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레터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투쟁특집호? 🔥 다 읽고 나시면 이유를 알게 되실 거예요.
갓 출간된 『곁을 만드는 사람』과 곧 출간될 『전사들의 노래』·『노동계급 세계사』가 모두 담겨 있거든요. 마치 타래처럼 엮인 이 책들의 연결성에 주목해주세요. 참, 하단에 북펀드 소식도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함께해주시길요!

3월 21일은 1966년 유엔이 지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었습니다. 출간을 앞둔 『곁을 만드는 사람』 원고를 막 완독한 참이었어요. 읽는 와중에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태국인 이주노동자의 (또 한 번의) 사망 보도를 접했고,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앞둔 19일 서울역 광장에 모여 기념대회를 연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저출생 완화책으로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띄우다 급기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배제를 골자로 하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한 소식까지 마주하게 되었죠.


『곁을 만드는 사람』은 한국사회가 자행한 인권 침해 및 노동 착취에 저항하는 활동을 다채롭게 실현하고 있는 여섯 명의 ‘이주 활동가’의 구술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베트남·방글라데시·네팔·미얀마·스리랑카·필리핀에서 이주해 온 이들(김나현·마문·샤말 타파·또뚜야·차민다·놀리)의 증언 속에는 이주노동자로서 바라본 한국사회와 이주활동가로서 부단히 만들어낸 투쟁의 계보뿐만 아니라 각자를 구성해온 시대적·문화적·지역적 배경이 녹아 있어 이들의 삶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요. 


한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 고도성장에 따라 일궈진 산업 속에서 일명 ‘3D’(위험danger·어려움difficult·더러움dirty) 업종 내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인력난이 극심해진 90년대 초 ‘산업연수생’이라는 제도 도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그 현장에 배정한 역사가 있습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국내 사업장에 독점적으로 고용했어요. 그러나 이 제도 안에서 심각한 노동 착취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탈하는 노동자가 늘어납니다. 국가는 이렇게 ‘연수생’에서 ‘미등록’ 신분이 된 사람들과 애초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관광비자를 받는 등 불법의 형태로 입국해 일터로 가는(갈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묵인했습니다. 묵인은 필요와 한쌍. 국가는 노동력을 원했기 때문이죠.


순전히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만으로 건너온 사람, 정부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도피한 사람, 일자리가 없어 찾아온 사람… 각기의 이유로 ‘코리안 드림’을 꾸는 것에 그치지 않으려 한국에 온 사람들은 그들의 기대를 ‘드림’ 속에 가둬야 했습니다. 짐을 부려놓을 칸 하나 없이 열악한 환경, 장시간 틈 없는 노동,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 자취를 감춘 권리, 한국에서 보낸 세월이 본국에서 산 것보다 길어져도 당하는 이방인 취급과 멸시, 가진 이름 대신 국가의 이름으로 불리는, 족족 한숨인 날들…. 이는 한국사회가 부러 만든 것이었어요. 미결에 머무름이 결론인 듯 굴며 좀체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세월을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터의 지척에서 겪을 것이라곤 삶에서 맞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균형과 자아를 유예하거나 고용주의 선의에 모든 것을 맡긴 채로 살아가는 동료들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뿐이었지만, 결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는 부당하게 많이 책정된 식비를 조정하는 투쟁부터 시작해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교실 운영,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의 노동 상담, 이주민통번역센터에서의 이주노동자 통번역 지원 등을 하기도 합니다. 농성단에 들어가 투쟁하기도 하고, 이주민 독립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현실을 널리 알릴 방안을 고심하기도 하고요. 이주노조를 합법화시켜 동료를 돕고, 집회에 나갑니다. 이렇게 노동자로, 활동가로, 예술가로서 추방당한 곳에서 세계를 연결하는 경험을 꾸리고, 곁의 사람들과 또 다른 곁을 만들며 그들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절반쯤도 몰랐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며칠이 숱한 반성입니다. 계보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들여다볼 시도가 없었다는 것에요. 다듬어진 한 줄의 역사 뒤에 감추어진 비화에는 들끓는 뜨거움, 슬픔, 희열, 분노, 통탄, 아쉬움, 기쁨이 있다는 점. 착취와 피해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무력한 피해자’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보도나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 속 정제된 서사만으로 그들의 실제적 삶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외면하거나 보기를 시도하지 않는 태도, 부지런히 오인하려는 태도는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쌓인 싸움의 계보를 이길 수 없을 거예요. 그들에게 수심만큼 있는 환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모래 마케터님의 《곁을 만드는 사람》 소개글에 이어 편독자도 또 다른 ‘싸움의 계보’를 발굴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끼리 “4~5월은 무슨 ‘싸움’ 특집이냐”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을 정도로, 다채로운 싸움꾼(!)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줄지어 펼쳐질 예정이거든요. 암요, 4월 그리고 5월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싸움’ 아니겠어요?   

‘이 싸움’을 떠올리면, 뜨겁고 먹먹한 어떤 것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왈칵 솟구쳐 올라옵니다.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삶이 이렇게까지 생생히 감각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삶들은 제가 발 딛고 선 이 세계, 그리고 제가 기대고 있는 사고 체계를 단번에 뒤엎어버립니다. ‘이 싸움’을 담아낸 ‘이 책’에서만큼은, 편집자가 아니라 오롯한 독자일 수 있습니다. 원고를 펼쳐드는 순간 저는 ‘교정교열’이라는 절대적 본분을 망각한 채 ‘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기-인 시간여행을 떠나고 맙니다. 몇 번이고 말이죠. 그리고 그 여행은 매번 저를 다른 종착지로 데려다 놓습니다.


스무고개 그만하고 ‘이들’이 누군지 밝히라고요? 뜸 들여서 죄송합니다. 사실 이건 <오!레터>를 빙자한 사랑고백이에요. 누구를 향한 고백이냐 하면…… 바로, ‘장애해방운동가’들입니다. 오는 4월 초,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 『전사들의 노래』가 세상의 빛을 볼 예정이에요. 이 사회가 ‘불쌍하고 비루한’ 몸뚱아리로 취급해왔지만, 그 굴레와 사슬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이 세계 전체를 향해 싸움을 건 어마무시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또 삶의 저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해학으로 투쟁판에 한바탕 활기와 웃음을 불어넣기도 하고요(고백의 이유 추가222).


이들의 싸움은 마치 그 자신들처럼 가난하고 비루하고 초라했습니다. “배제와 차별의 근거가 됐던 ‘불구’의 몸, 바로 그 신체”가 싸움의 유일한 도구였으니까요. 그럼에도 이들은 오직 그 몸 하나로 외쳐왔어요.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아 장애인을 죽게 만들고,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만을 배치해 이동권을 박탈하는 이 사회 전체가 ‘문제’라고요. 비장애인 중심의 이 사회는 이들의 싸움을 주구장창 외면해왔지만, 그 싸움은 어느새 어엿한 ‘세계’를 일궜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온몸을 걸고 싸워낸 그 세계에서, 다른 시민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혐오를 들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낸 바로 그 세계에서, 지금의 제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들이 닦아놓은 이 기반 위에서 또 다른 소수자들이 살아갈 것이고요. 그게 ‘비문명’이라면, 저는 기꺼이 비문명의 세계에서 살렵니다.


애초 이 싸움의 계보는 ‘죽은 자’들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록 시리즈’의 첫 권인 『유언을 만난 세계』가 바로 그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곧 우리를 찾아올 『전사들의 노래』는 삶으로서 그 죽음에 응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장애해방운동가 여섯 명의 생애사예요. 이 시리즈를 기획한 비마이너 강혜민 편집장님의 다음과 같은 서문은 기록과 아카이빙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보게 합니다.

“그 기억의 알맹이들은 죄책감으로, 때론 자책과 무력감으로 남았다. 삶에 대한 관심은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 기록은 숙명 같았다. 기록되지 않은 생은 잊히고 왜곡되고 소멸한다. 한때 사건이 된 생조차 존재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우선 적어내야 했다.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을 이 사회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던 외침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고, 그리하여 ‘세계’가 될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저자 홍은전 선생님, 비마이너, 그리고 벼랑 끝에서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진보적 장애해방운동가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네 맞아요, 이건 결국 사랑고백글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이 집요한 고백의 이유를요. 4월에 확인해보기로 약속!       

이 책을 빼놓을 수 없다, 『노동계급 세계사』


‘싸움에도 계보가 있다’라면 이 책을 빼놓을 수 없어서 나타난 캠퍼H입니다. 한창 편집 중인 책이 다름 아닌 『노동계급 세계사』기 때문이에요. 그 자체로 노동하는 우리의 계보와도 같은 책입니다. 부제는 무려 ‘날마다 읽는 저항과 반란의 역사’. 네, 제목과 부제를 통해 짐작하실 수 있듯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1년 365일을 전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채웠습니다.


아, 그런데 ‘노동계급’이 어떤 사람들이냐고요? 책을 인용하자면 여기서 노동계급은 “공장이나 농장, 사무실, 또는 그것들의 주식(‘생산수단’이라고도 한다)을 소유하지 않아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투쟁의 주체들 또한 여성, 청소년, 유색인, 이민자, 원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실업자, 가사노동자 등 매우 다양해요.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차별,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싸운 이들의 저항과 반란도 무수히 기록되어 있고, 성공한 투쟁만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들이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잔혹한 행위들에 관한 역사도 포함됩니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식민주의 관점에서 깔끔하게 세탁된 서사에 맞서는 책이자, ‘실패한 저항’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2014년 설립된 국제적 노동자-활동가 모임 워킹클래스히스토리가 지었고, 국제문제 전문 유강은 번역가가 옮겼어요. 워킹클래스히스토리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투쟁한 이들의 집단적 역사를 찾아내고, 그러한 역사를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목표로 민중사 기록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요. 민중사 관련 온라인 아카이빙과 팟캐스트의 수천 만 독자/청취자에 힘입어 영어권 온라인에서 가장 대중적인 민중사 프로젝트 모임으로 성장한 곳입니다.

날마다 두 꼭지씩 역사적 사건의 개요가 정리되어 있으니 이 책 한 권을 읽으면 자그마치 730가지의 투쟁사를 알게 되는 셈입니다. 매일매일,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전 오늘에 노동계급 사람들이 조직을 이루어 행동에 나섰던 순간을 끊임없이 되살려볼 수 있어요. 정말이지 다양한 ‘오늘’이 펼쳐지는 만큼 한꺼번에 순서대로 읽기보다 내키는 때, 내키는 만큼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디를 펼치든 평등과 자유, 해방을 외치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억압과 차별에 맞선 저항과 반란이 국가권력 등에 잔혹하게 짓밟히는 와중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도저히 가슴이 조용할 수가 없네요. 조용한 사무실에서 날마다 시끄러운 가슴을 부여잡고 지내는 요즘입니다. 오늘의 싸움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연결을 감각하게 하며 끊임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이 노동하는 모두의 책장에 꽂혀 틈틈이 들추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노동절 5월 1일 출간인데, 일주일 먼저 받아보시는 방법이 있어요. 알라딘 북펀딩으로 후원해주시면 됩니다. 연대의 뜻으로, 이 싸움의 계보를 이어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서명하듯 후원자 이름을 함께 새겨주시면 더없이 기쁘겠고요. 그럼, 출간까지 잘 가보겠습니다. 투쟁!

🏕️ 캠퍼H

✱ 위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알라딘 북펀드 페이지를 보실 수 있어요.

✱ 후원자 책 발송일은 4월 21일입니다. 

✱ 표지 이미지는 변동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책갈피를 많이 사용하시나요? 한자리에서 책 한 권을 완독하는 날이 적어지고, 여러 책을 병렬적으로 읽다 보니 읽다 만 부분을 표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책날개가 버텨줄 수 있는 정도는 정해져 있어서 집 안의 납작이들은 모두 다 껴놓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마침 산책하다가 서점에서 하는 '책갈피 특집'을 발견했어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서점 유어마인드에서는 가끔 이렇게 재미있고 귀여운 특집 전시·판매를 합니다. 끼우는 책갈피, 핸드폰에 달고 다녔던 고리처럼 생긴 책갈피, 두 겹 책갈피, 책처럼 펼칠 수 있는 책갈피, 만화가 그려진 책갈피··· 종류가 무려 68가지라고 하네요! 첫눈에 들어온 건 '란탄루'라는 가상의 만둣집 신장개업 소식과 쿠폰이 그려진 책갈피.🥟 제 옆자리 만두맨이 퍼뜩 생각나 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소식. 4월 3일까지 한다고 하니 산책하며 들러보세요! -모래-
✱걷다 재밌는 것을 만나면 구독자분들께 전해주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재밌는 장소나 이야기를 발견하면 저희에게도 삐삐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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