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요일
💌 여성환경연대 뉴스레터 💌 
그제는 촉촉한 봄비가 내렸어요. 님은 비 오는 날 좋아하시나요? 요 며칠 황사와 미세먼지가 좀 걱정되었는데, 쏴아- 세상이 깨끗하게 씻긴 것 같아 기분도 맑아집니다. 산뜻한 봄이 되어 기운이 좀 올라오나 싶었는데, 왜인지 마음이 분주하고 잘 정리되지 않은 일상을 보냈었어요.

그러다 오늘 뉴스레터의 인터뷰이인 '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래 맞아, 나도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지! 지금 그 일들을 하고 있었군!' 하면서 전구들이 뿅뿅 켜지더라고요. 

줌 화면 너머로 '면'의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누구도 착취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는 삶을 꿈꾸고 실천하는 그의 삶이 참 멋지게 다가왔어요. 두 번째 인터뷰이, 에코페미니스트를 소개할게요. 오늘의 뉴스레터도 잘 읽어주세요 :)
썸머 🌊

안녕하세요. 면은 어떤 사람인가요?

반가워요. 이름은 최미연이고 ‘면’이라는 활동명을 쓰고 있어요. 영화를 전공했고요,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영상과 사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맛있는 걸 먹었을 땐 좋아하는 사람들과 꼭 나눠 먹고 싶은 사람이에요. 좋은 것이 있다면 누군가와 공유하고 같이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 

여성환경연대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제 삶에서 여성환경연대와의 만남은 아주 강렬한 경험이었는데요. 2015년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기후행진에서 저는 영상팀으로 시위 전경을 찍고 있었는데요. 그때 멋진 언니들이 아주 큰 면 월경대 현수막을 흔들고 있는 거예요. 저 사람들은 누굴까, 나는 왜 저들의 존재를 이제야 알았을까- 하며 여성환경연대를 반짝이는 눈으로 보게 되었어요. 


그다음 해에 여성환경연대 지부인 초록상상에 1년 정도 상근 활동가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제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더라고요. 전 초록상상이 위치한 중랑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 이제껏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했어요(하하) 무엇보다 같이 풀뿌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참 반가웠어요. 그때부터 여성환경연대와 적극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네요.

*위 사진은 2017년 여성의 날  
초록상상에서 일하기 전과 이후에 면의 삶에 달라진 것들이 있나요?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오랫동안 채식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삶에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초록상상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그야말로 날고 기는 에코페미니스트 언니들이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대안적 삶을 몸소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죠. 일상 속 아주 사사로운 부분까지도요. 단적인 예로는 휴지 대신 소창을 사용한다거나,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월경대를 직접 만들어 쓴다거나 말이에요. 이전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삶의 방식이었어요. 언니들 곁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질문들이 생기더라고요. ‘과연 이게 필요한 물건일까?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하고요.


어느 순간부터 저도 빵집을 가거나 가게를 들를 때 자연스레 종이나 천 가방을 챙기거나 늘 쓰던 팬티 라이너도 더 이상 안 쓰게 되고, 가방 한구석에는 늘 다회용기를 넣어 다니고 있더라고요. 지금 제 방에는 쓰레기통도 없어요. 없으면 그저 없는 대로 살아지는 경험을 한 거죠.


누군가에게는 유난스럽게 여겨지는 부분도 초록상상 언니들과 있으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괜찮은 삶이지, 내가 바라던 삶이 이런 거였지 하는 안도감과 안전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 몸과 삶에 부대끼고 부차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덜어내고 비워내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어요. 익숙했던 것에 자꾸 질문 던지는 습관이 초록상상에서 일한 후 가장 큰 삶의 변화라 생각해요.

*2019년, 초록상상 활동가들과 연남동에서 월경피크닉!

면이 현재 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에코페미니즘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요즘 하는 일은 한독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사진 및 영상으로 보조 교사 일을 하고 있어요.


이곳은 베를린 지역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고 위안부 관련 캠페인과 지역 청소년 활동 사업을 많이 하는 단체에요. 작년에는 베를린의 ‘위안부 박물관' 홍보 영상을 제작했고요.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앞선 질문과도 마찬가지로 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미 지나간 과거로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국가에서 한국이나 아시아 전반에서 일어났던 전시 폭력이 가져다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지금의 시대에는 어떻게 그 의미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거든요. 그런 질문의 행위가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돕는 동력인 것 같아요.

일과 에코페미니즘과의 연관성은 최근 경험한 일이 떠오르는데요.


청소년 워크숍 식사를 준비하면서 어느 선생님께서 삶은 계란을 제안하셨어요. 비건인 저는 꽤 오랫동안 이 부분을 고민했었거든요. 단체가 이야기하는 전시 성폭력을 폭넓게 이해한다면, 다른 종이 겪는 성 착취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달걀이나 우유를 생산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닭과 소가 대량생산을 위해 평생 강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거대한 공장식 축산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죠. 살아있는 동안은 내내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이게 꼭 필요할까, 이렇게까지 하며 마셔야 할까 생각하면 당연히 아니라는 대답이 나와요. 왜 우리는 이걸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행사에서는 비건식으로 하는 게 어떨지 제안했는데 걱정과 달리 아주 흔쾌히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저한테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생명도 착취하지 않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을 의미해요. 그게 단체에서도, 다른 이들에게도 잘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저에게는 잊히지 않는 경험으로 남아있어요.

에코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느끼는 삶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과 베를린에서 느껴지는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된 거예요.


처음 채식을 시작했던 계기가 고등학교 때 한미 FTA 광우병 사태를 접했을 때였는데요. 고기를 생산할 때 이뤄지는 공장식 축산의 진실을 알게 되었어요. 인간의 욕망으로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착취당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게 된 거죠.


내가 그동안 먹어온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엄마이자, 가족이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었구나 하는 충격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문제를 들여다볼수록 결국 세계 내전과 젠더 불평등, 개발 문제 등과도 같은 맥락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로가 다 맞닿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제 안에서 새로운 시선과 감각, 감수성이 생기니 이전에는 당연하다 느꼈던 것들도 다시 짚어보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삶의 방식도 바뀌게 되었고요. 


독일은 겨울에도 난방을 거의 켜지 않는다거나 매주 일요일이 되면 각자 집 문 앞에 박스를 놔두고 안 입는 옷이나 신발, 가전제품을 놓고 자연스럽게 서로 나눠 가지도록 하는 문화가 있어요. 또 저희 집 5층에 사시는 이웃분이 음식 구조를 하시는 분이에요. 대형마트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했다고 버리지만 실제로는 멀쩡한 식재료거든요. 매번 거기서 얻은 빵을 저에게 나눠주세요.


자원 순환이나 검소한 문화가 독일 사회의 일상 전반에 녹아져 있는 것 같아요. 에코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도 유난 떨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제 존재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봐줘서 정말 좋답니다.

*베를린에는 구조된 식재료들을 무료로 나눠주는 지역 시민 단체

면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덜어내는 삶이요.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는 삶이 저에겐 되게 중요한 삶의 가치예요. 사실 많은 소비들이 내가 원해서 사기보다는 사회적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경우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걸 다 덜어내고 삶의 본연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인 것 같아요. 
*베를린 도심 내 전철 광고판에 실린 월경컵
면의 삶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똥고집!


제가 순둥순둥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생각한 신념대로 하지 않으면 잘 못 배기는 편이에요. '이것만은 내가 절대 양보하지 못하겠어!' 하는 부분이 있으면 꼭 지키려고 해요.


아마 그래서 거의 12~13년 동안 채식을 하는 비건이자 에코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 더 편해요.

*면이 요즘 좋아하는 된장, 메이플시럽 바른 당근 구이

면은 먼 훗날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나요?

지금처럼 요리해 먹는 것을 꾸준히 즐긴다면, 다양한 레시피를 터득한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저는 제철 음식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최근에는 명이나물을 채취해서 먹었어요. 자연이 주는 선물이잖아요. 할머니가 되면 그땐 할 수 있는 요리가 얼마나 더 많아질까 하는 기대가 생겨요.

또 초록상상이나 여성환경연대의 멋진 활동가 언니들을 만난 것처럼 앞으로도 좋은 사람이나 경험을 만날 기회를 마주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지금의 똥고집을 앞세워서 도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면이 좋아하는 무포장 채소 슈퍼마켓 매대

면이 생각하는 ‘에코페미니즘’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착취하지 않는 삶이라 생각해요.

누군가의 삶과 노동을 쉽게 착취하지 않는 삶이 에코페미니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총알 배송을 통해서 내가 얻어지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젖이 비대해지고 몸이 망가져 가는데도 고기나 우유를 얻는 것이 얼마나 마땅한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어요.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노동착취를 아예 배제하면서 살아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각자가 정해둔 기준이 있다면, 어느 정도 좋은 삶을 지향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에코페미니스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기 삶에서 가장 부대끼는 점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질문 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무언가를 했을 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 내 생활에서 자꾸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면 사실 꼭 필수적인 것이 아닐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럴 땐 잠시 멈춰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맞는 거야?’하고 물어봐 주면 좋겠어요. 조금씩 덜어내고 가뿐하게!


무엇보다 우리는 태어난 걸로 제 소명을 다했기에, 조금 은 자신에게 관대했으면 좋겠어요.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이미 충분히 잘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가 많더라고요. 스스로를 잘 보듬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살~살~ 살아요. 우리!

🍏 살던대로 살자!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이사 팁에 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사가는 입장에서 처리하기 힘든 큰 물건들을 흔쾌히 받아주면 너무 좋을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원룸살이 할때는 참 쉽던 일인데, 왜 점점 머쓱해졌는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일반쓰레기랑 음쓰랑 섞어서 버리는데가 있다니 너무 놀랍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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