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 내가 작년 지인들과 월간 독서모임을 만들었는데 지난 주가 벌써 6번째였더라고! 처음엔 유명한 독서 커뮤니티를 알아보다가 책을 읽는데에 월 9만원씩 내야한다니 어쩐지 아까워서 그럴바엔 내가 만들자 싶었어. (물론 돈을 내는 곳엔 체계적으로 깊은 담론을 나눌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가 계셔🤗) 그런데 나름의 기획안을 구상하다 보니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려면 나도 무료로 진행하긴 어렵겠다라고. 이것저것 고민하다보니 이럴거면 내가 돈을 내고 가는게 낫지 않나 싶은거야. 늘 완벽한 상태로 론칭하고 싶은 직업병이 있어서 이러다간 정작 책은 못읽고 시간만 흐르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과감하게 일단 읽는 습관을 들이자는 가벼운 목표 하나만 세우고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친목모임을 만들었어. 일단 만들었더니 지금까지 최소 6권을 읽은거잖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 한정된 시간 안에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 따져보느라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요즘 문득 이 독서모임처럼 뭐든 일단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 혹시 생각만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해보자! 생각만 많으면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본즈 앤 올

<웡카>와 <듄: 파트2>가 딱 한 달 간격으로 개봉한데다 티모시 샬라메의 내한까지 이어지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그의 이름을 자주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아직 <듄: 파트2>의 용아맥 표를 구하지 못해 CGV앱만 몇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는 상태야.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개인적으로 티모시 샬라메가 아닌 다른 배우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영화를 뽑아봤어. 카니발리즘(동족포식)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의 로드 무비이자 이윽고 로맨스 무비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본즈 앤 올>이야. 티모시 샬라메가 본인의 필모그래피 중 제작자로 참여한 유일한 영화야.


📺볼 수 있는 곳: 애플tv, 네이버 시리즈온, 유튜브(단건결제)

#We Are Who We Are

‘매런’(테일러 러셀)은 인간을 먹는 식성 때문에 함부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은 적도, 한 곳에 오래 머물러 본 적도 없어. 그녀 옆의 유일한 사람이었던 아빠도 “널 사랑하진 못했어도 미워하진 않았다”는 말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남기고 사라졌어. 그래서 출생신고서에 적혀있는,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엄마의 고향을 향해 무작정 떠나게 돼. 이제 막 18살이 된 매런은 길 위에서 자신과 같은 ‘이터(eater)’를 만나 이터의 냄새를 맡는 법을 배우고, 인간을 먹어야 하는 이터로 살고, 언제부터 이터였는지 뿌리를 찾아다녀. 그 옆에는 매런과 같은 이터 ‘리’(티모시 샬라메)가 있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틴에이져 성장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위 아 후 위 아], 고전 호러 리메이크 영화 <서스페리아> 다음에 위치한 영화로서 <본즈 앤 올>이 사랑과 혼돈 이후의 성장, 그리고 호러 요소라는 전작과의 교집합을 이루는 건 당연한 결과일까. 서로에게 같은 냄새를 맡은 매런과 리가 미국 중서부를 횡단하는 여정의 본질은 말 그대로 ‘위 아 후 위 아’(We Are Who We Are)인 셈인데, 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인물들이 끈질기게 묻는 질문이기도 해. <본즈 앤 올>의 매런, 리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삶을 선택 하면서도 내가 가장 나 다워지는 순간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두 사람도 감독 전작의 인물들과 동일한 기로에 서있는 것 같아.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을 위한 영화

<본즈 앤 올>에서 식인 행위는 호러를 가장한 소수자의 상징처럼 보여. 그게 무엇이든 세상 중심으로 모일 수 없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졌고, 낙인일 것이고, 이해받을 수 없는 사람들. 누구보다 관계 맺기를 갈망하면서도 관계로부터 도망치는 이들을 보며 <괴물>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을 위해 썼다”는 인터뷰가 떠올랐어. 오랜 시간 홀로 살아남은 중년의 이터 ‘설리’(마크 라이런스)는 이제 막 이터로서 독립해야하는 매런에게 냄새 맡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야. 본명은 설리번이고, 설리는 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는데 정작 그를 설리라고 부르는 사람은 설리 자신 뿐이야. 왜 자신을 자꾸 이름으로 부르냐는 매런의 질문에 설리는 대답하지 않아. 이터 옆에 설리번을 설리라고 부를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있었다 해도 그건 얼마나 이전의 일일까.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이 꽤 상세했던 원작소설에 비해 영화에서의 매런과 리는 쉽게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나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나를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거야. (자이언티 뇌절 미안하지만) 자이언티의 ‘나쁜놈들’이라는 노래 중 “널 원해 구걸해 널 먹고싶어. 배부를 틈이 없어. 금방 토가 나올 것 같은데도 더 집어넣고 싶어”라는 가사가 있어. 외롭고 고립된 동물로서 멈추지 않는 본능적 허기는 <본즈 앤 올>이 선택한 사랑의 근간이야. 끊임없이 먹어 치우고 싶은 갈망의 세계에서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란 감정적 허기를 마주하게 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본즈 앤 올’은 이터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식인 행위인데 말 그대로 뼈까지 모두 먹는 거야. 사랑에 빠졌을 때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 이 사람과 완전한 하나가 되고 싶다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한 타인이라는게 괴롭거나, 안고 있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을 땐 상대의 몸통과 내 몸통이 완전히 합쳐질 수 있을 때까지 으스러지게 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그게 비뚤어진 소유욕 때문이든, 외로움 때문이든 종종 토할만큼 채워넣고 싶은 허기를 느꼈던 나는 매런과 리가 완성한 사랑의 최종장에서 내 허기의 깊은 심연을 보고야 말았어. 그곳엔 “나를 사랑하고 먹어줘”라고 말하는 티모시 샬라메가 있어. 뼈만 남은 몸에 피를 향한 본능이 형형하게 살아있는 야생성, 성년과 미성년 사이의 유약함이 공존하는 리에 티모시 살라메가 아닌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아. 창백한 그의 얼굴은 로맨틱한 드라큘라에도 꽤나 어울리지만 그는 길 위에서 인간의 피와 살을 갈구하는 이터를 택했어. 배가 고파지면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식인이 영혼까지 모조리 껴안는 최후의 사랑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크리피하지만 세상과 동떨어진 외부인들의 깊은 공허는 '본즈 앤 올'이 아니라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관람포인트01
원작소설과 영화가 비슷한 경우도 있는데 반해 [본즈 앤 올]은 같은 이야기를 활자언어와 영상언어로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비교하기에 흥미로운 작품이야. 특히 매런이 리를 만나기 전까지 거쳐온 식인의 경험이 자세히 묘사되어있어. 영화가 생략한 인물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소설을 꼭 읽어봐.

#관람포인트02

카니발리즘을 다룬 영화라면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로우>를 빼놓을 수 없지. <티탄>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의 전작으로, 국내 정식개봉을 한 적은 없어. <본즈 앤 올>이 사랑 기반의 성장영화로서 카니발리즘을 이용했다면, <로우>는 보다 더 원초적인 욕망에 집중한 성장영화라 할 수 있어. 채식주의자였던 주인공이 대학에서 의도치 않게 고기를 먹고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감각적인 영상과 리듬감있는 음악들이 의외로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나. 쿠팡플레이, 웨이브, 네이버 시리즈온, 유튜브에서 단건결제로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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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와자작

#스테이션 일레븐(왓챠) #오키쿠의 세계(극장상영중)

나는 좋은 작품은 좋은 기억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도 그게 내 기억 같은 것이 돼서 오래 오래 남을 때가 있어. 내 기억 중간 중간에 함께 박힌 것이 아름다운 것들이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곤 하거든. 그래서 아름다운 작품을 두개 추천하고 싶어!


📝레이지 카우의 답장

[스테이션 일레븐]은 나도 이제 막 1화를 보는중이야. 곧 뉴스레터에서 소개할 수 있을지도! 첫 번째 추천 고마워. 아름다운 것들 보며 우리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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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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