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근입니다. 시앗님은 외로움이란 감정을 잘 느끼시나요? 사실 이 감정은 빈도보다 깊이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자주 느껴지는 여러 날보다 깊숙이 느껴지는 단 하루가 마음을 세게 흔들어 놓으니까요. 이번 주는 외로움과 위로에 대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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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이 되어
그대의 단단한 외로움
어찌 위로할거나
파도가 되면은
처얼, 썩 처얼─ 썩
매서운 연민이 되면은
나도 부서지고
그대 또한 부서지니라
안개가 되면은
해도 구름도 모르게
외로움 가리려 하면은
가끔 쉬어가던 외딴 물새
더는 오지 못하리라
눈이 되면은
아무 일 없는 듯
하얗게 덮으려 하면은
마음 끝 절박한 절벽에
겨울바람이 시리니라
아, 무엇이 되려 말고
내 그대로 가면은
물이 물답게
비가 되어 가면은
내리는 침묵으로
한 방울 한 방울
그대의 굴곡진 외로움
따라 흘러 가면은
내가 물이 되어
아아, 마침내
그대의 눈에 다다른
눈물이 되면은!
외로운 바위여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여
내가 물이 되어
눈물이 되어 그대와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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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해안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날은 비바람이 불고, 풍랑이 거세고, 물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동해 바다를 무심히 쳐다보는데, 높지 않은 바위 하나가 육지 가까이에 불현듯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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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름 지어 주지도, 관광 지도에 표시되지도 않은 바위였다. 그 바위가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나는 문득 그 바위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이, 금세 그 바위와 멀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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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그 바위가 잊히지 않았다. 여전히 외로울 바위를 위해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파도처럼 다그쳐 보기도, 안개처럼 가려 보기도, 눈처럼 덮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외로움을 진정 달래지 못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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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그 바위를 생각하며, 그저 함께 울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이 굳이 되려 할 필요 없이, 이미 지니고 있는 눈물을 함께 흘려 주어야겠다고. 그날 나는 오랜만에 평온한 잠에 들었다. 마치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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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어요. 전역을 앞둔 기쁨, 사회로 돌아가는 불안함, 새로운 시작의 설렘, 청춘의 한 시절이 끝나는 헛헛함... 여러 감정이 뒤섞여 스스로를 주체하기가 힘든 시기였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죠. 외롭다고 느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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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바위*가 있던 해안도로는 군생활 동안 수십 번은 지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서야 눈에 콕 박힌 건, 그 바위에 무의식적으로 제 감정을 투영했었나 봐요. 시를 쓸 순간이 찾아왔다고 느꼈습니다. 시를 쓰다 보면, 제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해 볼 수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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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여러 속성을 이용해 시상을 전개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날 제가 본 풍경에는 비, 안개, 파도 등 물이 아주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물의 다양한 상태를 하나씩 호명하며 제가 그 존재가 되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길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저, 저 스스로를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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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하는 나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 내가 아닌 무엇이 되려 말고, 나를 나답게 받아들이는 것. 물이 물답게, 가장 물다운 상태인 비가 되어 바위의 굴곡 그대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듯이. 시를 다 써내려 갔을 때쯤, 제 외로움은 꽤 많이 증발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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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앞두던 그때의 저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땐 돈만 벌면 많은 걱정들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삶의 외로움은 형태만 달라져 불쑥 찾아오더군요. 그럴 때면 저는 이 시를 찾아갑니다.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한결 편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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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는 이름 붙여진 바위들이 여럿 있습니다. 촛대 바위, 코끼리 바위, 거북 바위 등 이름 그대로 그 모양을 닮은 기암들도 있고요. 가장 유명한 '삼선암'에는 세 명의 선녀를 둘러싼 설화가 있습니다. 꽤 애절하고(?) 그럴듯하니 한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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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속에 사진처럼 찍혀 있는 실제 외바위의 모습과 아주 닮아 있습니다. 외바위의 질감과 파도의 움직임은 시의 감성과도 아주 닮아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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