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세 미만 청년이 세대 분리하는데 몇 가지 조건이 있거든요. 나나가 가정폭력 당했을 때 신고한 기록이 있어요?
나나 : 원가정에 있을 때 신고는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우리 딸이 정신병자라서 허위 신고한 거라고 경찰을 돌려보냈어요. 얘는 정신이 안 좋은 아이다, 하면서. 그럼 경찰이 매번 그냥 갔어요. 경찰서에 가서 정식으로 조사를 받은 기록이 없어요. 그리고 탈가정하고 나서도 쉼터에 안 들어갔어요. 저랑 가정환경이 비슷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 사람들이 쉼터에 갔다가 안 좋은 물이 들어서 나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어린 마음에 쉼터 가면 나도 저렇게 될 것 같아 무서워서 쉼터에 가는 대신에 친구네 집에 가거나 아니면 노숙을 하거나 그랬죠. 갈 곳이 없는 어떤 날은 밤새 걸어 다니고.
탈가정 하고 나왔을 때 여러 가지 세상의 유혹들이 있거든요. 근데 저 스스로 생각했어요.
‘절대 불법적인 일은 하지 말자.’
그리고 저 스스로 부끄러운 일은 안 하고 살았어요.
| 경지 ‘세상의 나쁜 유혹을 뿌리치고 내 삶을 내가 잘 꾸려보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었나 봐요.
나나 : 제가 고등학교 3학년, 19살 끝날 무렵에 취직했어요. 공고를 나왔거든요. 취업하고 나니까 4대 보험도 들어주고 막 좋더라고요. 막 은행도 내가 혼자 갈 수 있고. 좋았어요. 그래서 나쁜 일보다는 역시 4대 보험 들어주는 일이 낫지! 생각했죠.
| 그때부터 쭉 쉬지 않고 일 한 거죠? 지금도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아르바이트하고. 그러면서 최근에 학교도 새로 들어갔죠?
나나 : 맞아요~. 사이버 대학교인데, 저 복수 전공도 신청했어요. 주 전공이 물류 유통이고, 부 전공이 경영이에요. 졸업하면 물류 유통 쪽 일하고 싶어요. 대기업 프랜차이즈 유통 관리하고 막 이런 거. 중고 신입이겠죠? 아무래도 30대일 테니까.
강빈 : 저 첫 직장이 물류였어요.
| 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이!
강빈 : 저는 17살, 고등학교 1학년 때 인턴을 했고, 20살 때부터 사원이었는데 3년 차 때부터 후배들이 들어왔는데 다 30대였어요. 다들 잘 하시더라고요! 잘 할 거예요 나나도.
혹시, 물류가 막 적성에 맞아서 선택했다기보다는 몇 가지 직업 후보 중에 그냥 제일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거예요? 어때요 나나는, 진로 선택할 때? 사실 저는 그랬거든요.
나나 : 네 그렇죠. 저는 사실 진로를 고민한 게 얼마 안 됐어요. 제가 26살인데, 24살부터 진로 고민을 했어요.
| 진로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나나 :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 경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에서 ‘이렇게’는 어떤 의미예요?
나나 : 제가 이제 처음에 들어간 직장이 진짜 힘들었어요. 임금 체불이 심했고, 폭언 폭행도 있었어요. 거기서 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 멘탈이 정말 무너져서 당분간 회사에는 못 들어가겠다 싶어서 카페 알바를 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모은 돈이랑 퇴직금으로 전셋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퇴직금을 안 주는 거예요. 노무사 소송을 했는데, 노무사한테 사기를 당했어요. 8개월 지나서 퇴직금을 받느라 약간 계획이 꼬인 거예요. 그래도 일단 퇴직금 받는 걸 생각하고 우선 전세 계약금을 걸어뒀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이 전세 계약이 안 되는 집이었던 거예요. 계약금을 날렸어요. 그게 전 재산이었는데.
부동산이랑 집주인이랑 짜고 그런 건데, 법적으로 제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때 2차 멘탈이 나가면서 조금 망가진 상태였어요. 나한테 남은 건 다시 100만 원뿐이고. 그때가 22살이었어요. 카페 아르바이트하면서 맨날 술 마시고, 망가지고. 살이 40kg 넘게 쪘어요. 더 망가지기 전에 정신 차리고 지금 회사에 들어갔어요. 또 회사 다니니까 좀 안정이 되고 살만해지더라고요. 전 회사보다 근무 환경도 너무 좋았어요.
근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나 진짜 이렇게 살면 계속 평생 월에 200만 원 언저리 벌면서 살겠구나.’
저는 결혼도 하고 싶고, 집도 사고 싶거든요. 월 200만 원 벌어서 어떻게 결혼하고, 집도 사고, 사기당해서 진 빚은 언제 갚나, 큰일 났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알아보다가 지금 상황에서 갈 수 있는 사이버대학교에 들어갔어요. 물류 유통 전공을 한 건, 제가 카페에서 일할 때 엄청 행복했거든요. 매장 말고 본사도 가고 싶다 생각이 들고, 본사 가서 물류 관리하는 걸 해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어요. 잘 되겠죠?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강빈 : 잘할 수 있어요. 정말로!
| 강빈 님도 첫 회사를 가게 된 게 좋아서가 아니라 주어진 선택지 중에 가장 나은 걸 선택한 건가요?
강빈 : 그렇죠. 제가 지냈던 보육원이 영종도에 있는데 영종도는 공항이 있고 물류 기업들이 되게 많아요. 사실 저희 보육원 선배들 중에 대학에 간 사례가 없고 다 물류센터에 재직했거든요. 제가 약간 꿈꿀 수 있는 꿈의 범위가 좁았어요. 좋은 물류 기업에 들어가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직간접 경험이 너무 적어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검증하지 않은 다음에 선택한 업은 오래 못 가는 것 같아요. 3년 단위로 직장인들이 고비를 넘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3년 되었을 때 그만뒀어요. 그리고 재직자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어요. 저는 첫 물류 회사 그만두고 나서는 금융권에 가고 싶었거든요. 은행원 보면 4시에 퇴근하는 것 같아서 좋아 보였어요. 왜냐하면 물류에 있을 때는 제가 회사 바로 옆에 살아서 거의 12시간 넘게 일했어요. 그게 약간 인정 욕구 때문인 것 같아요. 어차피 집에 가도 아무것도 없고, 어디 갈 데도 없으니까 능력 있는 실무자라는 타이틀이라도 가져보다 했던 거예요. 그게 엄청난 자기 소진인 줄 몰랐어요.
워라밸 챙기면서 내가 뭐 좋아 찾아야겠다 싶어서 은행업을 희망했는데, 사실 은행 문은 4시에 닫지만 마감하느라 늦게까지 일하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서 다음에 하고 싶은 게 개발자였어요. 사실 개발자를 떠올리면 저는 약간의 로망이 있었어요. 능력 있는 개발자가 되면은 해외여행 다니면서 이제 디지털 노마드로 막 일하고 그런 거. 9개월 정도 생활 코딩이라는 사이트로 독학을 하고 카카오의 계열사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하던 개발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개발이었는데 그 사수가 시각장애인이었어요. 그분을 보고 당사자성을 기반으로 한 전문성이라는 직업관을 처음 경험했어요.
내가 경험이 있으니까 뭐가 어려운지 제일 잘 알고 해결 방안도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내 경험을 기반으로 이걸 돕는 제도적 지원에 관해 목소리 낸다던가 아니면 프로그램에 커뮤니티 매니저로 참여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당사성 기반으로 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근데 이걸 업으로 함으로써 내가 보낸 그 역경의 시간이 되게 효용성으로 바뀌더라고요. 쓸모. 거기에 약간 반해서 그때부터 자립 준비 청년 당사자 활동가를 표방했던 것 같아요.
| 경지 두 분 모두 내 삶을 꾸려 나갈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들이 생기잖아요. 퇴사하고, 입사하고, 어디로 이사를 하고 집을 구하고 하는 것들. 내 진로를 선택하는 것도 큰 고민 중 하나죠. 혹시 주변에 이런 고민을 상의할 만한 사람이 좀 있나요? 꼭 큰 이야기들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 끝없는 고민을 마주했을 때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들이 저도 되게 오랜 기간 들기도 했거든요.
나나 : 저는 근데 원가정에서도 방치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할 때 막막하거나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잘 안 해요. 어차피 선택은 내가 하고, 망해도 내가 망하니까 일단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요.
강빈 : 저는 이직도 많이 하고, 첫 회사 퇴사 후에 대학생이 된다는 것도 걱정이 컸어요. 아무래도 소득에 대한 어려움 같은 게 있을 테니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결정을 내릴 때, 그때는 고민을 나눌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결정을 했죠.
사실 제가 지냈던 보육원에 연락해서 선생님과 상담할 수도 있었는데, 도움받는 것을 되게 어려워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맨날 ‘강빈이는 전교 1등 하는 애고, 성공해서 잘 살 거야.’라는 말들을 들었거든요. 대기업에 들어갔고, 막 축하받고, 보육원 아이들한테 강빈이 형 멋지다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가서 ‘도와주세요.’ 할 수가 없는 거죠. 언젠가는 전세 보증금 반환에 대한 문제가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런 걸 물어보고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결국 6개월 동안 회피하고 내버려둬버렸어요.
회피해서 시간이 좀 지연되더라도 혼자 결정하고 혼자 감내하는 편 같은데, 지금도 저보다 어른인 어른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걸 어려워하긴 해요. 그래서 저는 유년기 때부터 어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경험이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탈가정 청년은 원가정 안에 있었지만, 부모와 그런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한 청년들이고, 저는 보육원에 있을 때 선생님은 한 명인데 아이들은 12명씩 막 이러니까 적절한 관심과 어떤 사례 관리에 대한 할애를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라는 생각이 베이스였거든요.
그런 이유로 저는 자립 준비 청년 관련해서는 이제 청년이 된 애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해요. |