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 :여전히 열여섯 번째 원진메일 2021. 08. 05 희망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 - 악뮤의 새 앨범이 나왔다. 즐거울 락(樂), 아이 동(童)을 쓰는 악동뮤지션으로 잘 알려졌지만, 본인들은 이제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악뮤로 칭해지길 원한다는 인터뷰를 봤다. 악뮤의 이번 앨범을 가히 명반이라, 작사가 이찬혁을 가히 천재라 칭하겠다. 그의 안에 있는 지디를 몇 번이고 못 본 체 할 수 있다.
특히, 가수 자이언티가 함께 한 곡 ‘BENCH(벤치)’를 3일 동안 50번이나 들었다. 어플을 통해 재생횟수를 확인하니 49회길래, 들어간 김에 한 번 더 들었다.
가사를 잠시 옮겨 보겠다.
“가끔은 벤치 따위에 누워 하루만 잠들었다가 깨면 모든 것이 내게 사라진 채로 거리를 걷고 싶어. 제일 비싸고 편한 수트를 사 입고 천장 없는 내 집을 누비며 나무와 꽃이 내 친구 중 전부라면, 난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을 거야.”
“제일 빳빳한 가죽 재킷을 사 입고 건들 건들 거리며 춤추며 철새처럼 이별하는 법을 안다면, 난 더 이상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난 평활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이른 아침 벤치 위에서 깨어나 모든 걸 잊고 있어”
그리고 악뮤는 노래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벤치에서 자고 일어나는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어젯밤에 신발에 묻은 낯선 이의 가래침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 어젯밤 내 모든 걸 훔친 강도의 뒤를 쫓지 않는 사람.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 수도 있는 사람. 평소에 신경도 안 쓰이다가 그렇게 사라져버리면 뉴스에서라도 나올 것 같은 그런 사람.”
벤치에서 자고 일어나는 그 사람을 대단한 자유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내가 오독한 걸까. 의아했다. 나는 첫 소절을 듣자마자 노숙인을 떠올렸다.
몹시 더운 가을이었다. 어느 날의 가을볕은 여름보다 더 뜨겁기도 하다. 부지런히 일어난 아침, 큰 창으로 볕이 양껏 들어오는 가게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햇빛을 머금어 통통히 부른 마음을 안고 높은 하늘 아래를 걸었다. 서울역을 지날 때였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일어나봐요.”
등에 119가 크게 쓰여있는 조끼를 입은 소방관이 바닥에 누워있는 한 사람을 툭툭 치고 있었다. 발이 까맣게 굳어 있었고 파리 몇 마리가 날렸다. 멀리서 본 나는 직감했다. 내가 본 게 죽음일 수 있다는 것을. 서울 한복판에서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산책하던 길에, 내가 본 게 죽음일 수 있다는 것을.
아무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고, 조금 멀어지자 아무렇지 않게 친구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금 본 일에 대해 무어라 말해야 할지 생각해내지 못해, 겉 도는 이야기만 하며 우린 계속 걸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건,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옆에 앉아있던 다른 노숙인의 표정이었다. 너무나 덤덤했다. 빳빳하게 굳어버린 이의 마지막과 자신의 마지막은 다를 거라는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쯤 되니 가사에서 말하는 자유가 허무로 읽히기도 한다.
그날 이후로 난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듯 보이는 그들이 끝내 삶을 놓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 그들을 벤치에라도 살게 할까. 그걸 찾으면 세상 모든 삶의 이유가 설명될 것 같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논문 찾기밖에 없었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한 글은 없었지만, 여러 논문을 읽은 결과, 너무나 당연한 답은 ‘희망’이었다. 오늘 벤치에서 자고 깨도 내일은 다를 거란 희망이 그들 안에 있다고 했다. 벤치 위에서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듯 보이는 몇몇의 그들은 사실 마지막 하나를 지키고 있는 거라고. 이 당연한 답을 찾고 난 놀랐다. 내 고민이 풀리지 않던 이유는 그들에게 희망 없음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었다. 희망을 그렇게 외치고 쓰면서도 벤치 위의 삶에서 희망을 읽어내지 못했다. 나의 이중성이 부끄럽다.
그럴 듯한 글을 쓰지만, 세상을 늘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은 아님을 고백한다. 때로는 오독 어쩌면 왜곡할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부끄러운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잘못을 갚겠다. 그게 이 글의 이유일지도. 어쩌면 이 마저 변명일지도.
어쨌거나 작사가 이찬혁은 벤치 위의 삶에서 허무일지라도 자유와 희망을 보았고, 그 노래는 좋다.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시길
원진이가
추신. 오늘 제 글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제게 전해주세요.
정원진 wonjin_313@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