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은 이번 깐부 회동에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의 인연을 강조했어. 물론 의례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젠슨 황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런 인연을 쉬이 여기는 건 아닌 게 확실해 보여.

엔비디아가 창업되던 1990년대 초로 시곗바늘을 돌려볼게. 1993년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 그리고 젠슨 황까지 이 3명의 공돌이가 기업 하나를 만들어. 자신들의 프로젝트 명인 New Version의 NV와 라틴어로 질투라는 뜻을 가진 Invidia를 합친 Nvidia라는 이름으로 말이지.

게임 매니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던 세 사람은 더 뛰어난 그래픽으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그래픽 전용 칩을 개발하기로 의기투합해. 엔비디아는 3D 모델링에 사각형 폴리곤을 채택해 칩 설계를 진행했지. 그리고 1995년 엔비디아 최초의 그래픽 칩셋, NV1을 출시하게 돼. 하지만 결과는 폭망이었어. 가격은 비쌌지만 그것에 비해 성능이 특출나지 않아서 판매량이 형편 없었거든.

이때 한줄기 빛이 내려오니 게임제작사 세가의 미국지사가 엔비디아에 흥미를 보였다는 거였어. 미국 세가와 그래픽 칩 계약을 따낸 엔비디아는 차세대 그래픽 칩셋 NV2 개발에 나서게 돼.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게이밍 그래픽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해. NV1이 출시되던 해에 빌 게이츠는 게임 그래픽을 처리할 Direct X를 발표했고, 이듬해엔 3차원 그래픽 렌더링에 특화된 Direct 3D를 출시했거든.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엔비디아와는 달리 삼각형 폴리곤을 선택했다는 거야. 그리고 이게 업계의 대세가 되어버리지.

이렇게 되다보니 NV2는 개발을 완료해도 의미가 없어져버리자, 젠슨 황은 미국 세가 CEO였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에게 이렇게 읍소를 하게 돼. "우리는 계약을 마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계약 대금은 전액 지급해 주십시요. 안 그러면 우리 회사는 망합니다"라고 말이야.

당당함에 반한 건지, 엔비디아의 잠재력을 믿은 건지 세가는 투자금으로 계약 대금 500만 달러를 제공해. 이 돈으로 엔비디아는 기사회생해서 그 다음 칩인 NV3를 만드는데 이게 바로 대박이 난 RIVA 128이었어. 이후에도 연이어 대박을 낸 엔비디아는 1999년 1월에 당당히 상장에 성공했고, 지금은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오르게 된 거야.

이 때의 인연을 젠슨 황은 잊지 않았어. 때는 2017년, 이리마지리 쇼이치로가 젠슨 황에게 뜬금없이 부탁 하나를 해. 일본 재계 리더 행사가 하나 있는데, 혹시 가능하면 엔비디아 관계자 한 명 와서 강연해줄 수 없냐는 거였지.

쇼이치로는 큰 기대 없이 메일을 보냈지만 그 다음 날 바로 젠슨 황으로부터 답장을 받았어.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라는 답장과 함께 젠슨 황은 직원이 아닌 본인이 직접 행사에 참여해 연사로 강연을 진행했어.

쇼이치로 뿐 아니라 세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여전한 젠슨 황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30주년 기념 영상에도 깜짝 등장하기도 했지.

이런 '따거'적 성격을 갖고 있는 젠슨 황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어. 엔비디아가 상장하기 2달 전에 게임 하나가 출시되는데, 바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였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퇴직자들이 차렸던 PC방이 우후죽순 생겼고 스타가 대유행을 하면서 PC와 그래픽카드 수요가 크게 늘어났어. 바로 대한민국 PC방 컴퓨터 속 그래픽 카드가 엔비디아의 첫 시장이었어. 젠슨 황은 당시 직접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 영업을 뛸 정도였고.

젠슨 황은 이 인연을 잊지 않고 있어. 그래서 엔비디아에서는 마치 국뽕 채널에서 올릴법한 대한민국 헌정 영상을 올리기도 했지.

물론 한국과의 인연 때문에 GPU 26만 장을 선물한 건 아닐 거야. 기업가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를 할까🤣 일단 당장 26만 장의 GPU를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겠지? 적게 잡아도 최신 GPU가 장당 5,000만 원인데 그냥 단순 계산해도 13조가 나와.

엔비디아의 전체 매출에 비하면 아주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이 금액이 불투명한 중국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엔비디아의 국가별 매출 현황을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미국이 많아. 하지만 중국도 일부 있지. 작년에 번 1,300억 달러 가운데 171억 달러, 그러니까 약 25조 원은 중국 시장을 통해 벌어들였어.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 AI 경쟁에 나서고 관련 칩이나 모델 수출에 제동을 건 상태라 엔비디아에게 중국 시장은 불확실성이 커. 그런데 이번 26만 장 건으로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된 셈이야.

하지만 그것보다도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을지 몰라. 엔비디아가 이번 거래로 얻을 수 있는, 바로 대한민국의 제조 데이터가 주인공이야.

현재 AI는 단순히 챗봇을 넘어서 형태가 있는 피지컬 AI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어. 컴퓨터 안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로봇 등 물리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거지. 이미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는 AI를 접목해서 효율을 개선하고, 비용 절감을 이뤄내고 있기도 해.

엔비디아는 앞으로 새롭게 펼져질 시장에서 경쟁력을 크게 늘리고 싶은 마음이 커. 단순히 GPU만 파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영역 모두 다 먹고 싶은 마음이 엄청난 거지.

APEC이 끝나고 미국에서 진행된 엔비디아의 개발자 컨퍼런스 GTC의 모습이야. 엔비디아는 GPU같은 하드웨어와 인프라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과 피지컬 AI 영역에서 활용될 월드 모델도 제공할 계획을 갖고 있어. 

이렇게 점점 더 확장해 나갈 산업 AI에서 엔비디아가 가장 확보해야 하는 핵심 요소는 여전히 '데이터'야. 양질의 데이터를 쌓고, 그걸 바탕으로 모델에 학습시켜야만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산업 영역에서 활용할 모델에 쓸 데이터는 인터넷에 없다는 거야. 기존 챗봇에 사용된 모델들의 데이터인 언어, 이미지, 영상은 웹에서 긁어오면 해결됐어. 하지만 산업 영역, 특히 제조 데이터는 기업들만이 갖고 있지. 각각의 생산라인에서 생성되는 온도와 압력은 어떤지 기계의 상태에 따라 제품 품질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다양한 제조 데이터는 제조업체의 것이야.

제조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는 매우 좋은 파트너인 거야. 특히나 우리나라는 로봇이 산업 곳곳에 자리잡은 이미 자동화된 환경이라는 강점도 있어.

국제로봇연맹에서 발표한 자료인데, 한국의 로봇 밀도는 압도적 1위야. 직원 만 명당 로봇 1,012대로 전 세계 평균인 162대와 비교하면 6배가 넘어. 이런 대한민국 환경에 엔비디아 플랫폼이 얹어진다면? 생산라인이 순식간에 AI 팩토리로 전환될 수 있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제조 데이터들은 엔비디아의 월드 모델 학습과 검증에 사용될 수 있는 거야.

특히나 이번에 협약을 맺은 삼성, SK, 현대차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구하기 힘든 고품질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들이야. 삼성, SK의 반도체 공정은 3나노, 2나노미터 단위에서 이뤄지고 있고, 현대차의 데이터에는 자동차 생산 공정뿐 아니라 자율주행 데이터와 로봇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어.

이렇게 양질의 데이터로 학습시켜 고품질 모델을 만들게 되면 엔비디아는 앞서 살펴본 그래프에서 우리나라 뒤로 있는 싱가포르, 독일, 일본, 스웨덴 등 제조업 강국들을 상대로 세일즈에 나설 수도 있을 테고.

물론 3위에 위치한 중국이 압도적 제조업 강국이지만 지금의 통상 갈등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끼어들 틈은 없을 거야. 게다가 이미 중국은 자체적으로 AI 소프트웨어와 제조업을 결합해 나가고 있어. 바짝 뒤에 쫓아오는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에서도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의 데이터는 젠슨 황에게 매우 필요한 상황인 거지.

참고로 제조 데이터에 대한 관심은 엔비디아 뿐만이 아니야. 올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팩토리 사업에 구글과 AWS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무상으로 클라우드를 제공해주겠다는 언론 보도가 있기도 했거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그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한국의 제조 데이터를 호시탐탐 눈독 들이고 있는 거지. 그래서 우리의 소중한 제조 데이터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야.

여러가지 판단을 거쳐서 어쨌든 우리나라에는 곧 26만 장의 GPU가 들어오게 돼. 이제 공은 우리에게로 넘겨졌지. 하지만 준비하고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아.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 중 하나가 바로 전력 문제야. 최대 전력 소비량이 2,700W로 알려진 GB200(블랙웰 GPU) 26만 장을 돌린다고 가정해보면 702MW가 나오고, 여기에 냉각 등에 쓰이는 전력까지 추가하면 800MW까지 늘어날 수 있어. 보통 원전 1기의 발전 용량이 1,000MW니까 이거 우리가 제대로 돌릴 수 있겠냐는 얘기가 나오는 거야.

당장 서울대와 숭실대에서 AI 데이터센터 지으려 했는데 변전소 설비 부족으로 못했거든. 필요한 전력은 어디서 만들 것이며, 또 생산한 전력은 어떻게 끌고 올 건지 풀어야 할 게 많지. 또 다른 골칫거리 중 하나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패턴이 기존의 데이터센터와는 아예 다르다는 거야.

기존의 데이터센터에선 다양한 워크로드를 동시에 처리해. 특정 회사의 데이터베이스 처리도 하고, 또 개인 이용자가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이용하면 처리해주는 식으로 말이지. 수많은 업무가 쏟아지지만 다양한 부하가 합쳐지다보니 전력 패턴을 봤을 때 왼쪽 그림처럼 평탄하게 나타나.

반면 AI 데이터센터는 달라. AI 모델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GPU들은 일부 데이터를 받아서 학습을 진행하게 돼. 이 학습 단계에서 GPU들은 전력을 미친듯이 사용하게 되고, 전체 전력 소비량이 크게 늘어나. 하지만 중간 중간 학습 결과물을 합치고 다시 나누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GPU는 필수적으로 대기해야 해. 이 때엔 전력 사용량이 급감하고. 이런 널뛰기가 1초 사이에도 몇 번씩 발생할 수 있어서 패턴의 폭이 오른쪽 그림처럼 크게 나타나.

즉 전력 인프라도 인프라인데, 갖춘 뒤에도 데이터센터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 역시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거야.

GPU도 잘 들여오고,전력 문제도 해결하더라도 이걸 돌릴 사람이 없다면 말짱 꽝이겠지? 해외로 유출되는 이공계 인재 문제 역시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 지점 중 하나야.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 이공계 인력의 유출 상황을 그래프로 그려봤어.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해외로 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이공계 인재들조차도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변한 경우가 42.9%나 될 정도라 유출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어.

엔비디아의 GPU 26만 장 공급은 단순한 거래가 아닌 우리나라의 AI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선택일 수 있어. 젠슨 황은 한국과의 오랜 인연, 또 K-제조업의 고품질 데이터를 얻고 우리나라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확보했지.

하지만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야. 전력 인프라, 전력망 안정화, 그리고 인재 유출 방지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어. 우리나라가 AI G3로 도약할지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 산적한 문제들을 잘 푸는지에 달려 있을 거고. 오늘 준비한 편지는 여기까지야.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Holidays Are Coming

벌써 11월이야. 빠른 곳은 지금부터 슬슬 연말 분위기로 꾸미기 시작하더라고. 코카콜라도 연말 앞두고 광고를 공개했는데, 이번 광고가 AI를 활용해서 좀 말이 많아. 작년에 이어 이번이 벌써 두 번째 AI 광고인데, 일부에선 광고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어색하고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의견들도 있어. 구독자는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