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잔은 어떻게 보이나요?

오늘 당신의 잔은 어떻게 보이시나요?

- 이우환, <조응> & 게슈탈트 심리학 '전경과 배경' -

2024.07.26(금)

님과 de tour, 우리의 두 번째 발걸음이에요.

님은 ‘한국의 미술 작가’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김환기, 박서보, 백남준 등 많은 작가가 떠오를 수 있겠는데요. 그중 최근에 다시 조명 받으며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가는 아무래도 이우환(Lee Ufan) 작가일 것 같습니다. 이우환 작가는 그 특유의 화풍과 함께, 미술시장에서 독보적인 가격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단순히 높은 가격으로만 소개해 드리기에는, 그의 작품세계와 영향력 등 그 위상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이우환 작가의 연작 중 ‘조응‘ 시리즈를 색다르게 살펴보겠습니다.

‘관계항’으로 유명한 이우환 작가는 살아있는 한국의 미술가 중 현재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21년 기준, 실제로 한국 생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술대학을 중퇴 후, 일본으로 넘어가 1961년에 니혼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일본 재학 시절, 그는 1960년도 일본 모노하(もの派) 운동을 주도했었는데요. 그는 창작자의 가공을 최소화하고 “사물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이우환의 설치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 돌•철•유리를 마치 방치하듯 있는 그대로 그냥 놓아둔 형태로 이뤄져 있는데요. 작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임으로써, 소재 자체의 날것 그대로의 단순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또한 오브제와 관람객을 직접적으로 만나게 만들어, 관람자 스스로가 어떠한 선입견에도 빠지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의하게 만들고자 ‘관계항(Relatum)’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죠.

이러한 그의 시선은 회화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는데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바람’ 시리즈를 지나, ‘조응’ 연작에 이은 ‘Dialogue(대화)’까지 작품을 보면,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국내외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우환 작가만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게슈탈트 심리학

님!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라는 말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것은 그 유명한 ‘게슈탈트 붕괴’ 즉 형태주의 심리학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게슈탈트(Gestalt)는 “형태”, “전체”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간 이것을 어떻게 통칭하느냐에 따른 논의가 있어왔지만, 끝내 우리에게 익숙한 게슈탈트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죠.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우리는 먼저 보는 대상의 형태를 먼저 자각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형태’라는 것은 단순한 요소들의 집합이 아닌, ‘인간이 자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의미화하기 위해 지각된 것의 패턴이나 관계성으로 조직화하거나 구조화하려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말이 조금 딱딱할 수 있겠네요.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처음 본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의 얼굴 중 어디부터 볼까요? 눈, 코, 입? 많은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얼굴의 전반을 살펴볼 수도 있는데요. 이것을 흔히 ‘인상’이라고 하죠. 여기서 인상이 ‘형태’와 유사한 개념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게슈탈트 심리학 중 전경과 배경의 원리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전경과 배경은 눈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루빈의 잔’. 게슈탈트 심리학과 함께 단골 소재로 등장해왔습니다. 익숙한 질문일 수 있겠다만, 님은 잔이 먼저 보였나요, 두 연인의 얼굴이 먼저 보였나요? 그 무엇이 보였든, 여러분에게 그것은 ‘전경’이 될 것입니다. 전경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할 때 관심의 초점이 되는 부분을 뜻합니다.

반면 그 관심 밖으로 밀려나 두 번째로 자각된 것은 배경이 되겠죠. 즉 전경과 배경을 결정하는 것은 자극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른 것이죠. 따라서 사람마다 ‘루빈의 잔’에서의 전경과 배경은 다르게 인식되게 됩니다.

잔 모양의 물감들과 여백이 말하는 것

Correspondance, glue on canvas, 88x116cm, 1997.

Untitled, 2013. lithograph, 44x59cm, 2013

그럼 한 번 더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먼저 보였나요? 우선 이 그림은 이우환 작가의 ‘조응’ 시리즈입니다. ‘조응’ 연작에서는 위 그림과 같이 간결한 붓의 터치가 인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님도 먼저 마치 ‘잔’ 모양처럼 보이는 붓의 터치가 먼저 보였을 텐데요. 얼핏 보면 단조로운 색상과 형태로만 이뤄진 회화 같지만, 그 에너지는 매우 강렬합니다. 최소화되고 고도로 응축된 이우환 작가의 움직임이 물감의 흔적으로 남아,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미지의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죠.

이러한 긴장감과 에너지는 붓의 흔적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붓의 간결 한 움직임은 모순적이게도 여백의 존재를 증폭시키기 때문이죠. 이우환 작가는 이를 ‘여백 현상’이라고 말하고는 하는데요. 붓이 남긴 흔적들과 그 사이에 선연히 드러나는 여백 공간. 관람객들은 이들의 울림을 관측하며 의식의 새로운 장소를 만나게 되는 것이죠.

배경을 확장해서 보면, 미술관이 보인다

님은 미술관을 갈 때, 보통 무엇을 먼저 집중해서 보시나요? 보통 미술관 한 쪽에 걸려있는 작품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작품 속 피사체를 보겠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면 모나리자로 추정되는 여성을,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라면 입을 쫙 벌린 남성에 집중할 겁니다. 그들에 집중을 한 덕분에, 우리 머릿속에는 그들이 눈썹이 있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가 선연히 기억될 수 있죠

하지만 님, 게슈탈트 심리학에 따르면, 이들은 전경에 불과합니다. 작품이 주는 많은 정보들을 감각한 후, 우선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선별한 자각의 결과물인 것이죠. 반면 배경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에서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어느 작은 계곡 마을이, ‘절규‘에서는 에케베르크 언덕이 될 수도 있고요. 좀 더 넓게 확장해 보자면, 작품의 틀인 액자가, 또는 작품이 걸려져 있던 미술관의 벽면이 배경이 될 수도 있죠. 조금 비약적으로 보면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배경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배경으로 눈을 돌려 생각을 넓혀보면, 미술관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사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오묘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무한히 순환하고 공명하는 관계들의 만남, ‘조응’

Correspondence, Oil painting on canvas, 259×194.5cm, 1994.

또 전경과 배경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기도 합니다. 첫째는 “전경과 배경은 동시에 자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경으로 떠올렸던 게슈탈트는 해소되고, 이어 배경이 전경으로 교체된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과정을 ‘게슈탈트의 형성과 해소’ 혹은 ‘전경과 배경의 교체’라고 합니다. 즉 유기체인 우리 삶은 ‘게슈탈트의 형성과 해소의 끊임없는 순환과정’이라는 것이죠.

이런 순환과정은 이우환의 ‘조응’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조응(Correspondence)’을 그의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비가시적 관계성을 갖던 것들의 교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관계성이란 단순히 피사체(전경)과 여백(배경) 사이의 교체뿐 아니라, 작가의 행위와 작품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관람자 사이의 보이지 않던 공간이 서로 울리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따라서 ’조응‘은 '행위-공간-사람'이 서로 무한히 순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