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칠러 여러분. 금주의 에세이 당번 파주입니다.

요즘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받곤 하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멘탈을 박살낸) 질문 하나를 공유합니다.

"OO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근본을 묻는 면접관의 질문에 저는 무엇이라고 답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이 질문을 향해 어떻게 답변하실 건가요?

 최근 말 한마디에 무력감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꽤나 매서운 질문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이직하셨는데 여기도 1년 다닐 건 아니죠?”
“담당했던 업무가 조금씩 다르던데, 경력이라고 봐야 할까요?”

 3년차 경력과 3개의 직장, 3개의 직무. 고단수인 인사담당자에게는 잡스러운 경력을 찰흙 붙이듯 얼기설기 엮어 제출한 이력서가 손쉬운 먹잇감처럼 보일 게 뻔했다. 약점을 간파 당하면 이내 날선 질문들이 귓가로 들어와 뇌리에 콕콕 박힌다. ‘그러니까요, 그게 말이죠...’ 그럴 때마다 미처 당황을 감추지 못한 채 어물거리며 답변하기 시작한다. 면접이 진행되며 질의의 난이도가 고조됨에 따라 심박 수가 치솟고 호흡마저 가빠진다.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질문이고 이미 수차례 당했는데도,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구질구질한 변명에 가까운 답을 늘어놓고 나서야 굳어있는 면접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한숨만 안 쉬었다 뿐이지, 마스크 위쪽의 표정만으로도 이미 이 면접이 망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다. 복싱은 잘 모르지만 어설프게 가드를 올린 채 원투 펀치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그 뒤로 결정타가 날아든다.

“다음 질문드릴게요. 파주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대뜸 이쪽의 근본을 물어오는 근본 없는 질문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 그 질문은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듯 면접관을 빤히 쳐다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친절한 눈빛을 띈 자비심 없는 면접관은 똑 부러지는 말투로 질문을 재차 던진다. ‘그 항목은 자기소개서에 충분히 적어두지 않았나요? 분량이 모자랐나요?’라고 되묻고 싶지만, 이미 입이 절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저는 여기저기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고요. 책 모으는 걸 좋아하고, 음악 듣는 걸 그보다 조금 더 좋아하고... 영화도 그럭저럭 좋아해요. 또, 한화이글스랑 리버풀 팬이고... 어...”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멍청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주접스럽게 나열하고 말았다. 나조차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몽땅 내뱉고 나서야 시야가 돌아왔다. 면접관을 표정을 보자마자 이 면접의 결과를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면접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집으로 돌아와 애꿎은 베개와 이불을 두들겨 댄 것만큼은 확실하게 떠오른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뒤에야 쪽팔림의 구렁텅이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불 걷어차는 걸 그만두고 나를 한방에 넉다운시킨 그 질문을 곱씹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면접에서 떠벌거린 것처럼, 나의 취향이 나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걸까. 퍼스널 브랜딩이 득세하는 시대라는데 본인도 제대로 자랑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시대에 뒤처진 모지리가 아닐까. 아니, 애초에 몇 마디 말로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설명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나는 어떤사람인가. 차라리 스무 살 때의 내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았던 투지 넘치는 시기였으니 찰나의 고민도 없이 답하지 않았을까. 좋아하던 게 무엇인지 맹렬하게 쫓던 스물다섯 때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답변을 찾을 수 있었을 거 같다. 사회(직장)의 쓴맛을 찔끔 맛봤을 뿐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정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런 인간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떠벌리기엔 그 분야에 나보다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인재들이 즐비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덕업일치에 실패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고, 취향에 대한 애착도 전과 같이 않아서 '이거 없으면 못 산다' 싶은 것도 딱히 남아있지 않았다. 겨우 몇 년 사이에 나는 열정도 취향도 변변찮은 심심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몇 주째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지만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재능도 열정도 애매한 맹추. 자기PR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시류에 도태된 밥통. 고작 질문 하나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무너지는 게 억울해서라도 꾸역꾸역 답을 찾아내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서야 그런대로 괜찮은 답을 하나 길러냈다.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에 나는 이거다, 하고 냉큼 단정 짓지 않는 인간이 되기로. 뭐든 쉽사리 확신하지 않기로. 스스로 내 근본을 하나로 퉁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인사 담당자였던 적도, 사람을 심사해야 했던 적도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는 질문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그 대답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편입니다. 자신을 한 문장으로 소개하라는 질문, 참 무례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면접에서 그런 질문을 몇 번 받아봤지만 도무지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답정너'처럼 틀에 박힌 말을 하면 된다는 것도 알지만 자기기만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차라리 희곡 '리어왕'의 대사처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라고 외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간인지 한 치의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조금은 의심하게 됐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그렇더라구요. 사람도 조직도 포장을 뜯어보면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마치 상장을 앞둔 기업의 IR처럼 말이죠. 정직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자신이 누군인지 자꾸 되묻게 되고 서로 상이한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순간순간 그 결이 모두 달라서 자신을 한 마리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파주님처럼 말이죠.
 한참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가 떠올랐어요. 덕분에 당시 썼던 자소서를 훑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저널리스트에 굉장한 확신을 가졌네요. 강점과 약점, 관심사, 취미 등 모든 요소가 단 하나의 경로만 가리키고 있어요. 지금의 제 모습이 괜히 무안하게 느껴지는군요.

 삶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우리는 당연히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죠. 지금의 내 모습은 나도 처음 겪는 나라서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나는 누구? 그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둘 중 하나가 아닐까요. 죽었거나 사기꾼이거나(원래는 ‘죽기 직전의 인간’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죽음을 앞두고 무언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뭐, 면접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일은 ‘어필’에 가깝다 보니 그건 기술의 문제일 수도.
 면접장에서 근본을 묻는다니,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떤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삶의 목표에 대해서 묻는 질문일까요? 아니면 어떤 능력치를 갖고 있는지 소상히 읊는 제품설명서류의 답을 기대했던 걸까요? 아니면 동료로서 얼마나 잘 맞는지 가늠해볼 목적으로 취향을 물어본 걸까요?

 제 경험상 질문자가 생각을 많이 안하고 물어보면 이렇게 다양하게 해독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더라구요. 아! 어쩌면 그 인사담당자는 '외길 장인'을 뽑고 싶었는지도...? 명쾌한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충분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거나(깊이 생각해보면 몇 마디 단어로 나를 설명한다는 건 과잉포장이되거나, 극히 일부분일 뿐이기에 불가능하단 걸 깨닫게 될 것이므로) 아니면 진짜 평생 한 분야만 파고 있는 외길장인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근데 그 회사 외길 장인을 모실만한 복지제도는 마련해두고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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