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를 보냅니다. 99-2호를 보낼까 하다가, 일상을 흐르게 하는 힘 또한 투쟁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호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영감과 인용의 출처를 밝히는 각주는 한 권의 책이 빚지고 있는 수많은 책에 대한 헌사이자 다른 책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다리입니다. 그런데 책에 넣을 수 없었던 각주가 편집부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마티의 「각주*」는 미처 책에 쓰지 못한 각주를 더하는 편지입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편집자가 들춰본 많은 책, 보고 들은 음악과 영상을 하나씩 풀어놓으려 합니다. 마티 편집부가 엮은 각주의 그물로 건져 올린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이런 인사와 함께 2020년 7월 30일에 각주* 첫 호를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월 9일, 어느새 100번째 편지를 작성합니다. 그간 함께해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200, 300, 400호까지 계속 읽고 나눠주세요. 총 108개(호외 8개 포함)의 편지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반추하며 인상적인 각주* 몇 편을 소개해볼게요.

가장 많은 구독자를 끌어들인 편지 :


[73호*] Q & A, 답을 보세요


가장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한 편지 :


[71호*] 여행 가방엔 무엇?


놀라운 소식이 담긴 편지 :


[51호*] (스포 방지를 위한 제목 비공개)


다시 봐도 귀여운 편지 :


[34호*] 2021 마티의 별점


가장 길고 알찬 편지 :


[62호*] 판권면 숫자의 비밀


비밀스러운 정보가 담긴 편지 :


[37호*] 구독자 분들만 모십니다


멈칫멈칫이 둠칫둠칫이 될 때까지

: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 편집 후기

🌱 죽순


멈칫.


장애물.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 원서에 ‘장애물’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한국어판에서는 ‘방해물’로 바꾸었습니다. ‘장애’=‘거치적거리다’로 뜻풀이를 하는 단어이니, 차별 없는 표현을 제안하는 책에서는 더더욱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멈칫.


지방.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에 ‘지방’이라는 단어는 설문조사 응답자의 근무지를 칭하며 쓰였습니다. 수도권/지방으로 나뉘어 있더라고요. 음, 수도권/지역, 수도권/비수도권을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지방’은 ‘서울 이외의 지역’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방대’가 ‘지잡대’로 비하되는 것을 사회가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니, ‘지방’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불편합니다. 이 불편함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택한 것 또한 수도권 중심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국내서였다면 지명을 그대로 표기하는 등 다른 선택을 저자와 논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편집일기”에 써둡니다.


멈칫.


물고기.

끝내 바꾸지 못한 단어는 물고기입니다.

책에 언급된 사례를 우선 잘 따라와주세요. 오키나와 방언의 ‘스쿠’는 농어류의 잡어를 뜻합니다. ‘미즈아게’는 ‘어획하다’라는 뜻이고요. 신문에 “스쿠 미즈아게”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일본어로 ‘학생 수영복’을 뜻하는 ‘스쿠미즈’인 줄 알고 클릭하는 독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은 책에서 확인하세요. (할말하않😡)


여기에 ‘물고기’라는 표현이 등장해요.

동물해방운동 진영에서는 인간의 먹거리로 전제된 표현인 ‘물고기’를 ‘물살이’(물에 사는 생물)로 바꾸어 표현하자고 수년 전부터 제안해왔습니다. 이미 이 제안을 알고 있었고 그 맥락에 동의하는데도 선뜻 ‘물살이’를 쓰지 못하고/않고 있습니다. 앎과 삶이 일치하려면 실천이 필수인데, 이번엔 하지 못했고/않았어요. 다음엔 꼭 해보겠습니다. 제 안의 벽을 넘어보겠습니다.


물론, 표현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맥락과 역사 위에서 고민해야 할 일이죠. 저자, 역자, 편집자, 그리고 독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


‘윤락’이 ‘성매매’로 바뀌기까지, ‘호주’(戶主)가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요. 얼마나 거센 투쟁을 거쳤나요.

단지 표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성매매라는 표현은 성 구매자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호주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 ‘가녀장’이라는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몸짓도 바뀌었습니다.

멈칫멈칫에서 둠칫둠칫으로.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은 단지 표현의 문제를 건드리는 책이 아닙니다. 더 평등하고, 더 안전감을 주며, 더 포용적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이드북인 것이죠.


더 평등하고, 더 안전감을 주며, 더 포용적인 세계를 위해 바꾸고 싶은 표현이 있으신가요? 대안이 없어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바꾸고 싶은 표현을 제보해주세요.

건축잡지 『미로1: 참조와 인용』 면지에 ‘무’는 대체 왜?
각주* 99호에서 구독자님들의 의견을 받았는데, 이제야 공유합니다. 30여 개의 의견이 들어왔는데요, 그중 몇 개만 소개합니다. 이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미로』 담당 디자이너가 다음 호에도 수수께끼 같은 면지 이미지를 준비해보겠다고 화답(?)해 왔습니다.

☝️ 없을 무. 폐간은 없다는 각오.


☝️ 정답. 정림-워크룸-마티의 ㅁㅁㅁ. 무 3개


☝️ 안녕하세용. 저는 무를 보자마자 ‘radical’이 딱 떠올랐어용! radish와 radical은 같은 ‘뿌리’(radix)에서 파생된 단어잖아용. 따라서 ‘근본적, 기본적인 것’을 뜻하는 무 삼형제가 아닐까용?!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급진적일 수 있으니까용(?). 궁금하니까 다음번에 꼭 알려주세용! ^3^ (독자 엽서는 처음이라 쑥쓰러워서 용용 거렸어용 죄송해용 ㅠ)


☝️ 무 세 개는 발음상 비슷한 무세계로 받아들여지네요. 미로는 세계가 아닌 무세계다.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 무의 길이가 다 다르더라고요. 건축물의 길이(크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단층과 고층 등 여러 형태의 건물이 있는데요. 『미로』에서 다루는 건축 또한 크기와 형태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건축물을 다루겠다는 의미에서 저런 무들을 놔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기록을 남기면 남들이 자신의 창작을 베낀다고 생각해 건축 모형도 순무로 만들고 나중에 먹어치웠습니다. "무"에서 유를 거둬들이는 순수창작인을 이스터에그처럼 넣은 것은 아닐는지요.^^


☝️ 건축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무는 대표적으로 땅에 심어진 채소입니다. 건축 또한 땅에 토대를 깊숙이 심은 후 다음 공정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땅이라는 접점에서 무와 건축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에서 먹는 무는 가을이 제철이지만 사실 무는 종류에 따라 제철이 다릅니다. 미로의 무 세 가지는 다 다른 종류인 걸로 봐서 제철이 다른 무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무 세 개는 잡지 미로가 여러 계절을 아우르겠다는 뜻입니다.


☝️ 무는 영어로 래디시고, 어원의 뜻을 풀어보면 ‘빠르게 자라는 작물’로 실제 인간이 재배하는 작물 중 버섯류를 제외하고는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잡지. 곧 초가속 잡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종에 따라 생긴 것도 각각 다른 무를 깍두기로 먹거나 말려서 먹거나 절여 먹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듯이 독자의 다양한 취향대로 마티의 책을 섭취하시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 무는 가을 무가 참 맛있으니 그림만으로도 입맛을 다시게 해주려는 미로의 배려!


☝️ 창간호는 첫 번째를 의미합니다. 숫자로는 '1'이죠. 우리는 기쁨을 표현할 때 '!'를 붙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왼쪽의 긴 무는 '1', 오른쪽의 무 둘은 '!'입니다. 합쳐서 '1!' 창간호의 기쁨이 삽화에 듬뿍 숨어 있네요.

무가 세 개입니다. 한 무는 편집자, 한 무는 디자이너, 한 무는 마케터입니다. 네, 무 셋은 마티 출판사 전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왜 무였어야 할까요? 무를 국물에 넣으면 아주 개운하고 시원한 맛이 납니다. 네, 그렇습니다! 『미로』를 출간하여 마티 출판사 구성원 모두의 마음이 뭇국처럼 시원하고 개운한 상태입니다!

창간 축하드려요☆


☝️ 무의 단면이 미로 같기 때문이죠. 가을, 겨울에 나오는 신선한 무, 특히 수박무처럼 색이 독특한 무를 잘라보면 동글동글 미로 그림 같아요 ㅎㅎ


☝️ 무 농사는 토양, 날씨, 농부의 행동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자라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런 무 농사처럼 건축도 건축가와 건축주가 누군지에 따라, 건축하는 곳의 땅과 날씨에 따라 다른 건물이 세워집니다. 제일 작은 무는 아직 뽑히지 않았고 덜 자란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보기에 이 무처럼 아직 뽑히지 않은, 주목받지 않은(않았던) 건축/건축가를 발견하는 것이 미로의 역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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