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지영 팀장 1주기 특집호 2023년 8월 16일, 발전대안 피다의 전문위원이자 옛 ODA Watch의 실무 책임자였던 윤지영 님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함께하는 모두에게 따뜻했던 그의 1주기를 맞아 활동가 윤지영을 기억하는 네 편의 글을 피움 독자 여러분들께 부칩니다. 국제개발협력 정책 활동가로서, 그리고 인권평화 활동가로서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삶을 추념하며, 그가 실천하고자 했던 가치를 다시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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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 여는 글: '발전'과 '연대'로 기억하는 윤지영 (8월 16일) ② 행동하는 힘을 퍼뜨리는 시민활동가 윤지영 (8월 20일) ③ 사람과 연대하는 정책활동가 윤지영 (8월 27일) ④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현장활동가 윤지영 (9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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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사람들 '중심'에서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 그리고 언제나 사람들 곁에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며 딱 반 걸음 뒤에서, 딱 반 걸음 앞에서 함께 걸어 주는 사람. 세상에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신의 부재함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존재함을 드러낸다.
내 친구 윤지영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우리 곁을 떠남으로써 세상에 내어주던 곁의 크기를 알린 친구. 소란스러운 세상과 작별하고 평온하게 잠든 친구를 몇 줄의 글로 다시 불러내는 작업만큼 망설여지는 일을 떠올리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 처연한 이별의 과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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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지영 씨에 대한 글들을 모아 피움에 싣고자 같이 고민할 분들을 초대했습니다. 앞으로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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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31. 한재광의 카카오톡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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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해 늦가을,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에서 진중하기로 유명한 한재광 대표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대뜸 내던진 한마디에 발전대안 피다의 전현직 활동가 다섯 명이 모였다. 우리는 단지 "윤지영"을 안다는 이유로 흔쾌히 모여 그녀에 대한 서로의 기억을 나누며 친구가 됐다. 다섯 명의 동료 활동가가 각자의 삶에서 만난 지영은 세간에 회자되는 한두 가지 직업이나 활동으로 말끔히 정리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항상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호흡하던 생전 그녀의 성정은 "윤지영"이라는 인물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2010년 전후의 한국 사회, 특히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역동 안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모종의 책임감을 우리에게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감은 역설적으로 막상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우리에게 커다란 고민을 안겨 주었다. 기본적으로 "윤지영"은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풍미했던 여러 사건들의 주변부에 피동적으로 떠밀리던 활동가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지영의 이러한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시대적 맥락이 삭제된 활동가의 삶이 피상적이고 감성적으로만 나열될 수 있는 까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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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대한 시원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우리 활동가 다섯 명이 본격적으로 글을 집필하기 시작한 시기는 계절이 두 번 지난 올해 6월 말이었다. 그동안 일단 생전 지영이 남긴 글과 사진을 정리하여 살펴보고, 각자 기억하고 있는 동료 활동가 "윤지영"을 각자의 언어로 작성한 뒤 모여 서로의 초고를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영과 지인들의 SNS, ODA Watch에 몸담았던 시절 그녀가 뉴스레터(OWL)에 기고했던 글, 그 밖에 여러 회의나 행사에서 그녀가 남긴 어록 등을 포함해 수백여 개의 온라인 자료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자취를 찾아가길 수 차례 반복하는 동안 내 친구 지영은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한편, 사회적 긴장과 갈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던 활동가의 옷을 모처럼 다시 꺼내어 입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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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과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연재 기획의 여는 글을 쓰게 된 나로서는 다른 동료들의 초고를 읽으며 정책과 현장,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았던 활동을 통해 친구가 생전에 실현하려 했던 바가 무엇이었을지 새삼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글들을 읽으면서 해사하고 온화한 친구 지영의 모습과 강인한 활동가 윤지영의 모습이 묘하게 교차하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든 곁과 품을 내어주는 그녀만의 독특한 연대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지영은 "광화문"과 인연이 깊은 친구이다. 그녀는 광화문에 대한 가사로 유명한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즐겨 들었는데, 어릴 적부터 이문세의 찐팬이었던 나는 가을마다 지영과 서로 소국을 선물하며 노래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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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영에게 광화문은 기실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인 것만은 아니었다.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던 2016년 겨울을 지나 대통령 탄핵이 인용됐던 이듬해 봄날, 들뜬 마음에 저녁 무렵 내가 연락한 친구가 다름 아닌 지영이었다. 지영 부부가 좋아하는 회를 사들고 불쑥 찾아갔던 집에는 마침 나 말고도 광화문에서 온 그녀의 지인들이 두어 명 더 있었고, 우리는 이내 말벗이 되어 탄핵을 축하하는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영이 이전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종종 참가하고 한국 정부의 국제원조투명성기구(IATI) 가입을 촉구하는 '원조 투명성 캠페인'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낭만의 공간 광화문은 지영이 시민활동가로 호명된 연대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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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연재될 처음 두 개의 글에는 모두 광화문 일원의 '광장'이 등장한다. 첫 번째 글은 지영의 직장 후배인 이재원이 맡았다. 재원은 지영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피다 사무국에 몸담았던 동료이기도 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지영은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행동하는 활동가"이다. 그런데 막상 지영은 본인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타인 앞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서 타인의 행동을 이끌지도 않는다. 그녀가 실천했던 행동이란 그저 본인이 "품이 넓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오래 걸리더라도 본인이 성찰하고 변화함으로써 누군가의 공감을 자아내는 윤지영만의 연대 방식이다.
그런 지영의 연대 활동에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서 있었다. 지영의 떠남으로 생전 그녀의 마지막 직장 선배로 남게 된 한재광의 글은 2010년 한국의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 이후 급변해 온 국제개발협력 정책 형성 과정에 시민의 입장을 당당하게 대변해 온 정책활동가 윤지영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나는 지영이 그렇게 당찬 모습으로 연대의 광장에 나설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이 사람, 그중에서도 국가 중심의 개발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영은 '우리'와 '타자'로 구획된 첨예한 '개발'의 문제를 현장 주민과의 연대를 통해 보편적인 '발전'의 문제로 전환할 줄 아는 영민한 활동가였다.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그녀의 인류애적 연대 방식은 늘상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위에 터해 있기에 정당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재광은 "주민이 주체가 되는 개발"을 지향하며 원조투명성을 부단히 요구했던 지영의 애드보커시 활동이 "기술적 전문성과 효과성"에 매몰된 오늘날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영역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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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영에게 딱 한 번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당시 지영은 ODA Watch를 휴직하고 출산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는데, 내 딴에는 친구의 태교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름 인생의 책을 골라 우편으로 부쳤더랬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제목의 책은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될 것이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마태오 복음서 20장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전한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친구 지영이 누구보다 책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지영의 아이도 엄마처럼 주변의 사람들에게 품과 곁을 내어 주는 따스한 사람으로 성장해 주길 바랐다.
활동가 윤지영에게는 개발 현장의 주민들이야말로 "나중에 온 사람들"이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지막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방식이 지금까지의 개발 담론이었다면, 지영은 "나중에 온 사람들"과 가장 먼저 손을 맞잡는 방식으로 기존의 개발 문법에 균열을 가하려 했다. 연재의 마지막을 담당한 동료 활동가 정승은의 글에는 개발 과정에서 쉽사리 보이지 않았던 주민을 동등한 발전의 주체이자 동료 시민으로 인식하고,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대안적 평가 방식을 고민하는 현장 활동가 윤지영의 생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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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누구에게나 각별한 친구였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나일 뿐'이라서 그저 그런 평범한 친구가 아니라, '하나뿐'이라서 특별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돌아보면 활동가 윤지영의 연대란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 내던 지영의 지인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서로 친구가 되어 지영의 빈 자리를 함께 채워 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세상에 이별을 고한 내 친구 지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우정"을 우리에게 남겼다. 친구가 남긴 우정과 환대는 1년만에 다시 '윤지영 펠로우십'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지역사회 현장의 얼굴 없는 "윤지영들"을 찾아간다고 한다. 남아 있는 친구들이 지어 준 그녀의 이 세상 마지막 직업은 "인권평화활동가"다. "윤지영"이라는 동료 시민은 이제 개발 활동을 넘어 새로운 국제 인권평화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그녀가 즐겨 듣던 노랫말처럼 "노을진 구름과 언덕"이 있는 곳에서 맨발 산책을 즐기고 있을 친구를 가을의 문 앞에서 다시 가만히 불러 본다. 우리의 글문을 열고 사뿐사뿐 걸어 나올 시민 윤지영과 독자들이 환대의 마음으로 조우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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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용시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트워크사업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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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님이 생전에 활동했던 단체인 발전대안 피다, 피스모모, 해외주민운동연대(KOCO)가 협력하여 라오스와 캄보디아, 미얀마의 개발, 인권, 평화활동가들을 1년에 두 명 선정하여 2년간 매달 50만 원을 지원하는 인권평화활동가 윤지영펠로우십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윤지영 님이 꿈꿨던 사람의 존엄을 귀히 여기는 사회, 생명의 무게를 중히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시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모금 주관단체: 사단법인 피스모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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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대안 피다 pida1025@pida.or.kr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115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S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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