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의 담백한 감성, Acne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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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5

ACNE STUDIOS

EDITOR'S LETTER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깔끔한 북유럽 디자인에서 유래되어 한국에서 꽤나 인기몰이를 하는 스타일입니다. 취향 따라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갈리긴 하지만, 오랜 시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미니멀리즘 면에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가진 매력은 여전히, 또 언제나 견고하죠.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패션’으로 승화시킨다면. 100%라고 확언할 순 없지만 확실히 닮아있는 브랜드가 있긴 합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에요. 스웨덴 출신의 디자이너가 런칭한 브랜드 답게 차분하면서 고급스러운 북유럽 무드가 짙게 묻어 나옵니다. ‘적을수록 더 좋다’는 진부한 미니멀 클리셰를 사랑하지만, 그런 만큼 필요한 요소 속에 실용성과 그들만의 미학을 집어넣는 그들이에요. 그래서 오늘만큼은 간만에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겠다는 시선으로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핑크빛 세계를 기대하면서요.

WHO ARE THEY?

# 현대문화를 아우르는 패션 하우스

아크네(Acne)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니 요한슨(Jonny Johansson)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를 패션 브랜드로 독립시키며 사진, 예술, 건축 및 현대 문화 영역을 아우르는 패션 하우스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어요. 창의성이 돋보이는 섬세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뛰어난 깔끔한 북유럽 디자인이 특징.

# 재능있는 젊은이들의 놀이터

‘스웨덴’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감성 가득한 아바의 노래, 행복지수 높은 복지 국가, 혹은 낮에 비해 로맨틱하게 긴 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라서 생각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패션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웨덴’하면 이 사람을 떠올립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디자이너 조니 요한슨(Jonny Johansson).

1996년, 스톡홀름에서 만난 젊은이 네 명. 재능 있는 젊은 창작 집단이 되고자 했던 그들은 곧 단돈 1만 유로를 들여서 ‘아크네(Acne)’라는 집단을 만들게 되는데, 가장 늦게 합류한 멤버가 바로 조니 요한슨입니다. 아크네는 ‘Ambition to Create Novel Expression’의 약자로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기 위한 열망’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요. 그들은 필름,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컬렉티브 등 많은 일들을 하며 의기투합했습니다. 조니 요한슨이 맡은 파트는 다름 아닌 ‘패션’이었죠.

아크네가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진출한 건 창립 1년 후인 1997년부터 입니다. 실용성을 중시하던 조니 요한슨은 일상에서 가장 편안한 옷이 ‘데님’이라고 생각했고, 빨간 박음질이 들어간 청바지를 100벌 만들었어요. 그는 청바지를 스톡홀름에 있는 옷 잘입는 친구들, 가족들에게 선물했습니다. 타이밍도 완벽했고, 운도 매우 좋았어요. 2000년대 초반 스키니진 열풍과 함께, 조니 요한슨이 만든 청바지를 그 당시 최고의 스타인 케이트 모스와 시에나 밀러가 입었거든요. 아크네는 빠르게 패션계에 이름을 알렸어요. 순식간에 연예인들이 찾는 데님 브랜드로 유명해졌고, 꼴떼뜨 편집숍과 오프닝 세레머니, 바니스 백화점은 너도나도 아크네를 샤우팅했습니다.

그러나 조니 요한슨의 패션에 대한 재능, 열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데님 브랜드에 만족하지 않고 어엿한 패션 하우스가 되고자 했어요. 2006년, 조니 요한슨은 ‘데님 브랜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기존 아크네에서 독립하여 지금의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를 설립합니다. 그는 이후로 패션 브랜드로서 욕심이 강하게 드러난 행보를 걸었어요. 2010년 스웨덴을 벗어나 런던에서 공식 패션쇼를 열었고, 랑방과 함께 100% 데님으로 구성된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죠.

성장하는 와중에서도 아크네 스튜디오의 방향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아크네 페이퍼>라는 브랜드 매거진. 평범한 홍보 효과를 뛰어넘는 이 매거진은 매번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심도 깊은 아이디어를 펼칩니다. 영화, 예술, 패션, 인테리어 등 예술 전 범위를 통섭하는 뛰어난 감각으로 다양한 문화의 주제를 다루는 매거진이에요. 가령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철학가 노암 촘스키 인터뷰를 싣는가 하면, 카린 로이펠트와 함께 에로스에 대한 역사 공부를 기획하기도 했죠. 아크네 페이퍼의 표지에는 뻔한 화보도, 그렇다고 아크네 스튜디오의 옷이 실린 페이지 역시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의 아크네 스튜디오는 옷 좋아하는 사람이면 모를 리 없는 브랜드로 등극했습니다. 특히나 북유럽 느낌 낭랑한 아크네 스튜디오의 머플러는 한국에서도 대히트를 쳤으니까요. 쇼는 또 어떠한 가요. 패션쇼 시즌만 되면 아크네 스튜디오를 목격하려는 이들로 쇼 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색깔 명확한 브랜드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사례. 지금도 전 세계의 아크네 스튜디오의 매장엔 시그니처인 핑크색 쇼핑백을 손에 들려는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 핑크를 이토록 쿨하게 둔갑시킨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책 없는 낭만’처럼 여기던 핑크 컬러. 아이러니하게도 아크네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컬러가 바로 페일 핑크(Pale pink)입니다. 핑크를 브랜드 컬러로 정한 이유는 다름 아닌 늦은 밤까지 일하던 조니 요한슨의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분홍색 식품 포장지 때문이었다고. ‘모두가 핑크를 예쁘지 않은 색이라고 생각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스치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해요.

익숙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미적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 조니 요한슨은, 호불호가 강한 핑크 컬러가 아크네 스튜디오가 가진 마이너리티(Minority)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없이 마이너한 핑크 컬러를 택하니 오히려 지금은 모두가 좋아하는 컬러가 되었어요. 아크네 스튜디오는 브랜드 시그니처 컬러인 핑크 덕분에 깔끔하고 모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를 주는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또한 로고 플레이를 가장 잘 하는 브랜드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많은 이들이 탐내는 핑크 패키징, 그리고 의도적으로 과장된 데님의 케어 라벨. 이들과 함께 시간을 거듭하며 계속해서 진화하는 아크네 스튜디오의 로고는 아크네 스튜디오의 독창적인 면모를 한껏 드러냅니다.

특히 몇 시즌 전부터 꾸준히 전개되는 페이스 로고 컬렉션을 보세요. 아크네 스튜디오 특유의 엉뚱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죠. 점 두개, 작대기 하나. 오로지 3개의 도형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로고는 한국 거리에서도 흔히 보셨을 겁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무표정 표정에서 착안한 아이콘이라고 해요. 발매 초기에는 정체 모를 이 페이스 로고에 패션계에서 우려를 표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아크네 스튜디오의 또다른 심벌로 자리잡으며 티셔츠, 비니 등 베이직한 아이템에 여과없이 활용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 차분한 북유럽 무드

“미묘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지닌 깔끔한 디자인.”

Acne Studios의 디자인은 그들이 탄생한 스웨덴 특유의 북유럽 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특유의 편안하고 간결한 실루엣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트릿 웨어에요. 그래서 미니멀하면서도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북유럽 감성이 짙게 묻어나오죠.

실제로 아크네 스튜디오는 스웨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의류와 액세서리 류의 그래픽으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스웨덴 시골마을에서 영감을 얻는 컬러 팔레트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아이템을 디자인하기도 합니다.

좀더 쉽게 비유하자면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로 대변되는 북유럽 풍 인테리어와 비슷한 무드라고 할까요. ‘따뜻함’과 ‘포근함’이 깃든 옷을 제작하는 점, 파스텔과 모노톤의 중립적인 컬러 위에 톡 튀는 원색을 포인트로 활용하는 점이 유사하죠. 북유럽 사람들이 입는 두터운 자켓에 결부된 순수한 동심, 자연친화성, 북극에 가까운 스웨덴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땀이 나게 할 만큼 높은 보온성, 바라만 봐도 포근해 지는 색감과 질감. 이 모든 요소가 아크네 스튜디오의 옷에서 느껴져요.

그러나 거의 모든 북유럽 출신 브랜드가 그렇듯, 아크네 스튜디오 역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실용성’. 그들은 현실에 기반한 기능적인 옷을 만듭니다. 편안함이 바탕이 되어 옷을 입는 사람에게 당당한 태도를 선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그래서 럭셔리와 패스트패션의 기능주의를 한 아이템 속에 융합하여 ‘럭셔리 패션을 선망하지만 실용성을 포기할 수 없는 영 제너레이션’의 구미를 한데 충족시켰어요. 과연 젊은 팬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아크네 스튜디오의 핑크색 쇼핑백을 자랑하는 덴 이유가 있네요. 심플하고 미니멀한 패션을 럭셔리 급으로 끌어올린 현명한 포지셔닝 전략 덕분이지 않을까요. 마치 애플과 유사한 컬트적 감성입니다.

2023 SS COLLECTION

아크네 스튜디오의 컬렉션은 패션에 무지한 사람들도 언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와 같습니다. 굳이 ‘패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놀지 않고 동시대를 반영한 가장 트렌디한 콘텐츠로써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크네 스튜디오의 컬렉션은 항상 패션을 넘어 사진과 예술, 건축 등 다양한 아트적 요소가 적절하게 혼합된 결과물로 패션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아크네 스튜디오의 이번 2023 SS 쇼장은 온통 핑크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디자이너 조니 요한슨은 20년 전에 방문했던 결혼식을 떠올렸는데요. 그때 그의 복장이 후회스러운 마음이라고. 결혼식에 방문한 게스트들은 옷장에 있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거나 새로운 옷을 사기도 하고 혹은 새로운 것을 아예 창조하기도 하는데, 조니 요한슨은 이런 키치하면서 일시적인 느낌에 주목했어요. 그는 결혼식 동안 누릴 수 있는 잠깐의 즐거움, 치장, 키치함을 패션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쇼 게스트들은 소녀감성 넘치는 핑크빛 침대에 둘러 앉아 설레는 눈빛으로 쇼를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는 레이스, 리본, 자수로 장식한 로맨틱한 디자인에 과장된 스터드 디테일을 믹스매치한 룩을 입은 모델들이 끊임없이 줄을 지어 나왔어요. 아름답지만 가시를 품은 장미꽃처럼 느껴지는 룩. 그 중 몇 가지를 함께 볼까요.

LOOK 1

올 깅엄체크 패턴의 대디핏 블레이저와 과감한 리본디테일 스커트, 그리고 로즈 깅엄 디테일 뮬힐의 조화가 강렬하게 돋보이는 룩이네요. 이너탑으로 시어소재를 활용해서 섹시한 느낌을 살리면서 스터드백을 믹스매치 하여 결코 평범하지 않게 연출했습니다. 패턴의 컬러와 크기를 적절히 믹스매치한 스킬이 황홀할 정도로 수준 높아요.

LOOK 2

아크네 스튜디오 덕분에 핑크 컬러는 그 무엇보다 중성적인 매력을 갖게 된 듯합니다. 핑크 컬러가 연하게 비치는 시어 소재의 탱크탑에 브로치 등 액세서리를 활용하여 제3의 성별을 위한 옷을 탄생시켰어요. 모노그램 패턴 팬츠로 트렌드를 가져가면서도, 과감한 스터드 디테일 부츠로 마무리는 유니크하게. 룩, 헤어컬러 등을 은은한 베이지 톤으로 통일해서 세련된 느낌을 자아냅니다.

LOOK 3

에디터가 뽑은 최애 룩. 핑크 대디핏 레더 블레이저의 올드 에이징과 스터드 디테일의 상반된 조화가 매력적인데요. 여기다 바이커 스타일의 레더 팬츠도 룩의 터프한 매력을 극대화했습니다. 키워드로 치면 ‘올드 펑크 + 섹시’ 랄까요. 시크함을 섹시하게 해석하여 풀어낸 성공적인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