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깊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취향이 짙어지곤 하죠. 저는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취미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오늘의 인터뷰이 오소님은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오히려 취향을 '흐릿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한다고요. 최대한 다양한 종류를 접하고, 자꾸 비슷한 종류들만 추천해주려는 알고리즘을 일부러 교란시키기도 하면서요. 오소님은 왜 굳이 취향을 흐릿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

 오소님의 취미는 '음악 듣기'입니다. 탐구자님도 음악 듣는 걸 좋아하신다고요? 사실 요즘은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오늘의 인터뷰는 음악을 좋아하는 모든 탐구자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거예요! 🎵

• 음악을 좋아하는데 오디오 장비에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 새로운 음악을 찾기 위해 알고리즘 교란 시키기 
• 음악의 효능,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불을 지펴준다'
•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좋은 음악들이 주는 위로
• 취미란, 지난한 삶에 점점이 흩어진 간이 지지대

🦥 오소님은 주로 어떤 장르를 즐겨 들으세요?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하나에만 빠져들면 굉장히 깊은 감상도 할 수 있고 전문 지식도 가질 수 있겠지만, 다른 장르를 배척하기도 쉬워져요. 귀가 거기에 길들여지니까. 제 편견일 수도 있는데, 록을 좋아하시거나 힙합을 깊게 좋아하시는 분들이 사실 팝 음악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기도 하시잖아요.

혹시 <트롤>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 아세요? 거기서 되게 웃긴 장면이 있는데, 각 트롤들의 세상이 장르별로 나뉘어 있고, 각 장르의 음악을 대표해요. 록을 대표하는 트롤이 있는데, 그 트롤이 제일 먼저 가서 때려부수는 데가 전자음악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야 이게 음악이냐' 막 이래요. (웃음) 근데 저는 그러기가 싫은 거예요. 제가 가진 음반이나 플레이리스트도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고, 가리지 않으려고 해요.

오디오는 정말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고, 인생을 망치는 취미 중 하나라고도 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욕심을 안 내려고 해요. 물론 비싼 오디오일수록 음질이 좋겠죠. 하지만 저는 음질에 음악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장비로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녹음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 음질이 훨씬 나쁘던 시절에도 좋은 음악은 탄생했고 사람들은 즐겼잖아요. 좋은 음질과 좋은 믹싱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음악의 전부는 아니에요.

그래도 음악을 듣다 보니 어떤 건 이어폰으로 들어도 충분히 좋고, 어떤 건 CD로 듣고 싶고, 어떤 건 카세트 테이프, 어떤 건 LP로 장만해서 듣고 싶더라고요.

🦥 각각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악마다 맞는 매체가 있는 것 같아요. 전자음악은 LP로 듣고 싶지 않거든요.

🦥 뭔지 알 것 같아요. LP는 약간 지지직거리는 맛이 있는 음악, 빈티지한 음악이 더 잘 어울리죠.

그것 말고도 CD는 돌아가는 모습, LP는 판에 바늘 올리는 행위, 카세트는 버튼 누르는 순간의 촉감. 이런 행위들도 감상 경험에 들어가요.

🦥 그러고 보면 음악 감상이라는 게 완전히 청각적이기만 한 경험은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참고로 제가 처음 고민했던 카세트 테이프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였어요.

🦥 아, 그러네요. 그건 진짜 카세트 테이프로 들어야만 할 것 같아요. (웃음) 

LP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영화 <중경삼림> OST 때문에 LP를 장만해야 하나 고민했었어요.

🦥 새로운 음악은 어떻게 찾으세요?

새로운 음악을 찾는 건 지금 시대에 들어서 저한테 굉장히 큰일처럼 느껴져요. 알고리즘에 저항하는 일이거든요. 요즘은 음악을 접하기가 훨씬 쉬워졌잖아요.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이제는 스트리밍을 넘어서 쇼츠 시대예요. 거기에 맞춰서 짧고 강렬한 음악이 대세고요.

근데 음악을 깊이 듣고 감상하기에 지금 시대가 과연 좋을까 싶어요. 유튜브도 없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좋은 음악은 어쩌다 길을 가다 들리거나 카페에서 스쳐서 듣는 거였거든요. 만약 외국 음악이면 정보 얻기가 쉽지 않으니까 막 뒤지고 찾고 그랬죠. 찾았다 해도 해적판밖에 없었고요. 그때 음악을 좋아하고 빠져든 사람과 지금 음악을 쉽게 소비하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다가가기 쉬워지면 소중함이 사라져요.

요즘에는 대중이 파편화돼서 예전처럼 시장을 지배하는 사운드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서로 음악 좋아한다고 해도 일치하기가 쉽지 않죠. 그러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새로운 음악을 내 바운더리 밖에서 찾는 게 너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알고리즘을 교란시키려고 해요. “이 사람이 왜 이런 음악을 어디서 찾아서 듣는 거지?” 하고 알고리즘이 헷갈리게끔요. 스트리밍이 저를 학습해서 좋아하는 걸 계속 추천해 주는데, 그러다 보면 화면에 똑같은 노래만 떠 있거든요. 저는 그게 싫어요. 그러니까 가능한 한 다양한 먹이를 주는 거죠. 확신하지 못하게 막는 거예요.

새로운 음악은 음악 블로그나 뉴스레터 구독도 하고, 인스타그램 음악 추천 계정에서 추천받기도 해요. 해외 음악 신에 밝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경로로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해요. 그런 음악을 한 번만 재생하거나 재생목록에 담아놔도 알고리즘이 학습하거든요. “새로운 게 들어왔다!” 하고 놀라죠. 또 수시로 중고 음반 매장에 가서 음반을 보기도 해요. 안 유명한 음반들 있잖아요. 누가 호기심에 샀다가 별로라서 판 것들. 그런 걸 사서 들으면 알고리즘은 “이걸 어디서 찾아왔지?” 감이 안 잡히잖아요. 그렇게 일부러 교란시키는 거예요.

🦥 정기적으로 음악을 큐레이션하고 비평하는 글을 블로그에 작성하고 계신다고요. 그런데 음악에서도 당연히 취향이 있잖아요. 글을 쓸 때는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려고 하세요, 아니면 취향을 그냥 드러내는 편이세요?

중립적이고 싶어도 사실 중립적일 수가 없어요. 음악을 포함해서 예술에 발을 담그는 순간 주관이 없으면 오래 즐길 수 없잖아요. 물론 중립적인 태도는 중요하지만, 진짜 중립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취향을 흐릿하게는 가져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다른 음악을 듣고 취향을 넓힐 수 있으니까요. 저도 음감회나 블로그 활동을 통해서 다른 음반도 많이 듣고 신보도 접하고, 다른 에디터분들과 음감회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 취향을 공유하기도 해요. 서로 취향을 공유하면서 오히려 중립성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 그렇죠. 혼자만의 취향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취향을 접하면서요. 근데 “취향을 흐릿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예술을 좋아하는 게 과도해지면, 지금 나오는 음악은 다 별거 없다, 다 카피다, 이런 식으로 결론 내려버릴 수 있거든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럼 지금 음악 하는 사람들은 뭐가 돼요? 리스펙이 하나도 없잖아요. 저는 그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전에도 훌륭한 음악이 많았지만, 거기에 갇히면 안 돼요. 그래서 경계를 흐릿하게 하려는 시도가 중요한 거죠. 

🦥 사실 음악을 안 듣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전혀 안 듣는 건 아니겠지만, 굳이 찾아 듣는 취미는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음악이 왜 우리 삶에 중요한지 얘기해줘야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좀 깊은 얘기지만...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라고 해야 할까요. 어디선가 누군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거나,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순간에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근데 음악을 들으면 그런 공포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 믿음에 불을 지피게 되는 것 같아요.

🦥 인류애가 생겨난다!

네, 거창하지만 사실이에요. 음악은 창작물이잖아요. 나와 전혀 연이 없는, 얼굴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창작물을 통해 연결되는 거죠. 특히 처음 듣는 노래가 너무 좋을 때, 그게 옛날 곡이든 최신곡이든 상관없이 좋은 곡을 만나면 그냥 너무 기뻐요. 단순히 기쁜 게 아니라 “또 찾았다”라는 안도감이 들어요. ‘아직은 괜찮구나’ 이런 생각이랄까요. 새로 산 음반이나 디깅한 곡이 너무 좋을 때는 눈이 절로 감기고, 너무 좋아서 살짝 다른 세상을 갔다 오는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때면 ‘아, 사람을 믿어도 되겠구나, 포기하면서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음악의 효능인 것 같아요. 거창하게 말하면 그냥 ‘파워 오브 뮤직’인 거죠.

🦥 그럼 오소님은 음악 들을 때 언제가 제일 행복하세요? 

새로운 음악을 찾았을 때. 그리고 몇 년 전에 듣고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음악이 몇 년 후에 들어도 여전히 변함 없이 좋을 때요. 그때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어보니까 시대를 타는 음악이 아니구나, 아직도 세련됐구나 싶을 때. 그게 정말 특별한 안도감을 줘요.

🦥 내가 옛날에 느꼈던 가치나 세상이 옛날에 느꼈던 가치가 아직도 통용되는구나, 이런 느낌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고요. 또 어떤 음악은 당시에 최신 음악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은 음악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몇 년 후에 들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 단순히 쉽게 식는 유행이 아니었다는 거군요. 그런 건 사실 시간이 지나봐야만 알 수 있잖아요. 그게 제가 클래식이라는 장르에서 느끼는 안도감과도 비슷하네요. 이미 몇백 년이 지나도 유효한 음악이니까, 내가 언제 들어도 거기에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그게 주는 안도감이 있어요. 요즘은 유행이 너무 빨라서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신보 나오는 속도도 너무 빠르고, 금방 잊혀지는 음악도 많고요. 요즘에도 2023년이나 22년, 21년도쯤에 즐겨 들었던 음악을 지금 다시 들어도 ‘아직도 좋구나’ 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정말 행복하죠.

🦥 음악 듣기를 하면서 배운 삶의 지혜가 있으세요?

이건 단순한데, 인간에게는 예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이 없으면 생존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인간의 모든 걸 정의할 수는 없잖아요.

🦥 맞아요. 인간을 최종적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게 비효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흔히 ‘딴따라’라는 말을 하잖아요. 예술 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인데, 그만큼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졌던 거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고요. 자본주의 사회라서 음악 시장이나 상업 음악이 존재하는 거지, 사실 원래 음악은 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남지 않는 거였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뭔가를 만들지 않고서는 삶을 견딜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 ‘만든다’는 게 꼭 업무적으로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예술일 수도 있는 거죠. 목소리를 내고, 그걸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순간순간이 삶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그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요. 음악이야말로 ‘소리’ 그 자체니까요.

지난 겨울부터 이번 봄까지 겪었던 힘든 날들, 혹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떠올려 보세요. 인간이란 존재는 결국 지구라는 별 위에서 연결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어리석음도 있고 음모론도 있지만, 그걸 극복하려고 음악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음악 듣기라는 행위가 작은 저항이라고도 생각해요. 음악을 듣는 동안만큼은 잠시나마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겨요. 인간의 창조력이 아직 메마르지 않았구나, 그 믿음이 없으면 삶을 살아가기 어렵고 삶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음악의 효능이라기보다 거의 존재 이유에 가깝네요.

음악을 들으면서 항상 느끼는 게 그거예요. 다른 사람의 창작물과 내가 연결된다는 것. 그게 최신곡이든 옛날 곡이든 상관없이요.

🦥 오소님이 정의하는 취미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취미란, 지난한 삶을 살기 위해 현실과 싸우는 일이에요. ‘지난하다’라는 말이 지극히 어렵다는 뜻인데, 저는 그게 삶 같다고 생각해요. 삶은 쉽지 않잖아요. 기쁨은 잠깐인데, 나쁜 기억은 오래 남고요. 그래서 현실을 버티기가 힘들죠. 그 현실 속에서 간이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게 취미라고 생각해요. 끝없는 벌판을 걷고 있는데 점점이 흩어진 지지대를 쉼터 삼아 조금씩 나아가는 게 삶이고, 그게 취미예요. 

또 시간이라는 절대 불변의 가치가 있잖아요. 시간을 더 원한다고 해서 24시간이 36시간이 되지는 않죠. 그 절대적인 시간을 회사나 일에만 쓰는 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역에 쏟는다는 것. 그 자체로 싸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취미를 ‘싸움’이라고 정의합니다.

🦥 되게 치열하면서도 따뜻하게 들리네요. 취미가 싸우는 행위라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저는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가 원하는 건 결국 ‘쉬는 시간 없이 끊임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취미를 갖는 걸 은밀하게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오소님은 모든 사람이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취미가 없는 분들도 많잖아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그걸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사람마다 편차가 크죠. 하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취미를 가지면 진짜 좋다는 거예요. 공부든 일이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취미는 필수는 아니지만, 삶에서 부족한 부분을 분명히 채워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