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게다가 지난주 2쇄를 찍으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의미 있는 첫 책의 시작이 참 좋네요. 그럼 앞으로 터틀넥프레스에선 어떤 책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희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한 후 이런저런 책을 만들겠다고 머리로 정리한 말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서 ‘뭘 하고 싶다는 거지?’라는 의문과 불안함이 있었거든요. 어느 날 좋아하는 작가님이 “보희 님은 앞으로 어떤 책 만들고 싶으세요?” 물으셨고, 저는 앞서 만들어 둔 것들을 늘어 놓았는데, 말하면 말할수록 스스로 ‘뭐래?’ 싶은 거예요. 어쨌든 말을 끝냈는데,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보희님이 하고 싶은 거 해요! 그러려고 하는 거 아녜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났어요. 그러곤 제가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걸 찾으려고 엄청나게 애썼습니다. 브랜딩, 기획, 이런 것들을 일단 미뤄 두고요.
그래서 찾은 ‘현재’ 하고 싶은 것은, 저는 배우는 걸 좋아해요. 각 잡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배우고 깨닫고 하는 것이요. 특히 내 세계가 넓어진다는 감각이 들 때 어마어마하게 설레고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함께 배우고 싶은 태도, 노하우, 관점, 기술 등이 담긴 책을 만들고 싶어요. 이게 한 축이라면 다른 축은 제 또래의 독자들과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싶은 마음인데요. 앞으로 저와 친구들(독자)이 통과해 나갈 삶의 과정에 필요한 책을 만들고 싶어요. 브랜드가 고객과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건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민 대표님 인스타그램 프로필 소개에는 섬, 개, 술 좋아하신다 써 있어요. 이 이야기를 간단히 해 주시겠어요?
희 간단히 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 또 아주 간단히 할 수 있어요. 섬, 개, 술은 3초 만에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저더러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단박에 행복해질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건 축복이라면서요.
섬 여행은 최소 1년에 한두 번은 꼭 실천하는 리추얼이에요. 제가 우주의 먼지인 걸 잊지 않기 위해 갑니다. 16년간 30개 이상의 섬에 다녀왔어요. 그중 두세 번 간 섬도 있고요. 섬 여행의 기준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것. 서울과 단절되었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요. 큰 바다, 큰 하늘을 보면 나는 작아지고 마음은 커져요. 속이 시원해져서 좋아합니다.
개는, 개는, 그냥 너무 좋습니다. 1초 만에 행복하게 해줘요. 이유가 없습니다. 개니까. 그게 이유입니다. 그리고 술은, 정확히는 반주를 좋아합니다. 맛있는 음식과 곁들이는 반주는 행복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국밥과 소주. 백반과 소주입니다. 그래서 섬에 들어가, 개를 옆에 두고, 밥에 소주를 먹으면 더 바랄 것 없는 극강의 행복을 느낍니다.
민 얼마 전부터 뉴스레터 <오곰장 편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뉴스레터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희 <오곰장 편지>는 밑미에서 진행하고 있는 ‘하루 한 줄 문장 메모’ 리추얼 메이트들과 함께 만들고 있어요. 책을 읽고, 마음에 닿는 문장을 메모지에 적고, 그날의 나침반 혹은 부적처럼 간직하고 또 자주 떠올려 보는 리추얼인데요. 번아웃과 힘든 일들로 제가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저를 지켜준 게 이 문장 메모 리추얼이었어요. 혼자서만 하던 걸 밑미를 통해 메이트들을 만나 함께하게 되었고, 1년 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메이트들의 문장메모가 1,000개 넘게 쌓였는데요.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거든요. 저희만 보기엔 아쉬워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뉴스레터를 발행하게 된 거죠.
민 어쩜 그렇게 늘 찰떡같은 BGM을 준비하시는지, 매번 감탄해요. 음악을 틀어놓고 문장들을 읽다 보면 제가 막 엄청 감성적인 사람이 되는데, 조용한 밤에 친한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희 BGM도 저희 리추얼 메이트들이 추천한 음악 중에 선정해 보내는 거예요. 읽으며 친한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니 너무 좋네요. 아마도 손 글씨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 한 글자 한 글자 써 보낸 편지를 받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민 이렇게 꾸준한 리추얼을 실천하고, 동료를 만들고, 이걸 뉴스레터로 엮어 내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잖아요. 대표님은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신 거 같아요. 게다가 출판 기획, 편집 강의, 에세이 쓰기 워크숍 등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요. 직장 생활, 책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줄곧 책을 둘러싼 일, 또는 동료들, 특히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해오시고 있어요.
희 제가 하는 강의는, 기획이든 편집이든 글쓰기든 갑자기 변화를 가져다주는 비법이나 공식 같은 걸 알려주지 않아요. 제가 그런 비법을 모르니까요. 제가 아는 건,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 공부하는 법이나 관점 바꾸는 법 같은, 실제로 제가 일을 잘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들뿐입니다.
계속 책 만드는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그때마다 내가 만드는 책에 집중하니 노하우가 쌓였고, 나만의 방식으로 오래 계속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뛰어난 스펙도, 특출 난 재능도 없지만 먼지 쌓듯 하루하루를 쌓으면 저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해 볼 만한데? 하고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민 앞선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곧 20년 차 편집자이신데, 어떤 선배이자 편집자이고 싶으세요?
희 일의 상상력을 넓혀 주는,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도 일할 수 있구나, 하는 ‘일하는 방식의 상상력’,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일의 범위의 상상력’. 책을 만들며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그래서 상상력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럼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지고, 경험할 수 있는 기쁨도 더 다양해질 것 같아서요.
주니어 편집자일 때, 책 만드는 시간이 괴로웠던 때가 더 많았던 터라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재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강의하는 이유도, 일 잘하는 편집자를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일을 잘하게 되면, 성장하는 기분이 들면 일할 때 더 즐겁잖아요. 제가 공부하고 경험해 온 것들이 도움이 된다면, 조금 더 다른 일을 해볼 수 있게 된다거나 일을 잘하게 될 거고, 성장할 거고, 그러면 책 만드는 일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즐겁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민 곧 직접 쓴 책을 (유유에서) 출간하시지요?
희 무려 4년 전, 문장 시리즈를 제안받았어요. (죄송합니다🥲) 『태도의 말들』 『쓰기의 말들』을 너무 좋아해서 그 책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계약했는데, 쓰기 시작하고부터 내내 괴로웠어요. 시간을 들였지만 진도는 안 나가고… 2년여를 보내다가 번쩍 깨달았어요. 이 책은 내가 쓸 수 없구나, 하고요. 그래서 방향을 바꿔 제가 책 만드는 방법, 경험을 담아 땅콩문고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땅콩문고에는 편집자분들이 어마한 노하우를 담아 분야별로 낸 편집자 공부책 시리즈가 출간된 후였으니, 저는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고민됐어요. 나라는 편집자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찾아야만 했죠.
제가 해 온 일의 궤적과 만든 책을 종이에 빼곡하게 적고 들여다보니, 기획하거나 만든 책 중 상당수가 그 작가의 첫 책이더라고요. 첫 책이라는 건, 아직 출판 세상에 소개되지 않은 콘텐츠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찾고, 그걸 책으로까지 연결하는 일을 많이 해왔다는 걸 의미하는 거잖아요. 어? 나 그 일 좋아하는데? 많이 해봤는데?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다 싶어 『첫 책 만드는 법』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민 ‘첫 책’이란 그 책을 쓰는 분들께는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길 수 있는, 터닝포인트 같은 것이잖아요. 이러한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이 편집자의 역량이기도 하고요. “아 , 이 사람은 책을 낼 수 있겠다” 하는 가능성은 어디서 찾고 판단하시나요?
희 사실 어려운 일이죠, 최근 유유 책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제가 막 밑줄 그은 부분이 있어요. 가설을 세우고 관찰하라는 내용인데요. "이 사람의 콘텐츠가 유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세상에 소개됐을 때 어떤 가치를 전해 줄 것이다." 이것도 가설이잖아요. 그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사실이 되게 만드는 노력을 엄청 했어요. 스프린트 마감제를 둔다거나, 정기적으로 미팅하며 그때그때 함께 방향을 잡아가는 등 같이 만들어가는 방식으로요. 그러면서 가설을 확신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는 거지 확신을 갖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민 한 번도 책을 쓰지 않으신 분들께 책을 써 보자고 제안을 하면 두려워하실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이런 분들께 대표님은 어떤 방법으로 설득하세요?
희 상황마다 다른데요. 그럼에도 모든 예비 작가님께 말씀드리는 게 있어요. 책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드리고 그 모든 과정에 편집자가 함께한다는 걸 강조합니다. 출간 과정을 모르는 분들은 혼자 모든 걸 해야 하는 줄로 알고 부담감에 두려워하시더라고요. 편집자의 역할을 말씀드리면, 그렇다면 힘을 내보겠다며 제안을 받아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민 앞으로도 대표님의 손을 거친 '누군가의 첫 책'을 기대해 볼게요! 마지막으로 터틀넥프레스의 두 번째 출간 책에 대해 살짝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희 『우리 각자의 미술관』을 함께 작업한 최혜진 작가님의 책이에요. 매거진 에디터와 디렉터, 브랜딩 전문가, 미술애호가, 번역가, 강연자 등으로 활동해 온 작가님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다방면으로 일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게다가 너무 잘하시니까요. 그런데, 작가님 머릿속에서는 다 똑같은 일이라는 거예요. 바로 그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생각법, 사고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읽다 보면 캄캄했던 머릿속에 전구가 탁탁 켜지는 느낌이 들어요. 또 뇌의 이쪽과 저쪽이 연결되는 쾌감도요. 가을에 출간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