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요즘은 자꾸 깨어있으면 생각이 나를 좀먹고 잠에 들면 꿈이 나를 갉아먹는다. 이러한 반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거기에서 각각 떠오르는 상념들에 이유를 붙인다. 애써 변명을 생각해낸다. 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합리화를 하는 것에서 그치면 좋겠는데, 인정 욕구도 있는 것 같다. 타인에게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도록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괜히 SNS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트위터다. 140자라는 글자 수 제한 덕분에 딱 그만큼으로 요약하다보면 조금은 검열이 되는 기분을 체험할 수 있으므로.) 종종 이런 나를 돌이켜보다 수업에서 말하는 ‘사유’의 시작이, ‘글’의 시작이 여기일까, 그렇다면 잘하고 있다고 조금 자만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런 지점이라면 사유든 상념이든 멈추지 않는 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될 텐데.
ㅤ들이닥친 과제 글을 제출하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한글 화면을 띄워 학번과 이름을 적어놓고 기억들을 떠올린다. 구체화 과정이 괴로워서 나는 생각을 멈추는 생각을 한다. 열아홉 해를 살아오며 스스로에게 커다랗게만 느껴졌던 문제들은 지하에 파묻혀 있다. 내가 서 있는 땅은, 세상은 너무 넓어서 그런 작은 기억은 묻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는 것 같다. 흔적을 찾고 땅을 파기 시작하는 나는 지금 들이 닥친 문제를 새로 끌어안고 살아간다. 애를 쓰다 지쳐서 기억을 먼저 놓아버린다. 그러고도 현재를 놓고 싶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여기서 ‘잠깐!’ 하고 외치는 만화적 연출에 익숙한 내가 끼어든다. (지금처럼 말이다.) 나는 무기력한 나를 원망한다. 그리고 무기력한 나에게 변명을 해주려고 또 기억을 헤집는다.
ㅤ나는 그것들 중에서 제일 그럴싸한 변명을 골라내는 작업을 계속한다. 날 것의 마음을 보여주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하고, 정리하다보면 작은 고통을 부풀려 말하는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사소하게 넘기고 싶지는 않은 알량한 자존심이 다시 붙잡아 글자들을 끌어내린다. 그러다보면 노트북 화면은 여전히 새하얗고 눈은 피로해지고 두통이 몰려온다. 나는 나를 자책하며 돌아 눕는다.
ㅤ이런 과정을 반복하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냥 머리를 뽑아서 던져버리는 상상을 한다. 사 년째 머리를 뽑아 아스팔트 위로 던지는 상상을 하다 보니 그려지는 장면이 있다. 상상 속의 내가 내 머리를 뽑는 것까지는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반면에 그 후에는 내가 제 3자가 되어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스스로도 웃음이 나는 지점은 깨진 내 머리가 깨진 수박과 비슷하게 흐릿한 효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이다.
ㅤ수업을 마칠 때까지 겁이 났다.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종종 이러는 날을 견디지 못하고 조퇴할 때면 ‘쟤 안 아픈데 아픈 척하는 거 아냐?’, ‘맨날 병원 간다는데 진짜야?’, ‘나도 병원간다고 조퇴하고 싶다.’ 하며 수군거리던 목소리들. 그래서 내가 학교를 그만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마음에 어린 마음들을 견디지 못해서. 다 알면서 시간을 거슬러 간다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ㅤ학교는 꼭 가야한다는 강박을 강요받으며 중학교 3년을 내내 아침마다 울고, 부모님과 말싸움을 하다 결국 내몰려서 등교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타의로 인해 선도부 활동을 했기에 7시까지 학교에 갔다. 선도를 위해 나가기 전까지 혼자 교실에 앉아 자해를 했다. 피를 쏟은 것도 아니었고, 상처도 그다지 깊지 않았지만 온 팔뚝이 그래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나는 부모님에게 나를 이해시키려는 싸움을 포기했다. 계속해서 서로 상처만 입힐 바에야 나만 상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족이라는 건 그래서는 안 된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한다. 부모님이 말하는 사랑을 받으려면, 나는 학교를 가야했고, 대학에 진학해야 했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학교에 갔고, 뭘 하면 좋을지 몰라 집에 돌아와선 잠만 잤다. 부모님은 나를 게으르다고 말했지만 나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ㅤ나는 아직도 그 연장선에 서 있고, 대학교도 마찬가지로 집에서 스스로를 내쫓은 듯한 마음가짐으로 등교했다. 웬만하면 수업엔 앉아 있으려고 아등바등 했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괜찮아지고 싶어서 약을 먹지만 사실 중학교 전의 기억들은 묻은 흔적조차 모르겠고 괜찮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다며 이대로 살고 싶기도 하다. 머릿속에서 부딪히는 생각들이 나를 다 파먹으면 그 때에는 죽을 용기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ㅤ죽을 만큼 아픈 것도 죽을 만큼 힘든 것도 아니라 죽고 싶다 말하면 진짜로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기만인 것 같아서 참았다가 이 글에 실어 보내려고 한다. 아무나 같이 얘기해줬으면 하는데 그렇다고 얘기를 이어나갈 힘도 없고, 이런 건 글에 쓰라던데. 라는 심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