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1400호에 <스즈메의 문단속>에 관한 글을 적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제가 별점 9점을 준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써내기가 유독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한데요. 9점씩이나 줬으니, 그에 합당한 엄청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 자신을 계속해서 단속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계획이 다 있었습니다. 별점을 결정할 때부터, 미리 생각해둔 것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 별점을 매길 땐, 유독 고민이 많았습니다. 8점을 주기에는 이거보단 더 좋은 것 같고, 9점을 주기엔 아쉬운 점들도 분명 존재하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별점을 주는 것은 은근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같은 8점이어도,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다른 감각을 주는, 그래서 절대 숫자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영화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별점을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 또한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오로지 별의 개수로만 표시될 때, 같은 별을 가진 영화가 같은 수준을 가진 영화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항상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안타깝지만, 해야 하는 이유도 있기에 끝까지 고민합니다. 제출하기 직전의 직전까지 나의 별점과 마음속 솔직한 감상이 같은지 끊임없이 단속한 뒤, 최종적으로 문고리를 놓곤 합니다. 그리고 마치 스즈메가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언젠가 이 영화의 문을 다시 연 뒤, 제가 목격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은 없었는지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말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정말로 재방문을 요하는 영화였습니다. 8점과 9점 사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어떤 측면에서는 저의 마음속에 있는 별 100개를 요구한다 해도 선뜻 내어줄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뜨거움 때문에 9개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9개를 결정한 다음에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평론가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그래버렸습니다.

  


첫 번째로 발견한 것은 역시 문이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문’이라는 키워드를 활용해 쓴 글(링크)로 영화 평론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 좋은 기억 하나 때문에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제가 좋았던 것은, 영화 속의 저 세상과 이 세상의 경계를 다짜고짜 문 하나로 표현하고 있는 그 뻔뻔함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뻔뻔함’은 제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태도 중 하나입니다. 저는 감독이 자기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를 영화 속에서 자신 있게 내세워버리는 그 에너지를 좋아합니다.


이는 패션에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누군가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자신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옷이 멋있다/안 멋있다, 어울린다/안 어울린다/는 덜 중요한 것이고, 마치 악뮤의 이찬혁 씨처럼 뻔뻔하게 자기 자신이 멋있다고 믿는 태도, 그 에너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멋있어 보입니다. 잠시 다른 얘기를 했는데, 아무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확실한 세계관이 느껴졌다는 점, 그것이 홀로 서 있는 문 하나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제겐 좋은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는 ‘단속’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무언가입니다. 먼저 제게 단속이란 일회성의 무언가가 아닙니다. 단속에선 왠지 반복하는 사람의 태도가 느껴집니다. 나아가 ‘문단속’이라고 했을 때의 단속엔, 어떤 마음씨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문단속은 ‘문-검사’, ‘문-확인’ 등과는 달리 조금 더 애틋합니다. 이를테면 문단속은 나 자신만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아닌, 타인의 안위를 위한 행동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마치 꺼진 불을 다시 보는 것이 나만을 위한 게 아닌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그 마음이 바로 스즈메와 소타가 영화 내내 하는 지진 막기 작업의 연장선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저의 평가는 감정적인 영역에서만 맴도는 감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영화를 얘기하면 그건 비평이라고 말하긴 애매한, 말 그대로 뇌피셜에 불과한 것일 것입니다. 대신 제가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발견한 포인트는 ‘반복’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오는 반복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의 구조 자체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말하자면 ‘문이 열린다-문을 닫는다’의 반복입니다. 어딘가에 문이 열리면, 스즈메는 그것을 닫습니다. 문이 열려 지진이 발생하는 장소와 지진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론 동일합니다. 스즈메와 소타는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하든, 아무 이유도 따지지 않고 문을 단속합니다. 열리는 문들을 영원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이 덧없고 죽음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에게 기원합니다. 마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듯 말입니다.


이 반복하는 태도와 단속하는 마음이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더불어서 연속적으로 재난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드는 신카이 마코토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감독의 소위 '재난 3부작’이라는 불리는 작품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팬도 많지만 비판도 많이 받는 감독입니다. 특히 동어 반복한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비판인데요. 하지만 저는 동어를 꾸준히 반복하고 있다는 것 역시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사실은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히가. 마지막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인데, 저는 꾸준히를 어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삼십 몇 년 인생에서 가장 꾸준히 오래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원데이원무비입니다. 고백 하나 하자면 원데이원무비의 꾸준히를 가장 포기하고 싶을 순간은 한 주에 씨네21에 쓰는 비평 글 마감이 겹쳐 있을 때입니다. 그게 바로 이번 주였는데, 다 쓰고 나니 정말 개운합니다. 조금 멋있는 사람이 된 기분도 듭니다. 어때요 좀 뻔뻔한가요? 더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단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영화를 다시 보는 것도, 본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씨네21에 실린 <스즈메의 문단속> 글 전문은 웹사이트에 공개되는 주에 보실 수 있도록 링크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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