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가 명탠가
『대구』를 펴자마자 혼란스러워졌다. 생물학ㆍ생태학의 대가라는 최재천 교수의 ‘감수의 말’ 때문이었다. 최재천 교수는 대구와 명태를 섞어서 글을 썼다. 대구에 관한 『대구』라는 책을 ‘감수’하는 자리에, 바리톤 오현명의 노래로 유명한 〈명태〉를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명태가 ‘대구목-대구과-대구속’에 속한 생물이며 영어로 pollack cod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둘은 분명 다른 종의 생물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대구와 명태의 모양과 맛을 단 한 번도 혼동하지 않았다. 대구탕, 뽈찜, 대구포 그리고 생태탕, 동태탕, 코다리찜, 먹태 등등 대구와 명태를 엄정하게(아니 자연스럽게) 구분하며 먹어왔던 나로서는(저만 그런가요?) 이해하기도 동의하기도 어려운 서술이다.
그러고는 최재천 교수는 명태의 어원과 명란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좀 하다가, ‘감수의 말’ 결미부에서 “문득 나는 명태, 즉 폴락대구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졌다”며 또다시 대구와 명태를 섞어 마무리했다. “대구와 명태의 대서사를 적다보면 자연스레 인류의 생태 문화사를 기록하게 된다. 바다가 비어가고 있다.”(본문 9~1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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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ㆍ사자ㆍ호랑이는 모두 ‘고양잇과-표범속’에 속하는 동물이다. 셋을 혼동해도 될까? 표범 소개하는 책을 호랑이 이야기로 시작하고, 사자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호랑이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해도 되나? ‘감수監修’란 책의 저술이나 편찬을 지도한다는 뜻의 단어다. 최재천 교수는 무엇을 어떻게 지도했을까?
이 ‘감수’는 어떤 성질의 것일까? 명태와 대구쯤은 섞어서 생각해도 된다는 것은, 삼면이 바다이고 수산물 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지만, 기실 바다와 수산水産에 대한 이 사회 전반의 뭉툭한 인식과 무관심, 또 그로 인한 약한 구별지와 연관되는 거 아닐까? 해양수산부가 서울이나 세종에 있어도 아무 상관없는 그런 무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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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의 정치경제학
그런 점과 무관하게 『대구』는 흥미롭게 잘 읽힌다. 원저가 나온 지 좀 오래됐지만, 자연과 음식과 역사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많은 책이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모든 먹거리는 역사적ㆍ정치적ㆍ경제적 연유를 갖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물신성’이 가장 강한 상품의 하나일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의 어떤 노동에 의해 어떻게 생산․유통되고, 어떻게 값이 매겨지는지 그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먹거리가 지닌 미적 대상성은 이런 성질을 배가시킨다.
조리된 음식을 먹을 때는 더 그렇다.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거나 배달된 치킨을 먹으면서 그 김치가 어디서 누가 키운 배추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키운 닭을 어떻게 잡아 만들었는지,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음식을 보고 냄새 맡고 먹는 일은 그만큼 강력한 감각적ㆍ물질적인 일이다.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 배를 채우고 혀와 코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모든 먹거리는 그래서 자연과 산업의 역사가 결정한 산물이고, 그것을 재료로 사람이 만든 요리에는 더 깊이 정치ㆍ경제, 종교ㆍ문화 따위가 개입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먹거리는 국경을 두세 번 넘은 재료들로 만든 ‘글로벌 문화ㆍ정치ㆍ경제’의 산물이다.
먹거리가 지닌 역사성과 정치성의 문제를 『대구』는 대구를 통해 잘 일깨워준다. 강한 생식력을 지닌 생물이자 크고 살이 많은 물성을 지닌 대구는 엄청난 대용 식량이 돼왔다고 한다. 춥고 황량한 땅에 살던 북대서양 연안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 세계를 상대하고 또 세계를 지배하는 데 동반자 구실을 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바이킹이라는 깡촌 사람들이 영국과 북유럽 땅을 정벌할 때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 정착한 식민지인이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귀족 행세를 하고 그래서 결국 독립국가 USA를 만들 때에도 대구가 기여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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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그래서인지 『대구』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선정 ‘일생에 읽을 책 100’, 뉴욕시립도서관 선정 ‘최고의 책’ 등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 책이 극찬을 받고 열렬히 읽힌 것은, 미국의 독립과 남북전쟁 같은 미국 형성사에 대한 미국인과 유럽인의 관심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인은 물론, 영국과 유럽 대륙의 사람들은 메이플라워호의 항해로부터 남북전쟁과 서부 개척 시대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에 아주 관심이 많다. 그것은 미국의 ‘건국 신화’이자 대서양 백인의 세계 정복사이기도 하여, ‘고전’으로 읽히기도 하면서 계속 변주되어 만들어진다. 『대구』는 뉴잉글랜드 뉴펀들랜드1) 같은 지방에서의 대구 어업의 발전과 북미의 근대 정치사의 연관을 잘 다뤘다. 후반부에서도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어업 분쟁에 초점을 맞췄다.
그랬기에 이 책은 한계가 있다. 부제에서 대구를 ‘세계사world history를 바꾼 물고기’라고 했지만, 그 세계는 북반구 대서양 이쪽저쪽 백인의 세계에 불과하다. 그것도 영미권에 치우쳐 있다. 뭐 이런 딴죽조차 이제 거의 상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자주 백인의 안중에는 광대한 아시아ㆍ아프리카ㆍ남아메리카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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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여, 돌아오라!?
명태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 마무리한 최재천 교수의 ‘감수’를 다시 상기한다. 한국인에게 대구보다 명태가 훨씬 중요하고도 친근한 생선이라는 사실은, 각각에 대한 책의 종수로도 잘 드러난다. ‘대구’가 들어간 책 제목을 검색하면 ‘보수의 심장’이라는 그 대구大邱에 관한 책은 여럿 있어도, 입 큰 생선 대구大口에 관해 한국인이 쓴 책은 (거의) 없다. 명태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책은 여러 권 있다. 명태가 한국인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명태를 타고 온 아이』 『명태가 노가리를 까니, 북어냐 동태냐』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명태, 우리 바다로 돌아올까?』 『조선시대 해양환경과 명태』 같은 책들인데 왠지 어린이용 책이 많다. 그리고 『돌아오라, 명태여』 『나는 명태입니다』 『명태의 이유 있는 가출』 『명태를 찾습니다!』 『명태 돌아오라』 같이 뭔가 애타는 말로 된 제목의 책들도 있다. 저 제목들은, 그렇게 오래 싸고 친근하게 한반도 주민의 먹거리가 돼준 명태가 동해 바다에서 떠나버렸던 유명하고도 구체적인 사실을 맥락으로 한다.
명태는 1980년대엔 한 해 10만 톤 이상 잡혔으나, 1990년대에는 1만 톤 밑으로 떨어졌고, 결국 2008년엔 어획량 0을 기록했다고 한다. 명태 어획이 한동안 금지될 정도로 명태는 귀해졌다.2)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의 명태 실종 상황은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남획’이나 수산업 문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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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은 양식 기술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최대 성과이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아 아무도 양식을 하지 않으려 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었다. 찬 바다 환경을 인공적으로 맞추고 명태를 상품성 있는 체장으로 키우는 데 대략 3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것도 문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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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분야 진짜 전문가인 정석근(제주대 해양생물학부) 교수는 명태가 어민들의 남획 때문에 실종되었고 그래서 바다가 빈다는 식의 주장이 너무 쉽고 어민이라는 ‘약자 탓’ 하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명태의 경우는 기후 변화에 따라 명태 서식 남방 한계선이 북쪽으로 대폭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수년에 걸쳐 크게 벌였지만 여전히 성과가 별로 없다. 요즘 우리가 먹는 명태와 명란의 대부분은 러시아 오호츠크해나 미국 알래스카 근해에서 잡힌 것이다. 정석근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무서운 일이고 명태가 돌아오면 좋겠지만, 명태가 없어도 ‘바다가 비지는 않는다’고 한다. 기름 대량 유출 같은 완전한 오염 상태가 아니라면, 바다 생태계의 변화는 항상적인 것이라 뭔가 떠나면 또다른 바다 생물들이 와서 채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3)
『대구』의 마지막 장도 어업 기술의 발달과 어획 경쟁으로 인해 대구가 잘 잡히지 않거나 어획이 금지되는 현실에 대해 쓴 것인데, 이를 책 뒤표지의 카피처럼 “무한한 인류의 탐욕에 관한 날카로운 보고"라고 의미화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오히려 신중하고 모호하다. 저자는 물음표(?)가 여럿 쓰인 문장으로 고래잡이와 대구 남획 문제를 비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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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말로 모두 끝난 것일까? 자연에서 식량을 수집하는 이 최후의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게 될까? 이것이야말로 자연산 식량의 최후란 말인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과 우리의 마지막 유대는 머지않아 가끔 먹는 꿩고기처럼 예기치 않은 진미로만 남게 될까? (…) 고래를 사냥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고래를 구경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자연은 오락과 교육을 위한 귀중한 예시로 축소되는 중이며, 이는 사냥보다 훨씬 덜 자연스러워 보인다. (…) 고래는 포유류이며, 포유류는 한 번에 100만 개의 알을 낳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상업적 사냥을 포기한 대신 가축용 포유류를 길러 고기를 조달하며, 야생의 포유류는 최대한 잘 보전하려고 한다. 물론 포유류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죽여 없애는 쪽이 더 어렵다. 하지만 1000년에 걸친 대서양대구 사냥 이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_본문 30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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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호해야 하지만 고래와 대구는 다르다, 규제가 필요하기는 하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책은 보론까지 실어 전 세계의 맛있는 대구 요리를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대구를 조금만 잡아 맛있게 요리하면 된다는 걸까?
바다와 어업의 정치적ㆍ생태학적 문제는 지구 그 자체만큼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충분한 지식과 정보 없이 하는 말들이 쉽게 먹히거나 정부의 정책으로 되는 일이 늘 일어난다. 실로 많은 사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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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잉글랜드는 미국 북동부 대서양 연안의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 버몬트주, 메인주, 뉴햄프셔주의 6개 주인데, 바로 초기 미국 이민이 이루어진 지역이다. 뉴펀들랜드는 캐나다 동북부의 그린란드를 바라보는 대서양에 면한 섬이다.
2) 남종영, 「‘집 나간’ 명태, 소빙기가 끝난 걸까요?」, 한겨레 2024년 10월 14일.
3) 정석근, 『정석근 교수의 되짚어보는 수산학: 파렴치범이 된 대한민국 어민들』, ㈜베토,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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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민윤슬
바닷가에서 자라 바다 생태계와 해양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로망을 갖고 있지만, 오늘도 마지못해 서울에서 먹고 살고 있다. 더 공부하여 더 많은 포구를 돌아다니고 생선회를 비롯한 한국인의 어식 문화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 목표다. <책과 참치>에서 먹고 사는 이야기와 바다에 관한 책에 대해 쓰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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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대구 #최재천 #음식의역사 #음식의정치경제학 #정석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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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로 돈을 번다는 것
: 신뢰와 커뮤니티, 스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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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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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떻게 제목을 달아야 사람들이 많이 볼까…?’
이는 온라인에서 읽히는(보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고민해온 질문일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눌리지 않으면 ‘꽝’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제목을 왜 달아야 되나?’
좀 엉뚱한 질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보는 습관과 관련해 굉장히 큰 전제를 건드린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접하는 하나하나의 글은 익명에 가까울 정도로 대체로 생산자가 감추어져 있고 독자와 필자는 인터넷 플랫폼에서 단지 우발적인 데이터 입자들로만 존재하기 때문에―글 조각 하나하나마다 ‘어떤 차원에서든 기분 나쁠 정도로 직관적으로 내장이나 뇌에 어필하는 제목’(그럴수록 PV가 높아진다)을 달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건 독자에게도 필자에게도 꽤나 피곤한 일인데, 독자 입장에서는 매 제목을 누를 때마다 ‘낚시성 콘텐츠가 아닐까’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며, 필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매번 200자 원고지 4~5매짜리 기사에도 제목을 만들어 다는 게 귀찮다는 걸 넘어 그 제목에서 삐져나오는 좀 쓸데없는 이야기라든지 등을 포함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뢰다. 예를 들어, 난 어린 시절 잡지를 이런 식으로 읽지 않았다. 그냥 음악에 관심이 있으니까 마음에 든 음악 잡지를 구독했고, 제목 하나하나를 훑어보고 기사를 읽기 시작하기보다는 그냥 펼친 면에 놓인 것을 아무렇게나 읽어갔다. 요는, 그곳에는 이미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고, 나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똑똑하고 별난 어른들의 집에 놀러 간다는 느낌으로 잡지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적어도 잡지를 읽을 땐 잡지 필자들이 제목으로 나를 기만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하진 않았다).
그리고 잡지와 오늘날 인터넷에서 보는 대부분의 콘텐츠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인터넷-종이의 차이도 있겠지만―역시 돈이다. 그리고 이 ‘돈’의 차이는 생각보다 콘텐츠에 있어 본질적인 것일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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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본 철학자·비평가 아즈마 히로키의 『지知의 관객 만들기』(지비원 옮김, 메멘토, 2025)를 읽으면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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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히로키는 『관광객의 철학』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사상가로 20대에 쓴 『존재론적, 우편적』이 순수 학술서로서 3주 만에 1만 3000부가 팔릴 정도로 일본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30대엔 『퀀텀 패밀리즈』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다. 대학에서 가르쳤고, 비평가로서도 인지도가 높았다.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진짜 내 인생이 아닌 듯하다는 위기감이 들었”(본문 25쪽)기 때문에 그는 갑자기 대학 문을 박차고 나와 2010년 ‘겐론’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출판, 카페 등의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지의 관객 만들기』의 원제가 ‘겐론전기ゲンロン戦記’인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의 경영분투기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회사 경영을 잘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그는 초장부터 믿었던 직원에게 배신당하고, 터무니없이 사치스러운 책을 시장성은 생각도 안 한 채 수천 권이나 찍어버리는 바람에 막대한 금액을 손해 보는 등 온갖 엉망진창과 실패의 연속이다.
그래도 실패로만 점철된 세월은 아니었으며, 그는 외부의 지원 없이 유료 구독자로만 어느 정도 기업 운영이 가능한 것을 넘어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대목은, 크게 두 가진데 그가 유료화, 그것도 꽤 높은 가격의 유료화를 처음부터 밀고 나갔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꽤 성공적인 전략인 것으로 증명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유료화를 강력하게 고수, 추진한 주된 이유가 꽤 낯설고 흥미로웠다는 점이다.
우선, 책에 따르면 겐론 카페의 두 가지 주된 특징은 쓸데없는 것까지 포함하는, 엄청나게 긴 토크와 일반적인 동영상 등 콘텐츠 과금 인식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비싼 콘텐츠 값이다.
겐론 카페의 생방송 요금은 1회에 1000엔이며 재방송은 500엔이고, 무제한 시청 구독료는 월정액 9800엔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후 제작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시라스’는 동영상 한 편당 시청 요금이 대략 500엔~2000엔 사이이며 월 구독은 약 7700엔 수준이다(2025년 5월 현재). 영화 한 편 값이라든지 OTT에 비해서도 꽤 비싸지만, 통상 학자나 저자의 토크콘서트를 온라인으로 녹화해둔 영상이 거의 ‘무료’로 유튜브 등에 풀리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결코 싼 값이라고 하긴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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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도 없는 저품질의 콘텐츠에 무작정 비싼 값을 매긴다고 해서 팔릴 리 없다. 처음엔 내심 ‘그래도 아즈마 히로키니까 이 정도 받을 수 있었겠지…’라고 좀 불퉁한 마음가짐으로 이 대목을 읽어갔는데, 알고 보니 아즈마 본인은 한 달에 1~2번 출연할까 말까라고 하고 겐론 카페의 유료 독자들은 초반엔 기존의 아즈마 히로키 팬이 대다수였는데 점점 여성 독자를 포함한 팬 이외의 독자 비율이 늘어났으며 전체 구독자 가운데 인문학 종사자들보다도 IT기업 종사자, 자영업자 등 ‘아亞인탤리층’의 비율이 30%를 넘어섰다고 한다.
여기서 바로 겐론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겐론 토크와 다른 북토크들의 가장 큰 차이는, 정규 시간은 2시간으로 적혀 있지만―네 시간이고 다섯 시간이고 저자와 독자가 원할 때까지 길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즈마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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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론 카페의 토크는 실질적으로 시간제한이 없습니다. (…) 실제로 대부분의 행사가 예정 종료 시간을 넘어 계속되고, 다음날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 겐론 카페에 오면 많은 게스트분들이 기꺼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이야기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 게 지금 사회에는 학자와 창작자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이야기할 곳도, 청중이 이를 마음껏 들을 곳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_본문 76~80쪽.
저는 가끔 의사소통에는 ‘오배송(오배誤配)’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메시지가 본래 전달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잘못 전달되어버리는 것, 원래 몰라도 좋았을 것을 어쩌다 알게 되는 것, 이런 ‘사고’가 오늘날에는 위험이나 잡음으로 파악되기 일쑤인데,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고, 즉 오배송이 바로 혁신이나 창조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겐론 카페는 그야말로 이런 ‘오배송’을 위한 공간입니다. 진행자와 게스트가 오래 이야기합니다. 생각지 못한 것도 이야기하게 돼요. 관객끼리도 생각지 못하게 만나고요.
_본문 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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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관심 있는 학자가 ‘맘껏’ 떠드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값이 비싼 게 무슨 상관일까? 다들 1분 이하의 영상만 본다는 ‘쇼츠 시대’에 4~5시간 떠드는 영상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겐론의 ‘수다’는 쓸모뿐 아니라 쓸모없음을 포용하는 콘텐츠이고, 오배를 포용하는 콘텐츠다. 그렇기에 ‘관객’을 모을 수 있었다.
이어 흥미로운 점은, 그가 ‘유료화’를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였다(일각에선 ‘사회정의’를 위한 콘텐츠는 무료로 해야 하지 않냐고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통상 언론사, 미디어 등이 콘텐츠 유료화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품을 만드는 덴 돈이 들어가니까 상품을 돈 내고 사라’는 차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돈이 든다. 이 말도 중요하고, 아즈마가 이런 측면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그는 책에서 그보다는 ‘유료화’가 온라인에서 소통의 ‘스케일’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이를 통해 유의미하고 안전한 커뮤니티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래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시라스의 준비 사이트에 올라왔던 소개문의 일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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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에서는 다들 자신의 일부를 팔아 조회수를 올리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똑같은 말밖에 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시라스는 광고모델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무료 방송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00만 명이 봐도 의미가 없습니다. 한때 화제가 되기보다 100명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창작자와 그런 방송을 보고 싶은 관객을 동시에 지원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_본문 21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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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겐론 카페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장면. 왼쪽부터 지역활동가 고마쓰 리켄小松理虔, 이시도 사토루石戸諭 기자,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 ⓒ겐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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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연결성이 무조건 장점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그는 역으로 의도적으로 닫았고 적정 소통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커뮤니티를 유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과금이 필요했다.
이뿐 아니라, 돈을 지불하는 행위를 통해 참여자들은 단지 ‘소비자’ ‘지나가던 사람’에 머무르기보다는 적극적인 ‘관객’이 되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모임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이곳에선 악플보단 생산적인 토론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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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론 카페를 7년 동안 운영한 경험에서 말할 수 있는 사실인데, 결제 금액이 소액이라도 스트리밍을 유료로 하면 악성 댓글 사태가 일어날 여지가 압도적으로 줄어듭니다. (…) 말꼬리를 잡는 누리꾼은 애초에 한 푼도 낼 생각이 없기 때문에 (…) 이들을 충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유료로 하면 공적인 장의 발언이 아니라 ‘사적 공간의 대화’라는 인상을 받는 심리가 작동하는 모양입니다. (…) 겐론 카페가 독특하고 친밀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료 스트리밍을 한 것입니다. (…) 시라스는 코로나 사태로 잃어버린 오프라인의 ‘가까움’을 온라인에서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_본문 2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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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의미 있는 기사 공동체 형성을 위해 에디터가 직접 좋은 댓글을 고르고(때론 기자가 직접 대댓글을 달기도 한다) 24시간 후엔 메일로 오는 댓글만 게재되는 뉴욕타임스 등의 사례가 떠올랐다.
오늘날 대부분의 플랫폼에서는 사이즈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소통과 신뢰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거거익선’이고, 무차별의 점들로부터 광고 수익을 얻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즈마 히로키는 오늘날 온라인 생태계가 엉망인 이유의 본질을 꿰뚫었다. 결국 문제는 스케일이고, 헌신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리고 양질의 콘텐츠를 커뮤니티에 제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어쩌면 오늘날 콘텐츠 생산자들이 ‘새로운 과금 체계’에 관심이 없는 것은 직무유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의 관객 만들기』에서도 내내 언급하듯, 과금 체계를 만드는 것은 그냥 좋은 글을 갖다놓고 돈만 내라고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본체’일 만큼 수많은 오배와 실패, 시도 속에 가능한 일이다.
3.
그곳에 접속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안에서 ‘낚시’를 경계하는 대신 맘껏 오배를 누리고 이어질 수 있는 공동체, 믿고 소통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장소를 꿈꾼다. 오늘날 그런 ‘장소’는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어느 한 곳에 붙박여 있는 것이 아니라, 겐론 사이트-카페-시라스가 그랬듯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연결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공유하며 글을 맺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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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코 온라인상 의사소통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실제 사업은 압도적으로 온라인에 의지하고 있어요. (…) 저는 사실 온라인의 오배송 없는 의사소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오프라인으로 가는 입구’=‘오배송의 입구’로 변모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_본문 1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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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스피
한 언론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인스피아>라는 인문교양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간 '레터에 쓰기엔 아무도 관심 없는(혹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하며 묵혀두었던 뾰족하고 수상한 이야기들을, 책을 경유하여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내보고 싶어서 책과 참치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도서관 산책과 맥주. 아무래도 미디어, 텍스트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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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히로키 #커뮤니티 #유료화 #오배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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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는 2주 후 목요일 아침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편집
김만석, 김성우, 김지원, 박영신,
서민우, 이용희, 이우창, 천정환
디자인 김다혜
발행 콘텐츠랩 책과참치
콘텐츠랩 책과참치
booksnchamc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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