지라 이 난제에 고민할 새도 없이 답을 해야 했는데요. 매일 불안을 안고 사는 성격과는 별개로, 사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지 않는 편이라 목구멍에서 터져나오는 대로 떠들었어요.

“한 3년 뒤에 로또 맞아서, 바다 보이는 곳에 살고 있을 거 같은데요? 이를테면 통영 같은...?” 저의 나사 빠진 답변 뒤로 열정과 포부로 가득찬 팀원들의 미래가 그려지더군요. 그날 몹시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로또에 맞겠다는 현실성 없고 나태한 목표를 내뱉었다는 것보다 나의 미래를 스스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에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아직 2026년에 무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로또 당첨의 유예 기간까지는 아직 2년! 남았습니다.

▲계획대로

송강이랑 결혼해서 송강호 낳기 VS 송강호랑 결혼해서 송강 낳기. 모르는 게 상책 VS 모르는 개랑 산책...

바야흐로 大밸런스 게임의 시대입니다. 풀칠도 대세에 한번 올라타 봤습니다. 과거로 가기 VS 미래로 가기. 풀칠 멤버들은 정확히 2:2로 선택이 갈렸습니다. 풀칠러 여러분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과거로 가실 건가요? 아니면 미래로 향하실 건가요?

과거파

미래파

파주

내가 삼*전자만 제때 샀어도.

내가 카*오만 제때 팔았어도.

야망백수

저는 그저 한번 더 그때 그 시절 그 피시방을 가고 싶을 뿐입니다.

마감도비

“지나고 나니 별 거 아니더라.” 미래로 가는 게 수명 연장에 더 도움이 된다. 과거 별 거 없다. 추억 보정일 뿐. 과거의 연봉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아매오

조선시대 양반보다 현대 서민이 누리는 삶의 수준이 압도적으로 좋습니다. 현재의 재벌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삶의 수준을 누리는 서민이 될 정도로 미래로 저는 가보겠습니다.

풀칠러A

제 소비패턴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어요! 많이 고친다고 고쳤는데도 여전히 쓰는 게 더 많은 것 같네요.. 낭비벽은 심리적 요인이 큰 것 같아요. 반성합니다 ㅜㅜ

파주

저는 최근에 <소비 단식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글이 무척이나 잘 읽히고 위트 있어서 술술 넘어갑니다. 이걸 읽고 소비를 줄였냐고요? 작가님은 '카드명세서를 받아보고 매달 놀라시는 분'에게 이 글을 추천한다고 하셨는데요. 이제 카드명세서에 내성이 생긴 제가 무서울 뿐입니다.

풀칠러B

저는 요새 거의 먹을 거에 돈을 소비하고 있어요..
뭐 그렇다고 엄청 잘 챙겨 먹는건 또 아니지만 어쨌든 먹는게 남는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믿었더니 남는건 살뿐이에요. 참나 그리고 점점 경조사가 많아져 위로와 축하의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어요.

마감도비

저도 비슷합니다. 야근 후 야식이 사실상 하루의 루틴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걸 보니 이것이 중독...?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즐거움마저 없으면 고된 하루를 어떻게 버티나 싶기도 해요. 좀 더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 같이 찾아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