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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말했다』, 조디 캔터, 메건 투히

   『그녀가 말했다』 는 《뉴욕 타임스》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가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및 성적 착취를 고발하는 기사를 작성하기까지의 탐사보도기를 담은 책입니다. 조디와 메건이 쓰려는 와인스타인의 기사에는 두 개의 가닥이 있었는데, 하나는 와인스타인이 자기 직원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학대해왔던 것, 다른 하나는 배역을 맡고 싶어 하는 여성 배우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세상에 공개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개의 가닥에 대한 기록 모두가 충분해야했는데요. 이를 위해 기자들은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여 증거를 수집하고, 피해자들에게서 확보한 주요 증언을 기사에 싣기 위해 노력합니다. 

1. 기자의 '일'
   이 책에서는 조디와 메건이 직업인으로서 직분을 다하기 위해 고민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맥고언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맥고언이 보낸 이메일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하거나, 그에 대한 대응으로 맥고언을 띄워주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그렇게 한다면 기자로서의 미약한 권위마저 위축될 수 있기 때문)(p.28)이 그렇습니다. 또, 피해자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거나 상대가 증언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 피해자의 증언이 '논쟁'이 되어버릴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도 역시 이들이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 이 일을 해내기 위해 분투한 흔적들입니다.
   또, 절차상 결정해야 할 문제들도 자주 언급되는데요. 기사 초고의 모든 행에 대한 협상, 사실관계 확인, 조정, 또는 삭제를 가하며 진행하는 기본적인 절차(p.235)에 대한 언급은 물론, 취재 결과를 와인스타인에게 제시하는 기자들의 표준적인 관례에 대한 언급(p.248)도 나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가해자가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여 이 일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자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신뢰할 만하지 않은 대상이라 해도 기사의 대상을 대하는 정당한 방식으로서 이 관례는 예외없이 이루어지며, 와인스타인에게 기사가 공개되기까지 얼마간의 응답할 시간을 줘야할지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자 하죠. 

2. 피해자들의 입장
   하비 와인스타인의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합의금을 대가로 한 기밀 유지 서약으로 침묵 '당한' 여성들입니다. 서약서의 내용이 굉장히 불합리하다는 걸 피해자들도 인지하고 있지만, 동종업계에서 가해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자신에게 올 타격이 상당하므로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피해자들이 당시의 끔찍한 일들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에 대한 언급도 등장합니다. 매든의 경우, 꿈에 그리던 런던 지사의 정규직 일자리를 놓고 기대감에 들떠있던 차에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토록 기대에 차 기다렸던 어떤 것이 고작 이런 거였다는 수치심과 실망감에 휩싸였던 거예요. 미래를 생각할 때 느끼던 낙관을 그가 전부 빼앗아버린 거예요. 제가 가진 가치 덕택에 일자리를 얻은 것이라는 희망 역시도 사라져버렸고요."(p.127), "저는 그 사건에 제 책임도 있다는, 제가 더 분명하게 거절해야 했고, 일자리를 승낙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기분에 짓눌린 채 지냈어요."(p.128)

3. 제도의 문제
   『그녀가 말했다』 에서는 제도의 문제도 놓치지 않고 지적합니다. 연방법상 성추행 관련 법규들이 허술한 점, 특히 프리랜서나 15명 이하 사업장 근로자 등 수많은 직업군에는 이 허술한 법규마저 해당사항이 없는 점을 지적(p.99)하고, 성추행 신고 가능 기간이 사건 발생 180일 이내로 짧으며 손해 배상금은 최대 30만 달러로 제한되어 있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 금액은 실력 없는 변호사를 고용하기에도 부족한 액수인데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변호사들 역시 수익 면에서 합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됐습니다. (p.99)
   또, 성추행 법규를 집행하는 정부기관(EEOC)에는 가장 많은 성추행 혐의가 제기된 기업들에 대한 정보가 있지만, 이를 공개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으며, 여성들이 입사 전 해당 기업의 자료를 열람할 수도 없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p.100)

4. 외면하거나 저항하는 남자들
   하비 와인스타인은 그가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들에게도 폭언, 폭행을 일삼았고 이는 동생이자 동업자인 밥 와인스타인에게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밥은 형의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를 외면하고, 이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합니다. 
   한편, 와인스타인컴퍼니의 회계 및 재무보고 부서의 수석부사장으로 동료들에게 회사의 "제도적 기억"으로 불리는 어윈 라이터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범죄 사실을 폭로하기로 결심합니다. 후에 로런 오코너가 남긴 문서를 조디에게 건네면서 그들이 주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죠. 

"우리는 2017년 10월 5일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및 성적 착취에 대한 기사를 발표했고, 놀라운 마음으로 둑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가 속해 있는 언론의 세계에서 이야기, 즉 기사는 목적이고, 결과이자, 최종 생산물이다. 그러나 세상 전체를 바라본다면 새로운 정보를 담은 기사는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대화의 시작, 행동의 시작, 그리고 변화의 시작이다."

(영상 : 다큐멘터리 <와인스타인> 예고편)
   이 책에는 피해자를 함부로 동정하거나 그들의 미래를 섣불리 걱정하는 투의 언급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자들은 피해자들 내면의 강함을 믿었기 때문에 이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했고, 모든 문제를 자신의 역할, '기자'의 소명으로서 접근하고 해소하고자 시도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피해자가 다수 등장하며 그들의 피해사실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책을 읽기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들불에서도 피해자들의 증언이 담긴 책을 다루는 일이 누군가의 트리거가 되진 않을지, 결국 마이너스 감정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지 염려되어 모임에서 다루기를 주저하게 되기도 했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이 책에 피해자들과 이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용기와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23년형을 받았지만 어떤 사건들은 여전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수면 아래 잠긴 채로 맘 놓고 살고 있을 가해자들을 향한 경고이자, 여전히 괴로운 밤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와 용기의 서사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내가 여기에서 지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는 있을 거란 사실입니다.

(...) 여정에는 더 폭넓은 과제의 성패 역시 달려 있었다. 바로 무엇이 진보를 추동하고 또 지연시키는가 하는 끝없는 질문이었다. #MeToo 운동은 우리 시대 사회 변화의 한 예인 동시에, 이 변화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균열된 환경에서 우리는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과 보호 조치를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서문에서
구 읽고 씀.

추신. 들불에서는 현직 여성 기자와 함께 『그녀가 말했다』 북클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를 함께 읽고 싶은 분들은 들불 인스타그램에 새로 올라올 소식을 기다려주세요.

✋ 키워드 : 미투 #MeToo
  한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SNS의 해쉬태그 운동으로 전개되며 점차 확산되었는데요. 오늘의 들불레터를 마무리하며 현재까지 한국에서 전개되었던 미투 운동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자료들을 통해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가해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시 한 번 머리와 가슴에 새겨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 경향신문의 #Me_Too 이슈 모아보기
2) 2018년 한국의 미투 운동 타임라인
3) 페미위키의 스쿨미투 아카이빙 페이지
5) 2018년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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