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션잇은 한 해외기업과 함께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이들이 한국까지 와서 한국 장애인 사용자들의 접근성 이슈를 심도 깊게 살펴보는 노력은 국내 기업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터라 더욱 놀라웠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일주일 동안 하루 세 명씩, 총 스무 명의 사용자들을 직접 만나 접근성 이슈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접근성과 관련해 나도 기존에 알지 못했던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지만, 프로젝트 특성상 내용을 공개할 수 없어 진행하면서 느낀 몇 가지 전반적인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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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들은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세부적으로는 장애의 범위나 사용 방식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시각적으로 제약이 있는 경우라도 그 증상은 다양하다. 아예 볼 수 없거나, 빛이 번져 보이거나, 시야가 상대적으로 좁거나, 혹은 색상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손 사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두 손가락만 사용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팔을 움직이기 어려워 손을 쓰더라도 범위가 제한적이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을 구부린 상태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신체적인 동작 뿐 아니라 인지력에 따라 듣고 이해하는 과정도 차이가 있다. 또한 같은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이 다르면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중도 장애인지 선천적인 장애인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생긴다.
이런 다양한 제약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을 찾아 나간다. 위처럼 제약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은 기능을 실행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구부린 손가락만 움직이는 사용자는 마우스를 대신하는 보조 기기를 사용하여 조작한다. 어떤 특정 버튼을 누를 때 비장애인의 경우 버튼을 보고 손가락을 사용해서 클릭할수 있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그 버튼을 클릭하기 위해 보이는 위치까지 제품 앞에 가까이 다가간다. 전맹 시각장애인은 톡백이나 보이스오버와 같은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을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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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소통을 하기 위해 간단하게 단어로 적어서 표현하기도 한다. 소통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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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중요한 것은 접점을 찾는 일이다. 앞서 말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접점이다. 어떤 사람은 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고, 어떤 사람은 화면에 눈을 가까이 대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보이스오버 같은 음성 안내 기능을 사용하거나, 보조 도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접근 방식은 다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원활하게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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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가지고 있는 제약 속에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법대로 기능을 실행해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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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접점을 만족시키기 위해 반드시 특정 기능을 동일하게 사용하도록 유도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검색을 꼭 타자 자판을 입력해서 해야만 한다고 해보자. 그럼 타자 자판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나, 손가락으로 직접 입력할 수 없는 지체 장애인은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제약에 따라 특정 기능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접근방식이 존재한다. 보이스오버로 듣고 선택하는 사용자, 전신 마비로 인해 안구 마우스를 사용하는 사용자처럼 동일한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을 위한 접근 방식은 제각각일 수 있다.
그래서 정리해보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한가지 동작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접근방식이 있다는 것.
둘째, 좋은 접근성이란 그 한가지 동작을 수행하는 데 수반되는 다양한 접근방식을 가능하게(혹은 더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다양한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앱 서비스 자체에 해당 기능을 내장하는 것, 또 하나는 기기 자체 모듈과 원활한 호환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성을 활용해 주문하거나 검색할 수 있도록 하려면, 앱 자체에 음성 인식 모듈을 탑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기기의 OS에 이미 음성 인식 기능이 포함되어 있고, 사용자 피드백이 긍정적이라면, 이를 호환하여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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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점을 찾을 때 많은 부분 간과하는 것은 순서다. 눈으로 보는 사람은 즉각적으로 특정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보이스오버 사용자들은 원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는 것이 쉽지 않다. 많은 경우 읽어주는 순서대로 들으면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이스오버를 사용해 홈페이지를 탐색하는 사용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에게 과일을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다. 그런데 제품 정보를 들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읽어준다면 어떨까?
“사실 이건 캘리포니아 탐 아저씨 농장에서 약 1천평의 오렌지 농장 중 앞 열에서 세 번째 있는 오렌지 나무의 다섯 번째 가지에서 따낸 싱싱한 오렌지인데, 한국으로 3주 전 배송되기 위해…(3분 추가 설명)... 오렌지 한 개당 만 원.”
설명을 듣는 도중, 사용자는 '그래서 가격이 얼마라는 거야?' 라는 의문과 더불어 짜증이 밀려올 것이다. 화면상에서 배치되는 많은 정보들의 순서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되어있다. 시각으로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누군가는 ‘한 번에’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먼저 읽어줄 수 있도록 배열해야 한다. 이것이 접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추측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와 함께 테스트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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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접근성'
무엇이 지속가능한 접근성인가? 오랜 기간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용자들이 (설령 앞으로 새로운 사용 방식의 사용자들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접근성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접근성이란 한 시점에서 충족되는 것이 아닌 연속적인 것이다. 모든 스펙트럼의 사용자를 단 번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연속적인 테스트와, 피드백 그리고 반영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을 큰 줄기의 원칙들이 세워지고, 그 맥락에 맞춰서 여러가지 선택권이 제공되는 것. 이를 통해 지난 뉴스레터에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들이 축적된 경험을 쌓게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접근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접근성' 보다는 '더 나은 접근성'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접근성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나은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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