쟨 왜 저럴까? 싶을 때 생각해볼 것들
CAFE LARA
Lara's Letter
외국어 번역하듯 다른 사람 말에 귀기울 수 있다면 

  안녕하세요, 라라다방입니다.🍪

  언어가 통하면 서로를 더욱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한국어 쓰는 사람들끼린 의사소통이 쉽죠. 일본어나 러시아어 쓰는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다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아요. 자기와 다른 생각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안달난 듯 보여요. “당신 말은 완전히 틀렸다”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어요.

  제게 신기방기 뿡뿡방기 묘안이 있습니다!!╰(*°▽°*)╯일주일 정도 정치인들에게 한국말을 못 쓰게 해보는 거예요. 그 대신 영어나 스와힐리어로만 말해보라고 하죠. 그럼 자기 생각을 오해받거나 왜곡당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서 말할 것 같거든요. 

  학창시절 제겐 동갑내기 해외 펜팔들이 있었어요. 우린 중 3부터 고 2 때까지 이메일을 주고받았죠. 3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쌔한 기분을 느낀 적도 없어요. 다들 영어 실력이 아주 짧았거든요.ㅋㅋㅋ 각자의 모국어가 따로 있었고,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었어요. 그냥 틀린 문법으로 썼어요. 깊은 견해를 공유하기엔 영어가 서툴렀고, 웃겼던 일들을 쓰기도 벅찼으니까요.

  외국 단어는 신선한 느낌을 불러 일으켜요. 터키 친구 이름은 부르쿠Burcu, 터키말론 ‘비 내리는 날 향기’를 뜻한대요. 그 친구는 원석 펜던트 목걸이를 종이에 감싸서 서울로 보내줬어요. 터키 원석이라니. 진짜로 소원을 들어줄 것 같죠. 가본 적 없는 터키 땅, 비에 젖은 풀 냄새가 궁금해졌어요. 목걸이에 코를 대보며 비 냄새를 찾아봤었죠. 

  태국 친구는 옴Aom. Aom은 ‘포용’을 뜻해요. 이름처럼 많은 걸 베풀어준 친구였죠. 코끼리가 새겨진 작은 보석함, 고급스러운 기념우표 컬렉션, 태국에서 가장 인기 많다는 가수의 앨범을 선물 받았어요. 무슨 뜻인진 하나도 몰랐지만 신나고 흥겨워서 자주 들었어요. 가장 많은 편지를 교환했던 친구는 도쿄에 살던 미유키Miyuki예요. 미유키는 ‘경사스러운 행운’을 뜻한답니다. 

  펜팔하며 배운 게 있어요. 언어가 안 통해도 통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낯선 것을 향한 궁금함, 호기심. 잘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비밀도 있고요. 그래서 차이는 전혀 혐오스럽지 않았어요. 나라마다 선호하는 이름이 다른 것도 재밌었고요. 터키에선 향기, 태국에선 인품, 일본에선 경사스러움, 제 이름엔 밝고 명랑하게 살라는 뜻이 들어있어요. 각나라 부모님마다 최고로 치는 가치가 조금씩 다른가봐요. 

  모국어는 저를 안심시켜요. 모국어를 이해하기란, 누워서 바나나 먹기보다 쉽습니다. 그런데 왜 학교, 직장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종종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할까요? 우리에겐 고정관념과 경험에 따라 머릿속에서 ‘자동 완성’되는 문장, 단어, 가치관이 있어요. ‘남산-타워’, ‘인천-공항’, ‘여행-제주도-서귀포-감귤’처럼... 어떤 단어들의 연결에는 아무런 노고도 필요치 않아요. 하지만 '정치', '통합', '부자'... 이처럼 저다마 머릿속 뜻이 다른 경우도 있죠. 

  요즘 저는 영어를 번역하면서 영영사전, 한영사전을 다 찾아보고 있어요. 혹시라도 뜻이 틀릴까봐서요. 그러면 구독자 분들에게 좀 창피하고 부끄럽잖아요. (공교육 12년+전화영어 2년+이러니 저러니 2년=14년은 배웠을 텐데...)

  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만약에 그 사람들 말을 외국어처럼 이해해보려 했었다면... 어쩌면 그들과 저도 손톱만큼이라도 통할 수 있었겠단 생각을 해봐요. 
 
  오늘 기사는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 '다와다 요코'에 관한 글이에요. 이 작가는 ‘엑소포니(exophony)’입니다. 모어(태어나서 처음 익힌 언어)가 아닌 언어로 쓴 문학이나 모어 바깥으로 나간 상태를 뜻해요. 만약에 낯선 외국어를 번역하듯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다정해질 수 있겠다 싶어요. (❁´◡`❁) 

  오늘의 기사 나갑니다. 텍스트 더미에 빠져보세요🧁😀
Reading Magazines
언어 사이에서 마법을 부려
세계를 만들어내다  
The Novelist Yoko Tawada Conjures a World Between Languages
  작가 다와다 요코에 따르면, 문학은 언제나 0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녀는 ‘빼기’의 달인이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외국에서 언어를 박탈당한다.


  According to Yoko Tawada, literature should always start from zero. She is a master of subtraction, whose characters often find themselves stripped of language in foreign worlds.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상황에 끌려다닌다. 이를테면 글 읽는 서커스 곰은 출판업자에게 배신당한다. 혀를 잃은 통역자, 이해할 수 없는 네덜란드 상인과 신학을 토론하는 19세기 게이샤도 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을 만들어낸,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극본가인 창조자는 소외감을 선택한다.


  They are, for the most part, at the mercy of circumstances: a literate circus bear betrayed by her publisher, an interpreter who loses her tongue, a nineteenth-century geisha discussing theology with an uncomprehending Dutch merchant. But their creator—a novelist, a poet, and a playwright—has chosen her estrangement.


  다와다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에서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책을 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조지프 콘래드처럼*, 언어를 바꿔서 쓴 적은 없다. 하지만 너무 편안해질 무렵엔, 고의적인 실험 삼아 그렇게 한다.

* 러시아 사람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영어로 <롤리타>를 썼고, 폴란드 사람이었던 조지프 콘래드는 영어로 <어둠의 심연>을 썼다.


  Tawada, who was born in Tokyo and lives in Berlin, writes books in German and Japanese, switching not once, like Vladimir Nabokov or Joseph Conrad, but every time she gets too comfortable, as a deliberate experiment.

 

  그녀가 쓴 작품은 두 나라 양쪽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런 순간에도 그녀는 주장한다. "한 사람의 모국어 역시 번역된 것이다.” 우리가 단어를 쓰는 방식엔 민족적이거나 심지어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는 얘기다.

 

  Her work has won numerous awards in both countries, even as she insists that there’s nothing national, or even natural, about the way we use words. “Even one’s mother tongue,” she maintains, “is a translation.”


  다와다의 최근 소설, <지구 전체에 흩어지다>는 일본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한다. 덴마크에 발에 묶인 난민 히루코는 같은 처지의 생존자를 찾아 나선다. 히루코는 모국어를 향한 갈망과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녀의 긴 여정은, 한 인물이 표현하듯이, “원어민의 언어가 그녀의 영혼과 완벽하게 결합돼 있다”는 흔한 생각을 시험하는 동화가 된다.


  Stranded in Denmark, a refugee named Hiruko searches for fellow-survivors, torn between longing for her mother tongue and the desire to fashion a new one. Her odyssey becomes a fairy-tale test of the commonplace idea that, as one character puts it, “the language of a native speaker is perfectly fused with her soul.”


  다와다는 ‘외국어로 글을 쓰는(exophonic literature)’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꼽힌다. 이 독특한 연습은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에 적용된다. “일본인과 일할 때는 내 안의 독일인은 내보내야 해요.” 그녀는 말한다. “ 한 가지 언어에 익숙해지고 싶진 않아요.” 


  Tawada has been described as the world’s leading practitioner of “exophonic literature,” or writing in a foreign language, a description that her unique practice has made applicable to nearly all her work. “I have to let my German go when I work with Japanese,” she has said. “I don’t want to get familiar with one language.”


  이 꾸준한 왕래는 문화적 교류보다는 실존주의적인 (어쩔 수 없는) 이동과 훨씬 관련있다 : 다와다의 새 소설을 옮긴 번역가 마가렛 미츠타니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와다는 국경을 넘는 것에 관심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국경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


  The constant shuttling has more to do with existential displacement than with cross-cultural exchange: Tawada, as the new novel’s English translator, Margaret Mitsutani, has observed, is “not nearly as interested in crossing borders as she is in the borders themselves.”


  때로 이 국경은 지리적이다. 그녀의 단편(short story) <섀도우 맨>에선, 가나의 노예 신분에서 18세기 유럽 법정으로 이르는 철학자 안톤 빌헬름 아모의 여정을 다룬다. 


  Sometimes these boundaries are geographic. In her short story “The Shadow Man,” Tawada imagines the philosopher Anton Wilhelm Amo’s journey from enslavement in Ghana to the courts of eighteenth-century Europe.


  또 다른 경우, 분리는 은유적이다. 다와다의 중편(novella) <신랑은 개였다>는 약간 에로틱한 우화로, 구혼한 남자가 개인지 아닌지 고민하는 학교 선생의 이야기다.


  In other cases, the divide is metaphysical. Tawada’s novella “The Bridegroom Was a Dog,” a slim erotic fable, concerns a schoolteacher whose suitor may or may not be a dog.


작가의 젊은 시절

  젊었을 때, 다와다는 1979년 독일로 향하는 6,000마일 철도 여행을 했다. 3년 후 영구적으로 일본을 떠났다. “어렸을 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일본어만 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도쿄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해외 책들을 수입하던 아버지를 통해 더 큰 세상의 문자들이 드러났다. 다와다는 와세다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다. 심화 공부를 하려고 소련에 가길 간절히 원했다.- 물론 냉전이라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났지만.


  As a young woman, Tawada took the same six-thousand-mile railway trip, on a visit to Germany in 1979; she left Japan permanently three years later. “When I was a child, I thought all people in the world spoke only Japanese,” she has said. But a larger world of letters revealed itself through her father, who owned a bookshop in Tokyo and imported titles from abroad. Tawada studied Russian literature at Waseda University and yearned to pursue further study in the Soviet Union—an impossibility, as it turned out, because of the Cold War.


  대신에, 다와다는 함부르크로 갔고 처음으로 회사에 취업했다. 아버지 책방에 책을 공급하던 회사중 하나였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거투르드 스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발터 벤야민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파울 첼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울 첼란은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말했다. 그의 시는 언어와 번역에 관한 그녀의 반국수주의적(anti-nationalist) 비전의 모델이 됐다.


  Instead, Tawada went to Hamburg, where she initially took a job at one of the companies that supplied her father’s bookshop. At Hamburg University, she fell under the influence of writers like Gertrude Stein, Jorge Luis Borges, Walter Benjamin, and especially Paul Celan, a German-speaking Jew from Romania, whose poetry became a model for her anti-nationalist vision of language and translation.


  다와다는 1987년 첫 책인 2개 국어로 쓰인 시집을 출간했고, 독일과 일본에서 꾸준히 호평받았다. 2004년 소설 <The Naked Eye>는 중요한 돌파구가 됐다. 이 소설은 독일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쓰였다. 5문장 간격으로 언어를 번갈아 쓰는데, 마치 흐름을 끊는 강렬한 웃음을 자아내는 고독한 놀이 같다. 


  Tawada published her first book, a bilingual poetry collection, in 1987, and steadily won acclaim in Germany and Japan. A major breakthrough came in 2004, with the novel “The Naked Eye.” She wrote it in German and Japanese simultaneously, alternating languages at five-sentence intervals, as though playing a solitary game of exquisite corpse.


  아마도 다와다의 가장 훌륭한 작품인 이 소설엔, 동베를린에서 납치된 베트남 고등학생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젊은 공산자 지도자들에게 연설하기 전이다. 그녀는 파리로 도망치는데, 비극일 수도 있었을 이곳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처럼 터무니없고 신나는 모험지로 바뀐다.


  Perhaps her finest work, it is narrated by a Vietnamese high-school student who’s abducted in East Berlin before delivering a speech to other Communist youth leaders. She escapes to Paris, where what might have been a tragedy shades into a down-and-out adventure as absurd and exhilarating as Dostoyevsky’s “Notes from Underground.”


  소녀는 까드린느 드뇌브의 영화에 빠져들면서 거리생활의 탈출구를 찾는다. 극장으로 향하는 여행은 또다른 현실로 이어지는 입구가 된다. 

 

  The girl takes refuge from street life in an obsession with the films of Catherine Deneuve. Her trips to the cinema become portals to an alternate reality.


  이 소녀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신경쓰지 말라. 결국 부유한 동포가 그녀를 받아들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위장)’가 더는 베트남어를 참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프랑스어 배우길 거부한다. 그녀가 비밀스레 털어놓듯이, 영화는 그녀의 자유에 필요한 단 하나의 언어다. “나는 이름 없는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스크린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never mind that she can’t understand a word. Eventually, a wealthy compatriot takes her in, but the girl finds that her “stomach” can no longer endure Vietnamese, and she refuses to learn French. Movies are the only language that her freedom requires, as she confides to Deneuve’s image: “I was studying a science that had no name. I was studying it on the screen, along with you.”


25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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