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변호사로 수년째 법조를 취재하고 있는 양은경 법조전문기자가 뉴스 속의 법 이야기를 알기쉽고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삶은 소대가리’는 관용? 靑 고소취하에 남은 ‘뒤끝’  

2019년 7월 민족문제인연구소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 배포한 전단. /조선DB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자신을 비방하는 전단을 배포한 30대 청년에 대한 모욕죄 고소를 취하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뒤끝’을 남겼습니다.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은 “앞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어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했습니다.

형법 311조의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모욕당한 사람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親告罪)로, 제3자의 고발로는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일로 2019년 11월부터 햇수로 3년째 수사를 받았던 보수단체 대표 김정식씨는 본지 통화에서 “경찰에 ‘고소주체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말을 할 수 없는 것을 왜 물어보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전단지에 실려 있는 ‘북조선의 개’라는 표현에 대해 “VIP한테까지 보고됐다. 처벌을 원한다고 한다”고 했던 경찰이 ‘기본 정보’인 고소인의 신원에 대해선 침묵한 겁니다.

법령 해석상 고소인은 문 대통령일 수밖에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225조에 따르면 본인 외에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피해자 사망시 배우자, 직계존속, 형제자매에 불과합니다. 대리인을 세웠다고 해도 고소의사를 위임했으니 본인이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3개월이나 압수당할 줄은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실제 처벌은 벌금형이 대부분인 모욕죄에 개인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휴대전화 압수수색까지 이뤄진 것입니다.

경찰의 ‘고소권자’에 대한 이상한 침묵과 과잉수사는 거센 비판을 낳았습니다. 문 대통령의 고소취소는 상당부분 여론을 고려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여지를 남겼습니다.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법조인들이 있습니다. ‘모욕죄’는 형법 교과서에서 ‘개인적 법익’ 을 다루는 장(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개인 문재인의 명예와 관련된 범죄입니다. 그런데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외교적 문제가 있을 경우 대응하겠다는 여지를 남긴 게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한 법조인은 “정작 외교적 문제를 걱정했으면 북측의 ‘삶은 소대가리’ ‘미국산 앵무새’에 단호히 대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합니다. 지난 3월 북측의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했지만 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되려 “협상을 재개하려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삶은 소대가리’ 표현이 ‘외국원수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형법 107조 2항은 외국원수에 대해 모욕을 가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비방·모욕을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하는 ‘국가원수 모독죄’는 1987년 6월 항쟁 후 폐지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원수 모독죄’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모욕행위는 여전히 가중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법 3조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어 북한은 법적으로는 우리 영토입니다. 그래서 ‘삶은 소대가리’ 표현이 외국원수 모독죄가 성립할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삶은 소대가리’ 표현에 모욕감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표현에는 침묵하면서 국민을 ‘모욕죄’로 고소하고, 여론에 등떠밀려 취하하면서 ‘외교적 문제’로 추가고소 여지를 남기는 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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