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2014), 라라랜드 (2016), 퍼스트맨 (2018)을 모두,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봤다. 셋 다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다. 이들 영화의 인물들이 각각 나의 어떤 모습과 연결된 구석이 있다고 느껴서, 재미나게 - 그리고 동시에 꽤나 고통스럽게 봤었던 기억이 난다. ('바빌론'은 아직 안 봤다.)

재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셉과,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미아.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열정적인 남녀가 만나고 사랑한다. 미아는 셉에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큰 꿈과 뜨거운 열정은 사랑 앞에서 양날의 검이 된다. 사람들은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타인의 열정에 매혹된다. 하지만 결국 그 열정이 서로의 거리를 벌린다. 미아도 셉도 결국 서로를 향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으니까. 재즈의 부흥을 꿈꾸던피아니스트는 보이 밴드의 키보디스트가 되었고, 미아는 연기를 위해 파리로 떠난다. 잠시 함께였던 두 남녀는 각자의 꿈과 성공 앞에서 이별한다. 잠시 존재했던 몽상과 꿈의 나라, 둘의 라라랜드는 사라지고 만다.

데이미언 셔젤은 '위플래쉬'에 이어 '라라랜드'에서도 꿈을 향해 돌진하며 사랑을 포기하는 청춘들을 그려낸다. 셉과 미아는 결국 이별한다. 5년 후, 셉은 미아가 지어준 이름으로 재즈 클럽을 열고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음악을 연주한다. 배우로 성공한 미아는 남편과 함께 들른 재즈 클럽에서 그런 셉을 마주친다. 미아는 함께 써내려가지 못했던 - 어쩌면 써내려갈 수 있었을 이야기를 상상한다.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둘은 짧게 눈마주치며 미소를 짓고 작별한다.

'라라랜드'를 극장에서 보던 2016년에는 이 영화의 엔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꿈과 사랑을 둘 다 멋지게 이루어낼 수는 없었던걸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묻어두고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아 이루어낸 것만도 엄청난 허구이며 해피엔딩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흔한 거짓말과 함께 서로의 꿈을 진정으로 응원했던 젊은 날의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귀하다는 것을.

대도시는 거대한 용광로다. 도시는 그곳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정을 원료 삼아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재조립한다. 온도가 뜨거운만큼 그 파괴는 빠르고 강력하다. 품었던 꿈과 이상은 이룰 수 없는 몽상으로 남고,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뜨거움 앞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다면, 그리고 철지난 사랑의 조각들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인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테다.

문득 생각한다. 내 꿈이 뭐였더라.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잘 만든 영화지만 동의할 수 없는 영화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던 '라라랜드'의 엔딩이 이제는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속상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