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글 쓸 일이 이것저것 많아진 탓이다. 글솜씨는 하찮아졌는데, 마감은 쳐야 하니 자연히 노트북 앞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이러다 쓸 글도 못 쓸 거 같아서 최근 바닥을 치던 독서량을 다시 늘리기로 결심했다. 새로 발견한 동네 도서관에 처음 발을 들인 날, 책 두 권을 빌려 왔다. 한 권은 세계문학전집, 한 권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에서 골라서 나왔다. 오랜만에 고전적인 추리물을 손에 잡으니 조금 설렜다. 이걸 읽고 사람을 기상천외하게 처리하는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비행기 안에서 탑승객 한 명이 살해당한다. 용의자는 탑승객 전원, 살해 도구는 독침. 누군가 운항 중인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독침을 쏴 제일 뒷자리에 앉은 부인을 살해한 것이다. 그 비행기에 우연히 탑승하고 있던 우리의 탐정, 에르퀼 푸아로는 이번에도 회색 세포(그의 뇌세포를 칭함)를 굴려 추리를 시작한다. 각 탑승객의 직업은 회사원, 고고학자, 추리소설 작가, 의사, 백작 부인, 견습 미용사 등 다양하다. 이중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비행기에서 내린 후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몇 주간 탑승객들의 생활을 그린다. 각자의 직위에 따라 다른 여파를 겪게 된다. 유명한 사건의 용의자이면서 동시에 몇 안 되는 목격자로서 그들은 주변인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추리소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 용의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소설 속 사건에 쓸 트릭을 위해 범행도구를 지니고 다니며, 범인의 알리바이를 고민하는 사람은 매우 수상쩍게 보이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범죄와 관련해 지식이 해박한 상태일 테니 일반인보다 훨씬 범죄 전문가인 셈. 의심받는 추리소설 작가의 가련한 모습은 메타적인 웃음 코드로 기능한다.
오늘 인용한 구절도 이 추리소설 작가가 한 말이다. 추리소설은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가 범인의 정체와 그의 수법을 밝혀내는 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만 해도 전집 기준으로 몇십 권을 출판했으니, 매번 새로운 동기와 트릭을 그야말로 쥐어짜 내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등장인물인 추리소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너무 한심하지 않은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가장 불행한 건 그 이유라는 게 매번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