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주위에 말하고 싶은 감미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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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성분 : 말💬

큰 물님이 노하셨다!
뭍으로!
땅으로!
발들을 쳐라!

발 달린 저들을 띄워버리자
휩쓸어버리자
발을 띄워서 묶어버리자
발을 묶어서 띄워버리자

발 발 발
우리도 다리는 있다
발 발 발
발이 있는 것들에게만 내리는 벌
벌 벌 벌

발 없어도 가는 말만이 살아남은
벌 벌 벌
발들이 죽어도 말은 남는다
발 발 발
말 말 말

말을 어떻게 묶지?
말을 어떻게 띄우지?
말은 어떻게 묻지?

그럼 말,
너는 춤을 춰라!
그게 발의 말의 벌이다!
춤을 추고 제자리를 뱅뱅 돌기만 하여라!
시작도 끝도 없다 돌아라 눈을 감아라

너는 떠버린 발의 말,
묶이지 않아도 뜨고
묻히지 않아서 빙빙 도는
벌 벌 벌
말 말 말
발 발 발

물을 좋아하는지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물을 좋아한다. 바다를 좋아하고 수영이 취미다. 물은 유영하도록 사람을 띄우기도 하지만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혹은 헤엄을 치지 못하는 사람에겐 맨몸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양면성을 갖는 물질이다.
  생명의 기원이기도 하면서, 재해로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물. 대부분의 물질들은 풍요와 파괴의 극단을 보여준다. 나는 물의 공간적 한계를 느꼈다. 땅만 밟고 살아온 우리의 다리와 척추에게는 자유를, 누군가에게는 망망대해 속 지표 없는 떠다니는 황망함을.
물처럼 유동적인 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라고 생각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한다.
물은 전세계를 순환한다. 온도가 섞이고,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생명이 피어난다.

말은, 언어라는 것은 사실 허상, 그 자체다.
  내가 코끼리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는 내가 생각해서 입 밖으로 내뱉은 코끼리와 같은 형상이나 구도를 지니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회색 코끼리를, 코끼리의 코를,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라는 곡을, 디즈니의 캐릭터 덤보, 코끼리 머리를 가진 인도의 신, ‘가네샤도 있을 수 있다.
왼쪽 - '코끼리'하면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코끼리
오른쪽 - 인도의 신 중 하나인 '가네샤'다.
사실 내가 코끼리를 좋아한다. 
어릴 적 최애 동요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와 '한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하는 노래다.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장님과 코끼리라는 이야기를 배웠다. 장님들은 눈이 보이지 않기에 저마다 만진 부위로 코끼리를 묘사했다. 그들은 코끼리를 각자 다르게 말한다. 과연 코끼리는 실재하는 것일까?

  장님들이 말하는 코끼리의 특성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만진 것만이 코끼리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남의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세계가 넓어진다. 내가 경험한 세계만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다름에서 세계의 확장을 느낀다. 하지만 확장은 공유와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진 코끼리만이 코끼리라고 말하는 장님과 같을 것이다.

말은 닿을 수 있을까?
  말에는 형태가 없다. 언어라는 것, 더 나아가서 글자라는 것은 의미를 갖는 것이지, 형상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각자의 경험에 의해, 사고에 의해, 가치관에 의해, 문화에 의해서. 모든 사람의 경험이 다르다. 같은 경험을 해도, 느끼는 바가 다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말은 닿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쓴 글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적는 내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까?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닿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허무하다고? 그럴 수 있다. 마치 여름날 저녁에 땀으로 젖은 옷을 입은 채 아무도 없는 집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그렇다. 그렇게 바쁜 도시와 사람으로 채워진 열기, 공기 속 가득 찬 데워진 수증기가 있었는데 정적으로 울리는 빈 공간에 온 듯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허무했다. 진심이라는 것이 전달될 수 없다니. 나의 마음을 당신이 모르다니. 그 정도를 느낄 수 없다니.
, 닿지 못한다는 것은 알았다. 이제 우리는 허무하고 회의적으로 살 것인가? 아니. 그럴리가. 이제 우리는 닿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말은 유동적이다.
  말은 물과 같다. 말은 전세계를 돈다. 책은 번역되고, 문화는 혼재하며, 사람들은 사랑으로 닮아가고, 사랑하며, 생명을 키워낸다. 이제 좀 감이 잡히지 않는가? 우리가 그럼에도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믿을 것이 말이라는 것을
  이 한계가 우리를 낙담시키는가? 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말을 해보자. 더욱 진심인 말들을 하자. 그리고 이 말들이 퍼져서 하나의 대양을 이루기를, 다시 순환되기를, 생명이 움트기를 바랄 뿐이다


- 시쟁ol
자취를 하면서 내게 늘어난 것이 몇 개 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서 사 온 컵도 늘고, 단칸방을 꾸미는 장식품도 늘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생활비도 늘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는 것은 단연 생활력. 세탁기의 세제 칸과 섬유유연제 칸도 구분 못하던 스무 살짜리는 자취 1년만에 하얀 빨래에 과산화수소를 섞어넣는 고급 기술도 구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력이 늘 수록 혼잣말도 늘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한 방송 클립을 본 적이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서구권) 외국인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었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특이한 언어습관으로 혼잣말을 꼽았다.

©tvN 유퀴즈온더블럭 中
외국에 길게 체류한 적이 없어서 그들 나라엔 정말 혼잣말 문화가 없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렇다고 혼잣말을 하는 게 사이코 소리를 들을만큼 그들에겐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말에는 의도가 있다. 의미없는 빈말이라도 아주 다분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인물들의 독백 장면. 솔직히 굉장히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저렇게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줄줄 말한담? 작가가 생각하기 귀찮아서 넣은 장치로 여겼다.

내 혼잣말에도 의도가 있었다.
혼자있는 게 편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레 혼잣말을 하게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사람이 없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이 공간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편안함은 곧 외로움으로, 고독으로, 숨 쉬기도 버거운 무게로 나를 눌렀다.
숨 쉬기도 버거운 적막. 나는 그 적막 속에 갇힐까 두려운 건 아니었을까-
오디오가 비는 걸 걱정하는 예능 MC마냥, 나는 적막을 깨뜨릴 말소리를 계속 내었으니.

사실 혼잣말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심리학적, 정신의학적으로도 혼잣말을 문제가 될 만한 행동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방향이 점점 부정적으로 기울고 있었으니, 나의 혼잣말은 아주 문제였다.

상다리에 발을 찧었을 때,
!’ 하고 그 전엔 속으로 삼키던 외마디 비명을 한 번 내질러 봤다가,
괜히 애꿎은 책상 탓이 더해지고, 짜증 섞인 푸념도 섞어보고,
거기에 문장 앞뒤로 육두문자까지 더해지면 완성형.

물론 혼잣말을 해서 없던 부정적인 감정과 심리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말은 언제까지나 속마음이 투영된 것이니.
하지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 아픈 말은 결국 더 아픈 감정으로 돌아왔다. 혼잣말이 스스로 좀먹는 악의 순환을 만들고 있었다.

잠시 자취방을 떠나, 본가에서 지낸 지 거의 9개월이 다 되어간다.
가족들과 지내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혼잣말은 사라졌지만, 조만간 다시 나의 방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땐 웃음 섞인 혼잣말을 늘어놓기로
그렇게 결심해보았다.

이젠 혼잣말 대신 conVersation을 하는 V
말 너머

©Jenny Holzer, Words Tend To Be Inadequate, 2018
말의 무게를 생각해보면, 말은 대개 가볍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말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어 말실수를 하기도 쉽다. 가볍게 통통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임에도, 우리는 어떤 말을 듣고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말이라는 것이 참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 한 마디에 울고 웃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나는 말 자체의 힘은 크지 않다고-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얼굴을 맞대어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전화나 메시지 등을 통해 가상으로 전달되는 말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저 말뿐인 말을 우리가 한참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사이가 돈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얼마나 자주 나누는지가 중요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말 너머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말 너머의 무언가. 한 사람이 해 준 따뜻한 말을 떠올려보면 그때 그 사람이 전해주었던 따스한 눈빛과 그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신뢰감이 있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신뢰감은 아무나 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떤 말을 들으면 그 말 자체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가 주었던 아우라와 잔상을 간직하며 말을 곱씹으면 그 말은 훨씬 큰 힘으로 다가온다. 

말로 드러나는 것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사람은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말만큼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실수도 많고, 결점도 많다. 말이 주는 빈틈만큼이나 우리의 불완전함은 크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말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침묵이 금이다’라는 말도 결국 ‘말’일 뿐이니까), 말을 꺼낼 땐 신중하게 하고, 말을 하고 나선 후회하지 않도록 하자.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듯, 내 말의 완전함을 온전히 직시하자. 

말을 유려하게 가꾸기보다 우리의 경험을 가꾸도록 하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당신의 말이 주는 느낌과 잔상이 다를 것이다. 또, 스스로의 말이 부족하고 작아보이더라도 사람들은 그 말 너머에 있는 당신을 떠올리며 말의 빈틈을 채워 나갈 것이다. 

내 하루하루가 주는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감사하고,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걸어보자. 
말 너머의 무언가를 하나하나 쌓아보자.

From. Ja

🍯오늘의 감미료🍯
🍯V급감성🍯
KBS 2TV [대화의 희열]

©KBS Entertain Youtube Channel
한 때 많았지만 요새는 보기 힘든 1인 게스트 토크쇼 프로그램입니다.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만한 명사들을 초대해 그들의 삶, 생각 그리고 목표에 대해 편하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요,
그 동안의 토크쇼에서는 보기 힘들던, 이름만 들어도 흥미로운 게스트 라인업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고정 패널들의 매끄러운 진행과 정리가 돋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옛날에 방송했던 <김승우의 승승장구> 라는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 같아요. 오락적인 요소는 덜어내고, 대화의 분위기나 주제는 차분해서 그 프로그램의 상위호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삶을 숙제처럼 살지말고 축제처럼 살라, 최근 인상깊게 봤던 회차의 짧은 클립 하나를 띄워드리고 갑니다지금 진행중인 시즌 3의 본방은 매주 목요일 밤 1040분에 KBS 2TV에서 보실 수 있다고 하네요😉

🍯lo 보는 세상🍯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인가?
나는 '넌 애가 왜 그러니?'였다. 반골기질이 강하고, 질문과 불만이 많았다.
이해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2018년, 휴학을 하고 한 학기 여행을 떠났다. 
많은 삶을 만나고 받아들이면서 모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과정을 보고나니 
남도, 나도, 이 세계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매년 나를 변화시킨 그 해의 대화들이 있다. 

2018 적을 만들지 마라. 누구와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2019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단념에도 강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2020 세상에 완벽하게 너와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

올해는 어떤 말들이 나를 성장시킬지 모르겠다. 
계속 적고 기록하는 일, 그리고 배우면서 나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구독자를 강하게 한 말들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JA의 책방🍯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민음사 출판그룹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실현된 하나의 사례로 자주 언급이 됩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말이 씨가 된다’는 것처럼, 우리가 믿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현실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것으로만 한정 짓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수많은 말을 던집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조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를 자신에게 되뇌는 말들이나, 미래를 점치는 말들이 있죠. 또 타인의 말을 듣고 그것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속삭이며 들려줄 때도 있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던데.”, “나는 이런 점이 부족하던데.” 등등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책의 얘기로 돌아오면, 마녀로부터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그 말을 통해 점차 삶이 바뀌어가요. 말에 흔들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현실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그런 불안정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 이전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말을 통해 내가 불안하고, 힘들다면, 그 말을 무시하고 나와 나의 삶을 더욱 단단히 만드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의 힘에 기대기보다, 내가 나에게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물론 가는 길에 지친다면 좋은 말로 나에게 힘을 실어주자구요!

Vol.13 구독자들의 일상은 어떤가요?
문득,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훈련소 들어갈 때 들으며 괜시리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나요. 스스로를 다른 곳에 놓고, 나를 찾는다는 점에서 병역이 최고의 여행 아닐까요? 아 아닌가...?
고독을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병역…? 그래서 구독자는 잘 찾고 왔는가?

저번에 훈련소 가신다고 하신 분... 맞죠...? 어차피 해야 할 병역이라면 이렇게라도 긍정적으로, 의미있는 시간으로 여기는 구독자님의 태도가 인상 깊네요. 어차피 군대 안가는 제가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ㅎㅎ 남은 기간도 뜻깊은 탐색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동률 노래 너무 좋아요! 최고의 여행지는 사람마다 물론 정말 다르겠죠.. 하하 다른 곳도 찾으셨길 바라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난 한주 아주 잘 먹고 놀았다. 방정리도 했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도 빌렸고, 마음도 다잡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사실 어떤 길인지, 이 길의 끝에 나는 어디에 닿을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걸어간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며 선물같은 나의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기로 했다.
열심히 살다가 지칠 때엔 일성표를!

종강 후 이번 주만 놀아야지를 반복하다 벌써 한 달이 지나버린 저로서는 존경스럽기 그지없네요... 저도 이제 슬슬 마지막 방학에 해야할 일들을 해치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선 이번 호 마감부터 하고...

'길'이라는 단어를 정말 사랑하는데요, 구독자님이 남겨주신 메시지의 여운이 크게 남네요.. "사실 어떤 길인지, 이 길의 끝에 나는 어디에 닿을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걸어간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며 선물같은 나의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만의 길 차분히 잘 걸어가요..:)
오늘의 주제, '말' 어떠셨나요?
'대화'라는 한 구독자분의 주성분 제안을, 살짝 바꾸어 전해드렸답니다.

말은 언어, 대화, 습관, 가치관, 위로와 상처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주제로 한 편의 글을 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기온이 심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갈수록 지치기 마련입니다.

혹시 더위와 일상에 지쳐 부쩍 말수가 줄어들지는 않았나요?
그렇다면 피드백 페이지에 인사를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 인사는 조금 늦게 받아보실 것 같습니다.
8개월을 쉬지 않고 달려온 에디터들이 
일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8월 한 달은 메일함이 잠잠합니다.

더 알차고, 당신의 일상을 풍성하게 하는 일상성분표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뜨거운 여름을 지나 잔잔한 바람이 부는 9월에 만나기로 해요!
 

여러분의 열렬한 피드백 부탁드려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되고, 주성분 추천, 아쉬웠던 점과 개선책 제안 등
어떤 종류의 피드백도 환영합니다!

일상성분표 14호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지인들에게 일상성분표를 소개해주세요!😍

맛보기로 아카이빙 담벼락에 데려가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