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라는 배를 타고 가서 만나는 김수영과 1960년대
뉴스레터 46호를 발행합니다.

이번 호 국제뉴스란은 이마마사 하지메 선생님의 글을 싣습니다.  환호를 받으며 승리한 다카이치를 있게 한 ‘중도개혁연합’이라는 현상을 필자는 극중도(極中道)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좌우 양쪽을 그 자장 안에 가두는 ‘극중도’ 정치를 비판하며, 필자는 각자도생이 아닌 공동의 삶을 구축하는 것이 그것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그래야 ‘극중도’를 택하지 않은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와 리영희>가 발간된 게 하나의 일이었다면, 그 책을 가지고 북토크를 한 건 리영희를 다시 읽는 또 다른 계기였습니다.  <나와 리영희> 필자 중 한 명인 백승욱 선생님은 북토크를 준비하는 시기에 김수영을 안내하는 리영희, 리영희를 다시 읽게 하는 김수영을 만납니다. 여기에는 60년대라는 공동의 시공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숨 찬 호흡으로 풀어내는 필자는 필자 포함 세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독백을 주고받는 듯한 연극을 보여줍니다.

험하고 허망한 시기에 생각하고 공부할 거리를 주신 두 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리영희라는 배를 타고 가서 만나는 김수영과 1960년대

 
백승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시인 김수영. 김수영이라니! 아무도 리영희와 김수영을 연결시킨 적이 없는데!

그러나 차분히 살펴보면, 리영희와 김수영은 삶의 굴곡과 세상의 고난을 대처하는 방식, 그 ‘공학도적’ 태도, 우상을 파괴하는 일관된 모습, 무너지지 않는 “스스로 도는 힘”, 그리고 일본어와 영어라는 흥미로운 지식의 매개, 숨어 있는 비교점으로서의 루쉰 등등 많은 면에서 평행이론을 느낄 만큼 비슷함을 담고 있다.
우상과 삶 속의 앎
 
 이마마사 하지메(돌봄노동자 겸 독립연구자)
민중은 자신들이 바보 취급당할 때 이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크다(정작 함께 바보가 되거나 미쳐주는 지도자에게는 관용적인 듯하지만). 극중도를 표방하는 당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미움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프랑스의 마크롱이 그렇고 미국 민주당이 그렇다.

일본에서도 그들의 차례가 왔다. 중도개혁연합은 미움을 샀고, 다카이치는 환호를 받으며 승리했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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