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불 지난 뒤에 / 흐르는 물로 만나자.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여덟 번째 섬 (미리보기)
안녕하세요, 영근입니다. 시앗님은 외로움이란 감정을 잘 느끼시나요? 사실 이 감정은 빈도보다 깊이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자주 느껴지는 여러 날보다 깊숙이 느껴지는 단 하루가 마음을 세게 흔들어 놓으니까요. 이번 주는 외로움과 위로에 대한 시입니다.  
외바위
내가 물이 되어
그대의 단단한 외로움
어찌 위로할거나

파도가 되면은
처얼, 썩 처얼─ 썩
매서운 연민이 되면은
나도 부서지고
그대 또한 부서지니라

안개가 되면은
해도 구름도 모르게
외로움 가리려 하면은
가끔 쉬어가던 외딴 물새
더는 오지 못하리라

눈이 되면은
아무 일 없는 듯
하얗게 덮으려 하면은
마음 끝 절박한 절벽에
겨울바람이 시리니라

아, 무엇이 되려 말고
내 그대로 가면은
물이 물답게
비가 되어 가면은

내리는 침묵으로
한 방울 한 방울
그대의 굴곡진 외로움
따라 흘러 가면은

내가 물이 되어
아아, 마침내
그대의 눈에 다다른
눈물이 되면은!

외로운 바위여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여
내가 물이 되어
눈물이 되어 그대와 가리라.
되돌아보며
외사람
울릉도의 해안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날은 비바람이 불고, 풍랑이 거세고, 물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동해 바다를 무심히 쳐다보는데, 높지 않은 바위 하나가 육지 가까이에 불현듯 솟아 있었다.  
누군가 이름 지어 주지도, 관광 지도에 표시되지도 않은 바위였다. 그 바위가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나는 문득 그 바위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이, 금세 그 바위와 멀어지고 말았다.
밤새도록 그 바위가 잊히지 않았다. 여전히 외로울 바위를 위해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파도처럼 다그쳐 보기도, 안개처럼 가려 보기도, 눈처럼 덮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외로움을 진정 달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바위를 생각하며, 그저 함께 울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이 굳이 되려 할 필요 없이, 이미 지니고 있는 눈물을 함께 흘려 주어야겠다고. 그날 나는 오랜만에 평온한 잠에 들었다. 마치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처럼.  
시인의 Pick
물이 물답게
울릉도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어요. 전역을 앞둔 기쁨, 사회로 돌아가는 불안함, 새로운 시작의 설렘, 청춘의 한 시절이 끝나는 헛헛함... 여러 감정이 뒤섞여 스스로를 주체하기가 힘든 시기였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죠. 외롭다고 느껴졌어요.
외바위*가 있던 해안도로는 군생활 동안 수십 번은 지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서야 눈에 콕 박힌 건, 그 바위에 무의식적으로 제 감정을 투영했었나 봐요. 시를 쓸 순간이 찾아왔다고 느꼈습니다. 시를 쓰다 보면, 제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해 볼 수 있으니까요.
물의 여러 속성을 이용해 시상을 전개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날 제가 본 풍경에는 비, 안개, 파도 등 물이 아주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물의 다양한 상태를 하나씩 호명하며 제가 그 존재가 되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길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저, 저 스스로를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외로워하는 나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 내가 아닌 무엇이 되려 말고, 나를 나답게 받아들이는 것. 물이 물답게, 가장 물다운 상태인 비가 되어 바위의 굴곡 그대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듯이. 시를 다 써내려 갔을 때쯤, 제 외로움은 꽤 많이 증발되어 있었습니다.
전역을 앞두던 그때의 저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땐 돈만 벌면 많은 걱정들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삶의 외로움은 형태만 달라져 불쑥 찾아오더군요. 그럴 때면 저는 이 시를 찾아갑니다.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한결 편해지곤 합니다.
* 울릉도에 가면 : 삼선암
울릉도에는 이름 붙여진 바위들이 여럿 있습니다. 촛대 바위, 코끼리 바위, 거북 바위 등 이름 그대로 그 모양을 닮은 기암들도 있고요. 가장 유명한 '삼선암'에는 세 명의 선녀를 둘러싼 설화가 있습니다. 꽤 애절하고(?) 그럴듯하니 한번 읽어 보세요!  
오늘의 삽화
제 마음속에 사진처럼 찍혀 있는 실제 외바위의 모습과 아주 닮아 있습니다. 외바위의 질감과 파도의 움직임은 시의 감성과도 아주 닮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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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영근(@poetic_islands)
그린이 너와길(@youand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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