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겠습니다.
이성혁

광고 촬영을 했습니다. 모 금융사 어버이날 인터뷰 촬영이었습니다.


광고 촬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몇 주 전 수요일이었습니다. ‘숲물결’ 계정으로 메시지 하나가 왔습니다. 신한은행에서 어버이날 특집 인터뷰를 준비 중인데, 이전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알게 되었다며 아버지의 세탁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인터뷰를 담고 싶으니 꼭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하길 좋아하기에 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회신했습니다.


PD님에게 전화가 와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의견을 묻기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고, 엄마는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는 어떠실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아버지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당시, 많은 사람이 가게에 찾아와 곤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TV에 나오는 일은 큰 부담을 가지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유 퀴즈’ 이후로 여러 방송사에서 섭외 전화가 왔지만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소시민에게 큰 관심은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남기고 싶었습니다. 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녁에 일을 모두 마치고 아버지의 세탁소로 향했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완강하셨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설득을 도와주시고, 아빠와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저의 진심이 통해서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PD님에게 촬영을 하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PD님은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전 미팅 일정을 잡았습니다.


사전 미팅은 아버지의 세탁소 앞 카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7년 전 만났던 PD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미팅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부자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와 저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생각부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1990년부터 말입니다. 오랜 이야기를 마치고 PD님들과 아버지의 세탁소로 갔습니다.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 PD님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촬영 날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 촬영 날이었습니다. (이 편지는 4월 30일에 쓰고 있습니다.) 오늘 제 일정은 새벽 6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어나서 잠에서 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서 겨우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새벽에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습니다. 잠이 번쩍 깨지는 않았지만 깨야만 했습니다. 7시에 아버지의 세탁소로 촬영팀이 오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요청을 드렸습니다. ‘상호 노출’이 안 되게, 최소한의 촬영팀만 부탁드린다고요. 요즘 아버지의 일이 많아서 힘드신데, 일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나오시기 전에 제가 세탁소 문을 열어서 스태프분들이 촬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태프분들은 아침으로 김밥을 먹으며 분주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굉장히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생각하기도 했고요. 촬영 준비가 거의 끝나갈 즈음 아버지는 세탁소로 출근하셨습니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고 생각보다 많이 온 인원에 투정을 부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음향 담당 스태프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차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탁소 밖에서 감독님과 조그만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다 세탁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버지가 가장이 된 것은 12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12살 때 아버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유는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태어나기 수십 년 전 이야기이니까요.


여러 일을 했지만 세탁소 일이 가장 잘 맞았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원래 꿈은 경찰이나 군인이었지만, 당시 채용 기준 신장보다 키가 작아서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세탁소에 정착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청년이 되어서 일을 하다 엄마를 만나셨습니다. 엄마를 만나 누나를 낳고 지금의 세탁소로 오셨다고 합니다. 한 형제가 운영하는 세탁소를 인수하셨다고 했습니다.


PD님이 세탁소를 인수했을 때의 기분을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는 인수 전 다른 곳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 첫날에 15만 원을 벌어서 기뻤다고 하셨습니다. PD님이 그래서 정말 좋았겠다고 말하자 아빠는 좋긴 했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힘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지금까지 38년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다리미 앞에서 38년 동안 서 있다 보니 아빠가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은 깊게 파여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계속한다면 돌도 닳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계속 모니터를 보며 듣다 그만두었습니다. 다른 PD께서 이따 인터뷰를 하려면 안 듣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멀리서 모습만 바라보았습니다. 한 시간 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아버지의 눈과 PD님의 눈, 그리고 촬영 감독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아버지 인터뷰를 마치고 PD님은 7년 만에 다시 왔으니 7년 뒤에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PD님은 서로 울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의 인터뷰는 그렇게 마쳤고, 저의 인터뷰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대관한 카페는 넓고 조용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다른 촬영자가 인터뷰 중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많이 본 한 여성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릴스를 찍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층으로 올라가 헤어메이크업을 했습니다. 괜히 연예인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진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헤헤)


메이크업을 받으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맡아본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정우성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잠시 대기하다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질문이 오고 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아빠가 세탁소를 운영해서 성혁 씨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깨끗한 교복을 입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했습니다. PD님은 사실 아빠가 젊은 시절 여고생들의 교복을 다림질할 때마다, 나중에 아빠가 되면 자식들 교복을 반듯하게 다려주고 싶다고 인터뷰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빠가 아빠가 된다는 상상을 했던 것이 생각나 눈물이 날 뻔했고, 12살에 가장이 되어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참 많은 것을 받고 자란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은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는데, 저는 주말마다 아빠가 저를 데리고 여행을 갔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PD님은 저의 대답에 왜 아빠가 여행을 많이 데려간 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냥 아빠가 여행을 많이 가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라고 했습니다. PD님은 아빠에게는 그런 ‘아빠’가 없어서 같이 여행을 많이 가는 아빠가 되고 싶으셨다고 했습니다. 젊은 아빠에게 아빠의 부재가 그리 컸는지 저는 이제껏 잘 모르고 자랐습니다. 아빠에게 아빠가 얼마나 많이 필요했을까요.


그리고 아버지가 영상 편지를 쓰셨는데 성혁 씨도 쓰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빠가 썼던 것을 보여주시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저 혼자 영상 편지를 썼습니다.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것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고, 모든 걸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 시간이 왔습니다. PD님은 다시 태어나면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다시 그대로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기 싫다고도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아빠의 아빠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빠의 아빠로 태어나 아빠가 해준 그대로 아빠에게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빠가 없었던 아빠에게, ‘아빠’는 얼마나 좋은 아빠였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아빠가 인터뷰를 마쳤을 때와 동일하게 제 눈에도, PD님 눈에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PD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겠습니다. 몇 초 보다 멈추게 됩니다. 눈물이 계속 흘러서요. 저 대신 봐 주세요. 좋아요도 눌러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솔직한 마음]을 마칩니다. 오늘은 조금 이르게 보냅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2026년 5월 8일

누군가의 아들

이성혁 드림


2026. 5. 8.
휴재 용서를 구하는 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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