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11일 월요일
님,

대만은 뛰어난 출판문화를 지녔지만, 책 할인을 법률로 제한하는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달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만난 대만 출판인들은 ‘우리도 한국처럼 도서정가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대만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독립서점 붐’이 있었는데, 도서정가제 같은 버팀목이 없어 현재 많은 서점이 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취급 물량이 많은 대형 업체들은 애초 출판사에서 4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사 오고, 다시 이를 할인해서 독자들에게 팝니다. 그러나 작은 서점들은 출판사에서 기껏해야 30%가량 할인을 받고, 그 결과 독자들에게도 원가 수준으로 팔 수밖에 없답니다. 2020년에는 이를 견디다 못한 독립서점들이 ‘하루 파업’을 선언하고 문을 닫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중화권에서는 매년 11월11일 인터넷쇼핑몰들이 ‘할인 축제’를 벌이죠. 대형 업체들의 끝도 없는 할인 경쟁으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여러 독립서점이 이날을 맞아 일제히 항의의 목소리를 내는 이벤트를 벌인 겁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 서점에 한해 정가의 15% 이상 할인해 판매할 수 있도록 도서정가제 적용을 완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기사보기) 헌법재판소에서 명징한 논리로 ‘도서정가제는 합헌’이라 결정 내린 지 1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책값 깎아 경쟁하라’며 지역 서점들을 내몰고 있는 겁니다. 대만 출판계에서는 우리나라 독립서점 활성화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도서정가제를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그 제도를 책임져야 할 우리 정부는 그걸 이리저리 흔들어대고 있는 상황.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불로소득은 자본주의와 어떤 본질적인 관계가 있을까요? 고전경제학 이론대로,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불로소득은 과연 발을 못 붙이게 될까요?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국 출신 정치경제학자 브렛 크리스토퍼스<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는 아예 불로소득이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활동하기'(doing)를 통해 돈을 버는 산업자본주의가 아니라 '소유하기'(having)를 통해 돈을 버는 '불로소득 추구' 쪽에 치우쳐 있었다는 겁니다. 양차 대전 이후 한동안 잠잠해졌던 불로소득 추구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이제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새로운 형태로 정착했다고 주장합니다.

 지은이는 영국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오늘날 불로소득자를 먹여살리는 일곱 가지 주요 지대(rent)를 분류합니다. 가장 전통적인 영역인 금융과 토지 이외에 자연자원, 사회간접자본, 플랫폼, 지식재산권, 외주화 계약 등이 여기 포함됩니다. 지대는 단지 희소한 자원을 소유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유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비정상적인 시장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지대를 발생시키는 '독점력'은 경제적인 힘뿐 아니라 정치적인 힘에도 의존합니다. 예컨대 영국은 과거 공공 소유였던 토지를 대처 집권 뒤 대대적으로 매각했는데, 이런 정책은 결국 민간 불로소득자에게 지대 등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대규모 '자산'을 만들어줬습니다. "독점권력이 독점이윤을 보증해주는" 이 메커니즘은 자연자원부터 플랫폼, 지식재산권, 외주화 등 다른 지대들에서도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불로소득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어떤 예외나 빈틈이 아니라 차라리 그 핵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과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주목할 만한 선행 연구자로 토마 피케티, 앤드류 세이어, 가이 스탠딩, 마리아나 마추카토 등의 학자들을 꼽습니다. 오늘날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의 핵심 원인으로 불로소득과 지대에 주목한다는 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관련 기사 몇 개를 공유합니다.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 연합이 키운 불평등체제 혁파해야”(토마 피케티)

🔗“분배체제 붕괴로 기본소득 지지 확산”(가이 스탠딩)

🔗정부, 기업 혁신의 보조 아닌 ‘가치 창조자’로 역할을(마리아나 마추카토)

흉노와 훈은 각각 중국과 유럽에서 야만과 살육, 파괴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은 매우 발전된 정치·사회 시스템을 갖춘 문명 국가였고 중세 유럽 봉건제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한국 태생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학 고전학·고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현진이 쓴 <흉노와 훈>입니다. 김현진 교수는 먼저 흉노와 훈이 동일 집단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흉노는 중국쪽 사료에 서기전 2~3세기에서 서기 3세기 무렵까지 등장하고, 훈이 유럽쪽 사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370년대입니다. 그 사이 200년가량의 공백이 있는데, 김 교수는 알타이로 밀려난 흉노가 그곳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힘을 결집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진출했다고 파악합니다.

 흉노와 훈이 동일 집단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흉노와 훈은 다양한 인종적·민족적 배경을 지니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질적인 구성원들의 결합이라고 김 교수는 봅니다. 그런 흉노와 훈을 동일 집단으로 파악하는 근거는 대왕 아래에 혈연적 유대를 지니는 네 명의 제왕을 두어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며 6명으로 이루어진 귀족 평의회를 갖추어 공동통치를 하도록 하는 중앙집권적 봉건제 정치 제도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이런 정치 체제는 훈이 고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뒤 중세의 새로운 유럽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고, 철제 등자와 기마술은 기사 계급과 기사도의 출현을 이끌었다고 지은이는 설명합니다. 요컨대 야만과 폭력의 이미지로 왜곡되었던 흉노와 훈을, 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문명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게 책의 결론입니다.

🐟동양사학자 정재훈 경상국립대 교수의 <흉노 유목제국사 기원전 209~216>(사계절)은 한문 자료를 중심으로 기원전 3세기 '세계 최초의 유목제국'이었던 흉노를 연구한 책으로, <흉노와 훈> 가운데 '흉노' 쪽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원과 유목만으로 흉노 제국을 이해할 수 없다

매주 그렇지만, 이번 주 독자에게 소개해 드릴 문학 작품들을 놓고 별스레 고민이 길었습니다. 깜냥의 숙고 끝에 선택한 책이, 시인 권혁웅(57)이 11년 만에 내놓은 시집 <세계문학전집>입니다. 창작력도 재기도 부족함이 없는 시인이 왜 이리 걸렸나 궁금했습니다. 시인 말이, 앞서 시집으로 묶었다 엎길 두 차례가 있었다더군요. “먹고살고 지지고 볶는 세속에 미학이 있다고 믿었다”면서도 “다만 묶어놓고 보니 이전 방식(느낌, 소재 등)의 반복 같아 도저히 못 내겠다 싶었다”는 겁니다. 2013년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시집은 최근 4~5년 새 쓴 시들로 꼴을 갖췄습니다. 공교롭게 “괜찮지 않”아진 세계가 일조한 모양입니다. 시인은 “지금 정치 현실, 한국 현실이 암담하다. 시를 통해 웃음으로 극복하거나 대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부조리한 시대, 너절한 일상의 ‘기원’을 헤아리려는 지적 탐구, 언어의 변이, 우발성에 대한 기대가 가득합니다. 당대 현실과 현상을 두고, 아놔, 어디서부터 뒤틀렸지? 묻는 것 같습니다. 시인의 ‘수작’에, 독자는 종종 웃게 될 텐데요, 그러다 종국에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겁니다. 시인이 작정한 ‘구밀복검’의 미학이랄까요.

🐟이번 주 선택한 또 다른 책 한 권은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의 <한국 시화사>입니다. 30년 역작인 데다, 권혁웅의 시집과 상통하는 데가 있더군요. 시(화)의 정치성입니다. 대신 유보할 수밖에 없던 책이 ‘이민자 소설’의 지평을 각기 확장 중인 문지혁, 서수진 작가의 소설집(각각 <고잉 홈> <골드러시>)입니다. 한국시각 11일 오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주목받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 감독·각본)와 함께 좀 더 견줘 독자와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 ‘이민자 서사’의 진화를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1천년 시화사’ 집대성한 한문학자의 21세기 ‘원픽’ 시화는

수사학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 번성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민주주의의 첫 번째 자식이 수사학이었죠. 그런가 하면 수사학은 태어난 직후부터 ‘말의 힘을 악용해 정치를 병들게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그 민주주의의 두 번째 자식인 철학의 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도 수사학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치는 능력 덕분에 철학의 냉대를 견디며 학문으로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위대한 수사학의 고전들>은 이 학문의 고유한 영토를 확립한 수사학 고전 20편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파이드로스> <수사학> <연설가에 대하여> 등 서양 고전부터 <장자> <논어> 등 동양 고전들까지 아우릅니다.


 한국수사학회 창립 20돌(2023)을 기념해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김월회(서울대 중문과 교수)를 비롯해 이 학회 회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이룬 성과물입니다. 수사학의 탄생과 발전의 경로로 보면, 수사학의 본령은 역시 고대 그리스에 있습니다. 오늘날 수사학으로 번역되는 ‘레토릭’의 뿌리도 그리스어 ‘레토리케’에 있습니다. 레토리케는 ‘레토르’(rhetor, 연설가)에서 파생한 말인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레토리케란 ‘연설가의 기술’을 뜻합니다. 수사학은 민주주의의 태반에서 연설가와 함께 자라난 말하기 기술입니다.
한 분야에 오래 몸 담으며 그 분야를 지그시 섭렵하고, 이를 바탕 삼아 다른 누구도 쓸 수 없는 기사를 써내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같은 식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에서 자그마치 30여년 동안 문학 분야를 담당했던 최재봉 기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정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업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 기자의 책 두 권이 함께 나왔습니다. 그동안 신문에서 쓴 기사와 칼럼, 외부 기고 글들을 묶은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그가 '문학전문기자'로 지낸 "30년 한국문학에 대한 증언이자 발언이고 또한 추억"을 담은 책입니다.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는 문학이 담고 있는 주제들이나 문학을 이루는 요소 24가지를 다루며 문학의 안과 밖을 두루 비추는 책입니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국문학을 '총결산'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세희, 박완서, 황석영, 김지하 등 웅숭깊은 작품세계를 지닌 국내 작가들을 깊이 파고들어가는 인터뷰, 작품과 시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서평, 작가들의 생애를 시대에 각인시켜 자리매김해주는 부고 등이 책 제목 그대로 이야기에 '흐르는 힘'을 부여하고 그것이 오래 이어지도록 길을 틔웁니다. 이 책의 작업이 문학과 시대에 대한 기록이라면,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는 '제목', '독법', '표절' 등 여러 조각의 스케치들을 통해 문학이라는 거대한 산을 그려내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피상적인 이론에 기대지 않은, 취재 현장에서 길어낸 생생하고 흥미로운 물음들이 이 시도에 독특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발언하고 증언하고 추억한다"는 말이 저널리즘의 본령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독자에서 번역가로, 또 편집자로
최재혁 번역가

최재혁 번역가는 한양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로 석·박사과정을 마친 미술사학자입니다. 대학 시절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보고 '울컥'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앞으로 서경식의 번역자로, 또 편집자로 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본어가 가능한 미술사 전공자'로서 서경식의 번역, 출판 '파트너'가 되었고, "때론 사제지간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와 끈끈한 정을 쌓았기에, '성공한 덕후'라 불린다지요. 그는 논문 말고 책으로 사람들과 더 넓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연립서가'라는 이름으로 직접 출판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서경식의 유작 <나의 미국 인문 기행>(반비), 서경식의 '근대 일본'에 대한 성찰을 담은 <나의 일본미술 순례 1>(연립서가), '동물성애'라는 금기를 파고든 <성스러운 동물성애자>(연립서가), 일본의 진보적 아티스트가 재일코리안을 향한 혐오감의 정체를 파고든 <재일의 연인>(한권의책).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방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우도해안길 530 (연평리)

🔗instagram.com/bamsuzymandramy.bookstore


"그런데, 시골, 섬을 둘러싼 환경에는 적응되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방’이었어요. 배 시간에 쫓기며 보는 것이 아닌 온라인의 편리함도 아닌 직접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는 느릿한 나만의 시간이 무척 그리웠어요. 무엇보다 관광객의 시간이 아닌 주민으로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하나 더하자면 이따금 밤에도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면 더없이 좋겠다 생각했어요. 우도 대부분의 가게는 마지막 배 시간에 맞춰 영업이 종료되거든요. 
 ‘누가 책방 좀 열어주지’ 바라던 마음이 어딘가 닿았는지 가게를 해보지 않겠냐는 이웃의 제안에 저와 남편은 ‘책방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낡은 농가주택이었던 지금의 책방은 결국 또 손수 고쳐가며 완성이 되었고, 우도에 처음으로 생겨난 책방이자 하나밖에 없는 책방이라는 멋진 수식어와 함께 문을 열고 있습니다."

👉기사보기

막사의 시간


 
우연히 만난 고양이는 접시를 핥고 있었다
다가가니 머그잔처럼 몸을 웅크렸다
이렇게 작아지다니

아이가 붉은 시클라멘을 꺾어 페인트 통에 담그곤
꽃의 색을 지웠다

그 폴란드인이 죽었다
2층 침대 위에서 뻗어 나온 앙상한 손목을 보자마자
모두가 알아챘다

투명한 수용소의 천장

하늘
짐승 같은 추위



📖장수진의 시집 <순진한 삶>(문학과지성사)에서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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